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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잉어 영물 유리 이야기

総心 by 천파복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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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응? 토끼가 아니네?"

퐁.

유리는 인어의 모습에서 물고기로 돌아갔어요. 동시에 바스락, 하고 수풀 사이에서 웬 아이가 하나 튀어나왔어요.

"노랫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그 주인공은 소고였어요. 마을 아이들이 아무도 상대해주질 않아서 숲속을 혼자 탐험하러 온 거였죠. 그러다가 아주 우연히 유리가 사는 연못을 발견한 거고요.

간만의 인간. 게다가 어린 아이. 심심했던 유리는 고민했어요. 모습을 보일까, 말까.

지켜보자.

유리는 소고를 관찰했어요. 소고는 커다란 연못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못을 한 바퀴 돌기도 하고 얕은 물가에서 물장구도 치며 놀았어요. 나뭇잎 배를 만들어서 개미를 태우기도 했고요. 소고는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개미를 보며 히죽히죽 웃었어요.

성질이 고약하군.

유리는 김이 샜어요. 순수하고 착한 어린 아이와의 교류에 로망이 있던 유리는 관찰마저 그만뒀죠. 연못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어요. 유리가 잠에 든지도 며칠. 소고가 연못에 놀러온 것도 며칠. 아이가 혼자 놀아봤자 그리 시끄럽지도 않았기 때문에, 유리는 계속 잘 수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비단잉어 상태로 자던 유리의 콧잔등에 구슬 하나가 톡 닿았어요. 실이 꿰어진 금색 구슬이었어요. 제법 영롱하게 빛났죠. 유리가 그걸 빤히 보고만 있는데, 곧이어 풍덩 하고 사람이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렸어요. 위를 보니 그 아이가 어푸어푸 헤엄치고 있네요. 아마 구슬을 찾으러 내려오는 거겠죠.

하지만 연못은 그 크기만큼이나 깊었어요. 소고는 금방 다시 위로 올라가야 했어요. 그러나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아래로 내려왔어요. 바닥이 보이지 않아 무서울 법도 한데도. 포기한듯, 잠수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가 돼서야 유리는 수면으로 나왔어요. 해가 지고 있었어요.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죠. 하지만 소고는 물가에 쪼그려 앉아 훌쩍이고 있었어요. 유리는 측은지심이 들었어요. 속으로 한숨을 쉬고 다시 연못 안으로 들어갔어요. 실을 입에 물고 하늘하늘 수면을 향해 헤엄쳤어요. 얕은 물가까지 나갔죠.

퐁.

물방울 소리에 소고가 고개를 들었어요. 신비로울 정도로 새하얗고, 무서울 정도로 새빨간 비단잉어가 제 구슬을 입에 물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죠. 소고는 멍하니 보다가 손을 뻗었어요.

퐁.

손이 닿기 전에, 비단잉어는 구슬을 물가에 놔두고 연못 안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소고는 드디어 찾은 구슬을 손에 쥐고도 한동안을 멍하니 있었어요. 그러든 말든 유리는 다시 잠을 청했죠.

그날부터였어요. 연못에 낚싯대가 드리워진건. 낚싯대에 꿰인 것은 매일 달라졌어요. 벌레(무시했어요.), 구슬(무시했죠.), 밥(풀어져서 사라졌어요.), 물고기 사료(다른 물고기가 다가가길래 먹지 말라 경고했어요.)……. 유리는 영물. 당연히 통하지 않았어요. 온갖 것이 내려오고 내려오다가어느 순간 사라졌어요. 대신 아이가 직접 연못에 내려왔어요. 유리는 첨벙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서 잠이 자꾸 깼어요.

터를 옮겨버릴까. 하지만 이만큼 크고 깊은 연못은 찾기 힘든데. 어휴, 그냥 참자.

유리는 오래 살아온 영물로서의 관대함을 베풀기로 했어요.

그러고 또 며칠. 연못 안을 헤엄치던 유리의 눈에 예전의 그 금색 구슬이 보였어요. 반짝이는 반지도요. 머리핀이나, 조각된 말 같은 것도요. 유리는 뭔가 싶어서 몰래 수면 위로 올라갔어요. 풀숲 사이로 보니 아이가 주머니를 털어서 제 귀한 것들을 연못에 던지고 있었어요. 그러곤 자리에 주저앉고 수면을 빤히 지켜보았어요. 해가 지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될 때까지요.

퐁.

소고가 가고 나서 유리는 인어의 모습이 되었어요. 얕은 물가에 반지나 구슬을 올려놓고 턱을 굈죠.

저 꼬맹이, 나를 다시 보고 싶은 모양이군.

하지만 영물이 될 수 있었던 만큼 조심성이 많은 유리는 쉽사리 모습을 내보여주지 않았어요. 소고가 귀한 것들을 던지고, 소고가 가고 밤이 되면 다시 올려놓고. 그 일을 며칠간 반복 하다가...유리는 다시 잠에 들었어요. 슬슬 이 일이 물렸죠.

유리가 잠든지 이틀째였어요. 풍덩 소리가 연못을 울렸어요. 처음 구슬을 빠트렸던 그날처럼요.

첨벙, 풍덩, 풍덩.

