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새우 꼬리 실종 사건
빌 셴하이트 & 플로이드 리치 드림
보글보글. 각종 재료가 끓고있는 작은 솥 앞.
나란히 서서 제조 중인 마법약의 색이 바뀌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1학년 A반 학생 두 사람 중, 이그니하이드 기숙사 마크가 박힌 실험복을 입은 학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옛날부터 한 생각인데, 아이렌 양은 약간 미연시 소꿉친구 계열의 캐릭터 같아.”
그건 명백히 맥락 없는 이야기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름이 언급된 이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 듯하였다. 제 옆의 동급생을 슬쩍 쳐다본 아이렌은 흥미로운 의견이라는 듯, 전혀 불쾌해하지 않고 대꾸해 주었다.
“나도 오타쿠다보니 어떤 계열의 캐릭터를 말하는 건지는 알 것 같은데, 내가 그런 이미지야?”
“응. 흑발 생머리에, 머리도 특이한 모양이 아니라 얌전하게 땋아 내렸잖아? 모두에게 친절하고, 무난하게 튀지 않고, 뭐 그런 점이?”
“흐음.”
살짝 눈을 감은 아이렌은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몇 캐릭터들과 자신을 비교해 보았다.
확실히 제가 수수하고 무난한 인상이라는 건 동의하지만, ‘그런’ 캐릭터들과 닮은 것 같지는 않은데. 오히려 자신은 소꿉친구 계열 캐릭터라기보다는 악의 조직 중간 간부 같은 느낌에 가깝지 않은가.
하지만 원래 인상이라는 건 자신이 인식하는 것과 타인이 인식하는 게 다를 수밖에 없다. 남에게는 드러내지 않는 제 면모는 자신밖에 모르니, 해석 차이가 생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눈꺼풀을 연 아이렌은 보호경 아래로 손을 넣어 가볍게 눈가를 문질렀다.
“그런 이미지로 보이는구나, 나는.”
“뭐, 이건 그냥 내 개인 의견이니까 말이야. 칭찬으로 한 말이라는 것만 알아줘.”
“알아. 칭찬해 줘서 고마워.”
악역도 아니고 소꿉친구 역의 히로인이라면 명백하게 칭찬이지. 그정도도 모를 만큼 시야가 좁진 않은 아이렌은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 손을 저었다.
그때.
“꼬붕! 이거 뭔가 이상하다고!”
다른 이와 한 조가 되어 마법약을 끓이고 있던 그림이, 제 짝은 어디 버려둔 건지 빠른 속도로 아이렌에게 달려온다.
작은 몸에 걸맞은 엄청난 속도에 살짝 눈을 크게 뜬 아이렌은 부주의한 제 파트너에게 주의 주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림, 실습하는 데 뛰어오면…….”
그러나 아이렌이 말을 끝맺기도 전, ‘후낫!’라고 큰소리로 비명을 지른 그림이 요란하게 넘어지며 솥을 꼬리로 쳐버린다.
퍽. 손잡이 부분을 제대로 맞은 솥은 다행스럽게도 넘어지는 대참사는 면했지만, 고온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마법약이 흘러넘쳐 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어?”
“헉!”
걸쭉한 마법약이 공중으로 튀자, 이그니하이드 학생은 재빨리 방어마법을 써 자신들 앞에 얇은 보호막을 만들었다. 덕분에 튀어 오른 대부분의 마법약은 그 보호막에 막혀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문제가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보호막이 미처 막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머리가 짧은 사람은 미처 생각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만. 생각보다 머리카락이라는 존재는 제멋대로 휘날려, 몸에서 저 멀리 떨어지는 경우가 잦았다는 것이다.
그래.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예. 머리카락 살짝 타서 다행이었다니까요. 몸에 튀었다간 난리가 났을걸요.”
“…….”
마법약학 시간에 자그마한 소동이 있었던 당일.
아이렌과 같은 반인 폼피오레 학생에게서 뜻밖의 소식을 들은 빌은 사정없이 미간을 구겼다.
“머리카락은 많이 탔니?”
“글쎄요. 저는 자세히 못 봤는데 한 뼘 정도 탔던가?”
“한 뼘이나?”
그렇게 긴 머리라면 한 뼘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머리카락이라는 건 조금만 길이가 바뀌어도 인상 차이가 나는 신체 부위지 않던가.
게다가 그 새까만 머리카락이 불타버리다니. 그건 비극이다. 차마 후배 앞이라 티는 낼 수 없지만, 빌은 어떠한 빛에도 색채를 보이지 않는 아이렌의 머리카락이 아까워서 초조함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잘 다듬으면 괜찮겠지만, 그 애라면 그냥 혼자서 머리카락을 다듬을지도 모르겠는데.”
