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아니야
세벡 지그볼트 드림
* 드림주 생일 연성입니다. 멜로드 터빈 생일 축하한다...
* 23년도 세벡 생일연성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멜로드, 여기서 뭐 해?”
10월 4일 저녁.
선선한 가을 날씨가 아름다운 중원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멜로드는 어느새 제 뒤로 다가온 아이렌을 보곤 고개를 까딱였다.
“마지카메 체크 중이야.”
“흐음, 그걸 왜 여기서 하는 건데?”
“라이브 방송 중이라서? 사람 많은 곳에서 하면 시끄러울까 봐.”
“뭐?!”
태연하게 대답하는 멜로드의 대답에 소스라치게 놀란 아이렌은 황급히 고개를 뒤로 뺐다.
아, 이렇게나 남에게 제 모습을 노출하는 걸 싫어하다니. 우리 감독생은 사실 마수 조련사가 아니라 암살자에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아이렌이 이렇게 민첩하게 움직이는 꼴을 처음 본 그는 순간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후폭풍을 생각해 소리 내어 웃지는 않았다.
“걱정하지 마. 지금은 껐어. 과열 때문에 채팅창이 버벅거리더라고.”
“…….”
“하하, 놀라게 해서 미안해.”
자신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눈동자는 오래 가지 않아 노여움을 거두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속인 건 못마땅하지만, 결과적으로 방송에 제 얼굴이 노출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그걸로 족한 모양이었다.
멜로드의 옆에 자리 잡고 앉은 아이렌은 ‘좋아요’ 알림이 잔뜩 쌓인 멜로드의 계정을 보곤 탄식했다.
“역시 잘생긴 사람은 SNS에서 대인기구나.”
“그건 그렇지만, 얼굴 하나론 인기 계정이 되는 건 힘들지.”
“그래. 넌 계정 운영도 잘 하는 것 같으니 얼굴 하나로 평가 당하는 건 억울할 수도 있겠네.”
“물론 내 경우엔 얼굴 덕을 크게 보긴 했지만.”
‘뭘 어쩌라는 거야!’ 말장난 같은 대답에 놀아난 아이렌의 눈빛이 그렇게 항의하고 있지만, 멜로드는 웃어 보일 뿐 사과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왜 날 찾아왔을까? 선물은 아까 줬잖아.”
“너 안 보이니까 선배들이 찾던데?”
“우리 선배들?”
“응. 뭐, 생일이니 일을 시키려는 건 아니겠지만 주인공이 안 보이니 걱정되는 거 아니겠어?”
과연 그 선배들이 제 걱정을 할까. 아줄과 리치 형제를 나란히 떠올린 멜로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어 버렸다. 물론 제가 한…… 일주일쯤 안 보이면 걱정을 할지도 모르겠는데, 몇 분 안 보인다고 걱정할 위인들은 아니지.
기껏 해봐야 ‘생일 파티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어딜 싸돌아다니기에 안 보이는 걸까?’ 하는, 뭐 그런 생각으로 찾는 거 아니겠나.
별 걱정할 일이 아니라 판단한 멜로드는 슬그머니 아이렌에게 어깨동무했다.
“30분 안에 돌아간다고 전해줄래?”
“와, 자기 생일이라고 날 심부름꾼으로 써먹네!”
“그러지 말고, 응? 우리 친구잖아.”
생글생글 웃는 얼굴은 오늘도 아름답다. 아이렌은 연애 감정 한 톨 없이 객관적으로 보아도 훌륭한 동급생의 미모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후, 잘생겨서 들어준다.”
“고마워~! 역시 너밖에 없어.”
“거짓말하고 있네!”
교우관계의 깊이는 둘째치고, 아마 이 녀석이 친구라고 부르지 못할 1학년은 없을 거다. ‘너밖에 없어’라는 말은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
아이렌은 가까이 다가온 멜로드의 이마를 손으로 밀어 뒤로 물러나게 하더니, 슬그머니 팔에서 빠져나와 옥타비넬 기숙사로 돌아갔다.
아, 부탁을 거절했어도 원망하지 않았을 텐데. 불평하는 척하면서도 결국 들어주다니. 하여간 좋은 녀석이다. 아이렌의 손이 닿은 이마를 가볍게 문지르며 입꼬리를 씰룩인 그는 스마트폰을 잠깐 내려놓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씨 좋네.’