소리가 아주 요란해서 유리는 잠이 깼어요. 속으로 한숨 쉬며 모아뒀던 귀중품을 물고 물가로 나갔어요. 그곳에는 울먹이는 소고가 있었죠. 소고는 유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다시 연못 안으로 뛰어들었어요. 그 사이 유리는 구슬과 반지 같은 것을 물가에 올려놓고 유유히 깊은 곳으로 돌아갔고요.

그런데 뭔가 이상했어요. 소고가 물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아니나 다를까. 발에 쥐가 난 소고가 가라앉고 있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제 앞에서 죽는 것을 보고 싶진 않았던 유리가 인어가 되어 소고를 건져주었어요. 소고는 콜록거리면서도 유리의 옷자락을 꼭 쥐고 놓지 않았어요. 유리는 그걸 간단히 풀었지만요. 다시 물고기로 돌아가야 했는걸요. 그래도 소고의 꾸준함이 내심 기특했던 유리는 모습은 보여주기로 했어요. 소고가 진정할 때까지 조용히 자리했어요.

소고는 진정하기도 전에 유리를 발견했어요.

첨벙, 첨벙.

소고가 급하게 다가왔어요. 제법 절박한 모양새에도 유리는 유유히 멀어졌어요. 뒤로 가면 다시 다가갔고요. 거리를 유지했어요. 소고가 바닥을 짚은 채로 말했어요.

"이리 와."

반짝반짝한 눈. 뻗어지는 단풍잎 같은 손. 유리는 소고의 얼굴에 물을 뿜었어요. 이런, 소고가 화가 났나보네요. 확 하고 유리를 향해 몸을 날려요. 물론 그것에 당할 유리가 아니에요. 몸을 피했어요. 얼굴에 한번 더 물을 뿜은 것은 덤이고요.

"이게 진짜!"

푸헹. 그래봤자 날 잡을 수 있겠니?

유리는 꼬리를 유혹스럽게 살래살래 흔들었어요. 소고가 깊은 물에 들어오는 것은 막았지만요. 쫓고 놀리고. 유리는 간만에 재밌었어요. 소고의 반응이 쏠쏠했는걸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소고는 주먹밥을 싸고 연못에 놀러왔고, 유리는 소고가 점심을 다 먹길 기다리다가 손을 털면 얼굴에 물을 뿜었어요.

놀자.

그런 뜻이었죠. 소고는 첨벙첨벙 물가로 뛰어 들어갔어요. 유리는 조금씩 거리를 좁혔어요. 소고가 지루할 틈이 없게요.

살랑.

새틴 같이 매끄러운 지느러미가 손끝에 닿은 것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죠. 성질이 고약해도 아이는 아이. 소고는 볼을 발갛게 물들였어요. 기뻐하는 것을 보니 유리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 이상 가까이 가진 않았어요. 갓 태어난 호기심이 어디까지 잔인해질지 모르니까요.

살랑, 살랑.

소고는 애가 탔어요. 저 무서울 정도로 신비로운 비단잉어를 만져보고 싶었거든요.

어떻게 더 친해질 수 있을까?

소고는 고민했어요. 집으로 와서 자신의 보물을 물끄러미 내려다봤어요. 영롱한 금색 구슬. 미츠바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머리장식에 달려있던 구슬이에요. 소고는 고민하다가 용돈을 손에 꾹 쥐고 마을에 딱 하나 있는 잡화점으로 갔어요.

다음날. 소고는 오늘도 주먹밥을 싸들고 숲으로 들어갔어요. 험하기 그지없는 길을 잘도 탔죠. 늘 그렇듯이 연못 앞에 앉아 주먹밥을 먹고, 물을 맞았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소고가 뭔가를 쥐고 물 속으로 들어와요.

"이거 줄게."

소고는 목걸이 같은 것을 내밀었어요. 영롱한 금색 구슬을 가운데에 두고, 실의 나머지를 노란 나무 구슬로 채운, 깜찍한 물건이었지요. 유리는 그걸 빤히 봤어요. 소고는 유리가 다가오지 않자 입술을 삐죽이며 바닥에 목걸이를 두고 거리를 벌렸어요.

애는 애구나. 물고기에게 목걸이를 선물로 줘? 웃긴 녀석.

유리는 물고기의 모습으로 이리저리 노력해서 몸에 목걸이를 걸쳤어요. 어쨌든 선물을 받았으니, 고맙다는 의미로 수면 위로 힘차게 뛰어올랐지요. 새하얀 비늘이 햇빛을 반사해 눈부시게 빛났어요. 금빛 구슬도요. 소고는 뿌듯이 웃었어요.

그날밤, 인어 모습으로 변한 유리가 목걸이를 만지작거렸어요.

그 아이도 바보네. 나무 구슬은 물에 닿으면 금방 썩을텐데.

유리는 피식 웃으며 목걸이에 보호 주술을 걸었어요. 그리고 자신의 보물고에서 작은 옥구슬을 챙겼죠.

