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행복을

야마토의 일방적 짝사랑시절.

"잠시 휴식하겠습니다!"

'오베르주 La Plage'의 촬영장. 드라마의 주역인 ‘아이돌리쉬 세븐’은 각자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며 촬영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휴식 시간이 끝나면 나랑 나기의 씬이었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미츠키가 입을 연다. 그리 길지 않은 휴식이기에 미츠키는 틈틈이 나기와 대본을 맞춰본다. 이런 모습에 야마토는 너무 열심히 라며 괜히 옆에서 장난을 쳐본다. 이는 연기파 아이돌의 작은 여유 같은 것이었지만 지금은 원테이크로 모든 것이 결정나는 무대가 아니다. 지금은 몸에 긴장을 풀고 있어야 되는 때였다.

퍽. 야마토가 미츠키에게 한대 맞은 모양이었다. 물론 진심은 아니고 옆구리만 살짝. 이는 그의 장난에 장단을 맞춰 준 것이리라.

"아야야……. 미츠 그사이 손 너무 매워졌다고."

"하여간……."

"어! 츠보링이다!! 츠보링~~!! 여기! 여기!!"

굳이 뛰지 않아도 그룹 내에서 최장신인 그는 잘만 보일 텐데도 타마키는 마치 신이 난 키나코처럼 펄쩍펄쩍 위로 뛰어오른다. 슝~ 하고 천장을 뚫고 나가지 않을까 싶을정도였다. 타마키의 파트너인 소고는 조심스레 그를 말려보지만 딱히 소용은 없는 듯 했다.

"OH~ 츠보미 손에 뭔가 한가득 들려있습니다~ 간식인걸까요?"

"그러고 보니 츠보미 씨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라고 했지! 전 따뜻한 음료 부탁했어요!"

"간식만 주러온 건 아닐 테고... 아, 니카이도 씨 이 다음에 스케줄 있었죠?"

"...아, 응."

이오리의 말에 야마토가 움찔거리며 조금 늦게 반응한다. 시선이 한박자 늦게 이오리에게로 향했다. 이오리에게 향하기전에 시선이 머물러있던 곳은 당연히 츠보미가 있던 곳. 이오리는 조금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이는 너무도 사소해서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슬슬 휴식시간이 끝나가기도 하고. 드라마 촬영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츠보미 씨한테 인사하러 가야지~"

"나나세 씨?! 곧 휴식 시간 끝납니다!!"

"괜찮잖아. 미츠키랑 나기 촬영할 땐 우리 대기고."

"정말이지……."

결국 이오리는 강아지처럼 총총 걸어가는 리쿠를 막지 못하고 뒤를 따라간다.

"우리 애들은 너무 자유분방하다니까~"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야마토의 시선은 리쿠가 향해가는 그곳에 머물러있다. 시선은 누구보다도 다정했다.

"……."

그리고 한발자국 뒤에선 타마키가 이런 야마토를 본다. 타마키는 3초정도의 침묵 후 입을 열어 목을 울린다.

"그런데 말이야 야마 씨 츠보링 정말 좋아하지."

"응...?!"

막내의 거침없는 발언에 야마토의 눈이 커진다. 얼마나 놀랐는지 입도 벌어진다. 말문이 막혀 그는 얼렁뚱땅 넘어갈 타이밍을 놓쳐버린다. 타마키는 다시 또 목을 울리고,

"야마 씨 늘 츠보링 보고있구. 츠보링을 보면서 늘 웃고 있어!"

"그, 그그그게 무슨 소리니 타마……."

이마에 맺힌 땀이 비단 촬영장의 조명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야마토는 침을 삼킨다. 쿵. 하고 소리가 울리는 느낌이었다.

"아니 이상한 말은 아니구... 난 좋아 그런 야마 씨의 모습. 정말 행복해 보이거든!"

"……."

야마토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동자만 굴릴 뿐이었다.

"타마키 녀석, 의외로 이런 곳에서 날카롭지……."

"미츠키?"

"아무것도아냐! 나기, 우린 촬영 준비하러 가자고!"

"오케이입니다~!"

미츠키와 나기가 퇴장하고, 이오리와 리쿠가 다시 입장한다. 뒤엔 츠보링. 아마야 츠보미도 함께였다. 타마키가 다시금 웃으며 그를 맞이 해주었다.

"타마키 군! 여기 푸딩 나둘게요!!"

임금님 푸딩의 패키지 박스를 근처 간이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웃는 츠보미에게서 타마키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정확하겐 그의 손에 있는 푸딩 박스에. 지금 먹어도 돼?! 하고 물으면 소고가 단호히 참으라 말하며 본인들도 대본을 맞추자고 푸딩 대신 드라마 대본을 내민다.

"우~ 소 짱 노잼."

"타, 타마키 군! 촬영 끝나면 먹게 해줄 테니까……."

