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본편 연성글

3. 인간은 인간을 돕는다

프랑켄슈타인(원작) 드림 | 괴물 드림

701호 by RU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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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이야기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괴물의 짧은 삶은 계속 이어지다가 퍼시를 만난 순간까지 도달했다.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이제 새로 시작될 이야기들만 남았네. 앞으로 뭘 할 생각이지?”

“내 창조주를 찾아갈 것이다.”

“부모와의 상봉이라, 대개는 나쁘지 않지.”

“‘대개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란 자가 너를 반길지 모르겠단 뜻이지. 널 만난 대부분의 인간들처럼 반응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 점에 관해서는 괴물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어쨌든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었다. 괴물이라는 존재를 세상에 내놓은 자가 바로 그라는 의미다. 일말의 책임감이나 애정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게 바로 괴물이 배운 세상이었다. 부모는 자식을 아끼고, 새끼 밴 짐승은 태어난 새끼를 보살피는 것이.

그러한 괴물의 설명을 듣는 퍼시의 표정은 점점 뒤틀린 미소에 가까워졌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

“동의하지 않는 건가?”

“대개는 동의한다는 뜻이야.”

퍼시는 알 수 없는 풀을 우려낸 차를 한 잔 마셨다. 잔에서 입술이 떨어지자 은밀하게 속삭이듯이 말이 끝맺어졌다.

“나는 사랑받았으니까.”

“부럽군.”

“너도 조금 크면 알게 될 거야. 사랑이 항상 달콤하지만은 않아.”

“왜 그렇게 생각하나?”

차를 마시던 퍼시의 손이 멈추고, 그 기이하게 번들거리는 녹색 눈이 괴물을 응시했다.

“어떤 사랑은 저주 같거든.”

괴물은 갑자기 어떤 두려움의 응어리가 몸 아래 쿵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괴물은 괴물이기 이전에 살아 있는 생명체이기도 했다. 한 생명체로서, 그는 눈앞에 있는 자에게서 이상한 무언가를 느껴 버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퍼시는 계속 차를 홀짝였고, 퍼시가 비어버린 잔에 새 찻물을 따를 때쯤에야 괴물은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지 어떻게든 표현할 수 있었다.

“넌 사람을 죽인 적 있는가?”

‘살인자의 눈’. 괴물의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른 단어였다. 퍼시가 뜬금없는 질문에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장교로 복무했으니, 그렇지.”

“아니, 내가 말하는 건 그것이 아니다. 네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인지, 그것을 물은 것이다.”

그러자 퍼시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서 말을 멈춘 퍼시는 찰나의 시간 동안 괴물을 가늠하듯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시선으로 훑어내렸다.

“사람을 죽일 수 있냐니, 그런 건 알 수 없는 편이 좋겠지?”

괴물은 순간적으로 눈앞에 있는 퍼시가 더 ‘괴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괴물은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무엇을 느끼는지 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퍼시의 시선은 무언가를 재단하고 가늠하는, 그러나 애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이 차가운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도무지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행동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후에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그런 허위 경보만이 울렸을 뿐.

“……네 말이 옳다.”

그래서 괴물은 저도 모르게, 퍼시에게서 좀 더 친근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 같은 존재가 더 있다는 기분은 언제든 만끽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비록 퍼시는 자신처럼 우뚝 솟게 거대하지도 않았고, 피부는 누덕누덕 기운 시체 같은 낯빛이 아니라 혈색 좋은 흰색으로 매끈했으며, 기이하게 일그러져 어딘가 불쾌하고 끔찍한 얼굴 대신 인간들이 멋지다고 느낄 만한 얼굴이었지만.

“너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너에 대해서는 잘 듣지 못했다.”

