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밧울이 밥을 먹는 세계관

[밧울] 카라아게는 언제나 첫 한 입이 가장 맛있다.

니쿠쟈가도 아니고 카라아게인 이유라면 역시 제가 지금 당장 먹고 싶은 게 그거라서요


아직은 쌀쌀한 바람과 그에 비해 적당히 달궈진 한낮 햇볕. 이른 봄을 알리는 포근한 날씨. 매주 수요일마다 방영하는 살짝 풋풋한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순간에, 니콜라스 D.울프우드는 횡단보도에 서서 점멸하는 녹색등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묵직한 장바구니를 양손 가득히 든 채로.

 

수상할 정도로 검은 옷을 즐겨 입는 그는 그 순간에도 등짝이 서서히 저온 조리되는 감각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으나 그늘 아래로 기어들어가거나 겉옷을 벗을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는 듯했다. 신호등이 붙임성 없는 적색등으로 바뀌고 나서야 그는 달걀이나 우유, 두부가 들어있지 않은, 양파나 감자 같은 것들로 꽉꽉 들어찬 장바구니를 발치에 내려놓았다. 두툼한 검은색 카디건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발신 기록 최상단-에서 살짝 아래-에 위치한 번호로 전화를 거는 움직임이 마치 일상처럼 자연스러웠다.

발신음은 그다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 잠깐 전화 되나?

 

* * *

 

집에 돌아온 울프우드는 현관 벽에 열쇠를 걸어두는 것도 잊고 곧장 부엌으로 직행했다. 초봄 날씨가 그리 뜨거울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장 본 것들을 당장 냉장고에 넣는 버릇만큼은 꺾을 수가 없었다. 일찍 퇴근한 겸 한 달치 장을 미리 보겠다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샀더니 과연 양이 대단했다. 건장한 남자가 사는 탓인지, 심심할 때마다 손님이 오는 탓인지 혼자 사는 집임에도 커다란 냉장고가 어느새 가득 차서 보기에 진땀나는 광경이 됐다.

이제부터 저녁 메뉴를 정해야 한다. 이건 울프우드에게 있어 일종의 사명과도 같았다. 자고로 건전한 육신에 건전한 정신이 깃드매 모든 것은 훌륭한 한 끼 식사로부터 출발하는 법. 제 끼니를 스스로 챙기게 되었을 무렵부터 메뉴 선정은 그에게 하루하루의 신성한 의식과 다름없었다. 드물게 담배를 꼬나무는 것도 잊고 냉장고를 한참이나 노려보던 그는 결의에 가득 찬 손짓으로 냉장실 서랍에 처박아둔 닭다리 살 정육을 꺼냈다.

애초에 모든 실수가 이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기 1kg과 1.5kg을 비슷한 값으로 판다고 했을 때, 1인 가구의 가장이자 주부 된 자로서 그것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최우선인가? 천만에. 언어도단이다!

그렇게 가장 울프우드 씨와 주부 울프우드 씨가 의기투합하여 쓸어 담은 고기가 무려 3kg에 달했는데,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깨달은 것은 다름 아닌 20여 분 뒤의 장바구니를 들고 갈 1인 가구 울프우드 씨였다. 이걸 하나하나 소분하자니 어디 사는 누구 탓에 냉동실에 아이스크림을 잔뜩 쌓아둔 것을 뒤늦게 기억해낸 1인 가구 울프우드 씨의 심정은 굳이 서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좋아. 시간 끌 것 없이 퍼뜩 가자.”

 

각설하고, 조명은 다시 주부 울프우드 씨에게로 옮겨졌다. 고민은 냉장고 앞에서 충분히 했다는 듯 그는 의기양양하게 찬장에서 커다란 볼을 꺼냈다. 이어서 간장과 미림, 요리술, 전분 가루를 꺼내는 모양새가 완전히 ‘카라아게 모드’였다. 찬장 옆에 달아둔 타이머 겸 키친 클락이 아직 숫자 5를 가리키고 있었다. 서두를 것까지는 없더라도 중간에 딴청이나 피우지만 않는다면 시간은 충분해 보였다. 그리고 주부 울프우드 씨에게는 그걸 현실로 이뤄낼 충분한 요리 경력이 있었다.

