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스타듀밸리] 이런 고구마 로맨스는 싫어! 0
0. 결혼식
샬롯 가의 결혼식은 이전에도 그래왔듯 토트랜드의 홀케이스 섬에서 치뤄졌으나, 전과 달리 모든 물자는 별방울 섬에서 나온 것만 사용됐다. 이는 빅 맘 해적단에게 별방울 섬의 가치를 증명하는 걸 겸한 아부였다. 번거롭게 우리 때문에 아까운 자원을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가치를 증명하겠으니, 보호를 청합니다. 스스로 굽히고 들어가는 이들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별방울 섬은 이동섬이었다. 자력이 존재하지 않으며 캄 벨트조차 무리없이, 온 바다를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섬! 이미 어인섬과는 정기 거래를 텄을 뿐 아니라 그곳의 왕실이 훈장까지 내린 이가 섬의 대표자였다.
이건 거절하는 놈이 머저리 아닌가. 샬롯 링링은 그 섬의 가치를 단번에 알아봤다. 무엇보다 그들은 어인섬의 보호까지 함께 청했다. 낙원과 신세계를 잇는 어인섬과 온 바다를 자유로이 거니는 이동섬. 어느 쪽이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거기다 그들이 바친 공물은…. 저울질은 길지 않았다. 빅 맘은 섬의 대표와 마법사에게 장성한 장남과 차남을 내어주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맏이와 가장 강한 아들이었다.
" 맘~맘마~하!! 웨딩 케이크는 준비가 잘 되고 있나?"
" 물론입니다, 빅 맘. 별방울 섬에서 나는 특산품 중 최고의 것만 엄선하여 만들고 있습니다."
사막에서 드물게 얻는다는 바닐라빈은 여타 다른 바닐라보다 향과 맛이 진하고 달콤했다. 겨울에 채취한 시나몬은 달콤하고 쌉쌀한 향이 퍼졌고, 알이 꽉 찬 호두며 거친 맛이 남는 초콜릿, 상큼한 레몬과 라임, 요정의 과일들까지. 집채만한 수레 가득 쌓인 식재료는 모두 최상이었다. 마을 공용 창고에서 제일 좋은 것들을 모조리 꺼내와 창고가 휑하다는 이야기를 일손을 거들던 호미즈들이 전해올 정도였다.
그 뿐일까? 새끼손톱의 반이나 될까 싶은 작은 보석은 끝도 없이 사용됐다. 온갖 향수며 말린 꽃, 생화를 보관하던 헛간은 이제 텅 비어버렸다고 했다. 식장의 규모며 사용된 것을 생각하면 놀라울 일도 아니었다. 샬롯 링링은 탐욕과 이성이 양립한 눈동자로 신부 대기실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둘 다 꿈 꾸는 자 출신이랬으니 손주로는 비슷한 체질이나 그 재능을 물려받은 자를 볼 수 있을 터. 만족스러운 기색이 스치며 빅 맘은 부풀어오르는 배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들이 바친 공물은 그녀를 영원토록 군림하고 건재하게 만들었다. 장남과 차남 쯤이야, 어렵지도 않지.
그렇게 장남과 결혼하게 된 신부, 마법사 벨라는 자신의 곁에서 부케를 정돈하는 이를 돌아보고 한숨을 삼켰다. 이 결정에 후회하는가 하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지만… 적어도 저 사람은 달랐을 수 있을텐데.
" 벨라, 그렇게 볼 필요 없단다. 난 괜찮으니까."
" 농사만 하고 싶다더니."
" 이렇게 된 게 내 탓만은 아니잖니."
" 애들 울상인 거 봤죠?"
