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설원

[라하히카] 노래에 사랑을 담아

라하네스 / 인어AU

  • FF14 그라하 티아 HL 연인드림 연성입니다.

  • 드림주는 달 여코테. 드림주 이름 나옵니다. 네임리스 아닙니다.

  • 드림에 예민하신 분들은 뒤로가기 눌러주세요.

  • 인어 AU 연성 중 일부입니다.

  • 초반 부분만 업로드 합니다. 현재 8,000자가 넘었으나 총 몇자가 나올지 예상 불가능. 최소 17금 ~ 19금 예정입니다.

  • 업로드 분량 : 공백 미포함 6,588자


노래에 사랑을 담아

G‘raha Tia × Areunes Eldis

copyright by. Mer

사람과 입을 맞추면 두 다리가 생겨나 뭍을 걸을 수 있게 되지만, 입을 맞춘 뒤로부터 24시간 이내에 바다로 돌아가지 않으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특수종족. 바다의 자손이자 바다의 지배자라고 불리는 인어. 사람들은 그 인어의 존재를 종종 환상으로 치부하고는 했으나, 해안가에 사는 이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인어들의 심기를 거스르면 바다에 재앙이 온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들은 처음 영지 내에 인어의 토벌 현상금 벽보가 붙었을 때 두려움에 떨었다. 인어들의 노래가 마물 세이렌의 노래와 같이 감미롭다는 사실은 뱃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무리 사고가 많이 난다고 해도 이곳 현지에서 뱃일을 하는 이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인어의 노래를 대비한 대비책을 하나나 둘 정도는 구비하고 뱃일을 나서는 편이었고, 실제로 사고가 났던 배의 대다수가 그들의 조언을 무시한 외부 선박인 경우가 많았기에 그들은 기어이 영주가 영지민의 밥줄을 끊으려 든다고 통곡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애초에 인어란 존재 하는 게 맞는 걸까?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해안가 마을은 현상금이 붙은 인어를 잡기 위하여 도적단이나 용병단들이 몰리기 시작하며 북적이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점차 나빠지는 치안, 인어를 잡아 죽이게 되었을 때 돌아올 후폭풍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마을 주민들 사이에 퍼지며 마을은 점차 활기를 잃어갔다. 어째서 이 해안가 변방에 위치한 작은 영지 내에 이런 벽보가 나돌게 된 것일까? 사건의 발단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 *

 

아르네스는 바다의 지배자라고 불리는 특수 종족, 인어일족의 일원이다. 그 중에서도 현 인어왕의 유일한 여동생이자 하나뿐인 공주인, 왕 다음으로 가장 특별대우를 받는 귀한 왕족 중 하나다. 그녀는 인어왕의 세대교체 전부터 유일한 공주였던 탓에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자랐는데, 어릴 적부터 유독 노래하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종종 뭍에 올라가 외진 해안가의 바위 위에 앉아 노래 부르기를 즐겨하고는 했다. 아직은 어렸기 때문에 세이렌의 노래와 같은 감미로움은 없었지만, 인어의 노랫소리는 뱃사람들을 홀릴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부모님과 오라비의 말은 언제나 기억하고 있어서, 더더욱 외진 곳을 선택한 것도 없지 않았다. 그날도 그녀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뭍으로 올라가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인어?”

“……!!”

“앗, 가지 말아봐.”

 

노랫소리가 들려서 찾아왔을 뿐이야. 다른 생각은 없었어. 목소리에 놀라 돌아본 곳에는 똑같이 놀란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는 어린 묘족의 소년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영주가 묘족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영주의 아이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아르네스는 물 속으로 들어가 바위 뒤에 숨어서 빤히 상대를 바라봤다. 많이 잡아봐야 10살 남짓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는 눈을 빛내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인어는 전설인 줄로만 알았다는 둥, 꿈에서 그리던 인어를 직접 만나게 돼서 반갑다는 둥, 인어 중에서도 자신과 같은 또래가 있어 기쁘다는 둥 조잘조잘 떠들던 그는 아, 하고 아르네스에게 이쪽으로 다가오라 손짓했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상대에게 악의가 없음을 눈치 채고 조용히 물을 거슬러 해변가로 다가갔다.

