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브아스] 과다 출혈

날붙이에 얻어맞으면 피가 흐른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 드림 연성입니다. 타브의 고유 설정 및 이름이 언급됩니다. (https://pnxl.me/c1k8to)

과다 출혈

날붙이에 얻어맞으면 피가 흐른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조금 전, 일행은 불의의 기습을 당했다. 다행스럽게도 모두의 팔다리가 멀쩡히 붙어 있는 채로 전투를 마무리하기는 했으나, 최전방에서 대부분의 피해—여기에는 많은 수의 화살이 포함된다—를 몸으로 받아냈던 라스의 부상이 깊었던 탓에 일행은 황급히 야영지로 복귀해야만 했다.

섀도하트가 치유력을 쏟아붓고 할신이 곁에 달라붙어 한참을 돌본 끝에 라스는 간신히 고슴도치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고통으로 흐릿하던 시야가 차차 맑아지며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아스타리온이 곁에서 치료를 돕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스, 아스타리온? 거기, 있어? 피가… 피가 계속 흐르는데, 좀 마실래?”

“뭐?”

라스는 성한 팔을 힘겹게 들어올려 어깨에 박혀 있는 화살과 거기서 흘러내리는 피를 가리켰다. 그의 몸 곳곳에 가득한 상처를 닦아내던 손길이 뚝 멈췄다. 아스타리온이 닦아낸 자리에 붕대를 감고 있던 할신의 손도 따라서 멈췄다.

“배, 고프지 않아…? 윽, 아침에… 약속, 했잖아.”

라스는 자꾸만 찌푸려지는 얼굴 위에 미소를 그려내기 위해 애썼다.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한 아스타리온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슬픔, 긴장. 음, 이건 아마 걱정인 것 같고, 저건 뭐지? 모르겠는데.

…마지막 표정—안도감—의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긍정적인 신호처럼 보였다. 피를 잔뜩 흘려 멍한 머리로, 라스는 생각했다. 네가 기쁘면 나도 좋아.

“좀 살 만한가 봐, 달링? 지금 같은 상황에 농담도 다 하고?”

“농담… 아니야. 진심, 으로… 하는 말이야.”

“…….”

아스타리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라, 이게 아닌가? 라스는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농담처럼 느껴져서 싫었나?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려 애썼다.

“어, 그러니까…. 피가 흐르잖아. 땅에, 흘릴, 바에야… 네 입에, 들어가는 게….”

“지금 숨이 넘어가게 생겼는데, 뭐? 피가 흐르니까 마셔? 제정신이야? 도대체 머리에 뭘 집어넣고 다니는 거야?”

“흘리면, 하아, 아까우니까….”

“그 입 다물어! 멍청아, 지금 너 살리려고 이 짓거리 하고 있는 거 안 보여? 더는 못 들어주겠으니까, 그딴 소리 계속할 거면 구멍난 자리 메꾸는 건 네가 알아서 해.”

그러나 아무래도 효과가 영 좋지 못했던 것 같다. 무엇이 잘못되었던 걸까? 아스타리온은 라스의 얼굴에다 수건을 내던지고는 씩씩거리며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 화가 잔뜩 난 아스타리온은 분을 삭이기 위해 숲 속을 걷고 또 걸었다. 상쾌한 초목의 향이 머리에 오른 열을 조금 식혀 주는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같았다.

…라스는 약간 재미없는 사람이고, 사람 목숨을 가지고 농담을 즐기는 부류는 아니다. 그래, 바로 그게 문제였다. 저 얼간이가 제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황에서 진심으로 피를 마시라고 권했다는 것. 그가 진짜로 피를 주고 싶어했다는 점이 아스타리온을 특별히 더 열받게 만들었다. 제정신인가? 그랬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나? 차라리 농담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좀처럼 분이 풀리지 않는 탓에 아스타리온은 애꿎은 버섯을 거세게 걷어찼다. 가엾은 버섯 하나가 사방으로 포자를 흩뿌리며 무력하게 날아갔다.

