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 무서워하는 식인 인외 9
예지몽 4
꿈 속인가… 아무리 꿈 속이라도 어느 정도는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무언가라도 보여주는 법인데 정말 뭣도 없이 손님이 아마도 친구 분을 무표정으로 밀어버리고는 계단을 굴러 쓰러진 모습을 그저 무감각하게 바라보는 장면 뿐이로군. 다른 곳을 찾아보려 해도 이곳 외에는 벽에 막혀 갈 수 없는 모양이고.
적당히 기다려보아도 신께서는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실 생각이 없는 모양이시니 내가 직접 뵈러 가야겠군. 신께서 아래층에 계실리 없으니… 윗 층이겠군.
위로 올라가는 계단 쪽의 허공에 손을 뻗으니 역시나 손이 막혔다. 벽의 위치를 어느 정도 가늠하고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두르자 공간 전체에 쩌저적 금이 가더니 주변이 전부 쨍그랑 깨졌다. 분명히 아무도 없었을 허공에서 5살 정도로 보이는 애가 눈을 감은 채 내게 천천히 내려왔다. 반사적으로 아이를 받아드니 곤히 자고 있던 아이가 눈을 스륵 떴다.
“이런 당돌한 잡귀는 처음이구나.”
“허가도 없이 방문한 점, 죄송합니다. 허나, 제가 제사를 지낼 수 없는 몸인지라 너그러이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 크게 악의가 있어보이지는 않으니.”
아이가 손을 휘저으니 허공에서 방석과 작은 상이 생겨났다. 아이가, 아니 신이 내려가 방석에 앉자 나도 맞은편에 마주보고 앉았다. 신은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허공에서 무언가를 쥐자 찻주전자가 생겨 찻잔에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차를 두 잔을 따랐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 눈을 바라보았다.
“마시렴.”
이래서 신이 싫다. 어찌 매번 만나는 놈들마다 시험하지 못해 안달들인가. 그저 태어나길 운 좋게 신으로 태어나 만물을 다스리는 주제에, 자신들이 뭐라도 된양 시험하고, 자비를 배풀고, 벌을 내리니…
그래도 별 수 있나. 결국 힘을 가지고 우위에 선 것은 저들이니.
“감사하오나, 이 차는 받을 수 없습니다. 감히 제가 받아들 은혜는 아니라 사료됩니다.”
부드러웠던 미소가 내려가며 깊이 고민을 하는 듯 두 찻잔 중 하나를 집어 엄지로 스윽 쓸었다. 그리고는 꽉 쥐어 깨뜨려버렸다. 김이 날만큼 뜨거웠을 차가 별 것아니라는 듯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손을 그저 옆으로 털어내며 남은 찻잔을 내게 밀어 건냈다.
“이 또한 받을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내 종 노릇도 싫다, 쓴 약도 싫다… 허면 감히 내 허락도 없이 내 땅에 들어선 죄는 어찌 값을 것이냐?”
"… 귀하께서는 그저 쓴 약일지도 모르나 제게는 독약이나 다름없습니다. 부디 자비를 배풀어주십시오.“
“흥이 다 식어버렸구나. 본론만 말하고 냉큼 꺼지거라.”
재미가 없어졌는지 찻잔은 물론이고 상까지 전부 치워버렸다. 그래도 이번 신은 꽤나 유한 편이군. 보통은 여기서 죽이려 달려들거나 시험을 통과해야 내 말을 들어준다 어쩐다 할텐데.
“현재 머무르고 계신 몸의 아이는 아직 신내림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허면 어째서 이런 예지몽을 보여주십니까? 아니, 예지몽은 맞습니까?”
“아, 그것 말이지… 실은 이 아이가 친구라 여기는 그 놈은 인간의 아이가 아니다. 나름대로 제 욕망을 이겨내려 노력한 것 같으나 결국 죽은 자는 죽은 자이지. 이제 겨우 열하나 먹은 나이에 명을 달리 했으니 필시 산 자에 대한 열망에 못 이겨 몸을 빼앗으려 할 게 뻔하다. 그래도 지금까지 자신의 본능을 이겨낸 것이 기특하니 내 손수 승천을 시켜주려 했으나…
쯧, 선수를 빼앗겨 버렸어. 웬 썩을 잡귀 녀석이 그 아이를 잡아먹고 탈을 쓴 채 나타나 그 아이인채 하고 있으니… 별 수 없이 이 아이 몰래 소멸시키려 하였으나, 제 어미를 닮아 어찌나 신기가 그리도 좋은지… 멋대로 내 생각을 읽어버렸구나.“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건만 그랬던 건가… 그래도, 아니 그렇기에 의문이 드는군.
“신께서는… 어찌 신내림조차 받지 않은 이 아이를 위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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