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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오페라 락 - 살리에리 드림 / 5천 자

살리에리는 작은 친구에게 손을 내밀어 그가 마차에서 안전히 내릴 수 있도록 한다. 화가로서 그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방문인 만큼, 살롱에 발을 들이며 그는 제법 긴장한 것도 같다. 시종이 그들의 도착을 알리면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활동의 시작이다.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한 살롱의 문 너머에는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늘어져 다과를 즐기고 있다. 그들은 궁정악장이 데려온 뜻밖의 손님을 기꺼이 환영한다. 잇속에 밝은 귀족이라면, 더욱이 겉치레로나마 예술 향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라면 고작 견습화가의 신분으로도 유명세를 입은 이방인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다. 그에게 향하는 호기심은 언뜻 무해한 소동물을 향하는 호의에 가깝다. 그것을 기민하게 눈치챈 살리에리는 조금쯤 심기가 불편하기도 했으나, 그런 내색은 어차피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예정대로 순조로웠다. 그간 예법 연습에 쏟은 시간이 무색하지 않게도 작은 화가는 맡은 바 소임을 아주 성공적으로 해냈다. 마침내 한차례 소개를 마치고 숨을 돌린 그가 살리에리를 향해 뿌듯하게 웃어 보인다. 덩달아 힘이 바짝 들어갔던 몸의 긴장을 조금씩 풀어내며, 살리에리는 저편에서 다가오는 금발의 사내를 애써 외면하고 그의 친구를 인도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모차르트의 존재에 대해서는 미리 언질을 받았으나 이런 때라면 더욱이 직접 대면하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혹은 알면서도 상관없다는 듯이. 모차르트는 푹신한 소파에 막 주저앉은 화가의 뒤에서 불쑥 고개를 내민다.

“마에스트로 살리에리!”

몸을 숙여 등받이에 팔을 기댄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에게 눈웃음친다. 이런 곳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영광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조금도 기세를 꺾지 않고 살리에리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살리에리는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놀라 사레가 들린 친구의 안색을 살피느라 바쁘다. 죽일 듯이 노려볼 줄 알았더니, 이렇게 신경이 다른 데에 쏠린 건 오랜만에 보는데. 모차르트의 시선이 흘끗 아래로 내려간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화가와 곧장 눈길이 마주친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살리에리를 향하며 해사한 표정을 짓는다.

“이렇게 귀여운 이방인을 거두고 계셨다니.”

그런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경박하기 짝이 없는 웃음소리에 살리에리가 결국 눈살을 찌푸린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그런 것 따위에 연연할 리 없다. 그는 쉬지 않고 떠들며 주변을 빙글빙글 돈다. 오늘 방문하신 것도 이…… 신사분을 위해서겠죠? 저도 선물 하나를 드리고 싶은데요. 차마 언성을 높이지 못하고 분을 삭이는 살리에리 곁에서 정신 없이 돌아다니던 모차르트는 어느새 화가의 팔걸이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다. 그가 화가를 똑바로 응시한다.

“무슈, 제 오페라를 보러 오세요.”

후궁으로부터의 탈출Die Entf hrung aus dem Serail. 독일어로 된 오페라죠. 분명히 재미있을 거예요! 아, 물론 상석으로 준비할 테니 마에스트로도 함께 오시면 좋겠네요. 모차르트는 살리에리를 돌아보지도 않고 멋대로 말을 마친다. 바람처럼 떠나 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작은 화가는 기어코 살리에리에게 기름을 붓는다. 오페라를 보는 건 처음인데…… 우와.

외마디 탄성에는 들끓는 기대와 흥분이 깃들어 있다. 이러니 초대를 거절할 수도 없게 되었다고,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히며 살리에리는 뻣뻣하게 굳어진 입가에 억지 미소를 덧그린다. 이렇게 된 바에야 그토록 유명한 모차르트의 음악이라는 것을 한번 제대로 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리허설 때의 충격은 그저 한 조각 요행에 의한 것이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

 

박스석의 문이 닫히고, 막이 오른다. 어두운 객석 안에는 모처럼 한껏 차려입고 멋을 낸 작은 화가와 살리에리 단둘뿐이다.