 

“이거 줄게. 지금은 몰래 나온 거라 오래 이곳에 있지 못해.”

 

이건 나중에 만나자는 약속의 증표야. 그리고 네 노랫소리, 무척이나 예쁘고 좋았어. 나도 모르게 이곳까지 찾아올 만큼. 푸른색의 작은 크리스탈이 매달려있는 목걸이를 아르네스에게 건네며, 붉은 머리에 붉은 눈을 한 소년은 그녀의 노래를 칭찬하고는 이내 그 자리를 떠났다. 곧 수도로 올라가봐야 해서 당장은 다시 못 오겠지만 나중에 또 보러 올 테니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기약 없는 약속만을 남긴 채였다. 처음으로 자신의 노래를 남이 들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면서도, 아르네스는 처음으로 자신의 노래를 칭찬 받았다는 사실에 기쁨과 설렘을 감추지 못하며 받은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그것은 그렇게 그녀의 보물 1호가 되었고, 그녀가 하고 다니는 유일한 보석 목걸이가 되었다.

 

“어디서 났어?”

“……비밀이야.”

“예쁘긴 한데, 줄곧 그것만 하고 다니잖아.”

“캐고 다니지 마.”

 

제 오라비가 꼬치꼬치 캐물어도 그녀는 그저 뺏기지 않으려는 듯 목걸이를 손으로 감싸며 대답을 회피하고는 했다. 뭍에서 받아온 물건이라는 사실은 이미 들킨 상황이었고, 뭍의 인간들이 마냥 인어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잔소리를 귀에 피나도록 들어야만 했지만, 그녀는 그 목걸이를 뺏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

 

그 뒤로 붉은 묘족의 소년은 두 번 다시 그 해변가에 오지 않았지만, 언제라도 그가 이곳을 찾아오면 자신을 알아봐줬으면 해서, 아르네스는 종종 뭍으로 올라가 노래를 불렀다. 그래,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녀가 커가면서 부르는 노래가 점점 세이렌의 노래처럼 감미롭게 듣는 이를 홀리는 노래가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리라. 본래 인어의 노래에는 세이렌의 노래처럼 사람을 홀리는 힘이 있다. 더 잘 듣기 위해 가까이 다가오도록 하여 암초에 배가 부딪쳐 사고를 일으키는 세이렌과 달리 본래 인어의 노래에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시키는 힘이 있지만, 어째서인지 아르네스의 노래는 치유의 힘보다 사람을 홀리는 힘이 더 강했다. 그 사람을 보고 싶다는 열망이 담긴 노래가 사람을 끌어 모아 홀리게 만드는 힘을 지니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노래를 좋다고 해준 그가, 자신을 언제라도 찾아와서 알아봐주길 바라며 노래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영지민의 충고를 무시하고 인근 해역을 아무런 대비책 없이 지나가던 타지의 상선이나 어선들의 뱃사람들이 그녀의 노래를 듣고 홀려 바다 속으로 빠지는 사고가 일어나거나 배가 좌초되는 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사실 배들이 출항하는 횟수에 비하면 사고 비율은 높지 않았지만, 몹쓸 인어가 세이렌처럼 사람을 홀린다는 항의가 빗발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영주는 현상금을 걸고 토벌 벽보를 붙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아버지, 인어를 죽였다간 바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나도 안다. 하지만 여론이라는 것이 있지…….”

“해안가의 사람들이 하는 충고를 무시한 그들의 무지 탓에 영지민들이 인어사냥으로 인한 바다의 분노를 맞게 생겼는데 말이지요?”

“…….”

“조만간 크게 화를 입게 될 날이 올 겁니다.”

 

아들의 말에 영주는 침묵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내건 것을 철회하고 회수하기엔 영주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라하, 아들아. 그는 어느덧 장성한 제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방랑벽으로 그토록 속 썩이다가 왜 돌아왔나 싶었는데 현상금 벽보를 보고 잔소리를 하러 돌아온 게냐고 물었지만 그는 침묵했다. 긍정의 답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여간 몹쓸 아들놈이라고 생각하며 영주는 말없이 고개만 까닥하고 나가는 제 아들을 보고는 이마를 짚었다.

