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winJin ::Story::

《어느 도시》

커미션 신청본

ⓒStella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확실한 내 실수였다.

어떤 실수는 낭만을 만나게 하고, 어떤 만남은 미지와의 조우를 일으킨다고들 한다. 그래, 이게 나 혼자만의 문제였다면, 당황하는 일은 없었겠지. 허나, 이건 분명한 내 실수였고, 이미 수습하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와버린 것이다.

‘그래서, 여긴 도대체 어디인거지?’

엘빈의 목소리가 들리고서야 우리는 원래 향해야 할 목적지 대신 이 낯선 세계로 떨어졌음을 깨달았다.

잿빛 하늘에 기세등등한 공장 굴뚝과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연기,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사람 들. 그리고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를 내며 달리는 시커먼 증기기관차... 이건 분명 산업혁명 시기인 것 같은데, 물론 엘빈의 세계에서 더 발달한 기술들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잭더리퍼가 또 사람을 죽였다!!! 벌써 5번째야!!’

‘호외요, 호외!!! 셜록홈즈의 추리가 또 범인을 찾아냈다!!! 알고 싶은 사람은 신문 하나에 2페니!!’

‘경찰에서 안내한다. 어젯밤 정체불명의 사내가 노인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서 중상이다!! 시 민 모두 밤길에 안전을 주의할 것!! 더불어 지킬 박사의 병원에서 진료를 다시 시작한다고 하 니 부상자들은 그곳으로 갈 것!’

그래. 정확히는 이게 문제지.
이 조그만 시내 한복판에 도대체 문제아들은 왜 이렇게 많은 것인지. 차라리 잘못 올 것이면 조용한 곳으로 오기라도 할걸. 이렇게 정신없는 곳이면 사고에 휩쓸리는 건 당연한 수순.

근데 왜 하필이면 이곳으로 온 것이지? 더군다나 이런 세계는 사건의 흐름을 조금만이라도 뒤 틀었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도, 그나마 형사와 마주치면 다행이지만, 나머지 둘은 최대한 마주치지 않기를 빈다.

‘그래서 진. 이곳은 어디인거지? 확실히 우리가 사는 세계보다는 전반적인 기술 수준은 발전 한 것 같지만... 이곳은 마치 월 시나에서 가끔씩 벌어지는 사건들이 일상인 곳 같군.’

‘엘빈. 우리는...’

예리하기도 해라. 10분도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 모든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파악한 것을 보면, 역시 단장 자리는 괜히 얻은 것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다른 세계로 온 만큼 우리가 가 지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허나, 곧 밤이 될 것이고, 어디라도 들어가서 잠은 자야 했 다. 그럼, 여관비는 어떻게 마련하고?

‘진. 지금 우리는 이 세계에서 쓰일 수 없는 재화를 가지고 있고, 이 거리의 치안 상태는 좋은 상태는 아닌듯하다. 빨리 머무를 수 있는 숙소를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엘빈. 이 세계에서는 단순히 재화가 중요한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보여지는 지위도 중요하니까.’

‘그런 것에 대해선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 이미 여러 번 겪지 않았나. 그나저나 이 세계에선 빵 반죽에 작은 생선들을 통째로 넣어서 굽는 것이 유행인가? 음식은 먹을만한 것들 이 없군. 저 검은 빵을 제법 비싸게 주고 팔고 있는 것 같은데. 거인들이 월 마리아를 부수고 영토가 좁아졌어도 저런 질의 빵은 구호 물품으로도 공급된 적 없었어.’

아마 내가 생각하기에 엘빈 스미스가 이곳에 와서 가장 진지하고도 화난 상태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맞다. 확실하다. 하긴, 이 도시의 모든 것은 귀족이 아닌 이상, 최악의 가치를 가지 고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기에 저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건지, 그나저나 천하의 엘빈 스미스마저도 저 생선 파이에 대해서 비판할 정도면 이곳에서 괜찮은 음식을 찾 는 것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해주고 싶다. 저 의미심장하게 자신감 있는 태도와 빛나는 눈빛. 아무튼 일단은 들어보는 것이 먼저였다.

