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황혼녘

1932년 2월 5일 금요일

사이퍼즈 릭 톰슨 드림

01

남자는 회랑 한복판에 서 있다.

그는 눈높이 조금 위에 걸린 세 폭 제단화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곳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이 으레 그렇게 하듯 고개를 비뚜름하게 치켜들고 있다가, 이내 눈을 돌려 액자 아래에 붙은 라벨을 바라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암굴의 성모. 목판에 유채. 이 그림은 함께 전시 중에 있는 나머지 두 점과 함께 밀라노 소재 산 프란체스코 그란데 성당의 제단부 장식을 목적으로 그려졌으며, 정교한 조각 장식이 들어간 액자에— *

단정하다 못해 버석거릴 것만 같은 서체로 적혀 있는 설명을 대강 훑던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려 버린다. 그는 미술사에 엄청나게 조예가 깊지는 않았으나 르네상스 거장의 그림 속 알레고리를 알아볼 수 있는 식견 정도는 갖추고 있었다. 푸른 옷의 성모와 아기 예수 그리고 세례 요한. 사람 키만 한 화판 속, 빽빽한 바위틈에 둘러 앉은 인물들 사이를 느리게 유랑하는 홍채와 달리 그 주인의 생각은 어느 교실 언저리에서 부유한다. 십여 년……. 아니, 벌써 이십여 년이 다 된 이야기다. 대전쟁Great War**이 끝나지 않았을 시절, 남자가 아직 소년일 적의 이야기이니까.

대서양 너머 구대륙은 꼬박 사 년 하고도 석 달을 넘게 전쟁으로 신음했다. 물론 소년의 모국은 전쟁이 3년 차로 접어들 때까지도 전선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있었기에 녹색 두 눈이 그 잔혹함을 직접 목도할 일은 없었다. 전시상황 특유의 검열 때문에 상황을 전해 듣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으므로, 그곳의 현실은 언제나 공세니 후퇴니 하는 단어들로 변모해 전신電信을 타고 바다를 건너왔다. 그리하여 소년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실체라기보다는 관념에 가깝게 느껴지는 말들로 지어진 교착 상태에 가까웠다.

그러나 얄팍한 전보용지 뒤편, 냉담하게 질척거리는 참호 속에서는 소년의 동년배 아이들이 매일같이 허비되고 있었다. 그들에게 여름은 비참했고 겨울은 엄정했다. 눈이 내리면 초소를 둘러싼 철조망에는 그을음이 녹아나 새카매진 물방울이 마디마디 맺혔다. 행여 적의 시야에 들게 될까 두려워 연기 한 점조차 쉽사리 놓아줄 수 없는 구덩이 속에서, 아직 체온을 잃지 않은 이들은 사그라들어가는 잉걸불 앞에 모여 썩은 장작 같은 손발을 녹이려 애썼으리라.

그 겨울에 소년은 교실 뒤편의 딱딱한 걸상에 기대 앉아 있었다. 열여섯이었는지 열일곱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여행을 시작하기 전의 일이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교실 중앙에서는 낡은 난로가 타들어가고 있었고 근처 자리를 꿰찬 애들은 폭폭대며 김을 뿜는 주전자의 훈기에 녹아내리기라도 한 양 발간 뺨을 하고서는 수마와 싸우고 있었더랬다. 교실을 휘둘러본 선생이 한숨의 끝자락에 사담을 꺼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르네상스의 3대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탈리아의 예술가들에 대해 들어본 적들 있지? 미켈란젤로, 다 빈치, 라파엘로 말이다. 잠시 178페이지로 돌아가 보렴. 왼쪽의 그림은 다 빈치의 그림인 <암굴의 마돈나>다. 오른쪽 건 역시 다 빈치가 그린 <암굴의 성모>고. 한 점은 파리에, 한 점은 런던에 전시되어 있지.

