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누나가 궁금해

드림 전력 1회 | 냉커피 | 뱅선

HELLO WORLD by 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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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테이블이 가볍게 떨린다. 선오의 손이 습관적으로 테이블을 더듬는다. 진동벨을 찾으려 합판을 더듬던 손가락이 무의미했음을 깨닫는 건 찰나다. 녹은 얼음이 유리잔의 표면을 건드리며 맑게 잘가닥거렸다. 진작에 음료를 받고 진동벨은 카운터에 반납했다. 그럼에도 손이 먼저 움직였던 이유는 데이트 중 서로의 핸드폰이 울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로 다투거나, 따로 말을 나눈 적은 없다. 그저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각별했던 연인의 흔한 버릇이었다. 선오가 테이블의 표면을 훑었고, 제 핸드폰을 잠시 쥐었다가 다시 놓았다. 일련의 행동 뒤로 병찬이 비슷한 행동을 반복했다. 아, 미안. 내 거다. 기다란 손가락이 액정을 네 번 두드리고 위로 화면을 밀었다.

핸드폰이 울리는 일도 드문데, 액정에 오래 시선을 두는 일이 빈번할 리 없다. 종종 핸드폰을 뒤집어두는 걸 잊어 뜨는 알림에 시선을 빼앗겨도 급한 일이 아닌 이상, 곧장 대화로 돌아오는 게 애인의 패턴이었다. 그러나 병찬은 드물게도 핸드폰을 집어 든 뒤 화면을 오래 바라보았으며, 선오는 테이블 위 턱을 괴었다가 녹은 얼음을 빨대로 휘저었다. 고작 몇 분 동안 애인의 시선을 핸드폰에게 뺏겼다고 서운해하는 일은 20대 초반에 졸업했던 것 같다.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온전한 관심을 받고 싶단 욕구는 애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탈바꿈했다. 제 빈 잔과는 다르게 반쯤 남은 애인의 미숫가루를 쳐다보고, 잘 빠진 손가락에 새로 생긴 흉이 없나 살펴보고, 어느새 젖살이 빠진 볼이며 열이 식은 목덜미를 바라보다 다시 잔으로 시선을 돌린다. 마시는 게 더디다 싶더니, 채 섞이지 않은 가루가 얼음 아래로 뽀얗게 쌓여있다. 저거나 섞어줄까. 무심코 뻗은 손에 병찬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 누나 …… 진짜 미안. 잠깐 뭐 좀 보느라.”

“…… 아니, 재촉한 건 아니고. 니 거 제대로 안 섞여서 섞어주려고 그랬지. 중요한 거야? 방해 안 할게.”

“아냐, 중요한 거 아니고 작년에 기프티콘 받은 게 있는데, 유효기간 얼마 안 남았다고 해서.”

“뭘 받았길래 일 년을 방치했어.”

“커피.”

아아. 선오의 짧은 탄식과 병찬의 말이 겹친다. 이리저리 겹치는 것 없는 취향 중에도 유독 들어맞지 않는 게 있다면 카페 음료였다. 아아가 뭘 내려준다며 물처럼 달고 사는 선오와 다르게 병찬의 취향은 커피와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번거롭게 가격을 맞춰 다른 걸 먹을 성격도 아니었으니, 병찬이 받은 커피 기프티콘의 대부분은 자연스레 선오의 입으로 들어가는 꼴이었다. 일 년이면, 받고 까먹었나. 대수롭지 않게 흘려넘기려던 선오의 뒷덜미를 다음 말이 잡아챈다. 누나가 준 거. 선오의 눈썹이 작게 들썩거렸다. 내가 너한테 아아를 줬어? 자그마한 동공이 꼭 그리 묻는 것 같아서 병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작년에 누나가 준 거야. 뭐였지, 그냥 덥다고 그랬다가 받았었나?”

“작년 이 때…… 진짜 생각 안 난다. 왜 줬지. 나 이제 지난주 일도 기억 잘 못하는데.”

“뭘, 그러면서 챙길 건 다 챙기는데.”

“아무튼 그래서…… 왜 그렇게 오래 보고 있었는데? 먹지도 않는 거 줬다고 항의 표시?”

누님, 제가 그렇게 배은망덕한 놈으로 보이십니까? 아, 뭐. 가끔 조금. 뭐야, 나 삐져. 삐져라, 그것도 귀엽겠다. 엉성한 농이 두어 마디. 병찬이 입을 삐죽거리다가 먼저 웃음이 터지면 선오가 그 뒤로 실실거린다. 은근슬쩍 말 돌리네. 슬그머니 시선을 옆으로 피하던 병찬이 애꿎은 핸드폰 액정만 건드렸다. 말 돌리는 것 같으면 그냥 좀 넘어가 주지. 이내 화면이 꺼진 핸드폰이 뒤집힌 채 테이블 위로 향한다. 장난기가 완연했던 표정은 어디 가고, 열 없이 겸연쩍은 표정만 낯 위로 올라온다.

“그냥, 이때는 진짜 …… 내가 누나 안중에도 없었구나, 싶어서.”

“항의하는 거 맞는 것 같은데.”

“아니이, 좋다구. 그래서 지금 너무 좋다고. 그 소리 하는 거지.”

구라 같은데. 가느다랗게 뜬 눈이 꼭 뱀 눈초리다. 어떻게든 놀려먹으려고……. 병찬이 볼멘 목소리로 꿍얼거렸다.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의 뙤약볕, 귀를 울리는 매미 소리, 사람의 발목을 감아대는 아스팔트의 열기와 주머니에서 울리던 카톡 소리가. 고생했다는 짧은 카톡과 함께 덩그러니 전달된 기프티콘이. 미적지근한 스마트폰의 온기와 목덜미를 적시던 불쾌한 축축함이. 병찬은 아직도 그때의 묘한 쓴맛이 입에 남는 것 같아 혀를 찬다. 아무튼, 진짜 좋다구. 병찬이 제 컵을 들고 빨대를 물었다. 어, 야. 만류의 목소리가 무색하게 뭉친 가루가 한 움큼 목에서 터졌다. 근질거리는 목구멍에 병찬의 낯이 기어코 구겨졌다. 제대로 안 섞였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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