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 간만에 쓰려니 역시 아무것도 되지 않은 무언가
길게 쓸 것 없이 이렇게 사정 잘라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마음이 가득 (포스타입 백업 : 23.05.14)
들어오면 공간이 온통 사람을 흔든다. 시퍼렇게 타는 눈으로 굽어보는 거대한 사람의 해골 닮은 것에, 어슴푸레한 안개가 낀듯한 공동 같은 공간. 영락없이 땅 아래 세상같은 모양에 종유석마냥 거꾸로 자라난 모양을 한 건물까지. 첫 인상부터가 아주 저승에라도 도달한 듯한 곳이었으나, 어쨌거나 이 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 오히려 안에 든 이들이 거진 제 좋아하는 것, 제 기준으로 아주 편해지는 것이라면 거침없이 저지르는 십대들이기까지 해선, 내장이라면 아마 일곱의 기숙사 중에 제일 신식이라는 것 같다. 올라오는 사진 따위나 게시판 따위에서 주장하는 일이 그러했다. ─뭐어, 나는 아무래도 어디에도 가 본 일이 없었지만.
어쨌거나, 고작 일주일도 되지 못한 것이다.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된 날로부터.
지금 시간은 여섯 시, 인 모양이었다. 날은 내가 이 기숙사에 들어오고 첫 번째의 주말이고. 희미하게 빛나는 전자 시계의 빛이 흔들린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짜증과 피로를 섞어, 베게에 얼굴을 묻었다. 사 인이 사용해도 제법 넉넉해서, 이만하면 쪼개서 방을 만들어도 괜찮았겠다 싶은 기숙사 방. 블라인드가 창을 가린 방 안은 온통 어슴푸레하니, 여명의 빛 대신 기계의 빛이나 끔벅인다. 아침 새 우는 소리 대신 짧게 돌아가는 팬 소리가 이따금씩 들리는 듯한 방 안.
그래도 나 포함 세 자리 차 있는 방의 한쪽 구석이라, 다른 두 사람이 깨지 않게 굴려고는 했지만, 몸을 일으키는데 절로 앓는 소리가 났다. 좀 더 쉬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다가 새로운 침대의 질은 충분히 좋았지만, 몸에 밴 버릇이란 게 그렇다. 이미 한번 눈이 떠진 이상 글렀다. 이럴 거면 어째서 이 시간에 눈이 떠져서는, 하고 내 몸을 원망해도 답이란게 없는 이야기지만.
여하튼 도무지 마저 일어날 기분이 되지 않아, 다만 눕지도 못하고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댄다. 상체만 일으켜 세운 것 만으로도 오탁이 쌓인듯한 머리통이 온통 지끈댄다. 몸뚱어리가 뉘 것이냐 쉽게 무거워서는, 칠주야도 넘지 못한 날이 벌써 먼 꿈 같다. 무거운 머리통을 벽에 기댄다. 절로 쿵,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은 어쩔수 없다고 치워버리면서. 그렇게 벌써 지긋해진 내 불면의 원흉, ─갑작스레 이 곳에 들어오게 된 사정을 떠올리면서.
천명이라고, 그렇게 받아들여 평생을 품고 가리라 생각했던 업을 저주에 빼앗긴 이래에도 변함이 없던 일. 여름도 잦아드는 계절에 홀로 있을 있으면, 시야 언저리에 찾아드는 검은 마차의 일─. 이것은 일단, 훌쩍 건너 뛰자. 보다 짧게 잡은 원인. 무심코, 반쯤은 충동으로 그 검은 마차에 올라탄 뒤에, 갑작스레 내 신세가 또 어그러지고야 말았으니.
─눈을 뜨면, 온통 좁고 어두웠지.
딱 한사람으로 꽉 차는 공간에 누웠는지 기대었는지도 모를 혼곤함. 피아를 모르는 피로와 어둠에 두번 눈을 끔벅였던가. 바로 그 눈에서부터 시작하는,혼몽을 찢어가르는 듯한 통증이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자각하는 모든 몸뚱어리에서, 숨을 죄듯 말라붙는 기맥. 그럼에도 존재감을 과시하려 드는 저주가 맥동하던, 이 세상에선 정의되지 않은 에너지가 덧없이 사라지지 않으려 발악하던 순간. ─그 관棺의, 초대받은자를 보호하는 기능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없는 내가 그저 부정당하는 감각까지.
야아, 싫은 기억이다. 당연하게도. 실없는, 웃음 같은 것을 터트리며 몸을 수그린다. 조금 토악질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아직 마저 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울렁였다. 어쨌거나, 고작 일주일도 되지 못한 것이다. 반쯤 충동으로, 매년 어쩐지 찾아오는 검은 마차에 올라탔다가 연고 없는 (것이 당연한) 이계에 떨어진 것이.