 

우선 뼈 없는 닭다리 정육을 평균적인 한 입 크기보다 살짝 크게 썰어냈다. 평소에 칼 가는 걸 게을리 하지 않은 덕분에 잘 들지도 않는 칼로 질긴 고기를 끊어내려 애 쓸 필요도 없었다. 이어서 고기를 간장에 미림, 요리술, 다진 마늘을 섞은 양념에 버무렸다. 양념이 골고루 배어들도록 버무린 뒤, 곱게 간 고춧가루와 후추를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기름의 느끼함과 혹시 모를 고기 잡내를 잡아주는 향신료는 다른 사람에게는 굳이 알려주지 않는 울프우드만의 비법이었다.

냉장고에서 고기를 양념에 재우는 동안 볼에 랩을 씌우고 튀김용 식물성 기름을 바닥이 살짝 오목한 팬에 충분히 부어 가열하는 것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튀김옷을 겸할 전분 가루를 쟁반에 넓게 펼치고 밥 지을 쌀을 씻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밑준비가 필요한 고기 요리를 할 때에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한참을 달그락거리다 보면 어느덧 시간도 제법 지나고 기름은 충분히 달궈졌다. 고기 본연의 맛을 좋아해 양념 간을 세게 하는 대신 고기를 너무 오래 재워두지 않는 게 울프우드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튀김에 쓰는 전분 가루로는 감자 전분을 고수하는 건 순전히 그의 취향이었고.

 

양념된 고기에 전분 가루를 빈틈없이 묻혀 튀겨내기를 2~3차례 반복했다. 그의 주방은 화구도 냄비도 결코 작지 않았지만 워낙 양이 많은 터라 어쩔 수 없었다. 한 번 튀겨낸 고기를 키친 타올 위에 올려두고 밥을 안쳐둔 밥솥을 확인했다. 어려서부터 가능하면 갓 지은 밥 먹기를 좋아한 터라 밥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밥솥에 가득 찬 밥 상태를 확인하고 한 번 휘저어두는 것으로 밥 준비를 마쳤다.

너무 오래 지체했다가는 한 김 식혀낸 튀김이 섬세한 난초처럼 픽 시들어버릴 게 분명했다. 게다가 저렇게나 많은 양을 쌓아놨으니 습기 찰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지금부터는 조금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튀김용 국자로 한 번 튀겨낸 것들을 두들겨 튀김옷을 부수고, 그걸 한 번 더 튀겨냈다. 그 열기에 창문을 활짝 열어뒀는데도 이마에 땀이 배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얇은 니트를 벗고 면직 티셔츠로 갈아입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며, 울프우드가 마지막 튀김을 키친 타올 위로 올렸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이런 게 왜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큰 접시 위에 카라아게를 전부 옮겨 담자 장관이었다. 마치 만화나 TV 예능 프로그램에나 나올 것 같이 산더미처럼 쌓인 카라아게는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이어서 마치 학생처럼 먹느라 모양이 흐트러지기 전에 사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잘 만들었다. 제가 보기에도 잘 만들었다. 일찍 퇴근했다고 낮부터 집에 틀어박혀 이런 거나 만들고 있었다니, 울프우드는 말 못할 뿌듯함이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 오래 지체하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시곗바늘이 어느새 바닥을 친 것도 모자라 오후 6시 15분을 알렸다. 반찬으로 먹는 카라아게에 소금과 레몬즙을 곁들이는 것도 그의 취향인지라 기세 좋게 냉장고 문을 열어젖힌 울프우드는 정확히 23초 만에 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맹세컨대, 그는 집에 술이 떨어지지 않도록 상비해두는 것이 삶의 기본자세인 사람이었다. 그러니 냉장고 어디에서도 이 멋진 튀김에 곁들일 맥주를 찾지 못하는 지금 같은 상황은 결코 의도한 것이 아닐 터였다. 한 달에 한 번 궤짝으로 들여다 놓으니 벌써 떨어질 리가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소파 테이블 위를 굴러다니는 맥주 캔을 애써 무시했다. 어제 분명히 한 캔만 마실 생각이었는데!

