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생일 연성

우리집에 연어 먹으러 와라

세벡 지그볼트 드림

* 24년도 생일 기념 연성

“오, 역시 잘 어울리네.”

 

멜로드의 칭찬은 담백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 진심이 담겨있었다.

세벡은 과장도 장난도 없는 반응에 괜히 멋쩍어져 근처 창문에 비치는 제 모습을 기웃거렸다. 생일선물로 받은 검정 카디건은 제 몸에 넉넉하게 맞아 움직이기도 편하고, 무늬도 없고 실루엣이 깔끔해 단정한 멋이 있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역시 옷 고르는 눈 하나는 확실한 녀석이군.’

 

이러니 폼피오레의 녀석들이 ‘멜로드는 우리 기숙사로 왔어야 하는데!’ 같은 소릴 하는 거겠지. 옥타비넬 기숙사 복을 입고 제 생일을 축하하러 온 상대를 위아래로 훑어본 세벡은 얼른 자신도 원래 입고있었던 기숙사 복으로 갈아입고 싶다고 생각하며 카디건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치수가 조금 큰 것 같은데…….”

“요즘은 오버핏이 유행이야.”

“그런 유행도 있나?”

“하하, 그럼!”

 

평소 엄격한 얼굴과는 확 다른 어리둥절한 세벡의 표정에 멜로드는 소리 내어 웃어버린다.

자신보다 4cm나 크고 어깨도 넓은 상대인데도 뭐가 그리 귀여워 보이는 걸까. 마치 작은 동물이라도 보는 듯 웃음기 어린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세벡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는 멜로드는 제가 생일인 사람처럼 들떠있었다.

 

“하긴 넌 그런 건 잘 모를 것 같긴 해.”

“그건 무슨 의미냐, 터빈.”

“세벡은 유행보다는 전통적인 걸 좋아할 것 같다는 의미?”

“……음. 그건 맞지만.”

 

잠깐이나마 흉을 보는 걸까 경계한 자신이 민망해질 정도로 정확한 판단이다.

헛기침으로 뱉어내려다 삼킨 화를 떨쳐낸 세벡은 얼른 말을 돌려버렸다.

 

“어쨌든, 잘 입도록 하지.”

“그래. 생일 축하해, 세벡.”

“……크흠. 이왕 온 김에, 뭐라도 먹고 가도록. 어쨌든 손님을 그냥 보낼 수는 없으니까!”

“그래~, 고마워.”

 

말은 저렇게 하지만, 아마 멜로드는 파티 음식은 몇 입 먹지도 않을 것이다. 그가 입이 짧다는 건 웬만한 사람이 다 알고 있었으니까. 어차피 평소처럼, 케이크 한 조각 먹고 배부르다며 마실 것만 홀짝거리겠지.

그러나 그의 예상은 좋은 의미로 빗나가고 말았다.

 

“어, 이거 네가 좋아하는 거네. 역시 생일엔 좋아하는 걸 먹어야지.”

 

파티장에 차려진 음식을 구경하던 멜로드가 발견한 건 연어 카르파초였다.

‘아.’ 의외의 선택에 세벡이 탄식하는 사이. 덜어 먹는 접시에 연어와 루콜라를 몇 점 옮긴 멜로드는 야금야금 음식을 맛보곤 감탄했다.

 

“와, 이거 맛있다.”

“하. 당연하지. 그건 특별히 본가에서 보내준 거니까!”

“그런 거야? 그럼 이건 어머니 솜씨?”

“그렇지! 참고로 연어는 조부님께서 잡아주셨다!”

 

자랑스러운 가족의 이야기를 하는 중이라 그런 걸까. 세벡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의기양양했다. 그 가족애가 묻어나오는 언행을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멜로드는 연어 조각 하나를 또 집어 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집밥이 제일이다 이건가~ 뭐, 이건 내가 먹어도 맛있으니까 객관적으로도 맛있는 거겠지.”

“하. 당연하지!”

 

평소엔 먹을 거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는 멜로드까지 맛있다고 해주다니. 역시 제 어머니는 완벽한 사람이다. 상대 칭찬에 거기까지 생각이 번진 그는 아예 직접 접시에 카르파초를 더 덜어주었다. 평소엔 보는 사람이 다 답답할 정도로 먹질 않는 녀석이 이렇게까지 잘 먹는 걸 보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제 어머니와 외조부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네 녀석은 워낙 워낙 적게 먹어서, 집밥이라고 많이 먹을 것 같진 않군.”

 

음식을 수북하게 덜어준 세벡은 문득 제 행동이 조금 극성 부모같이 느껴져 그런 생각을 뱉어버렸다. 언젠가, 아주 어릴 때. 노느라 정신없는 자신과 형제들에게 점심을 덜어서 가져오곤 했는데. 제가 어쩐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친 것이었다.

얌전히 세벡의 호의를 받던 멜로드는 소스가 뚝뚝 흐르는 연어를 포크로 뒤적이며 답했다.

 

“글쎄? 부모님이 해준 밥을 먹은 게 언제가 마지막인지 기억이 안 나서 모르겠네.”

“뭐?”

“한 6년 됐나……. 아니, 더 오래전인가.”

 

저건 무슨 소리인가. 6년 전이면, 10살쯤이란 소리인데. 분명 멜로드의 양친은 멀쩡히 살아있으며, 한 지붕 아래에서 거주하는 걸로 아는데. 왜 저 때 마지막으로 집밥을 먹어보았단 건가.

당황하는 세벡의 표정을 읽은 멜로드는 ‘아차’라고 작게 중얼거리더니, 얼른 제 발언을 해명했다.

