"많이 기다렸어?" "아니, 나도 방금 왔다." 제법 잘 어울리는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에 킨조는 살짝 웃어 보이고선 냉큼 그녀의 옆에 섰다. 킨조가 제법 가까워지자 그녀가 킨조를 올려다보며 입술 밑을 톡톡 쳤다. "이런." "빨리." 이에 킨조는 짧게 입을 맞추고선 손을 잡았다. 저번에 새로 립스틱을 샀다며 바르고 오면 뽀뽀해달라고
하늘이 회색빛으로 물들더니 곧 부슬부슬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기예보에선 내일 비가 올 거라고 했었는데, 짧은 한 숨을 내쉰 그녀는 책상에 엎드렸다. 주변을 돌아보면 다들 수업을 듣거나 딴짓을 하느라 그녀가 엎드려있는 것에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잠시 숨을 돌리고자 핸드폰으로 연인인 신카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비 온다ㅠㅠㅠㅠㅠㅠㅠㅠ
고교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그녀는 대학까지 같이 가게 되어서 쭉 연락하며 친하게 지냈다. 단순히 그녀가 이성으로 보여서가 아니라 그녀는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었다. 혼자 두면 어딘가에 부딪히기도 하고, 물건을 어디다 뒀는지 잊어버리기도 하고, 신카이의 기준으로 그녀는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갔다. - “어디야?” “지금 운동장으로 가고 있어.” - “
“많이 취한 것 같으니깐, 마나미 군이 잘 데려다줘.” “네, 걱정 마세요.” 잘 가―, 하는 인사가 이어지고 다들 반대쪽 골목길로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힐끔 옆에 선 산가쿠를 올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생글생글 웃고 있던 얼굴에 표정이 사라진 것 같아서 살짝 숨을 삼켰다. 큰일이다. 역시 여기선 빨리 도망치는 게…! “선배.” “으, 으응?
킨조는 아침부터 감기 때문에 열이 나서 약속에 나가지 못할 것 같다는 그녀의 연락에 알겠다고 죽과 약을 사서 가겠다고 대답한 뒤에 짧은 한 숨을 내쉬었다. 환절기 때마다 감기에 걸리는 것은 물론 추워지기만 하면 눈사람처럼 꽁꽁 싸매고 다니기까지 하는 그녀가 감기에 안 걸리는 것이 이상한 지경에 이르렀다.약과 죽을 사들고 그녀의 집으로 향한 킨조는 초인종을
그녀는 넥타이를 매는 킨조를 신기하다는 듯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시선을 처음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목덜미가 뜨거워질 정도의 시선에 킨조가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왜 그러지?” “…넥타이 말이야.” “아아.” “어떻게 하면 그런 모양이 나와?” 어떻게 하면, 이라는 그녀의 말에 킨조는 짧은 웃음
“잘못 했어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에 킨조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지난 밤 그녀는 12시가 지나서야 집에 들어왔다. 그와의 약속을 어긴 것이었다. 때문에 아침부터 자신의 눈치를 보며 잘못을 시인하고 있었다. “친구들이랑은 재미있었나?” “…네.” 금방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은 그녀는 힐끔 킨조를 쳐다보고선 다시 푹 고개를 숙였다. 어제 친
신카이는 자신의 앞자리에 앉은 그녀의 머리카락 끝을 살살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감촉에 그녀가 매일 아침마다 트리트먼트며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아마 이렇게 그녀의 뒷자리에 앉아서 그녀에게 닿을 수 있는 날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입 안이 썼다. “마지막.” 오늘은 졸업식이었다. 처음 그녀가 친구
일기예보에서 날씨가 좋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었어. 툴툴 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킨조는 살짝 웃어보이고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확실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으나,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은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었다. “안으로 들어갈까?” “응!” 카페 안에 들어서자마자 바람 탓에 이리저리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냉큼 정리하는 그녀가 마냥 귀여워보였다. 자
“제가 데려갈게요.” “아, 맞아. 두 사람 사귀는 사이였지. 응, 조심해서 데리고 가.” “네.” 신카이는 웃는 낯으로 다른 사라들을 보내고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녀와는 고등학교를 같이 나왔지만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대학에서 다시 만났을 때엔 신기하기도 했다. “집에 가야지.” “하야토….” “응, 그래. 나
밤 11시.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 진동에 후쿠토미는 전화를 받았다. 수신인은 확인할 것도 없었다. 오늘은 아라키타의 기말고사 마지막 날이었고, 두시간 전 아라키타는 그에게 오늘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실 거라고 호언장담을 하며 술자리에 나갔었다. "나다." "후쿠짜앙." 조금 멀리 들리는 목소리에 후쿠토미는 인상을 찌푸렸다. 직접 전화를 건게 아닌 듯 했다.
후쿠토미가 소호쿠 고교에 찾아갔을 때 아라키타는 의외로 차분히 반응했다. 인터하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고 있었다. 후쿠토미의 입으로 직접 들은 건 아니었지만 그 날 있었던 소란과 경기장에서 후쿠토미가 했던 말들은 모두 하코네 학교 자전거부 안에 퍼져 있었다. 하코네 주장이 소호쿠 에이스의 옷을 잡아 낙차시켰다. 그것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소문
하나하키병에 걸린 동급생을 부축해 양호실로 데려갔다. 당장이라도 질식할 정도로 꽃을 토하는 녀석을 부축하며 꽃을 뱉게 하던 중, 조심하려고 했지만 꽃을 만져버렸다. 양호실에 도착했을 땐 걸어온 길이 두 사람 분의 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킨조는 입안에 가득 차는 꽃잎을 뱉어내며 대상을 생각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 뿐이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끝내 짝사랑으로 마음을 접었던 킨조는 그 시절의 자신과 비슷한 눈을 하고 저를 바라보는 소년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감이 서지 않았다. 자신은 그래도 코세키씨를 사랑하고 나서는 못 만나서 감추기라도 했지만, 저를 사랑하는 이 소년은 매일같이 만나는 자신의 제자였다. 자신이 학교를 다닐 때도 왕자로 유명했던 하코네 학교였다. 그렇기에 트레이닝은 이미 감독
안경을 쓴 건 그 사람이 제 주변을 떠난 다음이었다. 부레를 잃은 물고기는 가라앉고, 눈을 잃은 맹금류는 먹이를 찾지 못한다. 이처럼 부표를 잃은 자신은 깊은 바다에 가라앉았다. 끝없는 발버둥 끝에 다시 물 위로 올라갈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잃었던 부표의 그림자 덕분이었다. 부표를 안고 살았던 날들을 기억하며 그 그림자를 쫓아왔다. 킨조는 늘 코세키
어수선하다. 그러나 싫지 않았다. 신카이는 어느새 제 이름표가 빠진 부실 사물함을 의미 없이 열고 닫았다. 인터하이가 끝나고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후배들의 연습을 봐주러 들리나, 현저히 발걸음이 줄어든 건 사실이었다. 고맙게도 귀여운 후배들 몇 명은 아쉬워하며 계속 들려 달라 졸랐지만 슬슬 제가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 그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