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독재 (1)

스터디그룹 피한울 드림

본 작품은 김신형 작가님의 <독재> 오마주입니다. 고용주를 향한 저격에 몸을 던졌지만 다른 후계자 후보를 감싼 것, 그로 인해 과거가 언급되고 종속계약을 맺게 된 것, 그 과거에 여자가 왜 불명예제대를 당했는지까지 같은 흐름을 가져갑니다. 그외 포인트가 되는 부분은 제 임의로 각색하는 것보다는 원작의 표현을 존중하여 있는 그대로 빌렸어요.

다만 썰 내용에서 핵심이 되는 대사는 제 창작이며 영감을 받은 건 여기까지이기 때문에 이후 내용은 겹치는 부분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그간의 내용에도 소설 등장인물들의 고유 서사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참고해주세요. 김신형 작가님의 작품은 리디북스, 알라딘 등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카카오 페이지에서는 전체연령가로 감상 가능하십니다!


YB 그룹 후계 2순위와 보디가드로 시작하는 군부물도 좋아. 피연백 연설 있던 날 후계 1순위 지영현과 피한울은 단상에 앉아있었는데 아까는 아무 이상 없었던 곳에서 뭐가 반짝이는 거야. 군인 저격수 출신인 강규리는 저격인 거 직감하고 입술 꽉 깨문 채 피한울 앞으로 뛰어들었는데― 

우당탕탕 누군가를 끌어안고 의자 채로 넘어간 충격에 눈 뜨자 똑같이 번쩍 뜨인 금안이랑 눈이 마주쳤어. 자기 밑에 누워있는 게 다름아닌 지영현인 걸 확인하자 규리는 그 순간 자기도 총에 맞은 척을 해야하나 싶었을 거야. 분명히 총성은 울렸는데... 더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외면할 수 없어 고개를 들자 오른쪽 어깨를 감싼 피한울이 이쪽을 마주보며 씨이익 웃어. 그는 다치지 않은 왼팔을 들어 정확히 규리를 가리켰고 그녀는 오오… 하며 이 상황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지영현의 등 뒤로 숨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굳어버린 양팔은 여전히 지영현을 감싸안은 채였어.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피한울은 죄인 강규리에게 선고를 내렸어. 최후 변론은 다녀와서 천천히 듣도록 할까. 넌 출국 금지야. 차라리 지금 당장 죽여달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지만 관통당한 어깨의 출혈이 심해서 규리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피한울을 보낼 수밖에 없었어.

혼비백산한 사람들과 엄호를 받는 귀빈들이 야외 회장을 빠져나간 후에도 규리는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지 못했어. 결국 지영현이 자기 위에 엎어져있는 규리를 번쩍 들어서 일으켜 세워주겠지. 까딱 빗나가면 총에 맞는 건 자기였을지도 모르는데 지영현은 오히려 웃으며 규리의 어깨를 툭툭 쳤어. 

거기서 몸을 던질 생각을 하다니, 패기가 있네! 그거 좋지, 다시 봤다! 그렇게 자기 경호원들하고 사라지는 지영현의 뒤에서 규리는 멍하니 생각했어. 다시 봤다니, 뭘… 다시, 봤다? 그런데 그 위화감은 금방 잊혀졌겠지. 이제는 다시는 못 볼 사람이 될지도 모르는데 뭐. 

눈물이 흐를 것 같아 손등으로 슥 닦아내자 얼굴에 튄 피한울의 피가 뺨에 펴발라졌어. 아, 이게 그 사람의 피 냄새구나. 그러고 보면 그간 겪은 수많은 암살 시도에도 한 번도 피를 본 적 없는 그였는데... 그 사실을 인지하자 인중에 피를 묻힌 것처럼 선명히 맡아지는 혈향에 화장실로 뛰어갔어. 

피가 말라붙어 냄새가 빠지지 않게 되면 정말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러나 도망치고 싶은 이유는 ―지, 당장 벌려놓은 사고가 아니야. 그래서 규리는 모습을 감추는 대신 수술실 바로 앞에서 대기했을 것 같아. 규리에게는 1초가 한 시간 같았겠지만 얼마가지 않아 피한울의 수술이 끝났을 거야. 