이계에 떨어진 것은 퍽 지독한 피로를 불렀다. 그 사건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내 체력에 하루 밤 새고 사나흘 잠 좀 부족한 상태로 지내는 것을, 이 정도로 피곤할 일은 아니긴 했다. 본디라면 이래저래 체력과 강건함을 자신하던 몸이다. 구체적으로 경험한 결과를 대자면 수면 시간 네 시간으로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고, 여차하면 이틀 밤 정도는 밤을 지새우고 일 이십분정도의 쪽잠으로 큰 문제 없이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강건함과 젊음의 무엇인가를 모조리 끌어다가도, 제대로 버티기엔 일주일도 안되는, 사흘인가 나흘인가의 일이 영, 그리고 당연스럽게도 복잡스러웠다. 본래부터 신경 쓸 것이 있으면 쉬이 잠에 들지 못하는 천성이 독이 될 지경이었다. 그야, 이계로 떨어진 일이란게 어디 보통 일인가. 숨 쉬는 것 만으로도 신경줄이 닳는다. 마땅히 가지는 위화감을 낯선 곳에서 온 탓으로 묻어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주변을 살펴야 한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타인을 인지하는 것도 꽤나 신경써야 하는 것이 내 천성이다. 와중에 지식적으로도 파악할 것은 많아서 줄어든 잠 대신 뇌를 혹사시켰으니, 지금 내 머리란 온통 쓰레기장이다.
거기다가 이 곳에서는, 조금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었다.
‘블롯, 이었던가.’
그 단어를 다시 떠올리고, 더욱 지끈거리는 머리에 인상을 찌푸리고 만다. 그럼에도 눈을 뜨고, 침대 맡 탁자에 두고 있던 매지컬 펜을 들어보았다. 푸른 빛의 보석은 그럭저럭 어두워져 있었다. 사고방식이 다른 곳에서 온 내 관점에서 그럭저럭이라는 건, 이쪽의 인물들에게는, 어쩌면 제법이라고 불릴 수준일지도 모르지. 대충 주머니에 쑤셔박고 다니며, 이런저런 것으로 ‘위화감’을 줄이는 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면 퍽 걱정을 들었겠다는 감이 있다.
그런 블롯, 이 세계에서 술자가─마법, 이라고 부르는 힘을 다루는 자가 마땅히 감내해야만 하는 업業과 같은 독소. 마법을 쓰는 것 뿐만이 아니라, 마법을 쓰는 자가 가지는 부정적 감정에도 세를 불리는 탁기. ─내가 태어난 세계에서 마魔가 차지하던 위치에 있는, 이 세계의 법칙. 그것을, 고려해야만 했다.
몸을 망치는 고통이야 익숙하다고 하면 익숙하긴 하다. 어쨌거나 본래 세계에서는 마기로 인한 변질증상까지 왔던 몸이니까. 그러나 그걸 좋아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별로 그런 성벽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이 블롯이란 것이 쌓이면 일어나는 증상도 문제였다.
오버블롯.
망가진 감각이 잘도 경고해댔다. 이것은 반드시 피해야하는 일이다. 블롯이 마魔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혹은 그 일부의 위치에라도 닿아있다면, 적어도 이 몸에는 그 오버블롯이란 것이 일어나면 안된다. 어지간히 우수한 마법사가 아니면, 그러고도 제법 조건을 채우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 그런대로 확률 낮은 일이라곤 하지만……. 아마, 나는 이쪽 기준으로 분명 이걸 일으킬 수 있는 존재일 것이다. 본래의 존재를 이 세계에 끼워 맞춘 이상 그렇게 된다. 합리와 불합리의 문제를 넘어, <나는 오버블롯에 도달할 수 있고> <오버블롯을 하면 그것이 튀어나온다.> 예지를 받은 듯한 확신이었다.
그러니까 이제 필요한 것은 충분한 휴식, 긍정적 감정을 부르는 일. 그러나 음식은 낯설고, 주변엔 예민해야만 하고, 운동은 이리 잠을 줄여선 심장에 무리가 가니 좋을게 없다. 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휴식이지만……. 나는 그 쯤에서 머리를 헤집었다. 생각이 많으니 잠이 줄어든다. 잠을 줄인다는 건 수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는 일인데도. 한숨을 푹 내쉬며 일단 기숙사 방에 딸린 욕실에 들어갔다.
따뜻한 물로 씻어 생각 좀 지우고, 잠을 자지 못하면 명상이라도 해야지. 오후에는 약속이 있었다. 그 전에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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