주로 괴물이 말을 하고 퍼시가 들었기 때문에, 괴물이 퍼시에 대해 아는 것은 한정적이었다. 그는 우선 아일랜드의 귀족가 차남이라고 했는데, 현재 아일랜드라는 나라는 사라졌다고 한다. 방금 한 대화로 장교로서 복무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별장이 있는 것을 보면 ‘몰락귀족’들과는 다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이상했다. 퍼시는 어떤 수행원이나 하인 없이 혼자 이 별장에서 많은 것을 해내고 있었다. 괴물이 알기로는 ‘귀족’들은 이런 자질구레한 일을 혼자서 할 줄 모른다는데, 잘못 알고 있었던가? 아무튼 퍼시는 신비한 구석이 많았고 괴물은 이제 퍼시의 이야기도 궁금했다.

“비밀.”

그러나 퍼시는 간단하게 일축했다. 괴물은 그 간단한 거절로 가슴이 뜯겨 나가는 고통을 겪었다. 그렇다. 당연히 거절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퍼시와 이야기하면서, 괴물은 어쩌면 자신도 ‘거절당하지 않을 수 있는’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빠졌었다. 괴물은 다시 진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건 이제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주제파악’이라는 것은.

퍼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여기 할 일이 있어서 왔고, 뜻밖의 일로 더 오래 머물렀지. 이제는 떠날 시간이야. 이야기가 더 필요해?”

그렇다고. 괴물은 계속해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조금만 맛본 것으로는 견딜 수 없다고 말해야만 했다. 하지만 거절당할 수도 있었다. 괴물은 두 번째 거절은 견디기가 몹시 힘들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온 대답이 이랬다.

“충분하다.”

“잘됐네. 너도 네 창조주를 잘 찾길 바라. 좀 더 머물고 싶다면 머물러도 좋아. 나갈 때 문만 잘 닫고 나간다면.”

그런 말을 남기고선, 퍼시는 괴물의 인생에 나타난 만큼이나 빠르게 떠나 버렸다. 분명히 그 사이에 무언가 있었을 텐데, 그런 것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괴물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익숙했다. 몸서리쳐지게 끔찍할 만큼.

괴물은 다시 멍하니 여정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번엔 창조주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백일몽 직후의 현실은 너무 시렸고 너무나 몽롱했다. 괴물은 이 시림이 슬픔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때 자신의 것이었으나 손을 빠져나가버린 것에 대한 상실의 슬픔.

그러한 여정 한가운데서 괴물은 비명소리를 들었다. 성인 남성의 비명이었을 것이다.

괴물은 구하러 뛰어갔다.

이제 괴물은 더 이상 한 인간이 죽어가는 것을 방관하며 지켜볼 수 없었다. 알게 된 이상 그럴 수 없었다. 퍼시벌 머피 때문에, 괴물을 인간으로 대해준 자 때문에 괴물은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인간으로 대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니까. 괴물은 평생 그 기억을 간직할 것이고 그러므로 평생 인간답게 살 것이었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구한다.

비명의 근원지로 다가갔을 때, 비명을 지르는 남자는 힘껏 도망치다가 순간 괴물의 품에 달려들듯이 안겼다. 어깨에 칼로 찍힌 자국이 있었다. 괴물의 몸과 충돌한 남자는 더 큰 비명을 지르더니 다시 괴물을 피하려고 우왕좌왕했다.

습격자는 길다란 칼을 들고 있었다. 험한 수풀을 헤치고 나갈 때 휘두르는 용도의 묵직한 칼이었다. 습격자는 괴물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고, 괴물이 그 칼을 빼앗기 위해 도약하려고 몸을 웅크리는 순간 바로 권총을 꺼내서 쐈다.

탕!

총알은 괴물이 아니라, 도망치려고 했던 희생양에게 맞았다. 머리를 맞은 남자는 고꾸라지면서 마치 괴물을 안듯이 늘어지고는 바닥에 툭 쓰러졌다.

괴물이 도우려는 인간이 죽었다. 다른 인간에게, 사냥당하는 짐승처럼 살해당했다.

살인범은 권총을 내렸다. 마른 하늘에 번개가 쳤고, 그 빛은 녹색 눈의 ‘무언가’를 잠깐 비추었다.

퍼시벌 머피가 괴물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알아버렸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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