 

“해신이 노할까 두려운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해신. 그들이 부르는 해신은 이곳 영지민들 중 해안가에서 살고 있는 영지민들이 인어 왕을 부를 때 쓰는 호칭이었다. 인어들의 심기를 거스르면 해신이 노하여 바다에 재앙이 내린다. 이곳 영지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지만, 기본적으로 항구가 속한 영지는 교역이 활발한 법. 계속해서 사고가 난다면 영지의 운영에도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현상금을 걸어 토벌 벽보를 붙인 것이지만…….

 

“은발의 인어라…….”

 

해당 인어가 부디 왕족이 아니기를 영주는 빌고 빌었다.

 

*

 

영주가 그토록 토벌 현상금을 건 인어가 왕족이 아니길을 빌었건만, 안타깝게도 토벌 대상이 된 아르네스는 왕족 중에서도 인어왕 다음으로 대접받는 유일한 공주. 즉, 왕족 중의 왕족이었다. 토벌 벽보가 붙은 뒤로 해안가에 모인 용병단들은 인어가 보이면 일단 잡아 죽이려고 들었다. 인어의 핵이 보석으로써 가치가 높은 편인 점까지 그들 사이에 퍼지면서 애꿎은 인어들도 함께 희생을 당하는 것이었다. 영지민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아르네스도 목숨의 위협을 받지 않은 적이 없었다. 외진 곳에서 노래를 부르다가도 갑자기 날아온 화살이 팔을 스쳐 놀라서 바다 속으로 도망친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영지민들이 인어를 잡아 죽이면 저주를 받으니 안 된다고 뜯어 말려도 돈에 눈이 멀은 자들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감히 바다의 자손을 건드는 간 큰 놈들이 아직도 존재한다니…….”

 

많은 인어들이 희생당하고 유일한 여동생마저 다쳐서 돌아오거나 목숨의 위협을 받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하니 현 인어왕인 아렌은 크게 분노했다. 인어왕의 분노는 점점 바다의 날씨를 악화시켰다. 해신이 분노하고 있다며 영지민들은 두려움에 떨었지만, 용병들은 이 모든 것이 현상금이 붙은 인어를 잡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치부했다. 일종의 정신승리였다. 인어가 하나둘 희생될 때마다 점점 날씨는 악화되어갔지만, 여전히 인어잡이는 계속되고 있었다. 결국 대부분의 인어들은 뭍으로 얼굴을 내보이지 않게 되었다. 단 하나, 백은발의 인어이자 인어족의 공주인 아르네스를 제외하고…….

 

“동생아, 때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노래를 부르러 뭍으로 올라가는 거냐?”

 

얼마 전에도 죽을 뻔했지 않냐. 오라버니인 인어왕은 줄곧 아르네스를 만류했다. 그러나 하나뿐인 여동생이 뭍에서 노래하는 시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알고 있어서 뭍으로 가는 것을 강제로 막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는 엄한 왕이기도 했고, 해신이라 불리는 존재이기도 했지만 제 여동생에게는 한 없이 약했기에……. 그리고 결국 사건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 * *

 

“쏴라!”

“목표하던 은발이야! 저거 멀리 못 도망 갈 거다! 당장 배를 준비해!”

 

바다에 인어의 피가 퍼지기 시작했다.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옆구리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고 힘겹게 도망치는 아르네스의 헤엄치는 속도는 굼뜨기만 했다. 인어의 피 냄새를 맡고 인어왕의 보호를 받는 범고래들이 몰려들어 아르네스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나타난 범고래 떼들에 의해 아르네스를 공격하던 용병단은 배가 반파될 위기에 마주하고 후퇴했다. 다 잡은 것을 너 때문에 놓쳤다는 둥 자기들끼리 티격태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쏘았던 화살에 독이라도 발라져 있던 것인지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도망치던 아르네스는 범고래들의 안내를 따라 도망치다가 결국 혼절하고 말았다. 인어는 의식을 잃으면 가라앉지 않고 떠오르기에,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범고래들에 의해 어느 인적이 드문 한적한 해변가로 옮겨지게 되었다. 피를 줄줄 흘리며 열에 들떠 그렇게 죽어가는 것을 애초롭게 바라보던 그 때, 인기척이 들리는 것을 느낀 범고래들은 빠르게 몸을 숨겼다.