그래, 세상에 자신보다 타인을 더 중요시하는 멍청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멍청이 중 하나와 연인이 되면, 그리고 그 멍청한 연인이 스스로의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꼴을 보게 되면 머리끝까지 열이 뻗칠 수밖에 없다. 그는 라스를 걱정하게 되었고, 신경쓰게 되었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게 되었으니까. …그러니 헛소리 그만두고 네 목숨줄부터 챙겨. 난 이제 네가 말라 죽어버리는 걸 바라지 않게 됐단 말이야.

치밀어올랐던 분노가 한풀 꺾이자 그 아래에 숨겨져 있던 안타까움이 마음을 채운다. 대체 라스는 어떤 삶을 살아 왔길래 사람의 감정에 이다지도 무지하단 말인가? 어째서 자신의 안위 같은 건 개의치도 않고 적의 심장에 칼을 박아넣는 것에만 집착적으로 매달린단 말인가? 사실,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에게서도 자신을 놓아 버려 어딘가 부서진 사람 특유의 분위기가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으니.

…아마 저 녀석 인생도 꽤 작살났던 모양이지. 아스타리온은 라스가 털어놓지 못하고 속으로 삼켰을 과거에 대해 생각했다. 언젠가 준비가 되면 어련히 말해 주겠거니 하며 넘겨 왔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캐물어서라도 알아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라스가 그 자신을 썩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도 그런 과거에서 기인했을 터, 하지만 아스타리온은 라스가 좀더 스스로를 돌보기를 바랐다. 그런 태도가 그를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긁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단 말인가.

아스타리온은 착잡한 마음을 안고서 야영지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라스는 온 몸에 붕대를 둘둘 감은 채 할신과 함께 모닥불을 쬐고 있었다. 세워둔 술통에 몸을 기댄 채 고개를 한껏 떨구고 있는 모습이 퍽 애처롭다.

“…할신, 아스타리온이 많이 화났다는 건 알겠어요. 제가 뭔가 잘못했다는 것도 알겠는데, 문제는 그게 도대체 뭔지를 모르겠다는 거예요.”

관록 있는 대드루이드는 새파랗게 어린 젊은이의 뒤통수를 눈으로 쓰다듬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가 화난 이유를 알려줄 수는 있소. 하지만 아스타리온에게 직접 묻는 것이 어떻겠소? 그의 감정에 대해서는 그의 입으로 듣는 편이 좋을 것 같구려.”

“그래. 그 녀석 이 길 따라 조금만 가면 나오는 공터에 멍하니 서 있으니까, 얼른 쫓아가서 대화라는 걸 좀 해 보는 게 좋을 거다.”

덤불을 헤치고 불쑥 튀어나온 자헤이라가 씩 웃으며 뒤쪽 숲을 향해 턱짓했다. 그녀의 말에 라스의 고개가 번쩍 들려 올라갔다.

“아스타리온 아직 화나 있어요?”

“흠, 글쎄. 직접 가서 확인해 보려무나, 꼬마야.”

“…그래야겠어요. 어, 지금 다녀올게요.”

“움직일 수 있겠소? 일으켜주리다. 다만, 무리하지는 마시오.”

이 젊은이가 사랑에 몸부림치는 모습은 그의 철없던 시절을 떠오르게 만든다. 할신은 부드럽게 웃으며 라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라스는 희미한 미소를 남기고 비틀거리며 숲 속으로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스는 나무 아래에 서서 별을 바라보고 있던 아스타리온을 발견했다. 그는 화난 연인의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가 조심스레 말을 붙였다.

“아스타리온,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어디 해 봐. 들어는 줄 테니까.”

라스는 옆구리를 붙들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나무에 기대어 풀썩 주저앉았다. 아스타리온은 눈을 슬쩍 흘겨 라스를 내려다보다가 그를 따라 천천히 앉았다.

“…내가 널 화나게 한 것 같아. 그런데 나는 네가 왜 화났는지를 모르겠어, 미안해. 정말 열심히 생각해 봤는데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알려 주면 안 될까? 나의 뭐가 너를 속상하게 만든 거야?”

“…….”

맙소사, 모른단다. 왜 화가 났는지 모르겠단다. 아스타리온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그의 덜 떨어진—하지만 노력은 하는— 연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미안하다고, 알려 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하는 사람에게 대고 화를 더 내기도 뭣하다. …어쩌겠는가. 모른다는데. 아스타리온은 라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들이쉰 숨을 도로 내뱉었다. 그래, 그 풋내나는 감정을 일깨우는 것도, 귓가에 속삭여야 할 말을 알려 주는 것도 내가 될 수밖에 없겠지. 밤나무 아래에서 그의 품에 기대 잠든 날 이렇게 될 것을 예감하지 않았던가.

