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패러디] 나쁜 주술사의 꿈 9

“진짜 해보자 이거지?”

고죠의 분위기가 변하자 나오야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손에 들린 무언가는 바깥으로 나오자 점점 크기를 키워갔고 제 크기를 되찾은 애벌레 형태의 주령은 나오야의 팔을 감싸며 입 밖으로 주구를 뱉어냈다. 두 개의 주구를 손에 쥔 나오야는 주령을 다시 작은 크기로 줄여 주머니에 넣었다. 고죠는 나오야가 본인이 무하한을 발동시킬 동안 일부러 공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자신 또한 아무 짓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기다려 주었다. 주구를 꺼낼 때 혹시나 희령 같은 장난감을 꺼낼 경우 그냥 같이 죽을 각오로 주력을 터뜨려 자폭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다행히도 나오야가 꺼낸 주구는 평범한 특급 주구였다. 

토우지의 만리 사슬과 희령의 단도 일섬. 나오야는 사슬 중간에 단도를 묶은 후 고죠를 향해 손짓했다.

“들어와라.”

*

“내가 당주가 될 기다.”

희령은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빨간 코 끝을 하고 눈물을 흘리던 소년을 기억한다.

“내가 당주가 돼서, 두 사람 도움 없이도 모두가 자유로운 젠인을 만들기다.”

그때의 맹세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지난 일 년 동안 젠인 나오야는 그 누구보다 혹독한 훈련을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있다면 어린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냐며 경을 칠 정도로. 그런데도 나오야는 견뎌냈다. 토우지의 주구에 손 발이 잘려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술식 훈련 중 과부하를 느껴 온 몸에 피를 다 토해내며 괴로워하면서도.

토우지에게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체술을 배우고, 희령에게는 그 누구라도 지켜낼 수 있는 반전술식을 배웠다. 타고난 상전 술식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더 효율적인 전개와 강한 출력을 위해 밤 날이 새도록 여러 술식이 적힌 문서를 탐구하고, 시도하며 실패와 성공을 거듭했다.

나오야가 타고난 술식은 분명 다른 가문의 상전 술식에 비해 약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오야의 재능은 고작 그런 데 담겨 있지 않았다. 젠인, 고삼가, 상전술식 그런 하찮은 부분에 가려져 있던 진짜 재능.

나오야는 그 어떤 주술사보다도 지독한 노력의 천재였다.

“너희도 배워.”

희령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두 사람은 고죠보다 나오야의 싸움에 더욱 집중하고 있었다. 

모든 주술사는 미쳐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젠인 나오야라는 주술사는 아마 노력에 미쳐 있는 거겠지. 희령은 대련 도중 처음으로 토우지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힌 나오야의 모습을 떠올렸다.

한 쪽 팔이 날아간 상태에서 나오야는 겁도 없이 토우지의 주구를 이빨로 물어 막아낸 후 나머지 팔로 관자놀이를 가격해 상처를 냈다. 무식한 방법에 형편없는 모습이었지만 그날은 토우지의 입에서 처음으로 칭찬이 나온 날이었다.

“이제야 좀 쓸만해졌네.”

투사주법에 반전술식을 응용한 기술을 선보였을 때는 흔치 않게 희령이 당황한 날이었다. 분명 눈앞에 있던 상대가 저 멀리 사라졌다. ‘1초 되감기’ 투사주법을 사용하기 전 위치로 복귀하는 나오야의 오리지널 술식이었다.

고죠가 대련 도중 투사주법의 약점을 찾아내지 못한 이유도 거기 있었다. 투사 주법의 가장 큰 약점은 ‘어떠한 이유든, 이미 정해진 경로를 중간에 절대 취소하지 못한다.’ 는 점. 나오야는 그 부분을 반전술식으로 극복했다. 자신의 술식에 반전을 걸어 이미 실행된 움직임을 취소시키는 ‘일시 정지’ 정지된 사이에는 새로운 경로를 그린다. 이 또한 나오야의 오리지널이었다.

“나는 주술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신체 능력의 향상은 자연스럽게 투사주법의 위력을 키웠다. 일반 주술사의 한 걸음보다 아득히 먼 한 걸음이 가능하다. 이 의미는 나오야가 투사주법으로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상상이 가능한 정도를 벗어났다는 뜻이었다. 굳이 24프레임까지 가지 않아도 그 절반도 되지 않는 움직임으로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었으며, 온전히 사용할 경우 그 속도는 토우지나 희령 정도가 아니라면 결코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정도였다. 오롯이 나오야의 신체 능력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물리법칙을 무시할 수 없다는 페널티 또한 통하지 않는다.

