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가지 않은 길

리들 로즈하트 드림

가정(假定)이라는 건 과하지만 않으면 나쁘지 않은 법이었다. 미래를 대비하고, 상상력을 확장 시키는 과정. 아무리 틀에 박혀 사는 사람이라도 때로는 재미를, 때로는 가정을 주는 ‘만약에’가 어찌 나쁘다고 말하겠나.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전재가 있다는 것이었으니.

 

“선배는 만약 하츠라뷸에 가지 않았으면 어느 기숙사에 갔을 것 같나요?”

 

주말 오전. 우연히 가는 길이 겹쳐 아이렌과 함께 걸어가고 있던 리들은 뜬금없이 말을 거는 아이렌이 던진 주제에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건 이 학교에 들어와서 서너 번은 들어 본 적 있는 익숙한 ‘만약에’ 중 하나였지만. 아이렌이 직접 물어본 적은 없는 질문이었다. 그래,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이런 질문이라면 상대 쪽이 더 많이 들어봤었겠지. 이 후배는 우연에 우연이 겹쳐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 재학하고 있을 뿐. 원래는 여러 의미로 이곳에 속할 수 없는 아이였으니까.

 

‘자신이 많이 들어 본 질문이니, 다른 이들의 대답도 궁금한 걸까?’

 

이유가 무엇이든 관심을 보여주는 건 고마운 일이다. 리들은 이미 대답한 적 있었던 질문에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글쎄다. 어디까지나 마법의 거울이 결정할 일이긴 하지만, 디어솜니아라던가.”

“헤에. 하긴, 선배는 전반적으로 우수하니까 디어솜니아에 가서도 잘 적응하실 거 같아요.”

“칭찬 고맙구나. 뭐, 말레우스 선배랑 같은 기숙사가 되는 이상 사감은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부사감 정도라면……. 아니다, 릴리아 선배도 실력자이니 무리일까.”

 

리들은 항상 제 마법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그건 단순한 오만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어렸을 때부터 해온 무수한 노력의 결과물이었으니, 실제로 그의 우수함에 이견을 꺼내는 이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객관적으로 제 수준을 파악하는 능력까지 있었으니, 그야말로 모범생의 표본이라 할 수 있지 않겠나.

아이렌은 현실적인 대답을 내놓는 리들의 의견에 공감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두 분 다 3학년이니, 1년만 버티면 선배가 사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지. 디어솜니아에는 우수한 학생들이 많지만, 나도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하지만 역시 난 하츠라뷸이 좋단다.”

“그건 그래요. 선배는 이 교복이 제일 잘 어울리시니까요.”

 

아이렌은 고갯짓으로 리들의 팔에 있는 하츠라뷸 완장을 가리켰다.

제 기숙사에 애정이 깊은 리들은 후배의 말이 꽤 자랑스러운지, 어깨를 으쓱이며 빙긋 웃었다.

 

“너는 이런 질문을 자주 들어봤겠지만, 만약 일곱 기숙사 중 하나에 들어간다면 어디가 좋니? 역시 옥타비넬이려나.”

“아무래도 그렇죠. 거기가 저랑 제일 잘 맞을 거 같기도 하고, 전 바다를 좋아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마력이 없으니까, 들어가고 싶다고 갈 수 없긴 하죠.”

 

‘애초에 남학교인 이곳에 제가 있는 것 자체가 심히 예외이긴 하지만요.’ 그리 덧붙인 아이렌은 잠깐 침묵하나 싶더니, 문득 새로운 가정을 꺼내놓았다.

 

“그런데, 마력이 있었다면 여학교로 전학 보내지 않았으려나요. 애초에 학원장이 마차가 데려온 책임을 지려고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 머물게 해 준 거니까, 만약 마법을 쓸 수 있는 몸이었다면 ‘책임지고’ 더 좋은 곳으로 전학 보내 주었을 거 같기도 해요.”

“……그런가?”

“예. 학풍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글쎄다. 크로울리가 그렇게까지 해 주었을까.

이 학교에 2년이나 다니고 있으며 사감인 탓에 학원장과 자주 얼굴을 보았지만, 여전히 크로울리의 속은 알 수 없는 리들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는 듯 팔짱을 끼고 눈을 가늘게 떴다.

 

“뭐, 그럴 수도 있지만 너무 깊게 생각하지는 말렴. 가지 않은 길을 상상하는 건 괜찮지만, 거기에 사로잡혀 현실감을 잃으면 안 되니까.”

“그렇죠. 하하. 역시 리들 선배는 이런 점에서 믿음직하다니까요.”

“그래?”

“예. 저는 솔직히 눈앞의 현실보다 머릿속 이야기를 더 좋아하니까요. 이렇게 현실적인 사람이 옆에 있으면 아무래도 마음이 편해지죠.”

 

그렇다면 다행이다. 리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에 겨우 표정을 풀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걸지도 모르지만, 역시 아이렌이 마력이 없어서 다행이다. 그가 고물 기숙사 외의 다른 기숙사에 가는 것도, 아예 다른 학교로 가버리는 것도 싫으니까.

아이렌이 ‘가지 않은 길’이라기보다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생각은 이쯤 해두기로 한 리들은 머릿속 잡념을 도리질로 떨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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