다음날. 소고가 주먹밥을 다 먹고 얼른 얼굴을 가리는데, 이번에는 물이 뿜어지지 않아요. 조심스레 손을 치우니 비단잉어가 작은 옥구슬을 입에 물고 기다리고 있어요. 소고는 얼른 물에 들어가서 유리에게 다가갔어요. 유리는 가만히 기다렸어요. 소고가 손을 뻗어도 가만히 있었다는 말이에요.

톡.

서늘해.

소고는 그 생각을 가장 먼저 했어요. 조심스레 만지는 면적을 늘렸어요.

매끄럽고단단해.

신기함에 소고는 볼을 붉혔어요. 그 시간이 오래 가지는 않았지만요. 이제 그만 하라는 듯이 비단잉어가 옥구슬을 소고의 손에 두고 물러났거든요.

"그때 날 구해준 인어가 너지?"

소고가 유리의 뒤를 쫓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서 말했어요. 유리는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가만히 있었어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소고는 확신했어요.

"누님이 감사 인사는 직접 얼굴 보고 하는 거랬어."

그러니까 모습을 보여줘.

소고는 그런 의미를 전달했어요.

싫어.

유리는 그런 뜻으로 얼굴에 물을 뿜었어요. 소고는 그대로 맞고 얼굴을 구겼어요. 하지만 일어나진 않았어요. 꿋꿋이 자리했죠.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요.

끈질긴 꼬맹이.

그래도 오랜 시간을 살아온 와중에 맞닥뜨린 변화가 나름 기꺼웠던 유리가 포기했어요. 소고가 올 시간에 맞춰, 연못 중간에 자리한 바위에 올라 앉았어요. 소고는 유리의 모습을 보자마자 도시락도 떨어트리고 풍덩풍덩 연못으로 들어갔어요.

"그만. 더 들어오면 위험해, 꼬맹아."

"누가 꼬맹이라는거야! 내 이름은 소고야!"

"그래, 그래. 꼬맹이는 몇 살?"

"이익. 나이 같은 건 숫자일 뿐이야!"

유리는 피식 웃으며 바위에서 내려왔어요. 우아하게 유영하며 소고의 눈앞으로 왔죠.

"그래서, 감사 인사는 언제 할거니? 고집에 어울려줬잖니."

"그!"

웃음기 어린 올리브빛 눈을 마주한 소고는 목소리가 삑사리 났어요. 유리는 빵 터져서 깔깔깔 웃었어요. 소고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입을 꾹 다물었죠. 높은 웃음소리가 그치고 나서야 소고가 다시 입을 열었어요. 

"그날 구해줘서 고마워요."

"그냥 반말 해도 된단다. 인간의 예법을 굳이 따를 필요는 없어."

"고, 고마워."

"잘 안 들리는데~."

"고맙다고!!"

"그래, 그래. 그러지 않아도 다 들려, 꼬맹아."

"소고라니까! 내 이름은 오키타 소고야!"

"그래, 소 군. 내 이름은 카나에 유리란다." 

유리소고는 중얼중얼 이름을 욌어요.

카나에 유리. 카나에 유리.

소고가 고개를 확 쳐들며 유리의 손목을 잡았어요.

"나랑 같이 가자!"

"음? 어딜?"

"우리 집에! 나랑 같이 살자!"

이 맹랑한 꼬맹이 좀 봐.

유리는 피식 입꼬리를 올렸어요.

"지금 청혼하니?"

끄덕끄덕.

소고는 힘차게 고개를 움직였어요. 소고는 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인어를 제 것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네~. 예물 교환도 해버렸고."

유리가 긍정적인 말을 하며 고민하자 소고가 눈을 반짝였어요.

피식.

당연히 수락할 생각이 없던 유리는 손목을 살포시 풀었어요.

"집에 연못은 있니?"

"아니."

"날 뭐라고 설명하려고?"

"그게."

말을 흐리는 꼴이 제법 귀여웠기에, 유리는 소고의 머리카락을 젖혀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어요.

"더 크고 오렴, 꼬맹아."

그 말랑하고 부드러운 감촉에, 짙은 물향에 소고는 이마를 가리고 어버버거리다가...후다닥 도망갔어요. 유리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주먹밥이 든 보자기를 주워들었어요. 간만에 인간의 음식을 한 입 먹으며 웃었어요.

이런, 너무 놀려버렸네.

둘은 매일 매일 대화를 나눴어요. 유리는 옛날에 교류한 음양사나 다른 영물들의 이야기를, 소고는 오늘의 일을. 유리의 입에서 나오는 신비는 소고를 홀렸고, 소고의 입에서 나오는 인간들의 생활은 유리를 즐겁게 만들었어요.

대화만 한 것은 아니죠. 소고는 유리의 손에 이끌려 연못 한가운데에 있는 바위에 앉아보기도 했어요. 유리는 소고가 있는 바위를 빙글빙글 돌며 춤추듯 헤엄쳤어요. 손으로 소고에게 물도 뿌리면서요. 소고가 유영하는 유리 위에 올라타려는 시도도 했지만, 유리는 유유히 빠져나갔죠. 유리는 소고가 실패할 때마다,

"맹랑한 꼬맹이. 100년은 일러."

라고 말하며 소고의 이마를 툭 밀었어요. 소고는 당연히 열받아 했고요.