그 말에는 입을 꾹 닫는 모습을 보라지. 새까맣게 물들인 거미 비단으로 만든 드레스는 보석과 흰 레이스, 금사로 놓은 자수가 아니었다면 영락없이 장례식에 입을 옷이었다. 빅 맘의 영토가 되는 게 나쁜 선택지는 아니었다. 흰수염의 보호가 가장 좋지 않느냐는 저 이에게 '원작'을 아는 이들이 차라리 빅 맘이 어떠느냐고 부추겼으니. 샹크스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유감스럽게도 아직 샹크스는 없었다. 로저 해적단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중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벨라는 입 밖으로 새려는 불만을 눌러삼키며 자리에 앉았다. 흰수염의 병 정도는 케스토스로 막을 수 있다. 그런데도 그놈의 원작이란 게 뭐라고. 빅 맘에게 바치는 것보다 흰수염에게 바치는 공물이 더 적은 편인데. 흰수염 해적단에 넘길 물량도 계산해보자면 그리 적은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감당이 됐다.
은은한 광택이 감도는 백은색 비단 위로 보석을 섞어 짜낸 검은 레이스 장식이 반짝였다. 당장은 섬의 특산물과 이동성에만 눈독을 들이겠지만 상대는 사황이다. 섬 내에서만 쓰인다는 기술을 얼마나 탐낼지.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기술이 너무 많았다. 꿈 꾸는 일족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 만큼, 차원을 넘어온 트립퍼들이 정말 많았다. 침잠하려는 의식을 끌어올린 건 곁에 앉아있던 이의 목소리였다. 여느 때와 같이 차분하고 느릿한 목소리.
" 깊게 생각하지 마렴. 전부 잘 될거란다."
" ...말은 쉽잖아요. 일이 두 배는 늘어날걸요."
" 으음. 힘내야겠네."
그러니까, 그 애들 표현으로는 '퇴근은 용서 못한다, 프라우.'였던가? 히페리온의 말에 벨라가 질색하는 얼굴이 됐다. 당신 입에서 그런 말 나오니까 진짜 이상해요! 찡그려지는 얼굴을 본 히페리온이 그제서야 태양 같은 눈동자를 휘며 웃었다.
그래.
저 눈동자.
은하수를 품은 태양빛 눈. 모든 트립퍼는 눈동자에 별을 품고 태어난다. 아주 작고 미세해서 한참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찬란하여 바라보는 것으로도 경악과 경외로 넋을 빼놓는 이도 있었다. 히페리온은 단연 후자였다. 별방울 섬의 모든 트립퍼들은 저 눈을 마주하고 구원받았다. 정신이 병든 이들을 성가셔하는 일 없이 10년도 넘게 보듬어 살피고 적어도 제 앞가림 할 줄 아는 어른으로 만들어주지 않았던가? 이 세상에 제대로 된 정신의가 드물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머리카락을 등 뒤로 길고 느슨하게 땋아내린 것도, 그 위에 내려앉은 장식도 모두 트립퍼들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자기 고향에선 결혼하지 않은 이들만이 머리를 땋아 아래로 내린다며, 그 트립퍼가 직접 빗과 마법약을 가져와 빗어내리고 묶어주었다. 누군가는 밤을 새어가며 직접 물레를 돌려 뽑아낸 금사를 가져오고, 온실에서 손수 키워낸 연분홍빛 요정장미와 그 향유가, 손 끝이 부르트며 완성한 다이아몬드 장식이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벨라의 머리카락도 만만찮은 장식이 더해졌지만 히페리온보다는 담긴 마음이 덜하리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게 아쉬우나면, 아니.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애초에 히페리온의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길게 드리워진 베일을 짠 건 벨라였다. 그녀는 차라리 자신 혼자 결혼하기를 원했다. 차라리 자신 하나뿐이라면 거부감이 덜했을테니까. 빅 맘이 탐낼만한 가장 큰 능력은 마법사인 벨라와 연금술사인 에스더였다.
" 날씨…, 좋네요."
" 그러게. 식을 올리기 좋겠어. 슬슬 일어나자꾸나."
" 애들 투정은 안 도와줄거니까."
" 이런."
그녀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야속하리만치 맑았다. 서글픈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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