—그래서, 그게 뭐? 하고 생각할 즈음이면, 공교롭게도 꼭 시선이 스쳤다. 소년은 멋쩍게 웃었고 그의 역사 선생은 별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

두 그림이 비슷한 듯 묘하게 다른 게 보이니? 항간에 따르면 <암굴의 마돈나> 쪽이 먼저 그려졌는데, 의뢰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그려 내기를 요청하는 바람에 <암굴의 성모>라는 수정본이 생겼다고 한다. 다 빈치가 교묘하게 숨겨 놓은 메타포가 성당의 제단화로 쓰기에는 부적절했다나……. 유럽에서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파리에는 가볼 기회가 있어서 전자는 실물로 본 적이 있었단다. 두 점을 모두 보고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런던까지는 가 볼 여력이 안 났었지. 벌써 몇 년 전 일인데 그게 아직도 제법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구나.

조금은 권태로운 듯 평이한 어조로 따라붙는 말마디들이 반 이상 흘러갈 즈음에야 소년은 선생이 언급한 페이지를 찾아낸다. 얄팍한 갱지 면의 아래쪽 절반이 온통 명화의 모사본으로 채워져 있었다. 조악한 삽화는 거장의 붓 터치를 절반도 옮겨 오지 못한 채 다만 탁한 먹내만을 풍겼고 두 그림이 다르긴 한지조차 사실상 가늠이 불가능했지만, 그때의 소년에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가 작품을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되는 날까지는 아직 이십여 년에 가까운 시간이 더 버티고 있었다.

근시일 내로 상황이 나아져서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좋겠구나. 너희들에게도 마찬가지고. 나보다는 살날이 길게 남아 있는 녀석들이니 아무래도 가능성이 더 높지 않겠니? 그 전에 전쟁도 끝나야겠고, 너희가 대서양을 건너갈 깜냥이 될 만큼 충분히 운이 좋아야겠지만 말이다.

선생은 소년에게 눈을 한 번 찡긋하더니 - 마치 그가 몇 년 후, 바로 그 교실에서 파리 한복판으로 날아가게 될 소년을 알아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 짝, 하고 박수를 쳐서 여즉 졸고 있던 아이들을 깨웠다. 사담이 길어지기를 바랐던 이들이 볼멘소리를 서슴지 않고 수마를 이기지 못했던 이들이 아연한 낯을 가다듬는 중에도 줄곧 소년은 178페이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언젠가 대서양을 건넌 그가, 이국의 복판에서, 어느 겨울의 역사 시간에 스쳐 간 그림의 원본 앞에서 그러듯.

그림 앞에 선 남자는 더 이상 그때의 어린애가 아니다. 여행을 떠나 보기를 당부한 그때 그 역사 선생도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은사께선 결국 런던에 발을 딛지 못하셨다. 이듬해 겨울,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독감이 그 마지막 숨을 앗아갔기 때문이었다.) 소년 시절의 그가 교과서를 하릴없이 들추는 동안 참호 안에서 꺾여나간 그 또래의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애들의 귓가에 애국이니 책임이니 하는 것들을 속삭여 전선으로 떠밀고 그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한 어른들이 분명히 있었으나, 그들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강물이 제아무리 느리게 흐른들 절벽이 깎여나가지 않는 일은 없듯 그들 중 누구도 시간의 물결이 빚어낸 변화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끝에 마침내 도달하게 된 회랑, 성모와 성자와 최후의 예언자 앞에서 남자는 다름아닌 그 교실을 되돌아본다. 기묘할 정도로 선연하게 남은 상 속의 김이 서려 희게 번진 유리창과 눅눅한 종잇장을 떠올린다. 누군가는 그때를 일컬어 학창 시절의 예사로운 추억이라기보다는 모종의 예언에 가까운 순간이라고 할 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남자 본인도 그 비슷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겨울을 곱씹을 줄 알게 되었고, 그제야 비로소 전장을 떠도는 고독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때의 알지 못함이 그의 잘못은 아니었으나 남자는 때때로 그가 과거의 무지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하곤 했다.

허나 어떤 사념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돌아볼 줄 알게 된 자는 더 이상 소년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고 하나,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남자는 그런 생각들이 그를 오래 붙들어매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법을 이미 배웠다. 언제나 여행을 즐겨 온 자에게도 한시바삐 끝내고 싶은 여행이란 있는 법이었고, 한낱 우연을 치장하는 데 기력을 허비하기에는 할 일이 지나치게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는 기억의 편린 앞에 예언이라는 말을 덧씌우느니 그냥 입을 다물어 버리는 편을 택했다.