 

*

 

수많은 인어가 희생되는 것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그라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라앉히려 해변가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기시감이 들었다. 언젠가 봤던 풍경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자신의 감이 이끄는 대로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는 발견했다. 해변가에 쓰러져있는 은발의 인어를……. 잠깐, 은발? 그는 놀란 얼굴로 빠르게 곁에 다가갔다. 모래사장에 피가 흥건했다. 반쯤 말라서 열이 오른 얼굴로 서서히 숨이 가늘어지고 있는 인어를 발견한 그는 다급하게 자신이 들고 다니던 짐에서 지혈을 위한 붕대와 해독제를 꺼내들었다. 지독한 인간들이다. 돈에 눈이 멀어 인어들을 잡아들이는 것도 모자라, 현상금을 얻겠다고 독까지 사용하다니……. 그는 입술을 깨물며 벌어진 인어의 입에, 피 흘리는 환부에 각각 해독제를 한 병씩 들이 부었다. 해독제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붕대를 들고 상처 입은 환부에 감은 그는 눈앞에 쓰러져 있는 인어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바로 현상금이 붙은 인어라는 것은 한눈에 알아봤다. 그러나 그는 인어를 잡아 현상금을 노릴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인어들을 보호하지 못한 것에 대해 큰 슬픔을 안고 있는 상황이었다.

 

“으응…….”

“아, 정신이 들었어?”

“……!”

 

은발의 인어는 그의 말에 놀라 몸을 급격하게 일으키다 이내 풀썩 쓰러졌다. 허리의 상처가 쓰라린 것도 있었고 독에 당했던 몸이 아직 다 회복하지 못한 탓도 있으리라. 그라하는 아직 더 누워있으라는 말을 하며 경계하고 있는 인어의 곁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인어의 모습에서 자꾸만 기시감이 들었던 탓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모습인데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다가오는 인기척을 경계하면서도 인어는 조용히 누워 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그라하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마치 그를 알아본 듯한 반응에 그라하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나를, 알아?”

“……기억하지 못하는 구나…….”

 

하긴 너무 어릴 적에 만났으니까. 너도, 나도. 아르네스는 상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어쩔수 없다는 듯이, 그럴 수 있다는 듯이 체념하는 얼굴을 하며 타협했다. 그래도 구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만 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구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상대에게 건넸다. 찰랑. 그녀의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가 고개를 숙임과 통시에 옷깃에서 빠져나왔다.

 

“……그 목걸이…….”

 

아르네스를 알아보지 못했던 그라하지만, 그는 자신이 어릴 적 만났던 한 인어에게 건넸던 목걸이는 알아봤다. 그제야 그는 그동안 느꼈던 기시감의 정체를 눈치 챘다. 장소가 익숙했던 것도, 눈앞에 있던 은발의 인어가 익숙했던 것도, 어릴 적 이곳에서 그는 이 인어와 만났고, 다음을 기약하는 증표로 저 목걸이를 그녀에게 건넸었던 것까지 기억해냈다.

 

“……네가…….”

“아, 그래도 이 목걸이는 기억을 하고 있었나보네.”

 

다행이다. 백은발의 인어는 정말로 다행이라는 양, 안도하듯 웃었다. 자신이 나중에 다시 만나자며 증표까지 줘놓고 자신이 기억을 못하다니 이보다도 더 큰 죄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라하는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러나 상대는 인간의 기억력이란 원래 금방 휘발되는 것임을 안다며 신경 쓰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올 뿐이었다.

 

“사실 네가 준 것이라 항상 하고 있었어.”