아직 7시 언저리밖에 되지 않았는데 별도 밝고, 구름도 없는 게 참으로 좋지 않나. 시끌벅적한 파티장도 싫지 않지만, 이렇게 조용히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
그래도 혼자 있는 건 심심하니, 늦지 않게 돌아가야지. 30분 안엔 들어가야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을 거 아닌가.
그렇게 언제 돌아갈까 고민하며 시간만 보는 중.
“이봐.”
“음?”
이번엔 조금 색다른 손님이 그를 찾아왔다.
등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세벡을 발견한 멜로드는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그를 반겨주었다.
“세벡~ 나 찾으러 온 거야?”
세벡은 그 질문엔 대답할 생각이 없는지, 입을 꾹 닫고 자리를 옮겨 상대와 마주 보도록 설 뿐이었다.
“주인공이 말도 없이 자리를 비우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에이, 뭐 어때? 이미 중요한 행사는 다 끝났잖아? 그것보다, 나 버스데이 로드 나는 거 봤어? 끝내주지?”
“……뭐, 추하진 않더군. 제법이라고 해두지.”
‘어라. 아직 한참 멀었다고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후한 대꾸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멜로드는, 이내 실실 웃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생일이라고 띄워줄 줄도 알다니, 세벡도 많이 변하지 않았나.
하지만 진짜 놀라움은 지금부터였다.
“자, 받아라.”
멜로드의 웃음에 기분 나쁘다는 듯 인상을 쓴 세벡은 뭐라 핀잔을 주는 대신, 준비해 온 선물을 내밀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선물은 직접 포장한 건지, 포장 종이가 살짝 구겨져 있었다.
“뭐야? 지금 열어봐도 돼?”
“네 마음대로 해라. 네 선물이니.”
“흐음.”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은근히 지금 당장 확인해 주었으면 하는 것 같은데.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는 건 자신 있는 멜로드는 원하는 대로 포장을 풀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깔끔한 무늬의 포장지 안에 감추어져 있는 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틴케이스였다. 뚜껑에 그려져 있는 플레잉 카드 무늬와 익숙한 무게감으로 추측하는데, 이건 아마 카드 세트인 모양이었다.
“세벡, 이건?”
“잘은 모르지만, 골동품이라고 하더군. 옛날에 한정판으로 몇 백 개만 판매한 제품이라고 하던가? 가시의 산골은 아무래도 요정들이 많이 살아서 옛 물건이 많이 남아있는데, 인간들은 이런 걸 좋아하니까…….”
그러니까, 자신은 보드게임부에다가 플레잉 카드도 잘하니까 이런 걸 준비한 거란 뜻인가.
말끝을 흐렸음에도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멜로드는 슬쩍 케이스 뚜껑을 열어보았다. 안에 든 낡은 카드는 살짝 빛이 바랬을 뿐, 제법 깨끗했다.
“고마워. 아까워서 쓰진 못하겠지만, 난 이런 거 좋아하거든.”
“마음에 든다면 됐다. 그래서, 왜 여기서 혼자 청승맞게 앉아있는 거지?”
“청승맞게, 라니! 나는 화면 너머 사람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고 있었는데?”
“화면 너머 사람들?”
마침 떠들 거리가 필요했던 멜로드는 제가 여기서 무엇을 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는지를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흐음.’ 침음 하며 멜로드의 말을 귀담아듣던 세벡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눈썹을 까딱이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신기하군. 단지 네 얼굴과 게시글만 보고 널 그렇게 좋아한다는 건가?”
“하지만 연예인도 다들 그렇게 좋아하게 되잖아? 꼭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야 친구가 되는 건 아닌 시대니까. 아, 세벡은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라 잘 모르려나?”
“뭐?! 무, 무시하지 마라!”
사실은 잘 모르겠지만, 무시당하는 건 사양이다.
세벡이 버럭 화를 내도 전혀 무섭지 않다는 듯 킥킥 웃은 멜로드는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 손때 묻은 액정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하지만 좋은 시대이지 않아? 실제로 만나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이렇게나 많은 축하를 받을 수 있다니. 나는 누구누구랑은 다르게, 축하받는 걸 싫어하지 않거든.”