예언이라니, 애초에 그는 그런 거창한 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남자는 과거에 미사여구를 덧칠하기보다는 낯선 풍경 속에서 희미한 먹내의 잔흔을 더듬어 찾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설령 그 풍경이 그가 나고 자란 도시에서 삼천오백 마일*** 떨어진 곳의 것일지라도. 쉬이 돌아갈 수 없음에 그리움이나 회한 따위로 젖어 있다 한들, 단지 그곳에 서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운이 좋았다는 걸 여행자는 이제 안다.

02

남자는 여전히 회랑 한복판에 서 있다. 거장을 뒤로 하고 돌아선 지도 벌써 삼십 분쯤 되었으므로, 더 이상 오래전의 겨울을 불러오는 회랑은 아니었다. 아직 녹지 않은 손끝을 매만지면서 그는 여상하게 네 세기를 가로질러 걸었다. 1500년대 초부터 1870년대까지,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 후기까지 - 멀게만 느껴지는 과거에서부터 출발해, 손을 뻗었을 때 어쩌면 닿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눈에 익은 과거까지. 남자가 발길을 옮길 때마다 시선 끝에는 다른 그림이 스쳤고 그 너머에서 볼 수 있는 풍경 또한 변했으며, 풍경들마다 산개해 있는 시간의 흔적 역시 형태를 조금씩 달리했다.

그 사이를 거닐 때 남자는 기분이 썩 좋다고 생각하곤 했다. 크게 한 걸음을 뗄 때마다 달라지는 시간의 결은 그에게 으레 신선한 변화로 닿았다. 그는 말 그대로 공간을 뛰어넘을 줄 아는 사람이었고, 세간에서는 남자를 일컬어 어디든 갈 수 있는 자라고 했다. 허나 화폭 속에 멈춰 세워 둔 장소는 지금 당장 게이트를 열어 발을 내딛는다 한들 그때의 그곳과는 분명 다를 터였다. 어떤 기록의 형태로 시간의 흐름에서 유리된 풍경은 액자가 걸린 회랑을 두 발로 걸어서야만 비로소 닿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능력이 있든 없든 간에, 만약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절대 똑같이 다다를 수 없으나 동시에 똑같이 다다를 수밖에는 없는 공간인 셈이었다.

역설을 발끝에 매단 채 남자는 걸음을 마저 옮긴다. 낡은 구두 뒤축이 대리석 바닥과 부딪혀 내는 무딘 소리와 먹먹한 잔향이 그의 뒤를 따른다. 간혹 손목 언저리에서 한결같이 째깍거리고 있는 태엽의 마찰음이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등장하기도 한다. 느린 발걸음과 꼭 일 초짜리의 눈금과 미세하게 빨라졌다 제자리를 찾곤 하는 박동으로— 여행자를 에워싼 서로 다른 주기들은 때때로 맞물렸다가 제각기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우연을 가장한 규칙적인 합일을 거듭하면서 그를 어떤 순간에게로 인도한다.

그때에 던진 시선이 어떤 변화들을 수반했는지 곱씹게 되는 날이 남자에게도 언젠가 올 터였다. 미처 거두지 못한 눈길이 어떤 대화를 이끌어냈는지, 이제 막 시야에 들어오려 하는 새까만 인영을 그가 그래서 몇 번이나 다시 마주보게 되었고 몇 번이나 궤적을 겹치게 되었는지 같은 것을 생각하는 날이, 불과 몇십여 분 전에 어떤 겨울의 정경을 되새겼던 때만큼이나 선득하게 떠오르리라. 생각이 평소보다 길어지는 날에는 답잖게도 운명 같은 거창함에 기대어, 그가 순간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순간이 그를 찾아온 것이 아닌지를 고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순간의 반향을 남자는 모른다. 단초가 되어 줄 시선마저도 지금으로서는 제 방향을 찾지 못했다. 단지 시계의 초침만이, 그리고 시간만이, 으레 그래 왔던 방향으로 흘러간다. 회랑의 마지막 그림까지는 꼭 열두 걸음이 남았다. 순간은 그 앞에 서서 남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기다림인지도 모르는 채로.

03

“미스 코르뷔지에, 점심은?”

“오늘은 잠깐 집에 돌아가서 먹고 올까 해요. 들어오는 길에 전시관도 들르고요.”