현재 젠인 가문 내에서 당주를 포함하더라도 나오야를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 저게 바로 진짜 주술사가 아니지 싶다.”

한계를 뛰어넘는다.

나오야가 날뛰는 모습을 보며 뿌듯했지만, 오늘 소식에 제일 기뻐할 사람은 토우지가 분명하다. 일섬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설마 나오야의 주머니에서 무기고 주령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 아저씨 대체 얼마나 신난 건지. 예정된 의뢰도 때려치우고 고죠 도련님 처맞는 모습을 본인이 직접 봐야겠다며 따라오겠다는 걸 간신히 말렸다. 그러나 당연히 나오야가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가진 건 희령도 마찬가지였다.

“어어?”

괴상한 소리를 내는 게토와 대비되게 희령은 웃었다. 무하한을 상대로 한 나오야가 인을 맺었다. 

“시포월궁전時胞月宮殿”

*

그곳은 바다내음이 물씬 풍기는 어느 전각(殿閣) 안이었다.

나무로 이루어진 내부와 달리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를 한참이나 보던 고죠는 뒤늦게 자신이 나오야의 영역 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식간이었다. 나오야는 가뜩이나 까다로운 움직임에 어디로 뻗을지 모르는데다 끝도 보이지 않는 이상한 사슬 주구로 고죠를 압박하더니, 능숙한 몸놀림으로 사슬을 두 줄로 짧게 잡으며 그 중간에 달린 단검으로 무하한을 내리쳤다. 그 박력이 얼마나 거셌는지, 순간 뚫리는 줄만 알았다. 평소라면 생각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인데 이틀 사이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도 당하다 보니 저절로 경계심이 생겼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무한한은 뚫리지 않았다. 사실 당연한 결과였지만 어쩐지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 자존심이 상했다. 일섬의 예리한 칼날을 바라보던 나오야는 아쉽다는 듯 칼날을 매만졌다.

“정이 담긴 주구로도 안 되나, 까다롭구먼.”

그야 당연하지, 무하한은 최강이니까. 희령의 어처구니없는 술식 때문에 유일하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무하한은 현존하는 최강의 술식 중 하나였다. 나름 비장의 무기라고 준비해 왔을 텐데 안타깝게 됐다. 고죠는 통하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공격하는 나오야의 공격을 무한한으로 모두 막아냈다. 그래 이게 맞다. 그동안이 이상했을 뿐. 희령이 아니라면 고죠를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다.

확신에 들어찬 고죠가 호기롭게 출력 최대 창을 준비하고 있을 때, 고죠는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 절망하고 있어야 하는 나오야는 계속해서 실패하는 공격이 무색하도록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이다.”

그 표정에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이 상황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자신의 영역 안에서 더욱 여유로운 태도로 서 있는 나오야를 향해 고죠가 물었다.

“너 몇 살이야.”

“아직 생일이 안 지나가, 열넷이다.”

생일이 지나면 올해로 열다섯이니, 고죠보다 한 살 어리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영역 전개? 게다가 이 무지막지한 영역은 대체 뭐란 말인가. 어느새 무하한이 사라진 고죠는 육안으로 나오야의 영역을 읽어내리며 무식할 정도로 단순하지만 강력한 필중효과에 혀를 내둘렀다. 고죠는 물론 주술사로서 최강의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아직 영역전개까지 익히진 못했다. 감은 잡았지만 무하한이란 복잡한 술식만큼이나 그 술식을 바탕으로 한 영역을 만들어 낸다는 게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나오야는 고죠 보다도 어린 나이에 이토록 완벽한 영역을 만들어 냈다. 분명 한 두 번 우연히 성공해 본 게 아니라 반복해서 연습해 온전히 자기 술식으로 만든 게 분명하다.

어차피 이 안에서는 고죠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투사주법도 모르는 데다 안다고 해서 나오야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없었다. 이미 동작 자체가 탈 인간 급인데 거기에 세포 단위라는 치트키까지 등장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나오야에게도 딱히 공격 의사는 없어 보였다. 나오야는 길게 늘어진 사슬을 정리하다 말고 입을 열었다.

