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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2 - 장기철 드림 / 2천 자

거친 콘크리트의 질감이 등을 사납게 친다. 머리를 부딪힌 것은 아닌데도 뒷골이 서늘하게 당겼다. 장기철이 틀어쥔 목깃 아래가 답답하다. 사람 뒤나 캐고 다니는 주제에 뭐가 이리 당당해? 코너에 몰렸지만 강혜린은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는다. 몇 대 더 맞아 주다가 상황을 봐서 반격하면 그뿐, 아무래도 피할 이유가 없다. 강혜린이 바라보는 것은 장기철의 눈이다. 까맣고 더러운 그 눈이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요동치고 있다. 이 새낀 늘 이런 식이야, 한번 수틀리면 도무지 참는 법이 없어. 이만한 욕구 조절도 안 되는 걸 사람이라고 부를 수가 있나? 충동이라는 관념을 인간의 형태로 빚어 놓으면 그게 꼭 장기철 같을 거다. 그러나 모처럼 주도권을 잡아 놓고도 주먹 한 번, 욕지거리 하나 제대로 날리지 못하는 꼴이 좀 같잖아야지. 대치가 길어질수록 강혜린은 외려 찬물을 뒤집어쓴 듯 차분해진다. 눈에 뵈는 것 없다는 듯 악을 지르던 장기철의 기세가 덩달아 꺾이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만큼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는 것도. 아, 이 새끼 지금 불안하네. 너 진짜 급하구나? 강혜린은 찢어진 입술 틈으로 기어코 치밀어오르는 조소를 삼킨다. 장기철이 무슨 목적을 가지고 미행씩이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금방 들켰다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는데. 원하는 것을 얻기까지 구태여 힘든 길을 돌아서 가려는 사람은 없다. 기묘한 만족감이 강혜린을 안정시킨다. 끝날 듯 계속되는 싸움 탓에 불규칙하던 맥박이 순식간에 갈무리된다. 강혜린은 장기철의 손을 흘끗 내려다본다.

 

“뭘 기다려? 더 해 봐. 어차피 일 키우면 귀찮아지는 건 너야.”

 

당장 강혜린을 들이받을 듯 씨근대면서도, 장기철은 함부로 대꾸하지 않는다. 눈을 보고 있는 것은 장기철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강혜린의 새카만 눈 안에 두려움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명확한 중심을 가지고 소용돌이치는 그것은 차라리 어떤 깨달음과 이채로 빛나고 있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대뜸 주먹부터 내지르기 전에 장기철이 하나 간과한 사실이 있다면 강혜린은 생각보다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타고나길 튼튼한 건지, 노력으로 익힌 덕인지는 몰라도. 어쨌건 강혜린을 두고 보통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지간히 미친년인 줄 알았더니 아주 대단한 미친년이셨네. 코앞의 상대가 조금도 주눅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장기철은 도리어 긴장을 내려놓는다. 싸움은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다.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 해소되지 않은 분노와 이걸 그냥 죽여 버릴까 싶은 충동이 혈관을 터뜨릴 기세로 내달린다. 황당함 섞인 헛웃음이 힘껏 악문 잇새를 비집고 샌다. 장기철은 더 발악하는 대신에 엉망으로 널뛰는 호흡을 억지로 가라앉힌다. 살다 보니 장기철 인생에 이런 날도 다 온다. 아직 온전히 아물지 않은 늑골이 욱신거린다. 숨을 고르는 동안, 통증이 차츰 잦아드는 만큼에 비례하여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강혜린을 뚫어져라 노려보던 장기철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강혜린 정도 깜냥이 되는 물건을 잠깐 쓰고 버리기에는 좀 아깝다. 까다로운 도구라도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응당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따지면 오늘 일도 영 헛짓은 아니다. 나름의 수확이었다, 뒤를 밟다 들킨 건 좀 쪽팔리긴 해도. 장기철은 강혜린에게 쏘아붙일 한 마디를 고민한다. 그러나 어느 것도 강혜린에게는, 엿 같은 이 기분에는 적당하지 않다. 장기철은 손아귀가 아프도록 움켜쥐고 있던 강혜린의 멱살을 내던지듯 놓는다. 장기철이 핏물 섞인 침을 퉤, 뱉고 돌아선다. 옷깃에 쓸린 살갗이 얼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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