“또? 신기하다니까. 암만 그래도 그렇지 직장에서 하는 전시에 점심시간까지 쪼개서 투자하고.”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사실 저보다 더 모네 작품 좋아하시잖아요? 이따 뵈어요. 점심식사 맛있게 하시고요.”

04

여자는 시선을 알고 있다. 누군가 그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기에 그는 과히 예민한 사람이었고, 이런 시선 역시 한두 번 겪어 보는 일이 아니었다. 1932년의 런던에서 그와 같은 이는 언제나 돌아갈 곳이 따로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기 십상이었다. 그 사실이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전후의 대도시에서 무관심이란 곧 시대정신과도 같다고 하나, 겉보기부터 이질적인 이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여자는 그 도시에 머무르고 있었고 또 어느 정도는 그 도시를 사랑했다. 그가 도시에 가지고 있는 애착은 가끔 가다 머무르는 시선까지도 웃어넘길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또한 여자는 도시야말로 안전에 가장 가까운 곳임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생에 단 한 순간도 낯설지 않았던 적 없는 이에게 시선이란 그림자와도 같아서, 그만이 오롯이 혼자 남지 않는 이상은 다른 어디를 찾아간들 언제나 그의 뒤를 쫓을 테였다. 그러나 떨쳐낼 수만 있다면 그 시선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는 상관없었으므로, 여자의 거처는 언제나 숨고, 흩어지고, 녹아들기 쉬운 곳으로 귀결되었다.

요컨대 그처럼 낯선 이들이 머물기에는 이 도시만큼 알맞은 곳도 없었다.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 없이 바삐 걸으며 누구도 타인을 길게 돌아보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누구 하나가 훌쩍 사라진대도 큰 문제가 없이 굴러갈 것만 같은 무언가. 원한다면 언제고 황혼녘에 스며들듯 자취를 감출 수 있을 것만 같은 곳. 섣불리 공동체라 일컫기에는 삭막한, 어수선함이 뒤채는 거대한 그 도시에서, 여자는 가결可缺의 조그만 톱니바퀴로 남기를 자청해 왔다.

그리고 두 세기만에 - 아니, 어쩌면 셋일지도 - 무뎌져 헐거운 톱니 끝을 건드리고 지나가는 것이 있다. 질량을 가진 실체는 아닐지언정 분명히 존재하는, 그래서 오래 멈춰 있던 시계추를 다시금 움직이게 하는 것, 그래, 머뭇거릴지언정 끊기지 않는 시선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다.

여자의 일터는 흘러간 시간의 잔흔 외의 그 누구도 아주 머무르고자 들어서지 않는 곳이다. 사람들은 그곳에 여상하게 들어와 원하는 만큼 배회하다가 날이 저물면 걸음을 돌린다. 대리석이 깔린 회랑은 언제까지나 전시를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고, 그곳의 주인공은 벽에 걸린 명화나 그 복판의 조각상이지 클립보드를 들고 종종대는 학예사가 아니다. 그 학예사가 서있는 곳이 모네의 작품 근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눈길은 그것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 여자의 얼굴 어드매를 배회한다. 여자는 그것이 달갑지 않다. 그렇다는 내색을 따로 하지는 않는다. 달갑고 달갑지 않은 것과 별개로 눈길이 따라붙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지나치게 길어지지만 않는다면, 두어 번 힐끔대는 것쯤이야 으레 있는 일 정도로 뭉개버릴 수 있으니 상관없었다. 온유하지만 분명히 낯선 것이 그의 이곳저곳을 - 그러니까, 보기 드물게 새까만 머리꼭지나, 무딘 선으로 그어놓은 것 같은 둥근 눈매 끝 같은 부분들을 - 스치는 것까지도 여자는 알고 있다. 이 또한 겪어본 적 있는 일이기에 꾸며낸 무지로 일관할 뿐이다.

