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색 백합
겁쟁이 페달 / 후쿠킨 / 하나하키병
하나하키병에 걸린 동급생을 부축해 양호실로 데려갔다. 당장이라도 질식할 정도로 꽃을 토하는 녀석을 부축하며 꽃을 뱉게 하던 중, 조심하려고 했지만 꽃을 만져버렸다. 양호실에 도착했을 땐 걸어온 길이 두 사람 분의 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킨조는 입안에 가득 차는 꽃잎을 뱉어내며 대상을 생각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 뿐이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 마음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눈 앞에 선명하게 있는 그림자와 마음을 직면한다면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가 아니다. 사랑이 아니다. 수없이 생각할 수록 그의 그림자는 킨조 안에서 커져갔고, 꽃을 토하는 횟수도 잦아져 결국 수업을 쉬게 됐다. 계속해서 차오르는 꽃잎의 끝에 생각난 게 고작 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라면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꽃잎만 토해내는게 아닌지 종종 작은 것이 통채로 나오기도 했다. 봉우리에 가시가 달린 미니 장미가 온 목을 긁고 올라와 빨갛게 피가 비친다. 원래의 색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빨갛게 물들어가는 노란 장미 꽃잎 속에서 있는 미니 장미의 꽃말은 스스로를 더 좌절하게 만들었다.
끝없는 사랑.
결국 킨조는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몇 번이고 사과해오던 그에게 이젠 자신이 사과해야한다는 걸.
후쿠토미는 몇 번이고 삼킨 꽃을 결국 도로 토해냈다. 언제 감염된 건지도 모를 병이었지만 이겨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대상도 가능성도 명확하다. 의심할 것도 없다. 그리고 나는 강하다.'
그게 그의 단순한 계산이었다. 하지만 작은 꽃잎을 아무리 삼켜도 그 수는 점점 늘어갈 뿐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꽃잎이 울대까지 차오르면 자연스럽게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킨조 신고. 명확한 이 마음의 대상이.
로드를 타다 멈춰서 꽃잎을 토해내고 다시 달렸다. 역시 철가면이라며 다들 칭찬을 했지만 점점 몸에 무리가 가고 있다는 걸 후쿠토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겨내는 것 말고는 달리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그에게 제 마음을 고백한다고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자신이 마음을 접어야만 해결되는 문제였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후쿠토미 주이치는 계속해서 꽃잎을 뱉었다. 고지식한 남자였다.
서로의 사정을 모른 채 시간이 흘렀다. 보이지 않을 때 지독해지고 커지는 게 사랑이라서 둘 다 상태가 심각해졌다.
"차이면 정리될지도 모르잖니?"
마키시마의 말에 킨조는 깨달음을 얻은 듯 고개를 들었다.
"가라, 돌길의 뱀!"
타도코로가 응원하듯 등을 세게 쳤다. 둘 다 누군지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킨조가 이 병을 낫고 싶어 하는 마음을 봐주었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그런가…. 그런 간단한 방법이 있었군."
개운한 얼굴이 되어 부실을 나가는 킨조를 보던 마키시마와 타도코로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차일 거라고 생각하다니, 킨조도 너무 고지식하잖니."
"그게 그녀석다운 점이지!"
마음은 먹었지만 어떻게 해야하면 좋을까 갈피를 잡다보니 저녁 노을이 지고 있었다. 킨조는 더 늦기 전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후쿠토미 주이치. 계속 꽃을 뱉어내게 하는 남자에게.
"아, 받았군. 갑자기 연락해서 미안하다."
수화기 너머 크게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울컥, 무언가 뱉어지는 소리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전화했다, 후쿠토미."
"좋아한다."
울컥. 또다시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거절은 빨리 해줬으면 좋겠다. 점점 더 많이 꽃을 토해서 힘들,"
말하던 중 꽃잎이 나온 적은 없었는데. 이정도의 이물감이면 미니 장미인가.
킨조는 마이크를 막고 배수구에 꽃을 뱉었다. 은색 백합이었다.
"후쿠토미?"
자신을 계속 부르는 킨조의 목소리에 그리고 그의 말에 후쿠토미는 어떤 답도 놓을 수 없었다. 감히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나도 너를 좋아한다고. 그리고 방금 은색 백합을 뱉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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