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 기숙사는 현재 폐쇄되어 있습니다 - 스카라비아 기숙사 편

그래요. 이 안내문을 읽고 있다면 또 어떤 말썽꾸러기가 교칙을 어기고 온갖 소문이 무성한 고물 기숙사를 탐험하러 왔다는 거겠지요. 정말이지, 학원장으로서 가슴이 찢어집니다. 대체 우리 학교 학생들은 뭐가 문제라서 이렇게 종일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겁니까?

하지만 여기까지 들어왔다면, 울타리를 넘어 기숙사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이 안내문을 봐 버렸다면! 이미 늦었습니다. 제가 혼낼 필요도 없습니다. 아래 규칙을 잘 지켜서 내일 아침 무사히 돌아오던가, 일주일간 양호실에 신세 질 각오를 하셔야 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죽거나 오버블롯 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당신이 궁금해할 소문 속 ‘수수께끼의 소녀’는 생각보다 자비로워서, 아무리 침입자를 보고 화가 났다고 해도 상대를 죽이거나 하진 않으니까요. 

우선, 지켜야 할 규칙은 당신의 기숙사 소속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다른 기숙사 학생이 지켜야 할 규칙을 읽는 건 상관없지만, 추천하지는 않겠습니다. 본인 것도 기억하기 힘든데, 남의 걸 괜히 읽어두었다가 헷갈려서 무사하지 못하게 된다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친절하니까, 어두운 곳에서도 구분이 잘되도록 기숙사 마크를 크게 찍어두었으니 본인 기숙사 규칙서를 잘 찾아서 읽고 가십시오. 가지고 가는 건 안 됩니다! 차라리 스마트 폰으로 촬영해서 틈틈이 보십시오. ‘그 아이’는 자비로워서, 당신이 종일 스마트 폰만 하는 게 아닌 이상 잠깐 화면을 보는 것 정도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겁니다.

<스카라비아 학생들을 위한 규칙>

0.

일단 교복을 입고 있는지 기숙사복을 입고 있는지에 따라 대응 난이도가 달라집니다.

기숙사 복을 입고 있다면 후드를 깊게 눌러 쓰시길 바랍니다. 그 아이는 산 사람의 얼굴을 못 알아보긴 하지만, 이왕이면 조심하는 게 좋으니 말입니다. 혹시 당신이 사감이라 사감 기숙사복을 입고 있다면……. 아니, 현명하게 굴어야 하는 사감이 왜 여기 온 겁니까? 당신은 대처법이 따로 있습니다. 제가 앞에 *표시를 해 둘 테니, 그걸 참고해서 행동하십시오.

교복을 입고 있다면……. 안타깝지만 아마 당신이 침입자라는 걸 한 번에 알아볼 겁니다. 그냥 포기하고 그 아이랑 마주치면 길을 잘못 들었다고 비십시오. 기절 후 양호실에서 깨어날 테지만, 죽거나 다치진 않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며칠 앓긴 하겠지만, 하지 말라는 짓을 해놓고 그 정도 아픔도 없길 바라는 건 웃기는 일 아닙니까?

1.

돌아서 나가려고 해도 문은 잠겨있을 겁니다. 당신이 무사하게 나가기 위해서는 ‘그 아이’를 찾아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뭐, 부담스럽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당신은 그저 그 아이의 손님인 척 연기하면 그만이니까요. 절대, 침입자인 걸 들키면 안 됩니다. 옛날부터 낯가림이 심했던 아이라, 구면인 손님이 아닌 초면인 사람이 여기 있는 걸 알게 되면 다소 거칠게 쫓아내려 할 겁니다.

‘그 아이’는 검은색 긴 머리를 하나로 땋아 내렸으며, 조끼를 제외한 교복을 입고 있습니다. 바지 대신 긴 치마를 입고 있어서 멀리서 봐도 구분이 잘 될 겁니다.