절규 아닌 절규에 빠진 울프우드의 귀에 특징적인 소리가 들렸다. 초인종을 두 번 누르고 지체 없이 열쇠로 문을 여는 소리. 초대받아 온 주제에 그가 현관 신발장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둔 열쇠까지 야무지게 벽에 거는 소리. 이 집을 제 집 드나들듯 하는 오늘의 손님만이 들려주는 배려 가득한 소리였다.

 

“우와앗, 춥다, 춥다! 봄이라곤 해도 아직은 해가 지면 쌀쌀하구나~. 오, 맛있는 냄새 나네?”

 

이 집의 구조를 훤히 들여다보듯 곧장 부엌으로 직행하는 그리 무겁지 않은 발소리가 끝없이 조잘대는 목소리에 묻혀 작게 들렸다. 대단히 넓은 집은 아니었기에 그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부엌으로 들어선 밧슈는 냉장고 문에 이마를 대고 사다리꼴로 선 울프우드를 보고 탄성과 비명 사이의 괴이한 소리를 냈다.

 

“산더미 같은 카라아게보다 눈에 띄는 자세로 뭐 하는 거야!?”

“시끄럽게 굴지 마라, 빗자루. 지금 좌절을 맛보는 중인 거 안 보이나.”

“글쎄 그러고 서서 뭐 하냐니까. 요즘은 그런 자세로 좌절하는 게 유행이야? 네가 그렇게 유행에 민감한 줄은 몰랐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울프우드의 귀에 밧슈의 질문은 들리지도 않았다. 모처럼 일찍 퇴근해서, 열심히 요리하고, 게다가 내일은 또 모처럼 출근 시간이 늦은 날인데 이 멋진 하루를 술 없이 보내기에는 억울할 지경이었다. 안되겠어. 지금이라도 나가서 얼른 몇 캔 사오자. 기껏 초대한 손님을 식탁 앞에 세워둔 채로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던 그의 귀에 탱- 하고 묵직한 금속음이 들렸다. 고개를 들자 밧슈가 식탁 위에 커다란 비닐 봉투를 올려놓으며 코트를 벗고 있었다.

 

안에 든 것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봐도 맥주였다. 울프우드의 시선을 따라간 밧슈가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뭘 그리 많이 사왔노?”

“어제 잔뜩 마셨으니까 거의 떨어졌을 거 아냐. 게다가 오늘 고기를 너무 많이 샀다며? 분명히 맥주에 어울리는 저녁 반찬을 만들어줄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하니 카라아게였다니! 이 정도면 우리 꽤 마음이 통하는 거 아닐까?”

 

조잘대며 거실 옷걸이에 코트를 거는 밧슈의 동작이 익숙해 보였다. 마치 이 집에 오면 으레 그러하듯 행동하는 밧슈는 손님보다 집주인과 비슷한 분위기를 냈다. 냉장고를 열어 당장 마실 것을 제외하고 차갑게 넣어두는 모습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후식으로 푸딩도 사왔으니까 나중에 먹자. 네 개나 사왔다구. 너는 푸딩 딱히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남이 먹는 거 보면 괜히 뺏어 먹잖아.”

 

누가 뺏어먹는다는 거야. 엄연히 따지고 보면 내 집에서 먹는 거니까 다 내거지. 눈썹을 찡글거리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울프우드는 헛웃음 비슷한 것을 터트리며 밧슈의 팔을 잡아당겼다.

 

“니는 저걸 보고도 후식 먹을 생각이 들더나. 됐고 와서 도와라. 만드는 건 내가 했으니 수발은 니 담당 아이가.”