서곡이 시작된다.

가볍고 경쾌하게 트인 선율은 일순간 휘몰아치다가 금세 잦아들기를 반복하고, 풍성하면서도 섬세함을 잃지 않으며 유려하게 흐른다. 완벽한 균형, 조화. 관객의 귀를 사로잡다 못해 영혼마저 빨아들이는 듯한 흡인력이 살리에리를 떠밀어 도취하게 한다. 그러나 훌륭한 것은 서곡뿐만이 아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어디 한 군데 건드릴 부분도 없이 아름다운 설계 속에서 극의 진행에 따라 날개 돋친 듯 달려나간다. 아니다. 그의 음악은 곧 날개 그 자체다. 시간의 흐름조차 알 수 없는 이 순간. 숨쉴 틈조차 없이 이어지는 그의 음악은 차라리 폭력에 가깝다. 살리에리는 인정해야 한다. 이런 것은 새벽녘 계시와도 같은 영감 따위에 의존해 쥐어짜내는 선율이 아니다. 음악가의 생애 한 번쯤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온다는 그 행운은 모차르트에게라면 더없이 하찮다. 그는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언제든 악보 위에 마법을 부려낼 수 있다. 아니, 종이에 새겨진 오선조차 그가 행하는 기적을 제한할 수 없다. 모차르트가 가진 것은 완전한 자유다. 축복이다. 그는 범인들이 그러하듯 어떠한 통제나 조건,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빚어진 도구가 아니다.

음악이 그를 위해 헌신한다.

깨달음은 오장이 뒤틀리는 고통을 동반한다. 당장이라도 속을 게워낼 듯 울렁거려 살리에리는 귀를 힘껏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다. 언제까지 이 고통을 견뎌야 할까. 모두 버텨낸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내색할 수 없다. 옆자리에는 작은 화가가, 그의 친구가 앉아 있다. 그 또한 듣고 있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그러니 이제는 그도 어느 것이 아름답고 추한지를 알게 되었을 터.

살리에리에게 기회를 주기라도 하듯, 잠시 암전의 순간이다. 차마 곁을 살피지 못하고 통나무처럼 딱딱하게 굳은 채 식은땀만 흘리던 살리에리의 시선이 어둠 속을 헤집고 그의 친구에게 가 닿는다.

때마침 다시 비추기 시작하는 조명. 무대에 압도당한 화가의 눈은 별을 품은 것처럼 반짝인다.

끝내 절망이다. 그토록 즐거워하는 친구의 모습은 본 일이 없다. 그는 마치 어떤 경지의 끝을 목도한 사람처럼 신이 나 있다. 살리에리는 제가 피아노포르테 앞에 앉아 있을 때 그의 얼굴을 기억한다. 떠올린다. 그때 그의 표정은 지금과 사뭇 다르다.

어떻게 해도 객석에서 뛰쳐나갈 수는 없다. 오늘은 개막 첫 날, 그들은 공연이 모두 마무리되기까지 기다려 모차르트에게 축하의 꽃을 전해 주어야 한다. 살리에리는 어지러운 황홀경 속에서 평정을 유지하려 애쓴다. 이렇듯 아름다운 음악이 하필 모차르트 같은 자에게서 비롯되었다니, 비극이라고도 못 부를 일이다. 당장이라도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 훼방을 놓거나 지휘석으로 난입해 모차르트의 멱살을 틀어쥐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며, 그는 감히 신의 안목을 탓한다. 저자에게 주셨다면 저에게도 주실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어째서 당신의 신실한 종을 알아보지 못하시고 길거리의 잡배나 다름없는 난봉꾼에게 이런 재능을.

그것은 타고나는 선물이다. 빼앗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축복이자 저주.