허나 따라붙는 것을 무시하는 데에도 한계는 있다. 눈에 띄지 않을 것을 신조 삼아 흘려보내는 일상일지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위화감을 직시하고자 하는 충동을 눌러 참는 것은 여자에게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게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것은 그에게 생존을 위한 지침으로 기능해 왔다. 때때로 시선들은 눈에 띄게 튀어나온 모서리에 겨눠지는 정과 망치를 매달고 올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쥐고 있던 클립보드에서 끝내 시선을 들어올린다. 달갑잖은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는 알아차리지 못한 척 자리를 뜨는 것이 알맞을 때도 있었고 곧은 눈으로 마주보는 것이 알맞을 때도 있었으나, 자신이 처한 상황이 둘 중 어느 쪽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마주봄이 필요했다.

이어지는 눈맞춤들은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던 양 당연하게 닿는다. 한 번, 깜빡 하고 스치듯 바라본 건너편에는 겨울의 런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동그란 신록이 자리한다. 적의의 낌새는 느껴지지 않는다. 여자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두 번째로 시선을 든다. 이번에도 녹색 두 눈은 거기에 있다. 눈이 마주친 찰나 멈칫하고 벽에 걸린 그림으로 옮겨 가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곳에 자리한다. 두 번의 눈맞춤 사이에 도망칠 만큼 가볍지는 않은, 끈질기지만 악의는 없는 호기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여자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상대를 바라보기로 한다.

마지막, 그러니까 삼세 번째에서, 여자는 눈을 들었을 때 남자가 사라져 있기를 바라고 있다. 특별히 악의가 있어서 하는 생각이라기보다는 그냥 성가신 일이 하나라도 줄었으면 하는 바람에 가까웠다. 그는 이제 막 무난한 금요일 오후에 도달한 참이다. 남은 업무만 바짝 쳐내면 금세 토요일이 올 테였고, 특별한 일 없이도 기다려지는 것이 주말이었으며, 점심으로 먹은 샌드위치가 적당히 맛있었던 데다, 날이 조금 춥긴 해도 눈발이 날리지는 않아 기분이 썩 괜찮은 편이었다.

여자는 이 기분을 망치지 않은 채 가능한 한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바람이 무색하게도 눈은 어김없이 마주치고 그의 인내심도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그러니까, 이 눈길은, 순순히 넘기기에는 지나치게 길었다.

05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거라도?” 조금 뾰족해진, 그러나 예의를 잊지는 않은 목소리로, 여자가 말한다. 그는 자신이 날을 세웠다는 걸 안다. 일부러 그랬으니 당연한 일이다.

여자는 지금 그가 편안하지 않다는 것을 숨길 생각이 없다. 사과를 받을 생각은 아니더라도 - 애초에 그런 시선에 사과가 따라붙는 일은 정말 드물었다 - 계속해서 그를 바라보지는 못하게 만들 셈이다. 남자는 여자가 날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어렵잖게 알아차린다. 아직은 알지 못하지만, 그들은 거의 서로만큼이나 예민한 이들이다.

“아, 미안하오. 너무 오래 바라보고 있어서……. 무례한 짓이었던 것 같군.”

깔끔한 사과와 더불어 두 사람 사이에는 잠깐의 침묵이 맴돈다. 남자는 상황을 조금 더 우아하게 무마할 방법을 찾는 중이고, 여자는 기대하지도 않았던 말에 조금 놀라는 중이다. 사과는 바라지도 않지만 눈은 확실히 돌리게 하겠다는 처음의 의도는 순식간에 잊힌다. 찰나간 동그랗게 뜨였던 눈이 예사롭게 돌아올 무렵에 남자는 새 화제를 찾아낸다. 

“여행 중이냐고 물어볼까 했는데,”

“손에 든 걸 보니까 아닌 것 같다고요? 맞아요. 종종 오해받지만 점심 시간이라 전시장까지 내려온 학예사지 관광객은 아니랍니다.”

“그림에 뭔가 문제라도……?”

“오, 아뇨. 그림에는 아무 문제도 없어요.” 여자는 곧바로 덧붙인다. “학예사긴 하지만 업무 중은 아니고, 모네를 좋아하는 것뿐이니까요.”

“실례가 안 된다면 설명을 부탁해도 괜찮겠소?”

“그럼요. 음,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으려나……. 1870년, 그러니까 모네가 서른 살 때 그린 그림이에요. 으레 그랬듯 캔버스 위에 그려진 유화고. 물감 사이에 모래 알갱이가 좀 섞여 있다는 점이 특이한데, 기법적 특성이랄 만한 건 아니고 바닷바람에 날려 온 게 약간 묻은 걸로 추정하고 있어요. 왼쪽에 가장 크게 그려진 여자 있죠? 아내인 까미유가 모델을 선 거예요.”