“생각해 봐. 너는 내가 크게 다쳐서 목숨이 오락가락하는데 널 위해서랍시고, 음… 피를 철철 흘리면서 상인 주머니나 털고 있으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솔직히 이게 적당한 비유인지는 모르겠다. 대충 알아듣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아스타리온은 희미한 기대감 속에서 라스와 눈을 맞췄다.

“……싫을 거야. 어, 슬프고, 어쩐지 화도 날 것 같아. …나한테.”

기대가 빗나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스타리온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정답이다. 그건 정확히 그가 느낀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멍청이는 이렇게나 잘 알면서 왜 모른다는 거지? 라스의 ‘감정’이라는 것이 자신을 향해서는 작동하는데 그를 향해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스타리온의 자제심을 완전히 날려 버렸다. 아스타리온은 화내지 않겠다는 조금 전의 다짐도 잊고 라스를 향해 버럭 소리질렀다.

“그건 알면서 왜 내가 똑같이 화가 날 거라는 건 몰라! 내가 날 아끼지 않으면 마음이 아프다면서, 왜 네가 널 아끼지 않으면 내 마음이 아프다는 걸 몰라?”

“…아? 어어, 그렇구나. 그래서….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미, 미안해. 많이 속상했어?”

…환장하겠네. 아스타리온의 미간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라스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고해하듯 더듬거리며 마음을 토해냈다.

“있잖아, 나는 내가 뭘 느끼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다른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도 잘 모르겠어. 내가 배운 건 사람을 죽이기 위해 내 몸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법 말고는 없었으니까. 아까는 왜 그랬냐면, 어, 그러니까…. 보급도 전투잖아. 아, 물론 보급 목적보다는 네가 내 피로 배를 채울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했던 게 더 크긴 하지만. …그건 아마 내가 널 좋아해서 그런 거겠지.”

“…그래서?”

그는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았다. 횡설수설, 라스의 고백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런데, 그러면 네가 속상해할 거라는 건 전혀 생각 못 했어. 나 때문에 슬퍼할 사람이 생긴 건 처음이거든…. 나는 살인자에다 도망자고, 누가 나를 아껴 줬던 기억은 너무나 멀리 있어. 그래서 나를 아끼는 법도 잊어버렸고 내가 나를 아끼지 않으면 나를 아끼는 누군가가 슬퍼할 거라는 사실도 떠올리지 못했어.”

아스타리온은 찌푸렸던 표정을 풀고 라스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의 눈 앞에는 그와 똑같이 박살난 내면을 가진 남자가 잔뜩 웅크린 채 덜덜 떨고 있었다.

“멍청아, 나도 마찬가지야. 나는 안 그랬을 것 같아?”

“…그렇구나. 너는 더 오래 아프고, 더 오래 힘들었겠구나. 미안해.”

그것도 생각 못 했어. 라스의 고개가 더욱 아래로 처졌다.

“아니, 지금 누가 더 괴로웠는지 대결하자는 얘기가 아니잖아! 누구든 자기가 겪은 고통이 제일 아파. 그건 당연한 거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한테 나를 아끼는 법을 알려 준 사람이 너라는 거야. 그러니까, 어쩌면 그게 반대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겠지. 안 그래?”

젠장, 오늘따라 왜 이렇게 처져 있는 거야? 아스타리온은 라스의 뺨을 붙잡아 얼굴을 억지로 들어올렸다. 그의 표정에 비탄이 가득한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멍청이. 너는 생각 없는 얼굴이 훨씬 어울려.

“날 봐. 아침에 거울을 본다고 생각하고 내 얼굴을, 내 눈을 봐. 예전에 네가 내 거울이 되어 주겠다고 했지? 이제는 내가 네 거울이 되어 줄게. 스스로를 대할 때 확신을 못 갖겠으면 나한테 하던 것처럼 굴어.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뒤집어서 생각해. 알겠어?”

“응….”