“뭐, 워낙 긴 머리니까 끝만 조금 자르는 건 괜찮지 않겠어요? 아이렌은 미술적 감각이 아예 없는 게 아니니까, 깔끔하게 자를 거 같은데.”
“어림도 없지. 전용 가위로 잘라야 머릿결이 상하지 않는단 말이야.”
다른 이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이렇게까지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제 기숙사 밖 사람들이면 정말 어찌 되든 좋다 생각할 거고, 폼피오레 기숙사의 학생이라면 알아서 잘할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잠깐 고민하던 빌은 결국 결단을 내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역시 안 되겠어, 걱정되니 다녀와야겠어.”
“네? 지금요?”
“그래. 이미 잘랐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끝을 다듬어 주러 가야지.”
누가 보면 과한 걱정이라 할 수 있지만, 알게 뭔가. 제가 남의 눈치를 볼 만한 사람이던가.
빌은 곧장 밖으로 나서, 고물 기숙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외출 중인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목적지로 도착한 그는 굳게 닫힌 문 앞에 멈춰 섰다. 오늘은 동아리 활동이 없는 날이니 도서관에 있을 테지만, 머리카락을 다듬기 위해서라도 기숙사에 돌아올 거라 생각했는데. 이쯤 되니 머리카락이 탄 상태로 돌아다니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든다.
그냥 전화해 볼까. 아니면, 문을 두드리며 크게 불러볼까. 후자의 방법이라면 적어도 고스트라도 나와서 상황을 알려줄 거 같은데.
“선배,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세요?”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문을 보며 대책을 궁리하던 빌은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건 분명, 제가 찾던 이의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아이렌, 머리카락이 탔다고 들었…….”
그런데. 몸을 돌린 빌은 그대로 굳어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제 뒤로 다가오던 이는 분명 아이렌이 맞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가 제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는 거지.
“빌 선배?”
바람에 가볍게 살랑이는 아이렌의 새까만 머리카락은, 어깨에 겨우 닿는 길이 정도로 짧아져 있었다. 그래. 딱 제 머리카락 길이와 비슷한 정도였다고 할까.
분명, 허리까지 내려오던 긴 머리가 어째서 저리 짧아졌단 말인가. 해를 입은 건 딱 한 뼘 정도라 들었는데. 지금 보니 머리카락이 한 뼘 길이밖에 안 남지 않았나.
믿을 수 없는 극단적 변화에 아무 말도 못 하던 빌은, 휘청거리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겨우 근처 벽을 짚었다.
“선배?! 왜, 왜 그러세요!”
“너, 너 머리가…….”
“예? 아, 이거요. 기분 전환 겸 자르는 김에 확 잘랐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 그래. 문제는 없다.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제 감정은 이걸 아무 일도 아니라고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지.
빌은 잘려서 소실 된 새까만 머리카락의 길이가 자꾸만 떠올라 눈앞이 아찔해졌지만, 애써 정신을 붙잡고 말을 이었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무슨 일이요?”
“그렇게 길게 길러오던 머리카락을 확 자른 거라면, 기분 전환이 아주 많이 필요했던 건가 싶어서.”
지금 감정에 휘청이고 있는 빌이라지만, 이건 대단히 논리적인 질문이었다. 외모를 꾸미는 일에 그리 관심도 없는 아이렌이 유일하게 신경 쓰는 것이 머리카락이지 않았나.
때론 길어서 귀찮다고 하면서도 절대 자르지 않고, 샴푸에 트리트먼트까지 꼼꼼히 한 후 정갈하게 땋고 다니던 그 머리카락을 단순히 기분 전환으로 자르는 건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한 빌의 추리가 옳았던 건지, 아이렌은 곧바로 대꾸하지 않고 입을 닫고 있다가 엉뚱한 소리를 지껄였다.
“이미지 변신 좀 해보려고요.”
“뭐?”
“제 이미지, 너무 식상한가 싶어서요. 약간 모브 캐릭터 같지 않나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혹시, 마법약이 머리카락 뿐만이 아니라 머릿속까지 잘못 들어간 건가.
도무지 아이렌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 아닌 이유에 혼란스러워진 빌은 결국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런 걸 신경 쓸 성격도 아니면서!’
제가 아는 아이렌은 외적으로 그리 튀어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두각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건 제가 애를 쓰는 부분……. 그래, 창작이나 공부 같은 것이었지. 그중에서도 공부는 성적 자체에 연연하기보다는 배움 그 자체에 욕심이 있는 거라 봐야 했으니, 정말로 남의 시선은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아이였는데. 개성이 없다고 머리를 자른다? 내일 당장 태양이 두 개가 된다고 하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으리라.