시간이 흘렀어요. 소고가 곤도를 만나고, 도장에 다니게 되고, 일주일에 한 번으로 만남이 줄어들었어요. 그래도 사이가 멀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어요. 유리는 맹랑한 꼬맹이의 성장을 즐겁게 지켜보았지요.

시간이 흘렀어요. 소고는 어느새 13살이 되었죠. 뭐어, 성에 눈을 뜰 시기죠. 그런 청소년 옆에 하필이면 장난기 가득한 인어가 자리해 있고요. 소고만 곤란했던 여러 일이 있었죠. 자세하게 쓰진 않을게요. 여러분이 상상할만한 일은 거의 다 했거든요. 오.... 수위가 그렇게 높진 않답니다.

시간이 흘렀어요. 딱 1년 후, 에도로 올라가자는 이야기가 완전히 결정됐을 때. 소고는 유리를 찾아왔어요.

"나, 에도로 올라가."

"그러니? 즐거운 이야기 가지고 오렴."

"같이 가자."

유리는 고개를 기울였어요. 생각했죠. 나의 영역을 포기하고 같이 갈 만큼 이 아이가 소중한가?

소고가 초조하게 설득했어요.

"인간들을 재밌어하잖아."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걸."

"내가 지켜줄게."

"흐응. 네가?"

"검 실력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아."

"인간 사회가 그것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건 안단다."

"우리, 에도에서 경찰이 될 거야. 그러면 충분히 널 지킬 수 있어." 

"그건 되고 나서 해야 하는 말 아닐까?"

소고는 입을 다물었어요. 유리는 꼬리를 한 번 살랑이고 말을 이었어요.

"자리를 잡고 나면 다시 물으러 오렴. 제대로 준비하고."

툭.

유리가 소고의 이마를 밀었어요. 그게 4년간의 이별 전, 마지막 만남이었어요.

4년 동안 유리는 제법 심심했어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소고의 부재가 불러온 결과였죠.

그냥 따라갈걸 그랬나.

유리는 인간 모습으로 수면에 둥둥 떠서 목걸이를 만지작거렸어요.

아니야, 무슨 일 일어날 줄 알고.

퐁.

잉어의 모습으로 돌아가 연못을 한 바퀴 돌고 잠에 들었어요.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물~ 마시러~ 왔~다가~"

어느 날이었어요. 물을 마시러 온 사슴을 쓰다듬으며 유리가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렸어요.

바스락.

풀숲이 움직이는 소리에 사슴도 도망가고, 유리도 잉어의 모습으로 변했어요. 못 깊은 곳으로 내려갔죠.

"유리. 나 왔어."

내 꼬맹이가 돌아왔구나. 익숙한 목소리였죠. 유리는 기쁘게 소고를 맞이하러 올라갔어요.

살랑살랑.

잉어의 모습으로 얕은 물가까지 나가고 인어의 모습으로 사라락 변했어요. 어라? 그런데 꼬맹이가 생각보다 더 커졌네요. 이제 완연한 성인이에요. 유리는 흐뭇하게 웃었어요. 소고는 한 걸음 떨어져서 유리에게 제복을 보여주었어요.

"이것 봐. 나, 에도에서 경찰이 됐어."

"신기한 복식이구나."

유리는 손을 까딱였어요. 소고는 유리 가까이 내려갔죠. 유리는 금실, 어깨의 견장, 크라바트나 허리띠 같은 것을 만지작거렸어요.

인간 세계가 많이 바뀌었구나.

소고는 반짝이는 유리의 눈을 즐겁게 바라보다가 말했어요.

"자리도 어느 정도 잡았고, 우리 둔영에는 연못도 있어. 같이 가자."

"그래."

유리는 선선히 수락했어요. 설득이 필요할 줄 알았던 소고는 눈을 잠시 둥그렇게 떴다가 씩 웃었어요. 소고는 수레에 싣고 온 수조를 보여주었어요. 타라는 의미였죠.

사실 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데.

유리는 장난기가 발동했어요. 잉어의 모습으로 변해 연못에서 수조로 힘차게 점프했어요. 그리고 다시 인어의 모습으로 변해 느른하게 수조에 기댔어요.

"자, 가자꾸나."

그리고 고난이 시작됐죠. 소고는 수레를 끌고 험한 숲길을 뚫어야 했어요. 유리가 탔으니 수조가 엎어져서도 안 됐고요.

가만, 수조가 엎어진 모습은 좀 보고 싶을지도 모르겠군.

소고가 실수인 척 엎어버릴지 말지 가늠하는 사이 마을에 거의 다다랐어요.

"이제 잉어 모습으로 변해."

"그러네. 이제 알려줘야겠구나."

뭘?

이라고 묻기도 전에 유리는 인간으로 변했어요. 초록빛 안감의 음양사 복장을 입은 어엿한 여성의 모습으로요. 가볍게 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유리를 보며 소고는 핏줄을 세웠어요.

"너, 인간으로 변할 수 있었어?"

"아무렴. 영물 칭호를 아무나 달 수 있는 게 아니란다."

"그럼 왜 생고생 시킨 건데?"

"그야 당연히 재밌을 것 같아서 아니겠니?"

후후후.

