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창작

[프랑켄슈타인] 죽음은 순흑의 기질을 띠고 있다.

로그님 리퀘스트 / 2022.07.13 업로드

때때로 이름 없는 것은 저 자신의 불행을 원했다. 그것은 실밥을 제거하지 않으면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 같은 것으로, 원인과 결과가 한데 뒤섞여 더 이상 시작점을 알 수 없게 된 불덩이였다. 얼기설기, 그러나 꽤 정성스레 꿰인 실은 한때 누군가의 희망이자 생명이었으나 이제는 그 쓰임을 다하고 고작 이물질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였다.

'그'는 자신이 그것과 상징을 같이한다고 여겼다. 커다란 몸뚱아리 중 유일하게 제 소유인 것이 있다면 그 뇌로 일컫는 무형의 초상이 전부였으므로, 불행히도 신념이니 욕망이니 하는 것에 휩쓸려 규율이나 법칙 따위를 사사로이 침범해 버린 불순물과 다를 바가 없었던 탓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에게는 잃은 것이 마땅히 존재치 않았다. 삶을 바란 적 없다 어찌 말하겠냐마는, 이제는 그것이 진정 삶이었는지조차 불확실했다. 알지도 못하는 것을 번뜩 가지겠다고 나서봐야 무엇 얻으리. 손에 쥔 것이 없으니 저 먼발치에서 눈물 흘린들 잃음으로 취급될 자리 허무하여.

하니 부정된 것은 차라리 제게 맺힌 모든 조각을 산산이 쪼개 오로지 상징만 남기고 사라지길 꿈꾸었다. 고독을 치든 죽음에 안식 등의 사치스러운 단어를 갖다 붙일 생각도 없거니와, 무無가 아니면 따로 갈 곳 섞갈렸으니 이왕에 악착스럽게 흩어지고 싶었다.

눈앞에 무릎 꿇은 이는 울고 있었다. 부서진 자에게 그 고매한 통곡이 어찌 들렸을지 짐작할 수 없다마는, 닿지 않을 참담함을 울컥거리며 핏덩이 그러하듯 쏟아내는 이방인은 차라리 덜 짐스러운 객客이었다. 곧 천둥이라도 몰아칠 듯한 서늘한 조우, 모든 일의 시작이자 마지막을 기어이 매듭짓고자 하는 고집스러운 일면.

"앙리."

총성을 닮은 음성에 깨끔깨금 조각난 세상 한가운데 두 사람이 머물렀다. 분명 하나로 설계된 얼굴이었으나 이제는 어떠한 유사점도 짚어낼 수 없었다. 한때는 총명했을 목광이 이내 '결과물'로 향한다.

"⋯⋯."

눈물에도 무게가 있을까. 메마른 자는 떠올렸다. 세상을 불사르던 자신의 울부짖음을, 그 광열에 가려 사라진 작은 온기를 기억했다. 만일 그러하다면 누구의 곡읍에 더한 가치를 매길 것인가. 아무 의미 없지 않던가. 이곳에서는.

"앙리 뒤프레."

기적은 언제나 한 발짝 거리를 둔다고 했었나. 그 잘난 격투장에서 이만치 철학적인 이야기를 주워들었을 리 없으니 분명 이것은 자신이 취득하지 않은 기억이렷다. 고작 한 걸음의 간극 무사히 좇기에 인류는 한없이 초라했을는지― 초월하지 못한 자는 잠잠히 눈을 감았다. 그것이 꼭 사형수의 마지막 묵념처럼 보였으나, 기도 받지 못한 자가 지닐 수 있는 회상일 리 없었다.

앙리 뒤프레는 후회해서는 안 되었다. 미련 없이 모든 것을 버린 결과가 겨우 이것이라면, 되돌리길 바라는 일은 그의 얄팍한 세상에 대한 기만이었다. 그러니 갖지 못한 자가 이 순간 질문해야 할 것은 '왜'가 아닐 터.

"당신이 염원하던 꿈은 이루어졌나."