혼란스러움에 머리에 불이라도 붙을 것 같은 빌과 달리, 아이렌은 무덤덤한 얼굴로 제 짧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막상 잘라놓고 보니, 이건 이것대로 또 모브 캐릭터 같더라고요. 역시 머리카락 색이 문제인가.”
“그럴 리 있어? 애초에, 네가 모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그런가요?”
“너같이 개성이 강한 모브가 대체 어디 있니!”
빌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대꾸했다가, 이 행동이 이성적이지 않다는 걸 자각하고 목소리를 줄였다.
감정적으로 소리치긴 했지만, 이건 반발심에 나온 괜한 억지가 아니다. 확실히 아이렌의 생김새는 화려하다거나 귀엽다기보다는 무던한 호감상이고, 머리 스타일이나 옷을 정성 들여 꾸미지도 않은 ‘기본 아바타’같은 외형이지만, 아이렌의 진짜 특별함은 그런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난해한 성격. 모두에게 친절할지언정 막상 곁은 잘 내어주지 않는 모순적인 태도. 독특한 철학관. 타인의 본질을 쉽게 눈치채는 기묘한 분석력과 폼피오레 학생들과 12시간 동안 토론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알찬 미학까지.
아이렌은 그런 특성들 때문에 절대 모브 캐릭터라고 말할 수 없었는데, 어째서 이 애는 갑자기 자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 평범하다고 말하면 오히려 그렇냐며 웃어넘길 거 같은 녀석이 갑자기 왜 평범함을 거부하려고 한 걸까.
역시, 참으로 알 수가 없는 녀석이다. 루크라면 이런 점이 아이렌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라며 기뻐했겠지만, 빌은 그럴 수 없었다.
“저, 이상한가요?”
“뭐가?”
“짧은 머리요. 영 반응이 안 좋으신 거 같아서요. 그렇게 안 어울리나 싶어서.”
안 어울리냐, 라. 빌은 그 질문에 멈칫했다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안 어울리는 건 아니지만, 굳이 네가 잘 쌓아온 개성을 갑자기 바꾸려고 하니 의아할 뿐이야.”
“흠, 그러니까 예전 모습이 더 좋다?”
“……뭐, 굳이 말하자면.”
아름다움에 정답은 없다. 오답은 있긴 하지만, 그 오답조차도 취향에 맞으면 사랑해 주는 이가 있으니까. 그러니 이 짧은 머리도 분명 오답은 아니고, 오히려 좀 귀여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역시 자신은 이전 모습이 더 좋았다. 언제든 제가 손을 뻗어 만질 수 있는. 정갈하게 땋은 긴 머리가.
“뭐, 머리카락은 금방 기니까 조금 있으면 금방 원래 길이로 돌아올 거예요.”
“예전만큼 길어지려면 졸업 때까지 길러야 할 텐데.”
“그러려나요? 한 1년 반만 길러도 그 정도는 길 거 같은데.”
그 정도 기간 만에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길어질 수 있나. 빌은 믿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아이렌은 제 눈치를 보느라 과장된 예측을 내리는 거 같았으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말이지.’
사실 잘린 머리카락이 아까워 죽겠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다. 중요한 건 아이렌이 왜 극단적으로 머리를 싹둑 잘라 왔느냐. 더 정확하게 말해서, 제가 어찌 보이는 가를 신경 쓴 계기가 무엇이냐 하는 거였지.
대체 누가 자신조차도 어찌하지 못하는 이의 마음을 뒤흔든 건지 신경이 쓰여 견딜 수 없던 빌은, 결국 극단적인 방법을 떠올렸다. 이런 방법까지 쓰고 싶진 않지만, 이거라면 확실히 아이렌의 마음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방법을.
“잠깐 따라오렴.”
“예? 어디를요?”
“잔말 말고.”
빌이 냅다 아이렌을 끌고 도착한 곳은, 영업 준비가 한창인 모스트로 라운지였다.
본래라면 손님이 찾아오면 안 되는 시간대에 도착해서일까. 소리 내어 부르기도 전에 인기척을 느끼고 나타난 것은, 아이렌이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존재였다.
“어라? 베타 선배. 여기는 무슨 일…….”
아무래도 덩치가 더 큰 쪽에 시선이 가기 마련인 법이라, 플로이드는 빌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하지만 상대의 뒤에 서 있는 아이렌을 발견하기까지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니.
마치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한 표정이 되어 우뚝 멈춰 선 플로이드는 눈동자만 굴려 아이렌을 살피더니,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아기새우야. 꼬리는 어디 갔어?”