눈동자는 원래 보라색이었는데, 지금 거기 있는 건 아마 같은 색이 아닐 겁니다. 옅은 연보라색이나 분홍색, 심지어 흰색일 수도 있지만, 색이 다르다 해서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잔류사념도 빛바래는 법이지요.

앞서 말했지만, 그 아이는 산 것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해서 복장만으로 상대를 유추합니다. 그러니 얼굴을 빤히 바라봐도 당황하지 마십시오. 당신을 보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 아이는 ‘아이렌’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반말로 대화하면 되며, 아마 상대는 당신을 선배로 부르며 존대할 겁니다.

2.

복도를 탐색하다가 인기척이 느껴지면 멈추십시오. 만약 고스트가 지나간다면 조용히 고개만 끄덕여 인사해도 됩니다. 그 고스트들은 ‘그 아이’보다 먼저 거기 자리 잡고 있던 존재들로, 딱히 당신을 건들지 않을 겁니다. 말을 걸면 대꾸해도 됩니다. 그냥 길고양이 같은 존재라 생각하세요.

고스트는 총 세 마리이며, 인사 후 탐색을 계속하십시오. 혹 고스트 수가 세 마리보다 더 많다면 즉시 복도 중간의 유난히 새것 같은 깨끗한 문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고스트가 아니라 작고 검은 그림자가 네 발로 뛰어온다면, 마찬가지로 위에 설명한 문을 찾아 들어가십시오.

그 문 너머는 손님을 위한 게스트 룸이므로, 정 그 아이를 찾기 힘들다면. 거기서 계속 기다리는 게 낫습니다. 그 애는 자주 게스트 룸에 오니까요.

3.

혹시 누군가가 당신을 노려보고 있는 거 같은, 마치 뱀에게 주시당하는 생쥐가 된 느낌이 든다면, 그 시선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려 들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저 당신이 헛짓거릴 하지는 않을지 주시하고 있을 뿐으로, 난동을 피우거나 그 아이를 해코지하려 하지만 않으면 금방 살기를 감출 겁니다.

3-1.

혹 그 시선에 잡아먹히는 듯한 기분이 든다면, 그냥 받아들이십시오. 괜찮습니다. 죽거나 다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연기할 필요도 없이 당사자가 직접 나서주겠다는데, 얼마나 고맙습니까? 아마 의식을 잃을 텐데, 정신을 차리면 고물 기숙사 밖에서 눈을 뜰 겁니다. 그러면 바로 학원장실로 오십시오.

*3-2.

당신이 사감일 경우, 이런 시선이 느껴진다면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바이퍼 씨.’라고 하십시오. 아마 곧 주시당하는 감각이 사라질 겁니다. 겁에 질려 말하는 걸 까먹거나 우물쭈물하지 마십시오. 제때 말하지 못한다면 탈출 후에도 악몽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4.

아이렌을 찾아내거나 게스트 룸에서 만난다면, 저쪽에서 먼저 인사하기 전까지 대꾸하지 마십시오. 만약 먼저 인사하지 않고 누구냐고, 어떻게 여기 온 거냐고 물어본다면……. 아까 교복 입은 학생 대처법처럼 그냥 미아가 되어 여기까지 왔다고 비십시오.

웬만하면 기숙사 복을 입고 있으면 당신이 누군지 눈치채지 못하지만, 가끔 위화감을 느낀 건지 누구냐고 묻는 경우가 있더군요. 기준은 저도 모르니까, 부디 못 알아보기만을 비십시오.

5.

상대 쪽에서 인사 후 무슨 일로 왔냐고 묻거든, 내일 있을 연회에 초대하기 위해 왔다고 하십시오. 내일 진짜 연회가 있나 없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단 그렇다고 하십시오. 당신이 사감일 경우에는 꼭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좀 집요하게 권해도 좋습니다. 아이렌은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반드시 가겠다고 할 테니, 거절당할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만약 곧장 대답하지 않고 우물쭈물한다면 의심을 살 테니, 정신 바짝 차리십시오. 그나마 당신이 사감이라면 조금 느긋하게 굴어도 기다려 주겠지만, 일반 기숙사복이면 똑바로 대처하지 않으면 금방 정체를 들킬 겁니다.