‘우리는, 특히나 자네와 나는 저 사람들보다 좋은 복식을 갖추고 있고, 여기보다는 저 높은 건 물들이 있는 곳이 소득수준이 안정되어 보이는군. 그리고, 지금 시기를 보니 연회장에 잠입해 서 이 구역의 귀족들과 접근하는 것이 정보를 얻기에도 용이하고.’

‘엘빈.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거야? 저 사람들이 어떻게 나올 줄 알고.’

우선은 이 미친 계획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에 있어선 이의를 표현했지만, 그렇다고 푼돈이라 도 벌어보겠다며 입체기동을 서커스 쇼에서 보여줬다가는 그 허름한 가벽이 무너져서 평생을 삼류 서커스단에 종속된 채로 사는 결말은 끔찍했다.

‘진. 내가 이런 일을 막무가내로 밀어붙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끌리 는 법이지.’

‘거기 돈 많아 보이는 놈!! 이리 안 와??’

‘당신! 앞에 안 봅니까?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엘빈 스미스씨의 위대한 작전 아래, 시내 한복판으로 걸어오자마자 양아치들과 시비 가 붙지를 않나, 앞도 안 보고 달려오던 마차에 치일 뻔하지를 않나. 그리고 그 상황에 눈 하 나 깜짝 하나 하지 않는 엘빈 스미스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광인이지않을까. 아니, 이미 사실 나의 스미스씨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신, 운전을 애초에 난폭하게 했으면서, 제게 책임을 묻는건 신비로운 계산법이군요. 그러고 보니 경찰들이 불법으로 운행하는 마차들에 대한 포상금을 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도대체 왜 이런 부분에서 적응을 빨리 한 것인지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만, 결과가 좋게 끝났으니 아무튼 괜찮은 것 아닌가.

한참의 협상 끝에 엘빈은 경찰에 넘기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나쁘지 않은 몫을 받았고, 하나의 사건이 끝나자마자 찾아온 불량배 무리들도 살기 가득했던 태도는 없어지고 우리에게 무릎을 꿇더니만.

‘정말 죄송했습니다...! 당신께서 스미스 가의 당주이신줄도 모르고... 죽을 짓을...’

‘너의 주먹은 그런 곳에 쓰이기에는 아까운 실력을 가졌더군. 다듬으면 좋은 실력을 보여줄 텐데. 그나저나 내가 오랫동안 타지에서 살다 오니 이곳이 많이 바뀌어있는데, 설명해줄 수 있겠나?’

‘제가 알고 있는 이 뒷골목의 소식들을 다 들려드리죠!’

언제부터 존재하지도 않던 스미스가의 당주인 것부터, 왜 여기서까지 동료를 만들고 있는 거 지? 그리고 도대체 왜 자연스러운 것인지! 저 당당하고 품위 있는 태도. 물론 그것이 엘빈 스 미스이지만... 뭐 다행히 몸을 누일 곳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무도회장으 로 들어오게 되었으니, 이왕이면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겠어.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남작님. 제가 밖에서 오래 있다 와서 그런지, 이곳이 많이 변했더군요.'

'아! 그래. 오랜만이네. 근데 자네 이름이 뭐였었지?'


'제가 너무 오래 여행을 떠났나 봅니다. 엘빈 스미스. 기억 안 나시는지요.'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이런 수법은 통하지 않을 거라고! 괜히 들켜서 쫒겨나기 전에 배라도 채울 명목으로 디저트들을 입에 넣었건만, 고요히 비명을 내지를 만큼 달기만 하고 맛없는 다 과에 이 시대 귀족들의 미각이란 이렇게도 우매한 것인가. 라고 생각할 뻔했다. 어째 원래 세 계보다도 비싼 설탕만 미친 듯이 써서 뇌까지 저릿한 단맛에 나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는 동안 이미 엘빈은 자신의 완벽한 작업을 시작했다.

