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새장
릴리아 반루즈 드림
* 23년도 릴리아 생일 축하 연성. 생신 축하드립니다 영감님.
새해의 첫날, 신년 파티를 겸한 릴리아의 생일 파티가 한창인 디어솜니아 기숙사 파티장 안. 사람들 사이에서 축하받으며 즐기던 릴리아를 구석으로 몰래 불러낸 건 다름 아닌 말레우스 드라코니아였다.
“릴리아, 잠깐 보여줄 게 있다.”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말레우스가 참으로 즐거워 보인다. 릴리아는 감춰지지 않는 유쾌한 기류를 읽어내었지만, 애써 숨기려는 상대를 위해 기꺼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해주었다.
“오, 혹시 내 생일 선물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흐음, 과연 뭘 준비했을까! 기대되는걸?”
대체 뭘 주려고 저렇게 웃고 있는 것인가. 재미있는 장난이라면 제가 하는 쪽도 당하는 쪽도 좋은 릴리아는 기대를 품고 말레우스를 따라갔다.
그를 따라 도착한 곳은 기숙사의 빈방.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지만, 늘 청소 해두기에 손님을 묵게 하거나 모임의 장소로 쓰곤 하는 방 앞이었다.
“흐음?”
릴리아는 방문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실버와 세벡을 확인하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두 아이가 아까부터 보이질 않는다 싶었는데, 왜 여기 있는 걸까. 게다가 이 좋은 날 저 비장한 표정이란. 꼭 엄중히 경비라도 서는 병사 같은 꼴이 아닌가.
무언가 보통이 아닌 선물이 안에 있다. 그걸 확신한 릴리아는 두 아이에게 짓궂게 웃으며 물었다.
“너희들, 뭔가를 알고 있는 거구나? 아니냐?”
“크흠,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도…….”
세벡이 티가 나는 거짓말을 하며 고개를 젓고, 실버 또한 말을 얼버무리며 시선을 돌려버렸다. 정직하고 솔직한 두 사람의 귀여운 모른 체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 릴리아는 일부러 캐묻지 않고, 어린 것들의 정성에 분위기를 맞춰주기로 했다.
‘귀여운 녀석들. 뭘 준비했기에 저러는 것인지 궁금하구먼.’
이래놓고 별거 아닌 선물이라면 무얼 그리 숨겼냐며 오늘이 끝나기 전까지 놀려줘야지.
릴리아가 그런 엄청난 계획을 준비하는 걸 알 리 없는 말레우스는 문의 잠금장치를 푼 후, 문고리를 잡고 물었다.
“준비됐나, 릴리아?”
“음! 물론이지!”
오늘 수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지금만큼 떨리는 순간이 있을까.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릴리아를 본 말레우스는 오늘의 주인공만큼이나 기대에 찬 표정으로 천천히 문을 열어주었다.
드디어 드러난 내부의 모습은 평화롭고 평범했다. 단 한 가지, 방 가운데에 있는 테이블 위 놓인 선물만 빼면 말이다.
“이런…….”
원래 이 방에는 없었던 무언가를 확인한 릴리아는 새빨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방에 들어간 걸 확인한 말레우스는 곧바로 조용히 문을 닫아 버렸지만, 선물에 완전히 정신이 팔린 릴리아는 방문이 닫힌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거, 이거.”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새까만 새장. 그 안에 있는 건 새하얀 눈동자를 가진 박쥐였다.
일반 박쥐보다는 조금 작은 그 박쥐를 밖으로 꺼낸 릴리아는, 얌전히 제 오른손 위에 앉아있는 선물에게 물었다.
“이렇게 귀여운 박쥐는 처음 보는데. 쿠후후,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박쥐는 눈만 깜빡일 뿐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릴리아는 침묵한 채 날개만 퍼드덕거리는 앙증맞은 생명체를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다가, 갑자기 서로의 거리를 확 좁혔다.
“어디 보자, 변신을 풀려면 역시…….”
손을 입가로 가져온 그는 박쥐의 입에 가볍게 제 입술을 겹치려고 했지만, 얌전히 있던 박쥐는 입술이 닿기 바로 직전 순식간에 날아올라 도망쳐버렸다.
깜짝 놀란 듯 요란한 몸짓으로 날아오른 박쥐는 방 안을 여러 번 빙빙 돌더니, 이내 빛에 둘러싸인 채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후우…….”