“사토루군이 쓰는 무하한에는 약점이 있다.”

“뭐? 그게 뭔데?”

자신도 모르는 무하한의 약점을 저놈이 어떻게 알고 있지? 하지만 그 상대가 젠인이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그 가문은 고죠 가를 지독히고 싫어하니까. 물론 이쪽도 마찬가지고. 나오야는 예상외로 요구하는 조건도 따로 없이 순순히 답해 줬다.

“무하한은 사토루군의 차원에 있는 존재의 공격만 막을 수 있다. 영역 밖의 현실 세계나 사토루군의 영역이라면 사용할 수 있지만, 여기는 내 영역. 즉 사토루군의 차원이 아닌 내 차원이라는 말이다.”

무하한은 상대의 영역 안에서 방어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런 뜻이었다.

충격이라면 충격이고, 허무하다면 허무하다. 그러니까 자신 또한 영역 전개를 통해 이 영역을 깨지 못하면 그냥 넋 놓고 처맞아야 한다는 소리잖아.

“와, 진짜 싸울 맛 안 나네.”

이게 무슨 대련이냐며 툴툴거리는 고죠의 착각과 다르게 나오야에게 이 얘기를 해 준 사람은 젠인 가문이 아닌 희령이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몰라도 희령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보는 나오야는 확인을 위해 영역 전개를 사용했고, 그 결과 희령의 말은 사실이었음이 증명됐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게 주술사간의 생사결이라면 모를까 대련 중에 상대가 사용하지도 못하는 기술로 손발을 묶어 버리는 건 나오야의 취향도 아니었다.

“니 말이 맞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영역을 해제할기다.”

“괜찮겠어? 밖으로 나가면 털끝 하나 못 건드릴 텐데.”

자신이 불리한 와중에도 숙이지 않는 저 오만한 자존심. 나오야는 싫지 않았다. 처음부터 싸우러 온 게 아니니까.

“내 말했지. 나는 여기 반전술식을 증명하러 온 기라고.”

싸우면서 깨달았다. 고죠의 반전술식이 어디가 잘 못 되었는지. 희령처럼 주술의 흐름을 읽는 눈 같은 건 없었지만 적어도 자신이 사용하는 술식의 오류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나오야가 알아챌 정도라면 희령은 진작 문제를 파악했을 터. 그런데도 말해주지 않았다면 이건 나오야의 몫이라는 뜻이다. 보조 교사. 그 이름값에 걸맞게 행동할 수 있도록.

“어디 한 번 해봐.”

할 수 있으면. 나오야가 스스로 영역을 깨트리자, 밖으로 나온 고죠는 재빠르게 무하한을 펼쳤다.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듯 기세등등한 얼굴 앞에서도 나오야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설령 일방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라도 힘껏 여유로운 척해야 한다. 그게 바로 강자의 태도였으니까. 희령의 말버릇을 속으로 읊조리며 나오야는 땅을 박차 뛰어올랐다.

사슬이 고죠의 움직임을 봉쇄한다. 그 위로 허공에 머물던 나오야가 고죠의 어깨를 밟아 깊숙이 땅에 꽂아버린다. 사슬을 당기자 따라오는 일섬을 순식간에 풀어낸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단검 앞에서도 고죠 샤토루의 표정은 장난스럽다. 한 손으로 일섬을 잡아챈 나오야는 그 어느 때보다 황홀하게 웃었다. 처음부터 일섬은 공격용으로 빌린 게 아니었다.

“무하한을 깰 수 없는 술식이라고 누가 정의했는데?”

그런 정의 따위 얼마든지 깨트려 온 나오야가 말한다.

일섬을 휘두르는 대신 입에 문 나오야가 두 손을 마주치고 그대로 고죠 사토루의 새하얀 머리통을 잡았다. 경악으로 물드는 얼굴을 기다려 줄 자비는 없다. 나오야는 그 상태로 자신의 머리를 이용해 고죠의 이마를 온 힘을 실어 가격했다. 그들 사이에 무하한의 공간은 사라진 채였다.

반전술식을 사용한 강제 술식 해제.

나오야가 개발한 반전술식의 극의였다.

고죠 사토로는 반쯤은 땅에 묻힌 채 쌍코피를 흘리며 기절했다.

단 일 초.

그 일초가 승부를 가름 지었고, 달콤한 승리의 주인은 젠인 나오아였다.

@_HANK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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