‘아! 자네인가. 괜찮네. 무엇보다 지금 저기 공장주들 보이지? 그들이랑 얘기 좀 해보게. 자네 를 아주 좋아할거야.’

‘그렇습니까?’

저게 지금 먹힌다는 것이 말이 되는거야? 이걸 비극이라 해야 할지 희극이라 해야 할지.

‘그럼 당연하지! 자네같이 다른 곳을 잘 아는 사람이면 그 사람들 물건 팔기에도 좋고, 자네 주머니도 불려서 좋지. 그러고보니 자네 친구는 어디 출신인가? 생김새를 보아하니 이쪽 사람 은 아닌듯한데.’

‘아, 여행 중에 만난 벗입니다. 이름은 진인데, 여기보다 따뜻한 남부에서 왔죠. 저보다 이 세상을 더 잘 아는 친구입니다.’

‘진이라고 합니다. 볕이 좋은 남쪽에서 엘빈과 같이 무역업을 하고 있습니다. 남작님께서 연회를 주최하신 걸로 이 친구에게 들었습니다. 초대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지금의 세계에서 찾기란 어려울 것이야. 그나 저나 이 위태로운 연회장에서 빨리 뛰쳐나가고 싶건만, 도대체 여기에 있으려는 이유가 무엇 인거야, 엘빈 스미스! 그때, 갑자기 파티의 환희를 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식이다! 잭더리퍼가 또 사람을 죽였다! 우리 경찰들은 이 근교지에서 일어난 모든 장소를 봉쇄하고 수사에 전념할 것이다. 어서 파티를 멈추고 다들 돌아갈 것!’

우리의 미묘한 연회는 살인범의 소식으로 인해 빠르게 막을 내렸고, 대신 환락의 거리를 거닐 며 그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물론, 귀족이라는 신분 아래 허락을 맡은 체로.

‘저 사람, 줄에 매달려서 자고 있어.’


‘저 사람은 아주 허름한 여관을 다른 여행객들에게 호객하고 있군.’


‘전에 엘빈이 말한 끔찍한 검은 빵도 여전히 팔고 있다니까.’


‘이 세계는 우리가 사는 곳보다도 식문화는 엉망인 것 같아, 진. 전에 연회에서 내온 포도주도 정말 엉망이었지.’


‘하하, 자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심각한 것이 맞다니까. 그러고보니 이 거리에 살인마가 자주 돌아다닌다는 소문을 이미 알고 있는 것 아니었어, 엘빈?’


‘왠지 모르게 누군가 떠오르는군.’


‘그 사람, 케니라고 하지 않았어?. 그래, 그자와 비슷할 거야. 다만 조금 더 악랄하고 약한 사람만 노리는...’


‘그런 말들을 자네가 하면 이상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 때가 많았지. 진.’

‘살려주세요!’

왜 장난으로 시작한 말이 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제는 이 도시가 진지하게 싫어 질 것만 같다. 사실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거대한 연극인 것일까?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비명이 거리를 흔들었고, 엘빈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다른 말도 없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 사실은, 우리의 신분이 위조된 것이어서 설령 무사히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다 른 곤혹을 치르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엘빈! 잠깐만 기다려!’

‘으아아아악!’

이게 무슨 일인가. 어딘지 모르게 처절한 외마디 비명이 울려 퍼지고, 무언가 나름의 사투라 도 벌일 줄 알았건만, 완벽한 그의 승리라니. 아니, 그것보다 애초에 나름 이 도시를 주름잡는 최악의 살인마라던 그 ‘잭 더 리퍼’가 저렇게 마르고 허접하고 찌질한 녀석이었던가? 그의 손 에 잡혀있는 모습은 영락없이 늘어진 빨랫감보다도 못했다. 그렇다. 물론 사건의 흐름이 바뀌 겠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해결한 것이면 다행인 것 아닌가.