총에 맞아놓고 수술실에서 제 발로 걸어나오는 피한울을 보자 조금 질리는 기분이 들었어. 문이 열리고 규리가 보이자 입꼬리를 당겨 웃은 피한울은 시선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었어. 까만 수트 안쪽 셔츠에는 피가 묻어있는데 얼굴은 말끔하니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죽대며 놀리는 거야. 

 벌써 닦을 필요는 없었는데. 곱게 관에 눕혀줄 생각 없으니까. 그럼 강규리 한 마디를 안 지잖아. 누구 덕분에 시체 닦는 게 습관이 돼서요. 명색이 보디가드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피한울을 죽이려다 죽임당한, 킬러들의 시체를 치우는 게 주된 일과였겠지 싶어. 

몸을 뻣뻣하게 경직시킨 규리가 주먹을 쥔 채 가까스로 서있자 저벅저벅 다가간 피한울은 코앞에서 멈춰서서는 손을 내밀어. 규리가 망설이며 왼손을 내밀자 그는 고개를 저어. 기다리지 못하고 오른쪽 손목을 낚아챈 피한울은 그대로 규리의 팔을 확 잡아늘렸지. 

갑자기 쭉 펴진 팔은 당기다 못해 어깨가 빠질 것 같아서 규리의 눈가가 파들거렸어. 그 고통을 안다는 것처럼 피한울은 규리의 어깨에 손을 턱 얹었어. 뽑혀나갈 듯한 어깨와 맥박이 뛰는 손목을 쥔 피한울의 양손에 힘이 가해졌어.

이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내 거야. 

그 오싹한 울림에 규리가 팔을 비틀며 말해. 역시나 옥죄는 힘도 강해졌지. 이거 정말 어깨를 다친 사람의 악력이 맞는걸까. 수술도 잘 되신 분이 왜 이러십니까. 팔을 아예 못 쓰게 되신 것도 아닌데, 똑같이 하나 받아가시는 거 참 공평하고 좋네요. 그 말의 뭐가 웃긴지 피한울은 코웃음을 쳐. 왜 팔 한 짝으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순식간에 규리의 몸에서 힘이 빠지자 피한울도 흥미가 떨어졌는지 휙 팔을 놔버렸어. 갑자기 피가 통해 원래 색을 되찾는 손목에는 푸른 멍이 들었어. 이미 너덜너덜해진 팔이건만 끝까지 소유를 주장하고 가는 그. 명심해, 네 오른팔은 내가 받아간 거야. 

그대로 피한울은 규리를 전속 변호사랑 방에 보내놓고 자기는 다른 응접실로 향했어. 거기엔 미리 들어와 앉은 지영현이 있겠지. 수술이 끝나자마자 멀쩡히 걸어들어오는 모습에 지영현은 괜찮냐며 너스레를 떠는데 피한울이 대꾸도 안 하고 맞은편에 앉으니까 확신에 차서 말해. 

너 아까 피할 수 있었는데 안 피한 거지, 그치? 어떤 답을 내놔도 이미 결론을 내린 듯한 태도에 피한울은 적당히 어, 하고 답했어. 무슨 저격총이 동네 담장 넘어 날아온 축구공인 것처럼 말야. 그럼 지영현은 호탕하게 웃어젖혀. 와하, 지금쯤 떨고 있을 그 여자만 불쌍하게 됐네! 

아까 구한 게 나인 줄 알자마자 희게 질리던데, 덕분에 즐거운 구경했다. 그 말에 피한울의 미간에 가는 실선이 그어졌어. 강규리가 지영현을 안고 넘어진 게 또 생각나서. 지영현은 그거 다 알면서 모르는 척 훈수두는 거야. 그래도 너무 놀리면 너, 미움받는다? 

규리가 들으면 사람 목숨줄 쥐고 흔드는 게 놀린다는 말로 퉁칠 일이냐면서 기겁할 게 분명했지. 피한울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그것도 나쁘지 않지" 라며 창 밖으로 시선을 던져. 영양가 없는 대화의 끝이 보이자 지영현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어. 그렇게 해서까지 갖고 싶었냐? 