 

“나는 동네 누나들에게 귀여움을 많이 받아서, 밖에서 얻어먹고 들어오는 일이 많았거든. 알다시피 입이 짧은 탓에 그렇게만 먹어도 밥이 안 들어가더라고.”

 

저건 제대로 된 해명이 아니다. 6년간 삼시 세끼를 밖에서 얻어먹고 다니진 않았을 것 아닌가.

하지만, 그게 말이 되냐고 따져봐야 멜로드는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을 거다. 이 녀석은 툭 찌르면 모든 걸 말할 것 같은 수다쟁이고, 실제로도 그런 편이지만, 가족 이야기는 형인 모건 이야기 외엔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아마 요리는 잘하실 거야. 입맛 까다로운 편인 형도 집밥은 좋아하니까. 궁금하면 형에게 물어봐.”

“……아, 그래.”

 

당연히 안 물어볼 거다. 제가 궁금한 건 남의 집 부모님 요리 솜씨가 아니었으니까.

어쩐지 괜한 소릴 한 것 같다는 싸늘한 직감에 세벡이 입을 닫은 와중, 멜로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카르파초를 우물거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거 진짜 맛있네. 이거라면 한 접시 다 먹겠어.”

 

과연 그럴까. 두 쪽짜리 샌드위치도 하나 먹고 배부르다고, 나머지 하나를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놈이 이거 한 접시를 정말 다 먹을 수 있을까.

하지만 정말 다 먹는다면……. 그건, 조금 기쁠 것 같기도 하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기쁠 것 같다.

그 마음이 흘러넘치자, 세벡은 머리를 거치지 않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말을 내뱉고 말았다.

 

“다음에 본가에 오면, 더 맛있는 걸 주도록 하지.”

“응? 진심이야?”

“음?”

 

아. 지금 제가 무슨 소리를.

세벡은 뒤늦게 본심을 드러낸 게 낯부끄러워져, 횡설수설 말을 얼버무렸다.

 

“아니, 그.”

 

점점 빨개지는 귀 끝. 갈 곳 잃은 황금색 눈동자. 그리고 우물쭈물하는 입까지.

‘아, 이러니 놀리고 싶어지지.’ 짓궂은 마음이 든 멜로드는 한쪽 입꼬리만 씩 올려 웃더니, 상대의 민망함을 떨쳐 줄 농담을 지껄여 댔다.

 

“그러고 보니 세벡, 누나 있다고 했지? 좋아. 나 연상의 여자들에게 인기 좋으니까, 가서 누님이랑 어머니께 재롱 좀 떨어볼까.”

“네놈! 가서 쓸데없는 짓을 하면 계곡에 던져버릴 줄 알아라!”

“하하하! 그건 싫은데~ 조심해야겠네.”

 

살벌한 소리에도 재미있다는 듯 웃은 멜로드는 어느새 비어버린 개인 접시를 내려놓았다. 정말로 입에 맞았던 건지, 그의 접시에는 소스 외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런, 네 생일 음식인데 내가 더 많이 먹어버릴 뻔했네.”

“됐다. 난 이미 한 접시 먹었으니, 더 먹어도 상관없다. 애초에 네 녀석이 먹어봐야 얼마나 먹는다고. 하여간, 그것만 먹고도 활동할 수 있다니. 어떻게 되먹는 내장인지…….”

 

남이 얼마나 먹든 상관할 바는 아닐 텐데. 뭘 저렇게 잔소리하는 걸까. 하지만 이것조차도 제가 싫지 않으니 하는 소리겠지. 세벡이라면 싫은 상대는 완전히 무시하지, 잔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니까.

중얼중얼 제 식성에 대해 떠드는 세벡을 조용히 만들고 싶은 멜로드는 그에게 반박하는 대신, 살며시 상대의 팔을 잡을 뿐이었다.

 

“역시 잘 어울리네. 내가 선물 고르는 눈은 있어.”

 

가볍게 얹은 손은 팔꿈치 아래에서 시작해 팔뚝까지 부드럽게 올라간다. 아끼는 물건을 쓰다듬는 듯한 부드러운 손짓에, 어느새 세벡의 잔소리는 뚝 끊겨있었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민트색 눈동자. 손가락이 길고 마디는 굵은 손의 섬세한 움직임, 뭘 바른 건지 촉촉한 얇은 입술까지.

‘아, 뭔가 이상하다.’ 아까와는 결이 다른 낯간지러움에, 세벡이 반사적으로 호통이라도 치려는 순간.

 

“세벡, 여기 있어?”

 

신의 장난인지, 멜로드만큼이나 성가신 상대가 제 생일선물을 들고 나타났다.

별생각 없이 다가온 아이렌은 축하 인사와 함께 선물을 내밀려다가,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냅다 뒤로 물러났다.

 

“미안하다. 내가 방해했네. 조금 뒤에 올게.”

“뭐? 이봐, 인간! 어딜 가나!?”

“나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 아니거든? 실버 선배에게 다녀올 테니, 난 신경 쓰지 마.”

“아니. 이건 네 놈이 마음대로……!”

 

여러모로 혼란스러워진 세벡은 오해와 함께 떠나는 아이렌을 잡으러 떠나버린다.

새빨개진 얼굴로 바삐 뛰어가는 그를 보며 웃음을 삼킨 멜로드는 얌전히 근처 의자에 앉아 상황을 구경했다.

 

‘아이렌, 이걸로 일주일은 놀리겠네.’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아이렌은 선은 넘지 않으니 알아서 잘하겠지.

감독생의 어른스러움을 믿는 멜로드는 오늘의 주인공이 오길 기다리며 주스를 홀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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