유리는 만족스러운 소고의 반응에 짙게 웃었어요. 그리고 먼저 마을을 향해 살랑살랑 발을 옮겼죠. 소고는 수조를 발로 차서 엎어버리고 그 뒤를 따랐어요. 유리는 마을의 모든 것이 신기했어요.

길이 잘 다져져 있네. 사람도 제법 많구나.

아이처럼 이것 저것을 전부 건드리며 놀았어요. 간만의 인간 세상 나들이는 신이 났죠. 달콤 짭짤한 냄새가 유리를 사로잡은 것은 그때였어요. 당고 가게였죠.

"얘, 나 저것 좀 사주렴."

유리는 쪼르르 소고에게 돌아가서 졸랐어요. 둘은 나란히 앉아 간장 당고를 먹는 시간을 가졌어요.

"에도는 어떤 곳이니?"

"사람이 이끼만큼이나 빽빽하고 숲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보다 큰 건물이 잔뜩인 곳이지."

"더 말해주렴." 

소고의 입에서 나오는 에도의 풍경은 완전히 별세계였어요. 유리는 기대에 부풀었어요.

진즉에 구경 나올걸!

기차역까지 걸어갈 때도, 기차를 보고 멍때렸을 때도, 탔을 때도, 유리는 여기저기를 빨빨빨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어요. 소고는 유리의 시시콜콜한 질문에 전부 답해줬고요.

유리는 진선조의 연못에 살게 됐어요. 소고가 쉬거나 하는 날이면 매번 같이 나가 에도를 구경했죠. 아무리 돌아다녀도 볼 것이 넘쳐났어요. 그리고 웃기게도, 게임에 재능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소고가 관사 문을 잠가 놓으면 그 안에서 하루종일 게임하는 것은 예삿일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여름. 진선조에 때아닌 귀신 소동이 벌어졌어요. 해결사들이 귀신 퇴치사인 척 하고 왔다가 발각되는 일이 일어났죠. 흐음. 소고는 해결사를 매달아 놓고 혼자 슬쩍 관사로 갔어요. 유리가 그곳에서 게임하고 있었죠. 

"유리. 혹시 귀신 같은 거 봐?"

"귀신? 뭐, 그 비슷한 건 알지."

호오. 마침 옷도 무녀 같은 옷이고.

"그럼 좀 와 봐."

소고는 유리를 자신이 데려온 퇴치사라며 데려왔어요. 유리는 의심의 눈빛을 받으며 환자를 둘러보고 건물도 한 번 싹 돌았어요.

"음, 따로 사특한 기운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구나." 

긴토키가 시비를 걸었지요.

"그냥 있는 척 하는 건 아니고? 얘 봐라, 얘. 키도 땅딸막한게 뭘 제대로 볼 수는 있겠냐?"

"어린 것이 쓸데없이 입 놀리는 솜씨가 좋구나."

"어린 것~? 야, 야. 얘도 컨셉질 제대로다."

"그러게, 해. 아무리 봐도 도S랑 또래로밖에 안 보이면서 웃기다, 해."

빠직.

오랜 시간을 살아온 영물의 고고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어요.

"좋아. 아무것도 없지만 앞으로도 아무것도 없도록 이 몸이 친히 힘을 써주마."

"오레 사마랜다, 오레 사마."

빠직.

유리는 이마에 핏줄을 세웠다가 후- 심호흡 했어요.

그래, 인간이 무얼 알겠어.

유리는 마당에 서서 눈을 감고 영단에서 기운을 끌어올렸어요. 그리고 손바닥을 마주쳤어요.

찰랑-.

짝 소리가 나야 할 손에서 물이 퍼지는 소리가 났어요. 연둣빛 기운이 유리를 중심으로 부드럽게 파문을 그렸고요. 유리를 모두가 헤-. 하고 바라봤어요.

"이제 되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곤도였어요. 유리의 손을 붙잡고 말했죠.

"무녀님!! 화장실 앞까지 같이 가주시면 안될까요!!"

"싫단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차라리 저 아이는 어떠니. 기운이 독특하니 괜찮을 거란다."

유리는 카구라를 가리켰어요. 카구라는 뻐기며 곤도를 데리고 화장실로 갔지요. 그러나 이게 무슨 일인가요? 화장실을 갔던 곤도가 '빨간 옷을 입은 여자'에게 당한 채로 발견되었어요. 유리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어요.

"이상하구나. 괴이는 분명 없었는데."

"그럼 뭐야? 이 건물에 아까의 그걸로도 없어지지 않는 귀신...이 있다는 거야?" 

"응? 괴이라고 말했지 않니? 귀신은 나도 모른단다."

애초에 그런 게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유리의 말에 신파치가 물었어요.

"괴이랑 귀신이랑 다른 건가요?"

"물론이지. 괴이는 영물, 요괴 같은 것을 말한단다."

"그럼 역시 귀신의 소행일까요...."

그 이후는 뭐, 난리가 났죠.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나타나고, 달아나고, 잡고, 잡히고. 유리는 방에 멀뚱히 앉아 다섯 사람의 난리를 구경했어요.

요즘 인간들은 왁자지껄하게 노는구나. 보기 좋아.