“예? 꼬리요?”
“그래.”
플로이드와 매우 친밀한 아이렌인 만큼, 상대가 말하는 꼬리가 무엇인지 눈치채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까 빌과 똑같은, 아니 어쩌면 더 심각한 표정을 짓는 플로이드를 보자 무언가 잘못되었단 생각이 든 건지, 아이렌은 기어들어 가듯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자, 잘랐어요. 기분 전환 겸.”
“아기새우는 머리 긴 걸 좋아하지 않았어? 그런데 기분 전환 겸 잘랐다고? 무슨 일 있는 거 아니고?”
아무리 남에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 플로이드라도, 좋아하는 이의 취향이나 습관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는 걸까. 빌은 제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읊는 플로이드를 보고, 제 방법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반면. 아까와 같이 무덤덤한 모습을 완전히 잃은 아이렌은 막 미용실에 다녀와 헤어 에센스가 마르지도 않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이상한가요?”
“새우가 꼬리가 없으면 이상하겠지, 아무래도.”
“……그런가요.”
“응. 그래서, 아기새우는 지금 머리가 좋아?”
플로이드는 대답하기 어렵지 않은 것을 물었지만, 아이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 7대 난제 중 하나라도 맞닥뜨린 듯, 인상을 찌푸리고 시선을 피할 뿐이었지.
할 말을 잃은 아이렌이 조용해진 사이. 빌은 황당하다는 듯 혼잣말했다.
“정말이지. 만족하지도 못할 스타일 변화는 왜 한 건지. 평범해 보이는 게 싫다면 차라리 화장을 바꿀 것이지.”
“평범해 보여? 아기새우가?”
“그래. 내게 말하기를, 자기 외모가 모브 캐릭터 같지 않냐면서 이미지 변화를 위해 잘랐다던데.”
“헤에.”
빌의 말을 들은 플로이드는 무언가 감이 오는 게 있다는 듯, 입꼬리를 씩 올렸다.
“누가 그런 이야길 했어, 아기새우야?”
“예?”
“아기새우는 남의 눈치를 볼 사람은 아니지만, 남이 자기에 대해 함부로 정의 내리는 거 되게 싫어하잖아? 그게 맞냐 틀리냐 상관없이, 남이 그렇지 않냐고 하면 괜히 반발하고 싶어지는 법이지. 나도 방 청소 하려고 했는데 제이드가 방 좀 치우라고 하면 하기 싫어지더라고.”
플로이드의 말이 정곡을 찌른 걸까. 두 눈을 크게 뜬 아이렌이 물고기처럼 입만 뻐끔거린다.
얼떨결에 진실을 알아버린 빌은 직감적으로 문제점을 찾아낸 플로이드가 신기해 ‘허’하고 짧게 탄식했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반발심에 홧김에 머리를 잘랐다는 건가.’
그런 짓을 하면 후회하기 마련인데. 하여간 매번 무덤덤하게 구는 거 같다가도 거슬리는 게 있으면 불같은 면을 보여서 곤란하다. 아이렌이 은근히 다혈질이라는 걸 동아리 활동하며 알게 된 빌은 한숨만 푹 쉬었다.
이미 잘린 머리카락은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는 신체 부위가 아니던가.
그렇기에 플로이드는 빌과 달리 한숨만 쉬지 않고, 은근슬쩍 혹할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머리가 빨리 기는 마법약도 있었지?”
“그거라면 내가 만들 수 있어. 배우들은 작품 준비하느라 머리를 빨리 길러야 하는 경우가 있어서, 레시피를 알고 있거든.”
“헤에, 베타 선배는 대단하네.”
두 선배의 대화를 듣던 아이렌은 그제야 슬쩍 입을 열었다.
“공짜인가요?”
“넌 내가 옥타비넬 기숙사 사감으로 보이니?”
“아, 그거 아줄이 들으면 화낼 거 같은데.”
“알 게 뭐니. 난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각자 품고 있던 의문이 해소되어서일까. 어느새 세 사람의 분위기는 많이 누그러졌다.
특히 아이렌의 행동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게 되자 머리가 완전히 식은 빌은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리하고 아이렌에게 충고했다.
“다음부터는 큰일을 저지르기 전에 좀 더 생각하고 하렴. 넌 평소엔 얌전한데 가끔 엄청난 짓을 해서, 심장에 안 좋으니까.”
“난 아기새우의 그런 점이 좋지만.”
“시끄러워, 플로이드.”
‘하하…….’ 자신을 감싸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애정을 담아 말하는 플로이드 덕분에 웃음이 터진 아이렌은 짧아진 머리에서 손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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