 

두 사람밖에 없는 식탁인데도 충분히 떠들썩한 시간이었다. 갓 튀겨 따끈따끈하고 육즙이 폭죽처럼 터지는 카라아게를 싫어할 사람은 적어도 이 지구에는 없겠지. 만약에, 정말 만약에 온통 모래로 뒤덮여서 벌레나 잡아먹어야 하는 행성이 있다면 이거 한 조각으로 집도 사고 땅도 살 수 있지 않을까. 밧슈가 급히 공수해온 맥주는 맛이 진하고 무거운 것이 그것도 역시 울프우드의 취향이었다. 조금 많이 지었나 싶은 밥을 전부 비우고 나서도 카라아게가 아직 남았는데, 딱 술안주로 먹기에 좋은 양이라 참으로 어쩔 수 없이 오늘도 간단히 음주를 즐기기로 했다.

 

분명 2인용 소파인데도 체격 좋은 두 사람에겐 조금 좁아 딱 붙어 앉으니 적당한 취기가 돌아 몸에서 열기가 났다. 아무 TV 프로그램이나 틀어놓고 조금 식은 카라아게에 김빠진 맥주를 홀짝이자니 어느새 졸음이 밀려왔다. 시간도 어느새 자정을 훌쩍 넘긴 채였다. 딱 어제도 이런 식으로 마셨던 것 같은데. 울프우드가 좁은 소파에서 몸을 편히 늘어뜨리며 입을 열었다.

 

“빗자루.”

“응? 졸려? 들어가서 자려고?”

“아니. 그거 말고. 그 왜…….”

 

너 이제 그냥 여기서 살아도 되지 않겠냐.

 

미쳤나?

취하고 졸리니까 별 생각이 다 드는구나, 하고 울프우드가 생각했다. 오늘은 자고 가라고 할 생각이었다. 이틀 연속으로 술 마시고 늦게 귀가하면 아무리 밧슈라도 피곤할 테니까. 이 정도는 친구 사이에도 하는 거잖아, 응. 분명 그렇게 말 할 생각이었는데, 이상하게 옆에서 밧슈가 눈을 땡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것이…….

 

“설마 방금 내 소리 내서 말했나…….”

“…….”

“이……. 쳐다만 보지 말고 말을 해라, 인마!”

 

순식간에 울프우드의 얼굴에 열이 올랐다. 이 홧홧한 감각은 단순히 술기운이 아닌 듯했다. 젠장. 제기랄. 젠장. 아무래도 기름을 너무 많이 먹은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실수를 할 리가 없다.

 

이런 상황이 되니 좁은 소파에서 밧슈와 몸을 부대끼고 앉은 것도 괜히 의식되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는 울프우드의 팔을 밧슈가 잡아당겨 도로 앉혔다. 밧슈의 얼굴도 귓가가 시뻘겋게 올라 멍한 것이 놀란 것이 분명했다. 저렇게 눈을 가만히 맞춰오면 울프우드는 거짓말처럼 몸에 힘이 풀리곤 했는데, 지금이라고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기세 좋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울프우드는 다시 소파에 엉거주춤 앉아 밧슈와 극히 가까운 거리를 유지했다. 완전히 타의적이었으나 오직 타의적이지만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오래 이어졌다. 혹은 그저 두 사람만이 그 짧은 시간을 길다고 느꼈을지도 몰랐다.

 

“울프우드, 네가 헷갈린 것 같아서 말하는 건데…….”

“어, 어어…….”

“이 집은 침실이 하나라는 거 알지?”

 

울프우드의 속이 전자레인지에 7분을 돌린 팝콘처럼 터져나갔다. 길을 걷다가 곰을 만났을 때 넘어진다면 달려서 도망치기와 넘어지기 중에 헷갈려서 후자를 고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도 그와 비슷한 경우로, 그는 어떻게든 웃음으로 무마하려 했다. 말이 헛나왔다거나, 농담을 왜 그리 진지하게 듣냐거나.

그래. 농담이었던 걸로 하자. 술도 들어갔겠다, 술기운에 헛소리 같은 건 흔히들 하는 거니까. 머릿속으로 총합 157가지의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팅한 울프우드가 상당히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웃음을 입가에 걸고 받아쳤다. 마치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냐’고 도리어 묻듯이.

 

“내 침대 큰 거 쓴다.”

 

니콜라스 D.울프우드는 사람이 극도의 참담함을 느끼면 숨이 멈추고 뒤로 넘어간다는 걸 이런 식으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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