대원들이 쓰러진 이유가 모기 천인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그게 아이 때문이라는 것을 듣고…. 유리는 측은지심이 들었어요.

인간이란 본디 암컷과 수컷이 같이 새끼를 키우는 것 아니었나? 저 자는 왜 혼자 있는지.

유리가 인파를 헤치고 모기 천인에게 다가갔어요.

"새끼를 밴지 얼마나 되었니?"

"이제 3주가 되었어요."

"얼마나 품어야 하니?"

"저희도 열 달이에요."

"가여운 것. 기운을 북돋아주마."

유리는 연둣빛 기운이 서린 손을 배에 가져다 댔어요.

찰랑.

물이 움직이는 소리가 모기 천인의 귀에만 들렸어요. 그리고 몸에 에너지가 넘쳤죠. 모기 천인은 거꾸로 매달린 채로 눈물을 흘렸어요.

"흐윽, 흐윽."

"감동적이긴 한데 솔직히 더 무서워졌군요."

모기 천인과는 그렇게 헤어지고, 유리는 어영부영 진선조에 머무르게 됐어요. 뭐, 원래도 진선조 안의 연못에 살고 있긴 했지만요. 딱히 식사도 하지 않고 잠을 잔다 하면 며칠간 아예 모습도 보이지 않는 신비한 존재를 진선조는 점점 받아들였어요. 워낙 특이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시대니까요.

연옥관 이후에 천도중에게 불려가는 곤도의 살을 떼어내 주거나, 기억 상실에 걸린 곤도의 기운을 다시 정리해 주었죠. 임무를 가는 진선조에게 종종 보호 주술을 걸어주기도 했어요. 마치 수호신처럼요. 대원들은 복권을 긁으러 가기 전에 유리에게 와서 기도를 하고 가기도 했어요. 그러면 꼭 만 엔 정도는 당첨됐거든요. 당첨된 대원들은 게임팩이나 만화책, 신기한 먹거리 같은 것을 바쳤어요. 

바다돌이가 진선조에 방문했을 때, 바다돌이와 유리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도 했어요.

"나는 사냥감이 아니다, 맹랑한 놈아."

유리의 한마디로 바다돌이가 돌아섰지만요.

시간은 흘렀어요. 쿠리코의 데이트 날이었지요. 놀이공원을 간다는 말에 소고는 유리를 데리고 나섰어요. 유리는 즐거웠어요. 소고나 곤도를 따라서 온갖 놀이기구를 타며 깔깔 웃어재꼈어요. 수호신이란 양반이 이래도 되냐는 히지카타의 물음을 무시하고요.

인간들이 놀이를 좋아하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유리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소고의 옆자리에 탔어요. 아, 롤러코스터 말하는 거예요. 그리고, 뭐, 알다시피 소고는 벨트 매는 것을 까먹었죠. 유리는 해롱거리는 소고를 보며 까르르 웃었어요.

내 꼬맹이는 어째 그대로구나. 

히지카타에 의해 네 사람이 호수에 빠졌을 때, 유리는 옛날의 일을 떠올리며 소고을 건져올렸어요. 소고를 귀엽다는 듯이 내려다보며 말했죠.

"후후, 내 꼬맹이는 아직도 그대로구나."

"푸하! ...소고라니까."

"그래, 소 군."

유리는 소고의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눌렀어요. 짙은 물향. 소고는 얼굴을 붉혔어요. 뭐, 어떤 사람이라도 첫사랑의 몸짓 하나 하나에 설레고 말 거예요. 그게 끝나지 않은 것이라면 더더욱요. 소고는 아직도 자신을 어린애로 대하는 유리를 보니 심기가 뒤틀렸어요. 누구든 유리 앞에서라면 어린애일 거라는 것은 무시하고요. 소고는 유리를 밀쳐서 자신의 아래에 두었어요. 유리는 이 꼬맹이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어 두 눈을 깜빡였고요.

토독.

소고의 머리 끝에 매달린 물방울들이 유리의 볼을 두드렸어요. 유리는 입을 열었어요.

"아직도 나를 좋아하니, 꼬맹아?"

"소고."

"나는 너와 짝 지을 생각이 없단다."

"왜?"

영물과 인간의 수명 차이. 괴이들의 세계로 들어와서 좋을 게 없다는 사실. 그 모든 것을 제외하고도-

"내가 너를 연모하지 않으니까."

소고는 유리를 끌어안았어요. 저주 같은 첫사랑을 앓는 이가 말했죠.

"어떻게 하면 나를 봐줄건데?"

"나도 모른단다."

"내가 소중하긴 해?"

"그럼, 물론이지."

유리는 소고의 머리를 소중하게 끌어안았어요. 머리카락을 잘 정리해주기도 했고요. 소고는 짙은 물향을 들이마시다가 유리를 안아든 채로 일어났어요.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어요.

시간이 흐르고...때는 곤도가 버블스 별의 공주와의 혼담이 오갈 시기. 유리는 잠에 들었어요. 딱 며칠이었어요. 그런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고가 다리가 박살이 나서 왔지 뭐예요? 소고가 오는 소리에 깼다가 유리는 깜짝 놀랐어요. 지느러미를 파르르 떨었죠.