만약 누구냐고 물어보며 낯설어한다면, 사감의 심부름으로 왔다고 말한 후 연회에 와달라고 하십시오. 운이 좋으면 그대로 쫓겨나고, 운이 나쁘면……. 뭐 그래봐야 기절밖에 더 하겠습니까?

*(참고로 당신이 사감일 경우 심부름 변명은 안 통하니 그냥 길 잃었다고 비십시오.)

6.

연회에 오겠다고 답한 아이렌은 뭐라도 챙겨 가고 싶다고, 뭔가 필요한 건 없냐고 물을 겁니다. 그냥 몸만 오면 된다고, 챙겨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십시오. 두어 번 거절하다 보면 여기까지 왔으니 간식이라도 챙겨 가라고 할 겁니다. 여기엔 굳이 대답할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뭐라고 대꾸할 틈도 없이 당신을 부엌으로 데려갈 텐데, 식탁에는 이런저런 간식들이 있을 겁니다. 보통은 과자나 음료수, 말린 과일, 스낵 종류가 있을 겁니다.

이미 단종 된 과자나 음료수가 있더라도 당황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먹을 것도 아니니, 적당히 아무거나 고르면 됩니다. 다만, 말린 과일 중 대추야자는 고르지 마십시오. 반드시 들킬 겁니다. 탈출이 코앞까지 왔는데 여기서 들키면 아쉽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기서 발각된다면 한 달 치 앓아누울 고통만 얻을 겁니다.

* 당신이 사감이라면 대추야자를 골라도 됩니다. 대신 ‘쟈밀 것도 챙겨 가도 되느냐’라며 다른 과자도 챙기십시오. 저 말을 안 할 거라면 애초에 고르지 마십시오. 어차피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먹고 싶단 이유로 경솔하게 굴지 마십시오.

7.

간식을 받아 부엌 밖으로 나온다면, 아마 네 발로 걸어 다니는 고양이 비슷한 마수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물론 진짜 마수는 아니고, 3에서 설명한 그 수상한 검은 그림자의 정체가 이 녀석입니다. 아이렌과 같은 사념체 중 하나고 본래라면 당신을 공격할지 모르는 위험한 존재이지만, 지금은 먹을 거에 이끌려 온 거니 간식을 줘버리면 현관문을 열고 저 너머로 사라질 겁니다.

빈손이 되었다면, 열린 현관문으로 탈출하십시오. 나가보아도 아까 그 마수는 없을 겁니다.

7-1.

만약 마수가 보이지 않는다면 조금 기다리면 올 겁니다. 이때, 받아온 간식을 미리 먹지 마십시오. 먹어도 아무 맛도 안 날 거고, 빈손인 당신을 본 그 녀석은 자신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당신에게 달려들 겁니다.

만약 공격받게 된다면, 다시 부엌으로 가 아이렌에게 도움을 청하십시오. 아마 그 시점에서 당신이 침입자라는 걸 들키겠지만, 상관없습니다. 적어도 그 마수보다는 아이렌이 백배 자비로우니까 조금 아프고 끝나는 걸 다행으로 아십시오.

7-2.

아무리 기다려도 마수가 오지 않는다면 도로 부엌으로 들어가 아이렌에게 잠깐 자고 가도 되냐고 물으십시오. 아마 빈방으로 당신을 안내할 겁니다. 거기서 한숨 자고 일어나면 고물 기숙사의 밖에서 눈을 뜰 겁니다.

8.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다면, 절대 본인 기숙사로 바로 돌아가지 말고 학원장실로 오십시오. 당연히 혼나기야 하겠지만, 거기 다녀온 이상 해야 할 게 있습니다. 졸업 때까지 악몽과 몽유병에 시달리고 싶지 않으면 꼭 찾아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