멍하던 라스의 눈에 빛이 조금 돌아왔다. 그는 아스타리온의 어깨에 머리를 살며시 기대고는 확신을 갈망하는 말투로 물었다.

“그런데, 정말 그래?”

“뭐가?”

“내가 널 볼 때 느끼는 걸… 너도 날 보면서 느껴? 너한테 내가 그만큼 소중한 사람인 거야?”

연인에게 건네는 질문치고는 참으로 도발적이며 불경스러운 내용이었으나, 그 말을 전하는 목소리가 너무나도 애처롭게 떨리고 있던 탓에 아스타리온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기분이 묘했다. …너는 칼에 찔려도 안 죽고 낭떠러지에서 밀어도 절벽을 타고 도로 기어올라올 법한 초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너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구나. 그러나 왜인지 그 사실이 더없이 큰 위로가 되었다. 아스타리온은 라스의 손을 꼭 쥐고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연하지. 내가 말했잖아. 너랑 진짜 관계가 되고 싶다고. 너를 좋아하고,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의심하지 마. 확신을 가져. 너는 내가 고른 사람이니까. 알겠어?”

“…응, 고마워.”

“그리고, 으, 내 입으로 이런 말 하려니까 진짜 간지럽네, 다른 녀석들도 너를 신경쓰고 있다고. 그러니까 어울리지도 않게 처져 있는 짓은 그만두고 이리 와서 입술이나 내밀어 봐.”


연인 사이에, 그러니까 진짜 관계인 사람들 사이에서 키스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최근에 새로 생긴 아스타리온의 지론이었다.

라스의 손을 잡고 있던 아스타리온의 손이 천천히 올라가다가 목 근처에서 멈췄다. 그대로 부드럽게 당기자 육중한 상체가 아무런 저항 없이 끌려온다. 서로의 숨결이 닿는 거리, 그들은 약속한 것처럼 동시에 눈을 감는다. 입술이 맞닿는 지점에 기쁨이 있고, 혀가 맞닿는 지점에는 열락이 있다. 아스타리온은 언제나 서늘한 입 안에 라스의 뜨거운 혀가 밀려들어오는 순간을 좋아했다.

아프지 않게 이를 세워 잘근거리자 촉촉한 살덩이가 미약하게 꿈틀거렸다. 그것이 어떤 신호로 작용했던 것일까? 라스의 숨이 대번에 거칠어졌다. 따뜻한 숨결이 볼을 사정없이 간지럽히고, 제멋대로 날뛰는 혀가 문지르고 지나간 자리마다 열이 번진다. 난폭한 침범이 불쾌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이 사나운 침입자를 마음 속 깊이 아끼기 때문이리라.

만족할 만큼 혀를 섞은 두 사람은 헐떡이며 천천히 입술을 떼어냈다. 라스의 뺨은 어느 새 제법 보기 좋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반들거리는 아스타리온의 입술을 바라보던 그의 얼굴에 마침내 부드러운 미소가 번진다. 이제, 로맨틱한 말 한 마디를 속삭이면… 완벽하다.

그러나, 라스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정열적인 키스를 나눈 뒤 연인에게 건넬 말로 적절한 것은 아니었다.

“아스타리온, 나 어지러워….”

“…뭐?”

…키스는 좋은 것이다. 설레는 소년마냥 심장을 쿵쿵 뛰게 만들기에도 좋고, 혈류량을 급격히 증가시키기에도 좋고, 간신히 붙여 놓은 상처를 벌리기에도 참 좋다.

비릿한, 혹은 달콤한 피 냄새가 진동했다. 라스의 몸이 아스타리온의 품 안으로 풀썩 무너졌다. 아스타리온은 조금 착잡하고 많이 곤란한 기분 속에서 온 힘을 다해 소리질렀다.

“젠장, 할신? 칼라크! 얘 또 뻗었어, 누구든 상관 없으니까 덩치 한 명만 빨리 좀 와!”

야영지 쪽에서 잠깐 소란이 일더니 두어 명 정도가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다소 안심한 마음으로, 아스타리온은 까무룩 정신을 놓으려는 라스의 볼을 찰싹찰싹 후려쳤다. 라스는 볼을 연신 두들겨맞으면서도 헤벌쭉 웃고 있었다.

아, 속 썩이는 연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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