이쪽도 마치 한 마리 강아지 같은 파트너를 달래며 퇴장한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거리를 두며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야마토가 자연스럽게 츠보미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리자 츠보미는 얼굴을 돌렸다. 갈색 머리카락이 천천히 츠보미를 따라다닌다. 언제나 처럼 위로 올려묶은 머리카락이 꼭 다람쥐 꼬리 같아. 야마토는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야마토가 웃는 이유는 모르지만 그가 웃는 모습이 보기좋아 츠보미도 베시시 웃어본다. 살짝 휘어접은 눈에 담긴 녹색 눈동자가 오늘따라 더욱 야마토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반짝반짝. 촬영장의 조명이 때문인가? 빛을 받아 빛나는 보석 같았아보인다. 야마토는 까마귀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생각보다 일이 빨리 마무리 되어서요. 촬영장 구경도 하고 싶어서 힘 좀 냈습니다!"

안경을 위로 올리며 뿌듯하게 미소 짓는 얼굴이 다람쥐 같이 귀여웠다.

"헤에~ 좀 더 일찍 왔으면 오빠의 멋진 촬영 장면 볼 수 있었을 텐데."

괜스레 장난스럽게 말을 던진다. 그의 귀는 천천히 붉게 물들어 갔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를 보는 사람은 없다.

"아쉽네요. 그건... 본방 때 꼭 확인할게요!!"

활기찬 모습은 다시금 야마토를 웃게 만든다. 아직 일하는 중이지만 좀 더 같이 이야기하고 싶게 만들어버린다. 야마토는 실없는 소리를 하며 다시 츠보미에게로 말을 건넨다.

"그러고 보니 오빠 아까 미츠한테 맞았어~"

익살스럽게, 조금 오버하듯. 어리광을 섞어서. 표정은 입꼬리를 살짝 올려 장난스럽게. 가볍게 보이도록.

"에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런데……."

"그런데?"

"어쩐지 야마토 씨가 잘못 했을 것 같아요."

꺄르르. 츠보미가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야마토는 넌 누구편이야?! 라고 그의 반응에 맞춰 맞받아친다. 웃음기 섞인 숨소리. 가까이에서 주고 받는 목소리. 야마토는 이런 시간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소소한 대화지만, 츠보미와의 이런 소소한 대화들이 차곡차곡 모여 야마토의 안에선 벌써 큰 나무를 만들어냈다. 나무의 이파리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추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것하나 떨어져선 안되는 소중한 추억들.

"다음, 단체 씬 촬영입니다!!! 준비해주세요!"

스태프의 우렁찬 목소리가 촬영장에 울린다. 야마토는 아쉬웠다. 물론 티는 내지 않을 거다. 지금 자신이 츠보미에게 그런 감정을 티내는 것은 사치였다.

"그럼 다녀올게."

"모두의 모습 두 눈에 담고 있을게요."

"…나만 봐도 되는데."

너무 즐겼던 탓일까. 마음속 다짐이 무색하게 무의식 적으로 그의 속내가 튀어나온다. 말을 뱉은 그도 놀란 모양인지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신다.

"네?"

"아니... 이건...! 아, 아무튼 다녀올게!!"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게 물들인 야마토가 퇴장한다. 조금 뒤 아저씨 얼굴 좀 빨간데?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리에 혼자 남은 츠보미가 시선을 조금 돌리면 어느새 아이돌리쉬 세븐 일곱명이 모여서 자신들의 역할에 몰입해 있었다. 지금 이 장소에서 그들에게 눈을 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츠보미는 제 눈 가득 아이돌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어쩌면 특정 누군가에게 더 오래 시선이 갔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촬영은 이제 끝이네."

"소 짱 나 이제 푸딩 먹어도 돼?"

"물론이야 타마키 군."

타마키는 쏜살같이 달려가서 푸딩을 입에 넣는다. 스스로 쟁취해낸 푸딩의 맛은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었다. 잊지 않고 소고에게도 하나 건네었다.

"츠보미 씨 없네. 벌써 간 걸까……."

"이 다음 니카이도 씨의 스케줄 있으니까요. 차로 돌아가셨겠죠."

리쿠는 아쉬운 듯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보이지 않는 강아지의 귀와 꼬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야마토 씨 방금 옷 갈아입으러 갔어. 바쁘네~"

"요즘 야마토 새벽에 돌아옵니다. 같이 코코나 볼 시간이 없어 슬픕니다..."

"울지 마, 울지 마! 오늘은 내가 같이 봐줄게~"

"OH~ 정말입니까~!"

나기가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미소를 보여주며 팔을 높이 올려 만세를 부른다.

"하여간~ 우리 애들은 늘 시끌벅적하다니까."

옷을 다 갈아입은 야마토가 제 멤버들을 향해 한마디 던졌다. 시선이 야마토에게로 집중되었다. 잘 다녀오라는 둥 한마디씩 던지고 이걸 다 받아내면 야마토는 비로소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아마야 씨랑 아이나나의 니카이도 야마토랑 뭔가 있는 거 아냐?!

