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5 S님 2천자
HL 역사 기반 1차창작
아무도 몰라. 나 같은 거, 없어져도 몰라. 사람이 아냐. 여기 있고 싶지 않아.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두 명이나 있을 줄은 몰랐다. 옷차림부터 예사롭지 않은 그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러지 말고 옆에 앉지 않겠냐고 말했는데…아, 깜빡 넘어갈 뻔했다. 이 사람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까 당연하지. 내가 누군지 알면 경멸하고, 도망치고, 미워할 거야. 어쩌면 불쾌함을 숨긴 채 다른 사람처럼 이용할지도 모르고…
“무슨 생각을 그리하시나요?”
자, 앉으세요.
그 사람의 눈, 달빛을 가득 담은 황금빛.
그 사람의 머리카락, 물빛을 가득 담은 진한 푸른빛.
나보다 머리 두 개는 큰 키에 아름다운 외모. 어쩐지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 같아. 이런 사람은 저기서 빠져나올 이유 따위 없을 텐데, 나와 다르게 ‘지나가겠습니다’ 한 마디만 하면 아무렇지 않게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떨리는 발걸음으로 그의 옆을 향했다. 앉으라고는 했지만 감히 앉을 수는 없었다. 그는 – 그 사람은, 굳이 내 이름을 묻지는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옷차림을 보고 적당히 어느 집안 여식이겠거니,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좋아. 그렇게 생각하게 둘까.
“다르네요.”
“응?”
“색깔이요. 머리카락도 눈도, 붉어서요.”
그 말에 나는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펄쩍 뛸 뻔했다. 개의치 않고 그 사람은 살포시 웃는다. 내가 눈을 크게 떴다는 걸 구름이 가려줘서 다행이야. 웃느라 눈치채지 못해서 다행이야. 애써 무심한 척 너, 사람을 놀리는 게 아니야. 라고 말하면…
“놀린 건가요.”
“놀린 거야.”
“저야말로 놀랐어요. 저처럼 빠져나온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너는, 아무렇지 않게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뇨, 아뇨. 들키면 큰 난리가 날 거예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그는 바람에 나부끼듯 말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잘해봐야 높으신 분의 자제라고만 생각했다. 황족, 그것도 황태자나 되는 분이 담을 넘어 여기까지 흘러들어오리라 누가 생각했겠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여전히 무례한 태도로 – 그는 어쩐지 낮은 태도로 – 시덥잖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면서도, 처음 보는 사람이기에 해서는 안 될 말들이었다.
“나, 멀리 도망치고 싶어.”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해요.”
“어떤 착한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려나.”
“저도 어떤 착한 사람이 도와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요.”
“너도 그런 사람이 데려가 줬으면 좋겠어?”
내가 질문을 던지자 바람이 불었다. 거세지는 않지만, 서로를 갈라놓기에는 충분한 세기의 바람이었다. 달을 올려다보던 그는 천천히 내 쪽을 돌아보더니, 이내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는,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도망친다기보다 같이 싸워줬으면 해요.”
“싸워?”
“네, 이 세상과, 사람들과, 맞서 싸우고 싶어요.”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단 한 번도 싸워서 이겨 벗어나겠다는 생각 따위 해본 적 없었으니까. 그냥 혼자 멀리멀리 도망치면 어떻게든 되겠지. 집에 불을 질러 모두를 죽여버리는 상상 따위, 해본 적 없던 것이다…실은 그게 도망치는 것보다 더 쉬운 것인데도. 나는 오랫동안, 꽤나 오랫동안 그의 눈을 보고 있었다. 호수처럼 망양한, 깊은 심해의-
“좋은 사람을 만나길 바라요.”
이어지던 정적, 망상은 그 말로 끊긴다. 헉 하는 순간 그는 저 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연회장으로 돌아가는 걸까.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나는 종종걸음을 쳤다.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것처럼 기묘한 경험이었다. 사실 그는 귀신이 아니었을까. 먼 미래, 그와 내가 어떻게 얽히게 될지 모르고 지껄이는 아무 말이었다.
그래, 아무것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말이었겠지.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 사람이 궁정에 이름 높은 황태자 타카하루 친왕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조금 뒤의 이야기로, 그때의 무례를 용서해달라며 바닥에 몇 번이고 머리를 찧었던 일은 나중에 말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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