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Feeling
펠로우 어니스트 드림
“뭐? 감기?”
오늘은 영업 날이 아니라 아득한 파도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플레이 풀 랜드 안.
느지막이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있던 펠로우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전해 준 기델을 바라보았다.
“꾀병 아냐?”
“…….”
“……아, 농담이야. 농담이라고! 그렇게 보지 마, 기델!”
방금 말은 절대 진심이 아니었다. 애초에, 꾀병 부릴 녀석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으니까.
성가시게 되었다는 듯 아직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은 그는 곧장 자신의 동업자이자 연인의 방으로 향했다.
“도로테아!”
아픈 사람 앞에서 큰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자신도 잘 안다. 그런데도 굳이 평소와 같은 톤으로 상대를 부르는 건, 제가 전해 들은 정보가 기델의 착각이길 바랬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로테아는 식은땀에 젖은 모습으로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열 때문에 더운지 잠옷 윗단추를 평소보다 두 개 정도 더 풀고 누워있는 도로테아는 펠로우를 슬쩍 보더니, 대꾸하기도 힘들다는 듯 눈만 깜빡였다.
“감기라고? 많이 아픈 건가?”
“보시다시피.”
“…….”
겨우 쥐어짠 대답은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누가 봐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목소리였다.
이제는 더는 현실 도피를 할 수 없게 된 펠로우는 벽에 몸을 기대며 입을 삐죽였다.
평소에는 워낙 튼튼해서 아프지도 않던 녀석이 갑자기 감기라니. 해괴한 일도 있지. 함께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시간이 거의 10년 가까이 되는 거 같은데. 그동안은 아주 열악한 환경이 아니면 항상 멀쩡했던 도로테아이지 않았나. 심지어 자신과 기델이 아플 때도 도로테아만 멀쩡할 때도 있었는데, 그 반대의 일은 처음이다.
지금은 그래도 더러운 일을 하고 있어도 먹고 살 만한 상황인데, 이리도 아프다니. 혹시 제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드는 그였다.
“……기델! 물수건!”
전후 사정이 어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아프다니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자신은 상대와 달리 가여운 것들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성인군자는 아니지만, 곁에 있는 사람이 저렇게 끙끙 앓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손등으로 힘겹게 식은땀을 훔치고 있던 도로테아는 직접 가지 않고 기델을 부르는 얄미운 여우를 보며 헛웃음 지었다.
“네가 하지, 왜 애를 시켜.”
“굳이 내가 나서야 하나? 그것보다 약은 안 먹어도 되고?”
“있긴 해?”
그러고 보니, 있던가?
손님이라 쓰고 호구라 읽을 상품들을 위한 의무실이 있긴 할 텐데, 거기 있는 건 보통 타박상 같은 걸 치료하기 위한 응급처치 도구들 뿐. 감기약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진통제 정도라면 있을 것 같은데, 감기에 진통제를 먹어도 되던가.
펠로우가 머리를 굴리는 사이. 도로테아는 굳이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지 않아도 된다는 듯 손을 저었다.
“그냥 푹 쉬면 나을 거야. 나는 건강하니까. 오늘은 영업하지 않아서 다행이네.”
하지만 오늘은 ‘어르신’을 보러 가야 하지 않던가. 저번에 넘긴 물건에 대해 의논할 게 있다고 누구든 한 명 오라고 했었지.
원래라면 어르신이 상대를 지정하지 않은 이상 번갈아서 다녀오고, 오늘은 도로테아가 다녀올 차례지만……. 저 꼴을 하고 윗사람 비위를 맞추는 건 쉽지 않겠지. 아니, 애초에 침대 밖으로 나올 수는 있나 싶을 정도니까 말이다.
아, 귀찮지만 어쩔 수 없나.
기델이 위태로운 걸음으로 찬물이 든 그릇과 물수건을 가져오는 걸 확인한 펠로우는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어르신은 내가 보고 올 테니, 푹 쉬라고.”
희미하게 ‘고마워’라는 대답이 들린 것도 같지만, 워낙 작은 소리라 제가 헛것을 들은 건지 진짜 소리가 들린 건지는 모르겠다.
펠로우는 일부러 뒤돌아보거나 되묻지 않고, 성큼성큼 방으로 향할 뿐이었다.
다행히 실수하거나 사고를 쳐서 부른 게 아니어서였을까. 어르신과의 이야기는 좋게 흘러갔고, 늦지 않게 돌아올 수 있었다.
‘평소 통화할 때도 그렇게만 대해주면 좋으련만.’ 워낙 평소 행동이 괴팍한 탓에 이렇게 온건한 대화를 주고받은 날도 좋은 생각만 들지는 않는 펠로우는 플레이 풀 랜드에 도착하자마자 기델을 찾았다.
“기델, 도로테아는?”
도리도리. 난처해하는 얼굴로 고개를 젓는 기델이 마른침을 삼킨다. 안타깝지만, 아무래도 상태가 많이 좋아지진 않은 모양이었다.
역시 평소 튼튼한 것과 앓으면 빨리 회복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라는 건가. 바라지 않았던 소식에 ‘쯧’하고 짧게 혀를 찬 그는 제 방으로 가는 대신 도로테아의 상태를 살피러 갔다.
‘……안 깨어날 거 같군.’
아침과 똑같은 모습으로 누워있는 도로테아는 머리에 미지근한 물수건을 얹은 채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시체처럼 가만히 있는 상대의 모습에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동자만 굴리던 펠로우는 슬그머니 침대에 걸터앉았다.
가까이 있으니 숨소리는 들리지만, 여전히 얼핏 봐서는 산 건지 죽은 건지 모를 정도로 안색이 창백하다.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부드럽게 웃는 발그레한 낯짝으로 사람을 대하던 도로테아의 모습을 봐온 펠로우는 성큼 다가온 위화감을 이기지 못하고 목소리를 내었다.
“도티.”
‘갑자기 낯간지럽게 뭐야.’ 그렇게 말하며 소리 죽여 웃는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색색거리는 가는 숨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커다란 귀를 쫑긋거리던 그는 한참이나 상대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일어났다.
‘금방 좋아지겠지. 무슨 청승인지 모르겠군.’
온갖 개고생을 하며 떠돌아다닐 때도 죽지 않고 잘만 살아남아 여기까지 온 자신들이다. 고작 감기 정도로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어르신을 만나고 와 기분이 썩 좋지 않은 탓에 느껴지는 불쾌감 같은 거지……. 엉터리 점술가들이 말하는 불길한 예감 같은 게 아닐 거다.
도무지 표정이 펴지지 않는 그는 성큼성큼 걸어 나가면서도, 혹 제 발소리가 상대를 깨울까 봐 발뒤꿈치를 들어 걸어야 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