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티투

“뭔가 심심하다.”

그렇지 않아? 아오야기는 테시마가 한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려 눈동자를 굴렸다. 별 생각없이 한 말이겠지만 가볍게 넘기고 싶진 않아 보던 책을 덮고 생각에 잠겼다. 이런 걸 가지고 깊게 고민하는 나도 확실히 무료할 지도. 짧은 고민을 마친 아오야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물함 구석까지 청소를 마친 테시마가 어깨를 폈다.

“이제 부실 청소도 끝이고- 자전거 수리는 며칠 걸린다고 하고. 당분간 로드는 안녕이네.”

“...”

“항상 쉬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렇게 모든 게 끝나니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자전거랑은 영영 이별할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테시마는 종종 아오야기와 둘만 남았을 때 소호쿠에 처음 등교했던 그 날을 회상하곤 했다. 내가 여태까지 자전거를 탄 건 다 아오야기 덕분이야. 이야기는 항상 이렇게 끝났다. 그걸 듣고 처음엔 어쩔 줄 모르던 아오야기도 이젠 익숙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테시마는 그게 좀 웃겼다. 예쁘다예쁘다 하고 키웠더니 나중엔 더 하라는 식으로 구는 고양이를 보는 느낌이랄까... 물론 아오야기는 그게 어떻게 자기 덕분이냐는 말을 덧붙였지만.

“그러니까 아오야기가 심심한 나를 책임져야지.”

“... 어떻게?”

평온했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스쳤다. 남이 보면 똑같겠지만 테시마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난감하다고 적힌 아오야기의 얼굴을 보는 건 재미있었다. 널브러진 의자 중 하나에 걸터앉았다. 원래 같았으면 짧은 휴가를 마치고 돌아올 후배들을 위해 여태까지 진행했던 연습메뉴를 정리하고, 하반기에 어떤 연습을 위주로 하면 좋을지 아오야기와 얘기할 계획이었지만. 한 번 정신이 다른 데 팔리니 다시 잡기 어려웠다. 오늘은 그냥 아오야기랑 놀고 싶은데? 마음 한 구석의 양심이 지금 우승 한번 했다고 아주 팔자가 폈다는 식의 비난을 하는 게 들려왔지만 아무렴 좋았다. 방금까지 일했다고. 하루도 아니고 반나절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우리 놀러 갈까?”

“준타... 연습 얘기 안 해?”

“내일 하지 뭐.”

“후회 안 하겠어?”

“아오야기가 나를 재밌게 해준다면?”

아오야기의 얼굴이 심각해지는 걸 보고 테시마도 허공에 시선을 던졌다. 아오야기랑 같이 안 해본 게 뭐가 있지? 대부분 자전거 때문에 만나거나, 그렇게 만나서 중간에 뜬 시간에 잠깐 뭘 먹거나 가라오케에 가거나 했으니 온전히 휴가를 위해 밖으로 나간 적은 없는 것 같았다. 각자의 집에 간 적은 있지만. 그때도 경기 비디오를 항상 틀어뒀었지. 테시마는 가방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우리 안 해본 걸 하나씩 적어보자. 본인이 상대를 재밌게 해줘야 한다는 부담이 좀 덜어졌는지 조금은 풀린 얼굴의 아오야기가 다가왔다.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었다.

“영화?”

“저번에 준타 집에서 봤잖아.”

“영화관에 가본 적은 없지 않아?”

“그건 그렇네...”

“사거리 좀 내려가서 있는 새로 생긴 카페에 파르페. 먹어보고 싶어. 여자들밖에 없어... 허들이 높아.”

“아오야기. 먹고 싶은 거 말하는 시간 아니거든.”

“노을 보기?”

“해가 지기 전에 연습을 끝내야 하니까 확실히 여유 있게 본 적은 없네. 놀랬어. 어디서 볼까? 학교에서 보는 건 싫은데.”

“보통 관람차 같은 데서 보잖아.”

연인들은. 타이밍 좋게 샤프심이 부러져서 테시마는 딴청을 피울 수 있었다. 아오야기는 가끔 저렇게 확 치고 들어왔다. 본인은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게 가장 무서웠다. 으으, 뭔가 당한 것 같아. 테시마는 다시 펜을 들었다. 그럼 파르페를 먹고 관람차를 탄 다음 시간이 되면 영화까지 보자. 지금부터 서두르면 다 할 수 있으려나?

파르페. 관람차. 영화관. 나열된 세 단어가 화살표로 이어진 걸 빤히 보던 아오야기는 말했다. 뭔가 데이트 코스같아.

“우리는 사귀는 사이에서 하는 일들만 안 해본 거네.”

더 이상 모른 척하기가 힘들어 테시마는 고개를 돌렸다. 따라붙은 시선이 따가웠다. 저도 모르게 과장된 목소리가 나왔다.

“그래. 그러니까 지금부터 하잖아!”

빨리 준비하고 나오라고! 길게 가려진 앞머리 옆으로 보이는, 조용하게 올라가는 입꼬리가 짜증나게도 멋있었다. 좀 얄미운 감이 있지만 놀자고 한 건 자신이니 짐을 챙겨 나오는 아오야기를 얌전히 기다렸다. 부실 문을 잠그자마자 제법 단호하게 손목을 잡아채는 아오야기 때문에 테시마는 놀란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항상 테시마가 가는 대로 옆에서 따라왔던 아오야기였기에 이런 모습은 더욱 낯설었다. 아오야기? 돌아보는 순간 흩날리는 금빛 머리칼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셨다. 테시마는 눈을 찡그렸다.

“카페 위치는 알고 있어. 내가 안내할게.”

“아... 고마워?”

“그리고 준타를 재밌게 만들어줘야 하니까.”

오늘 나와 보내는 시간을 후회하면 안 되잖아. 묘한 책임감이 느껴지는 멘트가 되려 귀여웠다. 아오야기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나와 있을 땐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얼굴에 대고 테시마는 속으로 대답했다. 너랑 있으면 항상 재밌다고. 처음 만난 그때부터 지금까지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나를 위한 저 근사한 표정을 되도록 오랫동안 독점하고 싶었으니까. 뜨거운 손바닥이 민망해서 거의 뛰었다. 오늘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아. 두 대의 자전거가 아닌 두 개의 다리가 빠르게 교문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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