피한울이 대답을 않자 그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지영현이 크게 웃어. 세상에 피한울의 팔을 두 번씩이나 받아가는 게 그 여자일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누가 있겠냐. 웬만한 킬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어. 그리고 방을 나서기 전에 잠시 멈춰서지. 이번에도 팔에서 그쳤지만 다음에야말로 그 목을 받아갈지도 모른다? 

분명 네 약점이 될 거다. 주어가 없지만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었지. 잘 생각해봐라. 친구의 걱정어린 조언 아니냐.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그 말에도 피한울은 별다른 반응 없이 말할 뿐이야. 그러니까 갖겠다는 거잖아.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어보이는 모습에 지영현은 표정을 내보이지 않았어. 그저 그러냐, 하고 멀어졌지.

한편 규리는 전속 변호사와 면담을 갖고 있었는데, 앉자마자 펼쳐준 계약서 15 페이지에 적힌 금액은 생각했던 것의 두 배였어. 그러니까 계약 위반으로 물어낼 거라고 생각했던 위약금의 두 배. 그건 차라리 임무 수행 중 목숨을 잃었을 때 받는 사망보험금에 가까웠지. 

머리에 스친 생각을 무시하고 강규리는 물었어. 이건 계약서에 있던 위약금 조항과 다른데요. 그러자 변호사는 내가 실수할 리가 있냐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지. 제가 설명 안 해드렸나요? 위약금이 아니라 재계약금입니다. 머리가 나쁜 편이 아닌데도 정말이지 이해가 안 됐을 거야. 

당장 옷 벗고 쫓겨나도 할 말이 없는데 재계약이라니… 강규리의 생존 본능이 이건 이상하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어. 애초에 액수가 얼마든 이 짓을 더 하는 건 말도 안 되지. 눈 뜨면 계약 종료일까지 디데이 세는 게 낙인데. 말마따나 저건 내 목숨값이다. 그렇다면 인생을 더 보람찬 데에 쓰는 게 맞아. 

고개를 꾸벅 숙인 규리는 날듯이 출구로 향했는데 손을 대기도 전에 저절로 문이 열렸어. 그만큼 간절했던 걸까. 그러나 문이 열리자 보인 건 피한울의 묘하게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얼굴이었지. 어디 가? ...목이 말라서 물을 받으러… 안 됩니까? 목이 마르면 침이라도 삼키던가. 

그대로 손목이 붙잡혀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은, 아니, 앉혀진 규리. 설마 재계약 안 하려고? 하기 싫다고 하면, 안 됩니까? 하기 싫으면 눈 딱 감고 죽었다고 생각하던가. 어쩐지 반복되는 듯한 대화. 지금 이쪽은 정말로 생사가 걸렸는데 태평하게 죽네 마네 하는 피한울이 얄미웠어. 

 제 상상력이 그렇게까지 좋은 편은 아닙니다. 혼신의 발악에도 피한울은 아~ 하며 웃음을 흘려. 그래서 나 대신 지영현을 구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을 안 해보셨나? 요지는 고용주를 다치게 했다는 점인데 어쩐지 피한울은 자신이 아닌 지영현을 구한 게 더 마음에 안 들어보이는 듯했어. 

그러나 옆에 앉아있던 변호사는 아무 말도 않고 입을 다물고 있었지. 과연, 현명한 사람. 다만 이대로 두면 끝이 안 보이겠다 생각한 그는 적절히 끼어들었어. 이전과 바뀐 내용은 크게 없습니다. 8시간 근무 3교대시고요, 업무는 마찬가지로 요인 경호와 고용주에 관한 위험 요소 제거 및 수습입니다. 

시체 치우라는 말을 수습으로 포장하는 모습에 규리가 눈을 가늘게 떴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변호사는 양심에 찔리지도 않는지 조약을 읊어. 요약하자면 바뀐 건 총 세 가지. 첫째, 경호 대상에 피한솔을 포함할 것. 둘째, 계약금은 20억. 셋째, 계약 기간은 없음.

없음. 

아까 이 팔은 내 거라느니 헛소리를 해대는 통에 신체 포기 각서라도 쓰게 할 셈인가 생각하던 규리는 무난한 조건들에 긴장을 풀었지만 끝내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어. 정신 사나워, 앉아. 피한울이 아픈 어깨를 내리누르지만 않았다면. 어쩐지 계약금이 10배나 되더라. 설마 종신 계약이었다니. 