‘사람에게 칼을 휘두르고, 그런 부조리한 행동을 즐기는 것을 보니, 당신이 그 살인마로군. 난 이 도시의 사람으로서 너와 같은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

충분히 멋진 말이기는 하지만, 엘빈. 우리는 이 도시에 온 지, 정확히는 이 차원에 도착한 지 아직 24시간도 지나지 않았어. 자꾸만 이런 쓸데없는 참견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고 보는 데, 자네가 시간과 차원에 대한 적응이 빨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봐야 겠지만.

‘잘못했습니다... 제발 죽이지만 말아주십쇼.’

‘네 잘못은, 힘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그걸 마치 유흥거리처럼 팔았다는 것이다. 더불어 모든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며 이곳의 치안을 어지럽혔지. 나는 이 정도로만 이야기할 것이고, 나머지는 경찰들이 해결할 것이다.’

어쨌든 최악의 살인마를 붙잡은 것이 경찰이 아닌, 자칭 스미스 가의 당주이니, 이 일은 대서 특필 될 것이고. 아마 셜록 홈즈와 함께 당분간의 신문을 뜨겁게 달구는 요주의 인물이 될 것 이었다.

‘스미스씨. 자네 어떻게 그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제압했어?’


‘진. 우리는 인간보다 더한 적과 싸우는 사람들이지 않나. 그는 칼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사람이었어.’


‘아마, 오늘 이야기로 인해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특히나 이 도시 최고의 형사, 홈즈와 자네를 비교하기 시작하겠지.’


‘나쁘지 않군.’


‘나쁘지 않다고? 자네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소리라니까?’


‘어차피 우리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면 전설과 같은 이야기로 남지 않을까 하는데. 잔혹한 살인범 대신 정의를 지킨 의문의 사나이.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고.’

정말이지,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그의 숨겨진 모습들. 처음에는 내 실수로 인한 걱정이 컸다 만, 지금은 그와 함께 꽤 우스운 추억이 되었다고 본다.

‘그러고보니, 이 시대의 의술에 대해서도 궁금한 면이 있는데, 시내에 있는 한 의사가 나에게 초대장을 보냈더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데.’


‘그 의사의 이름은?’


‘단순히 자신의 병원 번지수만 적어두고 이름은 밝히지 않았어.’

‘그렇다면 가봐야겠군.’

그렇다. 나는 이곳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만 같다. 다만, 그것이 정말로 사실인지 궁금 했던 것이다. 그리고, 엘빈과 함께 거리를 걸으며 받는 찬사도 제법 달콤했고. 맛없는 음식들 대신, 희고 부드러운 빵과 적당히 달콤한 다과를 즐기는 것은 충분히 누릴 만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만.

‘실례하겠습니다. 엘빈 스미스입니다.’


‘어서오시오. 내 편지를 받은 모양이로군. 이렇게 와주셔서 영광이오.’


‘선생의 이름은 실례지만 어떻게 되십니까?’


‘난, 헨리 지킬. 이 도시의 의사 중 한 명입니다. 최근에 내가 몰두하는 연구가 있소. 자네라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아니, 둘은 함께 있어선 안돼. 안되는 일이다. 이건 존재해선 안되는 상황이다. 난 지금 내 모든 통찰력과 느낌을 믿는다.

‘진?’


‘엘빈! 아주 다급한 일이 생겼어. 우리 무역선이 엉망이 된 모양이야. 아주 많은 손해를 질지도 몰라.’


‘그러고보니... 요즘 너무 그 살인마를 잡는 데에만 몰두했었지.’

순간, 엘빈의 눈이 무언가 알아챘다는 듯, 그는 능숙한 위로를 건네며 다음에 만나기를 기약 했다. 그 무엇보다 아찔한 순간이 일어날지도 모르던 그 찰나. 그리고 너무나 익숙해진 이 도 시와 이제는 작별을 고할 때가 온 것만 같다.

그럼, 안녕히. 환락과 부조리의 도시여!

카테고리
#기타
추가태그
#드림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