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가의 일기장

02

실리안x엘리아데(여 실린 모험가)

시점은 아마도 카멘 전조퀘보다는 이전 시점..? 

"정무가 끝나고 돌아올 터이니, 잠시 기다려줄 수 있겠나? 아, 잠시는 아니지만, 마무리하는 대로 바로 돌아오겠네."

루테란 성에 돌아온 엘리아데를 보자, 실리안은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아직은 시간이 여의치 않았는지, 그녀를 왕의 기사 침실로 데려다 준 실리안은 업무를 마치는 대로 다시 오겠노라는 말을 남긴 채, 아쉬운 눈으로 방을 나갔다. 어쩔 수 없지- 홀로 남겨진 엘리아데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벽난로 앞 소파에 앉았다.

엘리아데는 침실에 오면 이 벽난로 앞의 소파에 앉는 걸 좋아했다. 이 침실은 나를 위해 마련해준, 오롯이 나를 위한 왕궁 내의 공간. 그 중에서도 벽난로 앞 소파는 체온이 낮아 추위를 잘 타는 엘리아데에게 있어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또한 이 소파에 앉아 있다보면, 방으로 들어오는 실리안을 바로 맞이할 수 있었으니... 여러모로 그녀에게 있어 매우 흡족한 장소였다. 

소파에 앉아 쿠션에 기대어 살짝 누워있으니.. 벽난로때문에 따뜻하겠다, 슬슬 졸음이 밀려와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벽난로의 열기를 받아 따뜻해진 다른 쿠션을 껴안은 엘리아데는 잠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정무가 끝나기까진 시간이 꽤 남았고, 오래 잠들게 되더라도 일을 마치고 돌아온 실리안이 그녀를 깨워줄 테니까... 그렇게 평화로운 모닥불 소리를 자장가 삼으며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긍지 높은 루테란의 기사들이여! 명예의 검을 들어, 적들을 섬멸하라!"

"우리가, 자넬 지키겠네!"

이건.. 이 상황은... 내가 보고 있는 이 장면은 현실이 아니다. 분명 이전에 겪었던 일, 그러니까.. 베른 남부에서 우리 모두가 집결했던 그 때를 꿈에서 다시 보는 거다. 내가 들렀던 곳에서, 내가 도움을 주었던 대륙들이 아크라시아를 지키기 위해 하나로 집결했던 그 때 그 시간을 다시 꿈에서 마주하고 있는 거였다. 다시 시간이 되돌려진 상황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은 건, 그 날의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고는 있었지만, 결국 내가 있게 되는 곳은 악마들이 끝없이 몰려오는 전쟁터가 될 것이란 사실 또한 깨닫기도 했던 자리였고.

그래서 나는 이기적이게도.. 그런 상황 속에서도 터무니없는 소원을 빌었다. 

(...를 ......에... .....고 싶다)

그 날 에아달린 여왕의 순간이동 마법과 함께 도착한 너를 보았을 때, 놀라움과 반가운 감정이 앞섰다. 종종 편지로 안부를 전하긴 했어도, 보고싶었던, 그리웠던 너를 그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보고싶었다. 아니, 보고싶지 않았다. 네가 이 곳에 없었으면 하고 바랐다. 나는 커다간 전쟁터 한복판에 서게 될 거고, 언제나 최전선 또는 격전지에서 싸우게 될 거다. 피비린내와 아비규환의 가운데에 내가 자리하게 될 거다. 그런 위험한 곳에 네가 나타난다는 건 너도 커다란 위험에 휘말리게 될 거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바였다. 그 날 이후로 종종 꾸는 내 악몽의 끝엔 네가 있었다.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그대, 그리고 우리의 벗. 피를 흘리며 생명이 꺼져가던 너의 얼굴. 사지에 나타난 네 모습은 나로 하여금 이기적인 생각을 하게 만든다.

너를 안전한 곳에 숨겨두고 싶다.

내게 권능이 있었다면 너를 아무 위험도 닿지 않는 곳에 꽁꽁 숨겨둘텐데. 삿된 악마의 손길조차 닿을 수 없는 곳에 숨겨놓았을텐데.