피한울을 올려다 보자 그는 웃으며 휘둘렀어. 무자비한 재판관이 쥔, 판결이라는 이름의 망치를. 넌 종신형이야. 마치 이름을 새로 지어주는 듯한 나긋한 울림에 땅땅땅― 머리가 멍해졌어. 종신형. 무기징역. 사형 전에 있는 그거. 확실히 금액 책정 하나는 정확하네. 

평생 죽은 거나 다름없이 살라면서 사망보험금 말고 뭘 더 줘야할까. 결국 규리는 절대 꺼내고 싶지 않았던 마지막 패를 꺼내들었어. 기다렸다는 듯이 섬뜩하게 웃는 피한울의 눈을 보면 다시 품에 넣다 못해 땅을 파서 묻고 싶었지만, …저 여태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살았습니다.

피한울은 더 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였어. 입을 열었다면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겠지. 적어도 혼자 죽지는 않겠죠. 이제는 협박도 할 줄 알고. 앞으로도 죽은 것처럼 있다 사라지겠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인가. 내가 그걸 원했다면 넌 내 영역에 발을 들인 순간 이미 네가 치운 시체 밑에 깔려있어야 했어. 언제까지 모르는 척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응? 

거기서 규리는 모든 판단이 섰어. 이 남자는 자신의 입을 막고 싶어한다. 동시에 어째서인지 죽이고 싶어하지는 않아. 피할 수 없다면 챙길 수 있는 건 전부 챙긴다. 규리는 계약서를 팔락거리며 하나하나 따지고 들었어. 경호 대상이 추가됐는데 평생 계약에 이정도 액수는 못 받아들입니다. 

분기별로 나오는 인센티브 체크해주시고 휴가 일수는 제대로 지켜주세요. 경호 대상이 늘어나더라도 제 근무 시간은 정확히 8시간이며 업무 시간, 업무 내용 외의 요구는 거절할 수 있다는 특별 조항도 넣어주십시오. 그리고… 변호사가 눈썹을 까딱이자 규리는 마지막 말은 피한울을 쳐다보고 했어. 

이 모든 내용은 가족에게 알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진행해주세요. 변호사가 의중을 묻자 피한울은 모두 원하는 대로 수정해오라며 손짓했어. 돈의 액수 따위 중요하지 않은 듯, 마치 강규리가 종신 계약으로 묶여있다면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그럴수록 강규리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했지만. 

수정된 계약서를 만족스럽게 바라본 피한울은 규리의 왼손에 펜을 쥐여줬어. 전 오른손잡이인데요. 알아, 주먹 쥐는 거 보면. 이건 네가 자의로 사인하는 거니까 네 손으로 직접 해야지. 그 말에 기가 차서 규리는 중얼거려. 그럼 내 오른손은 누구 건데, 앓느니 죽지.

결국 조금 삐뚤빼뚤한 사인이 계약서 곳곳에 적혔어. 그건 정갈하지 못하다기 보다는 손에 힘이 풀려 부들거린 느낌이었지. 그걸 샅샅히 훑어보던 피한울이 말해. 글씨는 마음의 거울이라고들 하잖아. 익숙하지 않은 손으로 쓰면 그걸 숨기지 못하지. 봐, 이게 너의 진심이야. 

강규리는 멍하니 자신의 글씨를 다시 보더니 홱 고개를 돌렸어. 그 사이에 서류 봉투를 챙긴 변호사가 계약서를 들고 나가자 규리는 존칭을 전부 빼고 물어. 당장이라도 저 잘난 면상을 한 대 후려치고 싶다는 심정이 역력히 드러났지.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대체 뭐야? 

답해주는 건 어렵지 않다는 듯 피한울이 입을 뗐어. 지킨다는 건 참 성가신 일이야. 규칙도, 신념도, 사람도. 그 종잡을 수 없는 말에 규리가 눈살을 찌푸리자 그는 재밌는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웃어. 그래서 나도 한 번 그 노고를 느껴보기로 했어. 난 지금 약속을 지키고 있을 뿐이야. 

결국 그날, 강규리는 종속노예계약에 스스로 사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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