내 귀여운 꼬맹이가!

유리는 잉어인 채로 안절부절 못하고 헤엄치다가 인어의 모습으로 변했어요. 그리고 연둣빛 기운을 손에 모았어요.

찰랑.

소고의 귓가에 물이 움직이는 소리가 울렸어요. 그리고 서서히 다리가 나아가는 것이 느껴졌죠.

오.

소고는 냉큼 깁스를 벗겨냈어요.

"굉장한데. 이런 것도 할 수 있었어?"

"나는 물에서 난 영물. 치유의 힘을 쓰는 것은 당연하지. 흐아암. 더 자야겠구나. 부르지 말거라."

퐁.

소고의 생각이 어딘가에 가 닿기도 전에 유리는 잉어의 모습으로 변해 연못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어요. 유리는 오래 잤어요. 거즘 한 달을 잠들었죠. 일주일에 한 번 소고가 깨울 때도 아직 영단이 비었다며 다시 잠자러 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연못에 혈향이 퍼졌어요. 유리는 쇠냄새에 잠이 깼죠.

"유리, 유리……."

소고가 흐느끼며 유리를 불렀어요. 유리는 인어가 되어 제 꼬맹이의 뺨을 감쌌어요.

"그래, 무엇이 필요하니, 아이야?"

"누님을누님을 살려줘……."

가여운 것.

"제발……. 뭐든 할테니까……."

사랑스러운 것.

네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아니? 

"계약을 하자꾸나."

너를 괴이의 세계로 데려갈 거란다.

"네 누이에게 생을 주마."

그러니.

"너의 생을 내게 주렴."

노래하는 듯한 울림, 달콤한 목소리, 짙은 물향. 생을 달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고, 소고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러자 유리가 소고에게 깊게 입을 맞춰왔어요. 유리는 소고를 연못으로 끌어당겼죠.

스르륵.

마치 홀린 것처럼, 소고는 물속으로 따라 들어갔어요.

우리 연못이 이렇게 깊었나?

"지금부터 너와 나는 -의 연을 맺을 거란다."

아니, 그보다뭔가졸려.

"아아. 인간의 말로 하자면...반려겠구나."

유리….

"쉬이. 금방 끝날 거란다…."

소고가 모르는 것을 이야기 해볼까요? 사실, 모든 괴이는 인간을 탐한답니다. 요괴는 인간의 피와 살을 취하고, 영물은 인간의 혼을 욕심내요. 본능이 강한 요괴와 다르게 영물은 이성이 강하기에 인간 앞에 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요. 영물이 혼을 소유한다는 것은 괴이의 세계에 한 발짝 내딛는 것을 말해요. 인간으로 살 수도 없고, 괴이로도 살 수 없는 운명이 된다는 뜻이에요. 영물들은 그렇게 계약한 혼이 닳아 소멸될 때까지 보석처럼 전시해둔답니다.

상냥한 영물인 유리는 그렇게 둘 생각이 없었지만요.

유리는 자신의 가슴을 갈랐어요. 벌어진 그곳에는 영롱하기 그지없는 연둣빛의 영단이 자리해 있었죠. 유리는 그것의 껍데기를 벗겨냈어요. 그리곤 소고의 가슴을 갈랐지요. 동그란 모습을 보이는 영단의 조각을 붉은 속살 사이에 넣고 입구를 닫았어요. 그러는데 꼭 반나절이 필요했어요.

그동안 몇몇 사람들은 난리가 났어요. 미츠바가 생사를 오가는데 소고는 어디에도 보이질 않아서요. 먼저 병원에 가 있는 걸까, 히지카타를 따라가기라도 한걸까.... 그들은 연못 깊은 곳에...신비의 세계에 소고가 빠져버렸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지요.

시간은 어느새 야마자키가 곤도를 찾으러 병원에 올 즈음. 유리와 소고는 같이 병원으로 들어섰어요. 곤도를 만났어요.

"소고 너 이자식,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야?! 미츠바 님이!"

"괜찮아요."

"뭐?"

"이제 괜찮다구요."

소고는 곤도를 지나쳐 병실 안으로 들어갔어요.

물향?

곤도는 소고가 문득 낯설었어요. 마치 유리를 볼 때와 같은 느낌....

"이래서 감이 좋은 이들이란."

유리가 곤도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리며 소고의 뒤를 따랐어요. 곤도가 무슨 말이냐고 되묻기도 전에 야마자키가 나타났어요. 유리는 미츠바의 옆으로 가서 소고에게 말했어요.

"바깥이 소란스럽구나. 나가 있으련?"

"누님은."

"괜찮으니 나가서 할 일을 하렴."

유리가 소고의 뺨을 쓰다듬었어요. 소고는 유리와 시선을 마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섰어요. 히지카타의 일을 들었다던지, 그 이후로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는 유리의 관심 밖이었어요. 계약의 이행이 가장 중요한걸요.

유리는 영단의 기운을 모두 긁어모아 현현시켰어요.

찰랑-.

물소리와 함께, 연못과 비단잉어의 형상이 병실을 가득 채웠어요. 유리의 곁을 맴돌던 잉어는 유리의 손길을 한 번 받고는 미츠바의 몸에 스며들었어요. 물의 형상은 유리가 한 번 깊게 내뱉은 숨 한번에 미츠바를 중심으로 파문을 그렸고요.