츠보미가 대기 시켜놓은 차로 향하던 중 야마토는 자신의 이름이 나와 급하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자신의 이름만 나왔더라면 나한테 관심이 많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지나쳤을 테지만 하필이면 자신의 이름 옆에 츠보미가 붙어버렸다.

아이돌과 일반인. 이 두 사람의 이름이 함께 붙으면 피해를 보는 쪽은 항상 일반인이었다. 야마토는 걸음을 멈추고 건물 뒤에 숨는다. 귀를 기울여보았다.

"아마야 씨 그냥 평범하게 매니저 일을 하고 있을 뿐이지 않나?"

“아니아니 들어봐!! 두 사람 아까도 촬영장에서 사이 좋게 이야기 나누고있었어! 네가 그때 니카이도 야마토의 표정을 봤어야 해.”

이 사람들 나한테 이렇게 관심이 많았었나... 야마토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지금 상황과 더불어 아까 전 타마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츠보링을 보면서 늘 웃고 있어!

본인은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 했건만 그건 자신의 크나큰 오만이었나보다. 야마토는 눈썹을 찡그리며 표정을 구겼다.

"난 역시 뭔가 있다고 봐."

"그러고보면 아마야 씨 가끔 너무 니카이도 야마토 씨한테 붙어 있더라. 아무리 스케줄 관리 해주고 있다곤 해도."

“아아, 나도 인기 여자 아이돌 매니저 일 해보고싶네.”

“너 같은 애를 누가 뽑아 주겠니”

“아무튼… 나는…”

“나도… 그러니까…”

대화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야마토는 한껏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긴다. 본인 때문에 츠보미가 곤란해지는 건 아닌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머리가 지끈 거려오는 듯 했다. 피가 식다는 말, 이럴때 쓰는거지? 야마토는 무표정한 채로 관성적으로 움직였다.

"그러고 보면 야오토메 최근 우리 매니저랑 거리 두는 거 같았는데……."

비슷한 이유려나 이 녀석도. 야마토는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너무도 평화로웠다. 구름이 예쁜 모양으로 흘러가고. 태양이 밝게 불타 오른다.

역시 내가 곤란하게 하고있는 거지. 시선을 내리면 한 가지 문장이 머릿속에서 서서히 떠오른다. “역시, 거리를 둬야할까.” 야마토의 얼굴이 다시금 구겨진다. 비단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 때문은 아니었다. 싫은데. 야마토의 작은 투정.

"니카이도 씨!"

그때였다. 어느새 주차장까지 왔는지 츠보미의 활기찬 목소리가 야마토의 귀에 부드럽게 닿았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올리면 평화로운 하늘 아래에서 미소짓는 츠보미가 있었다. 손을 흔들때마다 그의 갈색 머리카락이 동시에 흔들 거렸고 그 봄을 담은 눈동자는 안이든 밖이든 똑같이 빛났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아."

저렇게 눈부시게 웃고 있는 아이를 어떻게 가만히 나둘 수 있어.

야마토는 자신 앞에서 선명히 미소 짓고 있는 봄을 향해 다가간다. 다가 갈수록 고민은 저 따스함에 휘발되어 날아가 버린다. 일단 지금은 저 애에게 집중할래.

언제 이렇게까지 커져버렸을까. 두근대는 심장에 손을 올리곤 생각해보지만 이 질문엔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더 욕심내지 않을게. 그러니,

"니카이도 씨 좀 늦으셨네요. 찾으러 가려던 참이었어요."

"미안미안. 우리 애들이 오빠를 너무 좋아해서"

"아, 네..."

"그런 반응 상처받아."

"...아무튼 얼른 타세요!"

야마토는 익숙하게 츠보미의 차, 조수석에 앉는다.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리면 자신의 입 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러니 다들 그렇게 말하는 건가. 야마토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내린다.

츠보미는 차에 시동을 걸어 출발 시켰다. 그의 눈에 비친 야마토가 피곤해보여 따로 말을 걸진 않았다. 야마토는 이 배려에 감사했다. 이 상태에서 대화를 해봤자, 머리에 남는게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와서 이 감정을 부정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거, 형아한텐 힘든 일이거든. 야마토는 입꼬리를 올렸지만 그건 자학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다고 해서 이 감정을 전부 밖으로 꺼낼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혼자 간직할 생각이었다. 츠보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이 감정이 일방통행이라고 생했다.

더 욕심내지 않을게 그러니,

네 옆에 계속 있게 해줘.

하지만, 하지만 만약에 말이야. 일방통행이 아니라면, 혹시 내가 어리광부려도된다면, 그때 우린 어떤 관계가 되어 있을까?

.

.

뻘소리… 타마키의 "그런데 말이야 야마 씨 츠보링 정말 좋아하지." 라는 대사를 쓰고 싶어서 몇자… 적어 봤습니다. 타마키는 츠보미도 야마토도 좋아하니까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웃고 있는 모습을 정말 좋아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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