남자는 잠자코 서서 설명을 듣고 있고, 여자는 손에 들린 클립보드 모서리를 매만지면서 말을 이어나간다. 까만 종이로 덧대어진 표면은 손을 어지간히 탄 게 아닌 듯, 미술관 특유의 은근한 조명 아래에서도 반들반들하게 윤이 난다.

“둘이 결혼한 게 1870년 6월인데 이 그림이 그려진 건 그 직후라고 알려져 있어요. 그도 그럴 게, 배경도 그려진 곳도 신혼여행지거든요. 아까 모래 얘기 했죠?”

“그랬지. 바닷바람에 날려 왔을 거라고.”

“해변에서 모델을 직접 보면서 그리고 있었다는 증거나 다름없죠. 그래서 이 둘이 신혼여행을 어디로 갔느냐면, 트루빌이라고, 프랑스 북부에 있는 항구 도시인데……. 아마 노르망디 근교였나 그랬을 거예요. 인물들 뒤쪽으로 바다가 보이죠? 사람들도 더러 있고. 산책하기 좋아서 지금도 사람들이 꽤 몰리는 해변이에요.”

"제법 잘 아는 것 같은데, 혹시 직접 가 본 적도 있소?"

"음, 맞아요. 가본 적 있죠. 재작년이었나."

이 말은 반만 사실이다. 여자가 그곳에 가본 적이 있는 것은 맞다. 재작년은 아니었다. 정확한 숫자를 따져 얻자면 거기에 족히 열다섯 배쯤은 더해야 하지만,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을 뿐이다. 이 도시에 능력자들의 존재를 모르는 이는 없었으나 - 어쨌거나 이곳은 런던이었다 - 심지어 그곳에서도 시간 능력자는 한없이 신중한 편이 더 나았다.

”여행을 자주 다니나 보오.”

“자주는 아니에요. 순전히 운이 좋아서 몇 번 오갈 수 있었던 정도죠.”

“트루빌은 어땠소?”

“뭐, 이런저런 일이 많긴 했지만……. 여느 여행이 그렇듯이, 돌아오고 난 후에는 뭐든 즐겁지 않나요?”

남자는 순간 웃음을 참지 못한다. 정말로 그랬던 까닭이다. 십 대 후반부터 지금껏 그는 줄곧 여행자로 살아왔으며, 지금껏 거쳐온 여행들에는 평탄하지 못한 날들도 분명 섞여 있었으나, 전혀 즐겁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지요. 아주 긴 여행 후에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지난번에 내가 떠났던 긴 여행은 그랬었어요.”

여자의 얼굴에는 어느덧 엷은 미소가 떠올라 있다. 꼭 반틈만큼 따스해진 시선으로 화폭을 바라보는 옆모습은 틀 밖의 관망자라기보다는 그림 속의 해변을 거닐고 있는 사람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가 어떤 기억을 돌아보는 중이리라고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마 여자에게도 그만의 공간이 있을 터였다. 여행자에게 겨울의 교실이 있듯이.

남자는 그를 기다려주기로 한다. 젊은 학예사는 잠시 부유하지만 늦지 않게 돌아온다. 반 걸음 떨어진 현실에 다시 발을 딛고 섰을 때, 그는 확실히 웃고 있다.

“후, 를 그렇게 발음하는 걸 보면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요, 당신.”

“맞소. 나 또한 여행 중이지.” 또한? 여자는 하마터면 반문할 뻔한다. “나고 자라기는 미국에서 자랐소. 아마 눈치챘겠지만.”

“이 도시에는 얼마나 머무를 예정인가요?”

“글쎄. 아직 정해진 건 없지만, 이 도시에서의 내 책임을 다할 때까지가 아닐까 싶소.”

여자는 잠시 말이 없다. 목 안쪽에서 뭔가가 툭 끊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책임이라는 단어에는 언제고 달갑잖은 기억을 물어 오는 재주가 있었다. 아니, 언제고 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은 표현이다. 달갑잖은 기억은 분명 거기 있었지만 내내 맴돌지는 않았다. 그 목덜미를 물어 온 건 아마 여행이었고 도시였을 테다.