꿈의 광경이 점점 짙어질수록 점차 몸이 굳는 것이 느껴졌다. 인간들은 이런 걸 '가위에 눌렸다'라고 표현했던가. 악몽에서, 이기적이고 추악한 내 본심을 직면하는 그 꿈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으윽..잇새로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안타깝게도 육체는 내 의지대로 따라와주지 않았다. 원래 가위에 눌리면 숨쉬기도 힘들어졌던가?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점차 호흡이 가빠지고 있을 즈음이었을까.

"자네 괜찮은가!"

큰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실리안이 급한 발걸음으로 뛰어들어왔다. 억지로라도 잠을 깨우려 하는지 어깨에 손을 얹어 흔드는 조심스러운 손길이 느껴졌고, 엘리아데의 감긴 눈이 뜨였다. 동시에 막혀있던 긴 호흡이 튀어나왔다. 그냥 꿈을 꾼 거라 나는 괜찮다고 말하려는데 목이 메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걱정과 미안함으로 얼룩진 실리안의 눈썹과 눈꼬리가 더욱 내려갔다. 맘 편하게 얼굴도 보고싶고 그래서 놀러온 거였는데, 악몽을 꾸는 바람에.. 전부 망했다. 

"먼 길 오느라 피곤했을 텐데, 정무가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편하게 쉬라고.. 누군가 있는 것보단 혼자 쉬는 게 편할 것 같아 혼자 있게 둔 거였는데, 이리 악몽을 꾸고 있었을 줄이야... 미안하네, 내가 살피지 못했어."

머쓱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실리안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주며 대답을 대신했다. 실리안은 소파 앞 테이블에 놓여있던 주전자에서 차를 따라 엘리아데에게 권했다. 아니, 손에 억지로 쥐어주며 마시게 했다. 목을 축이고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니 잠에서 깼을 때보다는 확연하게 나아진 것이 느껴졌다.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자 실리안이 그녀를 깊게 껴안았다. 아까 잘 때는 소파에 혼자 누워있었는데, 지금은 실리안이 소파에 눕고 그녀를 자신의 몸 위에 올려놓고 푹 껴안은 모양새가 되었다. 엘리아데를 안은 채로 실리안은 한 손으로는 차가워진 그녀의 손을 주물럭거리며 마사지를 해주고 있었고, 한 손으론 천천히 그녀를 토닥였다. 소매가 살짝 축축한 게, 아까 흘린 식은땀을 닦아주느라 그랬나보다. 엘리의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 그는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대의 일이 바쁘다는 것도 알고 있네. 어느 누구도 그대의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 그대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소중한 사람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엘리아데는 등을 울리는 목소리에 간지럽기도 하고, 간질간질한 분위기가 어색해서 실소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분위기에서 웃으면 왠지 아주 많이 서운해 할 것 같아서 입술을 사려물으며 참았다. 그리고 꿈의 내용을 조용히 곱씹었다.

나에겐 온 세상이 위험해도 너만은 숨겨두고 싶다는 욕망이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너는, 모두를 등지고 홀로 살아남는 걸 바라지 않는 사람이다. 너는 결국 선하고 올곧은 성정으로 세상이 평안하길 바라기 때문에, 내가 어느 외딴 섬에 숨겨둔대도 다시 이 위험한 전쟁터로 돌아와 루테란을, 아크라시아를 지키고 싶어 하겠지. 내가 사랑한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역시, 너의 행복을, 소망을 위한다면 대악마 카제로스와 그 휘하의 악마들을 하루바삐 몰아내야겠구나.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를 때 쯤, 긴장이 풀려서일까 점차 몸이 노곤해졌다. 등 뒤의 온기 때문인지, 앞의 벽난로의 열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고른 숨들을 내쉬며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이것저것 쓰느라 되게 중구난방 된 거 같은데

혼자 이런저런 생각했던 장면들 다 한꺼번에 넣으려고 욕심부려서 그런가..

원래 글쓰고 다듬던 사람이 아니라서 조금 횡설수설 하네용 ㅎ..ㅎ (머쓱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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