극장 가득 차오르는 선율에 익사할 듯한 기분이다. 지휘석을 노려보던 살리에리는 힘주어 눈을 감는다. 하지만 지휘에 열중한 모차르트의 광인 같은 모습은 이미 그에게 새겨진 잔영이다. 어느 쪽도 천국이며 지옥이구나. 그는 불규칙한 호흡을 눌러 삼킨다. 몰래 움켜쥔 주먹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한바탕 법석을 피우던 사람들은 궁정악장의 등장에 모두 눈치껏 자리를 피하고, 대기실에는 몸집만한 꽃다발을 받쳐 든 화가와 오늘의 주인공까지 세 사람만이 남아 있다. 여전히 열기가 식지 않아 붉게 상기된 뺨을 물수건으로 닦아내던 모차르트가 살리에리를 일별한다. 제가 불러 놓고도 여기까지 행차하실 줄은 몰랐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러면서도 할말은 빼놓지 않는 것이 그의 일이다.

“마에스트로, 어떠셨어요?”

살리에리는 무감한 얼굴로 그를 마주본다. 그러고는 별말 없이 친구의 등을 살짝 밀어줄 뿐이다. 오페라의 감상에 대한 것은 친구에게 미루어 두는 것이다. 정말 좋았다고, 둘도 없이 아름답고 신기한 음악이었다고 칭찬을 늘어놓는 화가의 곁에서 살리에리는 가끔 고개를 끄덕이거나 작게 추임새를 넣으며 답을 대신한다. 작은 화가의 눈은 여전히 밤하늘 은하수를 부어넣은 듯 빛나고 있다. 살리에리는 무거워 보이는 꽃을 대신 받아 모차르트에게 건넨다. 해바라기와 다알리아, 장미를 섞어 엮은 다발은 성공적인 개막을 축하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물건이다. 모차르트는 그것을 기쁘게 받기로 한다. 화려한 꽃에 고개를 파묻고 향취를 들이키던 그가 곧 과장된 몸짓으로 감사를 표한다. 살리에리의 인내심은 거기까지다. 살리에리는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하고 바깥을 향한다. 여전히 들뜬 채 그를 뒤따라 나가려던 작은 화가를 모차르트가 잠시 붙잡아 세운다.

“오늘은 신사분께서 마에스트로를 댁까지 에스코트해 주는 편이 낫겠네요.”

그 말에 어리둥절한 화가가 멀어져 가는 살리에리를 급히 살핀다. 손끝으로 꽃가지를 헤집어 보던 모차르트는 이만 가 봐도 좋다는 듯 턱짓하며 낄낄댈 뿐, 더 말하지 않는다.

살리에리는 허둥지둥 저를 쫓아 오는 친구를 위해 걸음을 조금 늦춘다. 어두운 낯빛을 채 숨기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사려깊으나 천진한 어린 화가는 분명 저를 걱정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평소라면 달갑게 받았을 그 위로마저 지금의 살리에리에게는 소용없다. 동정이나 연민은 지겹도록 쓸모없는 것이다. 한 조각 은혜를 동반하는 신의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돌아가는 마차 안은 침묵으로 무겁다. 눈치를 살피던 화가는 나름대로 그의 기분을 나아지게 해 주겠다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떠들었으나 살리에리는 형식적인 웃음으로 반응할 뿐, 친구의 이야기에 집중할 여력조차 없었다. 작은 화가는 늦은 시각이라 피곤해 그렇다는 그의 변명에 반신반의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쉼없이 재잘대던 목소리는 마차가 도착하고서야 끊어진다. 그들은 각자의 침실로 돌아간다. 흥분과 긴장으로 지친 몸을 쉬게 하기 위해, 그리고 오늘의 기억을 다시금 홀로 톺아볼 여유를 갖기 위해. 한숨 자고 나면 들이닥칠 내일을 온전한 마음으로 맞을 수 있도록.

 

*

 

일찍이 잠들었던 작은 화가는 불현듯 꿈에서 깨어난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누운 탓이다. 졸린 눈을 비비던 화가는 문득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질적인 소음을 잡아챈다. 망설이던 그가 이불을 걷고 일어난다. 어두운 복도를 걷는다.

소리의 근원은 살리에리의 침실이다.

미처 닫히지 않은 문틈 사이, 너머의 풍경이 보인다.

바닥에 엎드린 살리에리. 한껏 웅크린 고개와, 하늘을 향해 간신히 뻗어진 그의 손.

피가 흐르고 있다.

그의 신이 원한 적 없는 제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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