놀랍도록 담담한 목소리에 흐린 안개가 달아나듯 흔적을 지웠다. 물을 흠뻑 먹은 짙은 갈색의 눈동자가 중량을 버티지 못하고 구부러진다. 앙리 뒤프레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패배가 기저에 깔린 인생에도 미약한 빛이 꺼지지 않을 수 있음을, 앙리 뒤프레는 모순적이게도 죽음의 순간에 깨달았다. 뚜렷한 어둠을 몰아낼 햇빛 따위 바랄 수 없다는 것 처음부터 몰랐을까. 그저 저 하늘이 완전한 흑색이 아닐 것이라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 외에 기름 삼아 등불 태울 희망이 있었을까. 그는 생각보다 현실적이었고, 생각만큼 이상적이지 않았다. 그뿐이다.

자아가 끊어지는 순간까지 그 의견은 유효했으나, 다만 운 좋게 자신의 인생에 별똥별 하나가 추락했음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 보기에는 곤두박질 이상의 의견 없었을 테지만 그는 꽤 오랜만에 어슴푸레 생에 깃든 색채를 목도했으며, 그의 하나뿐인 친우 역시 그러하리라 여겼다. 앙리 뒤프레와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만남에 이 이상 완벽한 합치점은 없었으므로.

'우리'의 꿈을 그저 춘몽으로 남기지 않을 수 있다면 그는 모든 것을 바람에 날리고도 살 수 있었다. 아니, 그리 살아야 했다. 고단한 하나의 삶이 찬란한 둘의 삶으로 변모할 때를 기다리며 기꺼이 몸을 내던져야만 했다. 그것이 그가 선택한 방식이었으며, 따라서 자연히 나머지는 탈락되고 만 수순이다.

결국 이루어낸 일 중 가장 확실한 것을 묻는다면 누군가의 고통이라 답할 것이다. 면책될 수 없는 이는 명백히 살인에 무고하였으나, 차마 정결하지는 못하여 생명에 무고하기란 불가했다. 그러함에도 감히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같은 헛된 망상을 담아내지 않은 까닭은 그가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겠다. 그래, 앙리 뒤프레는 단 한 번도 제 말년을 후회한 적 없었다. 어지러운 회포 속에서도 한 갈래 뉘우치지 아니하였다. 외치고 읊조렸던 문장 하나가 꺾일 때마다 자신에게도, 마음을 맡긴 벗에게도, 말하지 못한 자에게도 실례가 되었다. 그는 그 사실을 참으로 지나치게도 깨달았다.

억세게 땅을 디딘 다리는 어디 하나 멀쩡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 익숙한 코트 자락에 한 서린 입꼬리가 미약하게 오르고, 뺨을 타고 날카로이 맺히는 눈물이 제 것 아닌 상처를 비춘다. 앙리 뒤프레는 먼지 그득한 손으로 바닥을 짚어 똑바로 일어섰다. 그 손에 최종적으로 담긴 기도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기란 지금에 와서는 너무도 까마득했다. 사람의 목울대는 종종 바스러질 듯 진동한다.

두 번의 질의는 없었다. 낯익은 침묵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다만 이곳에서 시간이란 의의가 다한 것이었으므로 따로 정적의 개수를 가늠할 일은 부재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하다못해 울음인지 웃음인지도 알기 까다로운 소리가 흉터를 그었다. 이내 각자의 꿈에 살고 싶었던 이들의 시선이 얽힌다. 어쩌면 퍽 다르지 않은 몽사였을까. 인류의 꿈은 그만큼 아름답지 않았고, 괴물의 꿈은 그만큼 추잡하지 않았다.

"네. 당신과 마찬가지로요."

불어올 리 없는 바람이 별안간 빈 공간을 지난다. 끝내 사람으로 남은 이와, 인간이기를 무른 이가 또렷이 마주 본다. 사과와 용서, 질책과 변명, 삶과 죽음 그 어느 것 하나 없는 촛불 같던 회우가 한순간 잦아든다. 고요 속에 남은 초는 발화하지 않으며 어딘가로부터 밀려온 잔에는 술도, 물도 아닌 것이 찰랑인다.

전쟁이 없으니 종전의 증표로 하늘에 피어나는 색색깔의 불꽃 역시 없다. 마찰이 없다면 광전의 산물로 드리워지는 커튼 같은 오로라 또한 없다. 짧은 생의 끄트머리가 맞물려 그들은 하나의 종점에 도달한다. 죽음은 순흑의 기질을 띠고 있다는, 세상을 덮고도 남을 커다란 마침표― 그 더할 나위 없는 결말에.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Non-CP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