“누구누구라니, 감독생 말인가?”
“이런. 들켰나? 아이렌에겐 비밀이야.”
아니, 어차피 아이렌이라면 이 대화를 알게 된다 해도 아무렇지 않을 거다. 얼핏 유치한 면이 있어 보여도 기본적으로는 애늙은이같이 어른스러운 그 여자는, 사실 직시 정도로 기분이 상하거나 하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신기하기도 하지. 보통 요란하게 축하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있어도, 축하받는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왜 아이렌은 당연한 축하도 그렇게나 멋쩍어하는 걸까. 자신이 저주받은 존재라도 된다 생각하는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축하받는 게 어색하다던가?
이해가 안 가는 감독생의 태도를 이해하고자 이런저런 가설을 세우던 세벡은 생일을 맞이해 근사한 옷을 입은 멜로드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언젠가 멜로드의 형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이 녀석은 모건과는 달리, 부모에게 똑같은 축하 인사를 받아 본 적이 없다고.
물론 나이가 든 후에는 모건이 대신 축하해 주었다고 하니, 그걸로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조금 기묘하지 않은가. 제 혈육들에겐 제대로 축하받지 못한 아이가, 나이가 들어선 만나본 적도 없는 이들에게 이리도 축복받는다는 게 말이다.
생각에 빠질수록 기분이 묘해지던 세벡은, 충동적으로 상대를 불렀다.
“이봐.”
“응?”
“그…….”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운을 띄웠다가 입을 닫은 세벡이 한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린다.
무언가 영 심상찮은 상대의 태도에 흥미가 생긴 멜로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벡의 어깨에 제 팔을 둘렀다.
“왜 불러놓고 말이 없어? 설마, 생일 축하한다는 말도 쑥스러워서 못하는 거야?”
‘그럴 리 있냐!’ 그런 호통을 기대하며 친 장난인데.
돌아온 대답은 정말로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태어나 줘서 고맙다.”
“어?”
“…….”
제 입으로 말해놓고도 부끄러운 걸까. 입을 가린 채 시선을 회피하는 세벡의 얼굴이 점점 붉게 물든다.
한 10초 정도.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는 정적이 이어진 와중.
진지한 축하에 얼이 빠져있던 멜로드가, 세련된 얼굴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호쾌한 폭소를 보여주었다.
“푸하하하! 너, 우리 형 흉내 내는 거야!?”
“무슨 소리냐! 네가 먼저 내 생일에 그런 소릴 해 놓고!”
“응? 그랬나? 아, 그랬던 거 같기도?”
“장난하나, 멜로드 터빈!”
아아, 그래. 이래야 세벡답지.
귀청이 떨어질 정도의 호통도 즐겁게 받아들이며 팔을 거둔 멜로드는 어떻게든 웃음을 멈춰보기 위해 열심히 심호흡 했다.
“후우. 고마워, 세벡. 최고의 축하 인사였어.”
“거짓말하지 마라! 그렇게 웃어놓고서!”
“무슨 소리야? 사람을 웃게 하는 건 최고의 능력이라고.”
이건 진심이다. 웃는다는 건 행복하거나 즐겁지 않으면 불가능한 행위이지 않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그런 긍정적 에너지인데, 누군가를 웃게 하는 건 대단한 일이지.
어릴 땐 늘 누군가를 웃게 하느라 눈치를 봐온 자신이기에. 멜로드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을 웃게 해주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좋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거짓말 아냐. 정말 고마워.”
웃음을 그친 후 건네는 인사엔 외면할 수 없는 깊은 진심이 담겨있었다.
세벡은 잔잔해 보이지만 깊은 멜로드의 눈동자에 더는 따지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 아래 TMI
근데 얘들 9월 학기제니 아마 세벡이 축하받은 걸 돌려주려면 이게 세벡멜 2학년때 일이려나? 싶은데... 어차피 생일 카드 스토리가 3~4년 째 그 나이로 축하받고 있는 마당에 사자에상 시공으로 생각합시다. 근데 2학년 시점이라도 좋을 거 같긴 합니다. 좋다... 17살 세벡... 쩐다... 굉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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