쏴아아아-.

미츠바는 흐릿한 정신에도 쏟아지는 물의 감각이 몸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어요.

일은 완벽하게 완결났어요. 미츠바는 기적으로 생을 되찾았고, 소고는 흔들리지 않는 검으로 단죄했으며, 히지카타는 과자의 매운 맛 때문에 울지 않아도 되게 됐답니다. 유리는 잠들었지만요. 소고는 유리를 안아들고 진선조 둔영 안에 있는 연못으로 향했어요. 유리는 물에 닿자 자연스럽게 잉어의 모습으로 돌아갔어요.

퐁.

연못 깊고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거대한 비단잉어 한 마리를 보고는 모두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이 되었어요. 소고는 영차, 일어나며 자연스럽게 손님을 맞이하는 방으로 향했어요. 미츠바도, 곤도도, 히지카타도, 긴토키도, 야마자키도, 우노스케도.... 미츠바의 일과 관련 있는 사람은 모조리 그 뒤를 쫓았어요. 소고는 태연하게 앉아서 입을 열었어요.

"유리는 제가 어릴 때 만난 비단잉어 영물입니다."

"영물? 우리가 아는 그런 영물?"

"뭐. 대충 맞겠네요. 유리는 그중에서도 특별한 편이지만요."

"그런 분이왜 나를?"

"계약을 맺었어요. 등가교환의 법칙을 따라서, 생 하나에는 생 하나를."

"소고, 너 설마!"

"어라, 진정하라구요."

"진짜로 정당한 계약을 했다면 전 여기 있을 수도 없어요. 유리의 보물고에 가 있겠죠."

"그 말은 무녀님 쪽에서 봐줬다는 말로 들리는데."

"형씨 말이 맞아요. 혼을 가져가는 대신 -의 연을 맺었습니다."

"뭐라고? 잘 안 들렸다."

"아, 인간은 못 듣는구나. 반려의 연을 맺었습니다."

"반려? 대체 뭐야?"

"본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처럼 들리는구만."

"뭐, 이젠 인간이 아니니까요."

"소 짱. 대체, 대체 무슨 말을."

"누님, 너무 겁먹지 마세요. 그냥, 동생이 좀 일찍 결혼한 것 뿐이에요."

"물고기랑? 천인이랑 결혼하는 건 봤어도 물고기랑 결혼했다는 놈은 처음 본다."

"영물입니다, 형씨. 그냥 물고기 따위가 아니라구요."

"저거 부인 감싸는 것 좀 봐라."

"아니, 아니. 그보다 소고 네가 인간이 아니라는 말은 뭐냐?"

"말 그대로입니다, 곤도 씨. 유리의 영단을 이식받았고, 저는 이제 반쯤 영물이 됐어요."

"인간과의 차이점은?"

"수명이 겁나 길어졌습니다. 끝."

"그게 끝이라고 해서 끝날 이야기냐, 소이치로 군?"

"실제로 차이점이 없어요. 수명이 길어졌다고 해도 유리의 수명을 공유한다는 느낌이긴 하지만."

"그말은."

"유리가 죽으면 저도 죽습니다."

"네가 죽으면?"

"토시로 씨."

"유리는 아무 영향 없어요. 저만 죽습니다."

"그거 참, 끔찍하게 불공정한 계약이구만."

"네. 저한테 유리하죠."

"소고 너, 대체 어떤 존재의 사랑을 받는 거냐? 지독하네."

"그렇게 보입니까?"

"저 자식 표정 봐라. 징그러운 놈."

놀랍게도,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랍니다. 유리는 몇 년 가량을 잠들어 있었고, 모든 일이 유리 없이 진행되었어요. '은혼'이 끝나고도 몇 달...유리가 깨어났어요. 유리는 저를 맞이하러 온 제 짝에게 사랑스럽게 입맞춤했어요.

곤도가 정년을 꽉 채워 퇴임하고, 히지카타 부부가 늙어 부슈에 터를 잡고, 긴토키가 나이를 먹어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은 언제까지고 젊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어요. 그들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에도를 지켰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었죠. 어디로 갔을까요?

유리가 살던 연못?

괴이들의 땅?

아예 아주 먼 곳으로?

글쎄요, 그건 영영 알 수가 없어졌어요. 확실한 건, 둘은 아주 오랜 시간을 행복했다는 것 뿐이랍니다.

끝!


개인적으로 우츠로가 우츠로가 된 것은 박해를 받은 데다 사고가 인간의 것으로 태어나서라고 생각해요 음양사편의 게도마루를 보면 우츠로보다도 오래 산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멘탈이 멀쩡한 상태거든요 (헤이안 시대 : 794년~ 작중 배경 : 1860년대 후반 우츠로 나이 : 약 1000살) 한마디로 소고가 오래 산다고 해서 우츠로처럼 전 우주와 함께 자살! 을 생각하진 않을 거란 뜻이에요 뭐...끝나지 않는 시간의 흐름에 권태가 찾아와서 홀로 죽음을 맞이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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