새하얀 빛은 조금씩 커지더니, 이내 순식간에 사그라들어 사라졌다.
눈부심이 사라진 자리엔 박쥐 대신 익숙한 여인이 서 있었다. 길게 한숨 쉰 선물, 아니, 낯익은 여인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불평했다.
“장난이 지나치세요, 반루즈 님.”
“그거 이상한 말이구나. 장난은 너희가 먼저 하지 않았느냐, 후훗.”
처음부터 박쥐의 정체를 눈치챘었던 릴리아는 식겁한 정인을 보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이런 선물이라면 세벡과 실버가 잠금장치까지 해 둔 문 앞을 지킨 것도, 말레우스가 그토록 즐거워하며 자신을 데려온 것도 이해가 간다. 이제야 주변인들의 반응이 왜 그랬나 알게 된 릴리아는 성큼성큼 상대에게 다가가 두 손을 맞잡았다.
“여기엔 언제 온 건가, 로세우스?”
“오늘 아침에 도착했습니다. 출입 허가는 받고 왔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렇겠지. 몰래 들어 올 수 있을 만큼 허술한 곳은 아니니까.”
그것보다 아침에 도착했다면, 대체 몇 시간이나 이 방에서 혼자 있었던 걸까. 아니다, 말레우스나 두 아이가 오가면서 챙겨주었을지도 모르고, 낮잠을 잤을 수도 있으니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걸까.
오랜 시간 기다렸을 로세우스를 걱정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릴리아는 문득 억울해졌다.
굳이 파티 때 보여주지 않더라도. 왔을 때 바로 만나게 해주었다면 훨씬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을 텐데. 다들 참으로 융통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신을 최대한 기쁘게 해주기 위해 이런 일을 꾸민 점은 역시 귀엽게 느껴졌다.
“생일 축하드려요, 반루즈 님.”
“그래. 고맙구나. 올해는 이렇게 직접 축하받을 수 있어서 어찌나 기쁜지 모르겠구나.”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선물도 챙겨왔으니, 나중에 열어보세요. 아까 실버를 시켜 방에 가져다 놓게 했는데…….”
“그런가? 그것보다, 이리 와보거라.”
물질적인 선물도 싫지 않지만, 지금 제게 중요한 건 눈앞의 이와 보내는 시간이다. 릴리아는 상대의 말을 끊고는, 살며시 두 손을 끌어당겨 제 품에 안아보았다. 자신보다 조금 크지만 마른 로세우스의 몸에서는 장미와 이슬의 향기가 났다.
갑자기 끌어안는 바람에 놀란 로세우스가 완전히 말을 멈추자, 온기를 만끽하던 릴리아가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이건 누구 아이디어지?”
“저는 잘 모르겠지만, 말레우스 님께서 연락해 주셨어요.”
“그런가, 흐음.”
하긴, 누구 아이디어이든 뭐가 중요한가. 이렇게 만났다면 그걸로 족하지. 셋 다 칭찬해 주면 되는 일이고.
한껏 기분이 좋아진 릴리아는 떨어질 생각도 하지 말라는 듯 두 팔에 단단히 힘을 주었다.
“오늘 계속 여기 있을 건가?”
“그건 좀……. 너무 늦지 않도록 돌아갈까 생각 중입니다.”
“어째서? 가서 모두와 인사하고 파티도 즐기다 가면 좋지 않은가.”
“저는 외부인이니까 파티까지 참여하기는 조금 그렇지 않을까요?”
외부인이라, 틀린 말은 아니다. 로세우스는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의 학생도, 교사진도, 학교에서 초대한 손님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릴리아는 그런 건 상관없다고,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그거야 오늘은 제 생일이고, 로세우스는 제 소중한 이가 아니던가. 파티의 주인공이 초대하고 싶다면 그걸로 족하지.
껴안은 몸을 순식간에 안아 올린 릴리아는 당당하게 밖으로 나섰다.
“그러지 말고, 가서 케이크라도 먹지! 내가 괜찮다는데 뭐 어떤가?”
“자, 잠깐. 반루즈 님? 내, 내려주세요!”
“싫다네! 하하!”
어차피 정말 도망치고 싶다면, 마법을 쓰든 변신을 하든 충분히 자력으로 벗어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내려주지 않을 거다.
릴리아는 싱글벙글 웃으며, 냅다 파티장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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