그러나 이것도 저것도, 지금 그 앞에 서 있는 선량한 여행자에게 말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며, 그가 알아야 할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혼자만이 알고 있는 맥락 때문에 상대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졸업할 때가 되고도 남았으므로, 여자는 표정을 매끈하게 다듬는다. 목소리를 가다듬을 필요까지는 다행히 없다. 미소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대화 역시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책임 외의 기약이 없는 여정이라니, 여행 맞아요? 출장 아닌가?”

“목적 없이 시작한 것이니 아직은 여행이라고 이름 붙여도 되리라고 생각하오.”

“당신 재미있는 소리를 하네요? 여유가 난다면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갤러리에 들러요. 또 마주칠지도 모르니까. 그땐 작별 인사를 해 줄게요, 미스터—”

“—톰슨. 그냥 릭이라고 불러 주는 편이 편하오만.”

“좋아요, 릭. 점심시간이 끝나 가서 이만 올라가 봐야겠네요. 런던에서 모쪼록 즐거운 시간 보내기를 바라요.”

여자는 가벼운 웃음과 함께 인사를 내려놓고는, 이내 여행자를 뒤로하고 걸어간다. 아직 이름을 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가 깨달을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다시 만나리라는 기대가 없어서였는지, 혹은 일정에 쫓기고 있어 여유가 나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단순히 잊어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어쩌면 셋 모두일지도 - 여자는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해 준 바가 없다. 

“잠깐, 이름이 뭔지 정도는 알려줘야—”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높여 부를 때쯤이면 여자는 이미 회랑의 삼분지 일쯤만 남겨두고 있다. 다른 관람객들이 있었다면 눈총깨나 받았을 행동이지만 평일 오후의 갤러리는 다행히도 한산하고, 돌아볼 사람은 한 명뿐이다.

아주 못 들었나 싶어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에야 여자가 뒤를 돌아본다. 상체만 반쯤 틀되 걸음을 멈추지는 않은 채로, 그는 눈을 한 번 가볍게 찡긋하더니 클립보드 끝으로 캔버스 쪽을 가리키곤 - 적어도 남자는 그가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 함께 보고 있었던 그림이 여자의 이름과 대관절 무슨 상관인지는 알 수 없었다 - 걸음을 마저 옮긴다.

그리고 남자가 다시 돌아봤을 때, 회랑에는 의문에 휩싸인 여행자 한 명과 그림들만이 남겨진다. 순간은 이미 그를 지나쳤다. 다음 만남까지는 아직 얼마간이 남아 있다. 멈춰 있던 톱니바퀴가 느리게나마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으므로 질문에 대한 답은 머지않아 얻게 될 테였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앞으로 무슨 일들이 그를 찾아올지 남자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다. 미래는, 심지어 시간을 뛰어넘을 줄 아는 이에게마저도, 어느 정도는 미지의 영역이었고 앞으로도 쭉 그럴 터였다. 남자에게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반향은 그의 등 뒤에서 이제 막 첫 발을 뗀 참이다. 그러니 그때에 그가, 마치 무언가를 가늠하기라도 하려는 양 손목시계를 들여다본 것은 지극히 시의적절한 우연에 불과했으리라.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설령 그것이 이국의 복판에 얼기설기 지어올린 무언가에 불과할지라도.


* 런던 내셔널 갤러리 웹사이트의 설명을 번역해 온 것

** 제 1차 세계 대전을 일컬음 -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의 시점을 차용했기 때문에 당시 널리 쓰이던 용어를 선택하였음

*** 약 5600km. 미국 동부 연안(뉴욕 시 내지 그 근교 어드매 정도로, 임의로 설정한 값)과 런던 사이의 거리

본문에서 릭이 보고 있었다고 묘사된 두 번째 그림은 요런 그림입니다.

클로드 모네, <트루빌의 해변>. 캔버스에 유채. 1870년. 38 × 46.5cm.

더불어 본문에 대화식으로 나오는 설명들은……. 전부 사실입니다! 여담이지만 이 그림은 1924년에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매입했기 때문에 1932년 2월경에도 정말로 소장되어 있었을 겁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