 

아르네스는 목걸이를 항상 차고 다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때 그 묘족 아이의 이름을 묻지 못해 후회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목걸이를 잘 옷깃 안에 넣어놓고 상대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라하는 대뜸 이름을 물어보는 질문에 한순간 당황하는 듯 했으나, 생각해보니 증표도 줘놓고 통성명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답했다.

 

“라하야. 그라하. 이곳 영주의 아들.”

“난 아르네스라고 해.”

 

그보다 영주의 아들일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뭐 하고 있었어? 한 번도 안 찾아오고. 그동안 찾아오지 않은 것에 대한 투정을 담아 묻노라면 조금은 당황한 목소리가 되돌아온다. 모험을 다니고 있었다고. 방랑벽이 심한지 한 곳에 정착을 못하고 그렇게 모험을 다니고 있었다고……. 그렇지만 아버지가 자꾸만 뱃사고를 일으키는 인어에 대한 현상금 벽보를 걸었다는 소식에 다급하게 모험을 중단하고 돌아왔다고 말하는 그의 말에는 거짓이 없어보였다. 뱃사고를 일으키는 인어에 대한 현상금. 아르네스는 그 인어가 자신임을 알았다. 모를 수가 없었다. 자신만 보면 죽일 듯이 활을 날리며 쫓아오는 광인들이 많았으니까……. 고작 노래를 좋아해서 노래를 불렀을 뿐인데 현상금이 걸려 목숨을 위협받고 수많은 동료들을 잃어야만 했다는 사실에 분노와 함께 슬픔이 올라온 아르네스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울지 마. 나도 어떻게든 더 이상 인어들이 희생되지 않을만한 방법을 찾고 있으니까…….”

 

희생된 인어들의 핵은 암시장에 팔리는 것 같아서 장소를 알아내서 군을 이끌고 습격한 뒤 되찾아왔어. 조만간 그건 아버지를 통해서 바다에 돌려보내줄게. 인어들은 죽으면 핵을 자신들 만의 무덤에 쌓아놓는다고 들었거든. 그 말을 들은 아르네스가 눈물을 흘리다 말고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라하를 쳐다봤다. 그 많은 핵들을 다 가지고 있다고? 근데 그걸 그냥 돌려주겠다고? 그게 보석으로 인간들 사이에서 얼마나 가치가 높은지는 그녀 자신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인어들 중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자신의 조상의 핵을 인간에게 선물하며 환심을 사는 경우도 있었기에 모를 리가 없었다. 아르네스의 눈빛에서 불신의 빛을 읽은 것인지 그라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아버지라도 이 정도는 해야만 해신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계실거야.”

“……해신의 분노…….”

 

인간들은 오빠를 해신이라 부르나보다 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는 불신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희생된 인어들의 핵을 돌려받는다면 오빠의 분노도 어느 정도는 가라앉을지 모를 일이었다. 실제로 오빠는 지금 굉장히 화가 많이 난 상태였으니까……. 이번에 자신이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더 화를 낼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슬슬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좋을 것 같네. 너무 여기에 오래 있어도 좋지 못해.”

 

한동안은 영지에 있을 예정이니 종종 찾아올게. 너도 돌아가서 상처 잘 돌보고 쉬었으면 좋겠다. 그라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모래를 털며 말했다. 아르네스의 상처는 누가 봐도 당장 죽기 직전 마냥 심각했다. 지금은 혈색이 어느 정도 돌아온 것 같았지만……. 그래도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수준까지 회복하려면 시간이 걸릴 터였다. 자신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르네스는 그의 말뜻을 이해했다. 아픈 사람은 이만 돌아가서 요양을 하라는 뜻임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추가로 자신을 노리는 이가 여길 찾아올지 모르니 얼른 돌아가라는 뜻인 것도 모르지 않는 그녀는 그라하에게 다음을 기약하는 인사를 하고 바다 속으로 첨벙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그라하 또한 인어의 모습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후에야 그 자리를 벗어났다. 두 사람의 가슴 속에 몽글몽글한 감장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두 사람도 아직 자각하지 못한 별개의 이야기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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