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dream
신의 손가락 - 한스×콜린 / 2천 자, 오마카세
몇 차례 노크에도 응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 시간이면 자리에 있을 법도 한데, 그새 또 밖으로 나간 걸까. 잠시 고민하던 한스는 조용히 서재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업무에 집중했을 때의 콜린은 그를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바쁜 사람을 방해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잠깐 정도는 괜찮을지도 모른다. 새로 쓴 원고 뭉치를 품에 꼭 안은 한스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문을 닫는다. 그리고 예상 밖의 풍경에 잠시 숨을 멈춘다. 서재의 중앙, 커다란 유리창 너머 내리쬐는 오후의 햇살을 고스란히 받으며 콜린은 책상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다. 제대로 누워 쉴 여유도 없이 이러고 있는 걸 보면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한스는 콜린이 깨지 않도록 숨죽여 다가간다. 그의 손끝에 위태롭게 걸려 있던 잉크펜을 책상에 얌전히 놓아두고, 한스는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방안을 한 바퀴 둘러본다. 사방이 두꺼운 양장 책으로 가득하다. 저 안에 적혀 있는 내용은 제가 쓰는 이야기와는 아주 다른 것이겠지만 그래도 이만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조금쯤 가슴이 벅차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아니, 실은 가까이에 있는 콜린 때문인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와 한자리에 같이 있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한쪽 팔을 비스듬히 베고 잠든 콜린의 갈색 머리칼이 부신 햇빛을 흠뻑 머금고 반짝인다. 그의 내리깔린 속눈썹이며 분홍빛 입술에 한참 정신이 팔려 있던 한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주변에 어지러운 서류 뭉치로 눈길을 돌린다. 자세한 것은 읽어도 해독하기 힘들었지만, 어쨌건 복잡한 일거리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것들 중에는 자신을 위한 수고도 분명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괜스레 가슴이 울렁거린다. 아무래도 이대로 그냥 돌아가기는 아쉽다. 한스는 책상 아래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잠든 콜린의 얼굴을 턱을 괴고 바라본다. 겉옷이라도 덮어 줘야 하나, 싶다가도 그의 짧은 단잠을 방해할까 두려워져 한스는 말없이 콜린을 응시할 뿐이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얼굴이었고, 이렇듯 잠들어 있을 때면 언뜻 무섭다고 여겨질 정도로 무미건조하게 굳어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가 사랑하는 그 사람의 것과 여전히 다르지 않았다. 눈을 뜨고 깨어난 다음이면 더없이 환한 미소로 반겨줄 테니.
그러고 보면 어렸을 적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책상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졸다가 결국 쓰러져 잠들었던 콜린, 아니, 에디. 혹여나 그의 아버지가 불시에 찾아올까 가슴 졸이면서도 차마 흔들어 깨울 수는 없었지. 대신에 한스는 평소에 꺼내 놓을 수 없었던 고백들을 마음껏 속삭이곤 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릴 적 그 때처럼 새근새근 숨을 내쉬며 자고 있는 콜린을 올려다보는 눈길에 행복과 황홀이 어린다. 조용히, 한스가 입속말로 중얼거린다. 콜린, 당신이 나를 살게 해요. 당신 덕분에 내가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는지 몰라요. 당신을 위해서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당신을 사랑해요. 그러고는 제 풀에 놀라 입을 꾹 다물어 버리는 것이다. 혹여나 그에게 비밀을 들킬까 봐, 그래서 더는 그와 친밀하게 곁을 나눌 수 없게 될까 봐. 심장이 쿵쿵 뛰어대는 소리가 한스의 귓가에 선명하게 들린다. 이래서야 잠든 콜린을 깨워버릴 것만 같다. 그의 순수한 낯을 보고 있으면 세상 모든 게 하찮아지는 듯 어지러운 기분, 한스는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태 품에 소중히 안고 있던 원고 뭉치를 책상에 살며시 내려놓는다. 콜린이 깨어난 다음이면 그것을 읽고 기뻐할 수 있도록. 그렇게 잠시라도 제 생각에 웃는다면 한스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한스의 빈 손이 허공에서 잠시 머뭇댄다. 콜린의 머리칼을 쓸어 주려던 손길은 결국 그대로 거두어진다.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콜린을 향해 말없이 미소짓고, 한스는 걸음을 옮긴다. 서재의 문이 처음 그러했던 것처럼 소리 없이 닫힌다.
기다렸다는 듯 반짝, 눈을 뜬 콜린이 붉어진 뺨으로 문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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