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 뮤지컬

아담의 사과

뮤지컬 더데빌 삼연 기반 |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

https://les-sanspapiers.postype.com/ 에서 백업한 글입니다.


존, 낙원을 떠나게 된 아담과 이브 말이야. 그 이야기를 믿어?

존이 그레첸의 말에 재킷을 벗다 말고 그레첸을 바라봤다. 그레첸은 사과 하나를 흐르는 물에 씻고 있었다. 존은 그 새빨간 것을 흘긋 보고는, 넥타이를 풀며 대꾸했다.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래.

나는 믿지 않거든.

그레첸은 사과를 들고서 식탁 의자에 앉았다. 존이 대답하지 않아 감도는 적막 속에서, 그레첸이 사과를 깨무는 소리가 났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잖아. 아담도, 거짓말을 했을지 어떻게 알겠어? 하나님은 알고도 속아주신 걸지도 몰라.

…그분이 왜 한낱 사람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주시겠어.

사랑하니까.

다시 한번 더 그레첸이 사과를 깨물었다. 그녀의 입속에서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실내에 울렸다.

하나님은 아담을 사랑하셨을 거야.

그럼 이브는.

글쎄, 그에게 이브는 부속품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본디 하나님이 빚어주신 것은 아담뿐이니까. 이브는 그런 그의 갈비뼈를 떼어 만들어낸 존재니까. 아담이 혼자라면 외로울 거라 생각하셨나 봐.

…그레첸. 언제 잘 거야.

안 자.

사각. 그레첸이 들으라는 듯 사과를 씹었다. 존은 앉아있는 그레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살짝 저었다. 요즈음 그레첸은 악몽도 자주 꿀뿐더러, 눈은 생기를 잃었고 안색도 부쩍 파리해졌다. 그 탓인지 그녀가 헛소리를 하는 횟수도 늘었다. 그녀가 존에게 대뜸 하는 이야기는 대부분 하느님과 인간들에 관해, 빛과 어둠에 관해, 그리고 죄와 속죄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것들 전부 존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었기에 존은 그레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존은 그레첸이 이렇게 된 원인이 자신인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불편했다. 그러니 그레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 않는 것을 택했다. 그에게도, 그녀에게도 그게 좋았다. 오늘도 그러고 싶었다. 존은 그저 얼른 그녀가 원래대로 돌아 와줬으면 했다.

존.

어느새 그레첸이 존의 옆으로 다가왔다. 존은 그녀의 넋을 잃은 것 같은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앙상해진 어깨를 붙잡았다. 그레첸, 제발. 그냥 자자. 그레첸은 존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의 손에는 사과가 들려있었다. 그것만을 바라보던 그레첸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의 눈이 반짝인 것 같다는 생각을, 존은 잠시 했다.

아담은 거짓말을 했을 거야.

그레첸.

자신이 베물은 선악과를 채 삼키기도 전에 이브에게 선악과를 내밀었을 거야.

…….

그러고서 말하는 거지, 이브가 자신에게 선악과를 먹였다, 고.

그 죄로, 존.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레첸의 앙상한 손가락이 존의 목을 감쌌다. 그녀의 엄지손가락이 그의 목젖을 천천히 쓸고 있었다. 그녀의 숨결에서 사과 냄새가 났다. 존은 미간을 좁혔다. 그녀의 손길이 스산했다. 소름이 돋아 오르고 있었다.

아담들은, 이렇게 다들 선악과가 목에 걸린 채 태어나는 벌을 받았다고.

…그레첸. 그만.

존.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

그의 목을 감싼 그녀의 왼손에 힘이 들어갔다. 존은 그녀의 어깨를 놔주었다. 그레첸도 천천히, 그의 목에서 손을 거두었다.

사각.

그레첸이 다시 사과를 깨물었다.

존은 도망치듯 침실 욕실로 들어왔다. 이런 것을, 존은 견딜 수가 없었다. 밖에서 해온, 그녀에게 한 ‘거짓말’들의 존재가 다시금 저에게 느껴지는 순간이 싫었다. 벌레들이 온몸 위를 기어 다니는 께름칙한 기분. 세면대 위 거울을 무심결에 바라보자 목젖이 유난히 눈에 밟혀 견딜 수가 없었다. 차가운 물에 세수하고서도 그 불쾌함과 두려움은 가시지 않아서, 존은 욕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얼굴에서 목으로 물이 흘러도 개의치 않았다.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 무섭도록 맑았던 그레첸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울렸다.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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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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