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

네임버스

⛓️ 오키타 소고 / 🐶 카나에 유리

総心 by 천파복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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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환생자거든요.... 네임 발현 후에 패닉에 빠졌지만 자기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였을 것 같아요. 이후 가족을 잃고 우울증으로 삶의 의지를 잃었을 때 네임을 보면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자해도 했을 것 같고.... 그러다가 문득...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준비도 없이 에도로 올라갔을거예요. 원작(진선조 옆 편의점)보다 좀 더 일찍이요. 그리고 진선조로 무작정 찾아가는 거예요. 그러다가 오키타 소고와 마주치고...끓어오르는 애정에 엉엉 울어버리는거죠. 진선조 측은 처음 보는 여자애(게다가 민간인)이 갑자기 꺼이꺼이 울어재끼니까 당황스럽고...게다가 유리가 갑자기 앞섶을 풀기 시작하니 더 당황하겠죠. 그러나 금방 그보다 더 경악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는데...유의 가슴팍에 '沖田 総悟' 라고 적힌 것을 본 일이죠. 순식간에 소고에게로 모이는 시선. 소고는 두 눈을 끔뻑, 하고 말해요.

⛓️ 전 네임 없는데요?

쿵.

유리는 너무 놀라서 울음을 뚝 그쳤어요.

가족을 다 잃고, 마음 의지할 곳 하나 없이 몇 년을 살다가, 마지막 희망으로 네임을 향해, 은혼을 향해 왔는데.

나의 상대가, 네임이 없다니?

유리는 생각했어요.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나에게 부조리하지?

눈물도 안 나왔어요. 유리는 멍-하니 오키타 소고를 보다가 귀신처럼 스르륵 일어났어요.

저벅.

저벅.

저벅....

유리는 소고에게 조용히 다가가서...얼룩진 얼굴로 물었어요.

🐶 한 번만 안아보면 안돼요?

네임이 없는 것이 제 잘못은 아니지만은, 자신의 네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러니 한 번쯤이야 못 안겨줄 것도 아니었어요. 소고도 기분이 묘했거든요. 남의 몸에 제 이름이 박혀 있는 것을 보니까요.

⛓️ 뭐.... 맘대로 하십쇼.

유리는 부들부들 팔을 올려서...소고의 허리춤을 꽈악. 껴안았어요. 마음에 한가득 차있는 애정 덕분인지, 간만에 누군가와 닿아서인지. 유리는 품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요. 가족과 있을 때처럼.... 또다시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지만, 유리는 팔을 풀었어요. 고개를 숙이고 말했죠.

🐶 고마워요, 오키타 씨.

그러곤 뒤를 돌아 둔영을 나갔어요. 유리는 정처없이 떠돌다가 에도 대공원에 자리를 잡았어요.

서로밖에 없는 관계가 생길 줄 알았어.

남몰래 소고라는 이름을 되뇌이기도 했어.

마지막 희망이었어....

이제 나한텐 진짜로 아무것도 없어.

외로워.

유리는 두 팔로 스스로를 끌어안고 떨었어요. 해가 져가서 추운 건지, 마음이 허해서 추위밖에 느껴지지 않는 건지. 유리는 노을을 멍하니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죽자.

나에게 불행만 안겨주는 세상 같은 거, 나도 필요 없어.

한 번 죽었는데 두 번이 어렵겠어?

높디 높은 빌딩에 올랐어요. 몰래 옥상 문을 열고 들어갔죠. 그런데 이게 뭔가요? 선객이 있네요. 후줄근한 옷차림에 한손에 든 술병, 추레한 선글라스. 유리가 툭 물었어요.

🐶 아저씨도 죽으러 왔어요?

🕶️ 어엉, 그래. 여긴 내가 찜했다. 

그럼 여긴 포기. 다른 곳으로 가자. 뒤도는 유리를 하세가와가 붙잡았어요.

어이, 어이. 아가씨. 죽기 전에 마지막 온정이나 받고 가. 술 한잔 걸치라고.

하세가와는 눈앞의 유리가 미성년자인 것도 몰랐어요. 취했으니 그럴 법 했죠.

술...유리는 충동적으로 하세가와의 앞에 앉았어요.

한 잔.

🕶️ 크흐.

🐶 크읍.

씁쓸하네요.

두 잔.

🕶️ 내애가, 왕년에는, 천인입국관리국 국장이었다 이 말이야.

🐶 그래요?

이미 취해 있던 하세가와는 금세 말 끝을 질질 끌었어요.

세 잔.

🕶️ 어쩌다가 인생이 이렇게 됐는지.... 이 개같은 세상.

🐶 그러게요.

목구멍이 홧홧했어요.

유리는 또다시 눈물이 왈칵 나왔어요. 어차피 모르는 사람이니까, 하고 유리도 입을 열었죠.

🐶 있잖아요.

🕶️ 하소연 하게? 그래, 이 아저씨가 다 들어주지.

🐶 나 9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요.

시작부터 무겁기 그지없어요. 하세가와는 남몰래 꿀꺽 침을 삼켰어요.

🐶 정확히는 가족들 다 죽었죠.

유리가 잔을 내밀었어요. 하세가와는 두 손으로 술을 따라주었죠.

🐶 그러고 그냥 꾸역꾸역 살다가...너무 외로운거예요.

🕶️ 음. 그, 그래서?

🐶 제가 사실 네임이 있거든요.

하세가와는 자기가 생각한 시나리오가 아니길 바랬어요.

🐶 그 사람을 찾아서 여기 왔는데...우와, 그 사람은 네임이 없다는 거예요.

하세가와는 하소연 들어주겠다고 한 자신의 입을 치고 싶었어요. 사실 하세가와는 유리를 죽게 둘 생각이 없었어요. 그야 너무 젊으니까요. 어린 게 뭐가 힘들다고 자살 자살이야? 이런 마음도 있었죠. 하세가와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다가 벌떡 일어났어요.

🕶️ 그, 그깟 네임이 뭐라고! 일어나, 아가씨! 내가 끝장나는 천국들을 맛보여주지!

하세가와는 꿍쳐둔 비상금을 떠올렸어요. 갈만한 곳...스트립댄스? 되겠냐! 호빠...그만한 돈은 없어! 도, 도박장. 젠장, 거기라도 데려가자!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됐어요.

유리는 게임 신의 은총을 받은, 전설의 게이머가 될 재목이니까요. 하세가와는 생전 처음 보는 칩의 갯수에 입을 떡  벌렸어요. 하세가와가 칩을 소중하게 만지고 있든 말든, 유리는 즐거웠어요. 딜러의 눈초리, 다른 게이머의 견제, 계산, 운, 속임수의 돌파. 도파민이 펑펑 솟았죠.

유리와 하세가와는 도박장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어요. 유리 곁에 서있는 하세가와의 꼴은 점점 졸부처럼 변했죠. 유리는 밤새도록 게임하며 퀭한 몰골이었지만요.

두 사람은 유명해졌어요. 천재 도박사와 그 옆에서 조잘거리는 선글라스 콤비로요.

도박장 입장에서는 유리의 출입을 막고 싶어서 안달이었죠. 어느 날은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점점 출입이 안 되는 날이 늘자, 둘은 불법 도박장 쪽에도 손을 댔어요. 판돈이 커졌고, 칼을 찬 덩치가 유리를 감시했어요. 그래도 유리는 도파민을 쫓아 게임에 몰입했어요.

사건이 일어난 그날도 둘은 담배 연기가 가득한 사설 도박장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

🐶 콜록. 다이.

👤 거, 게임 더럽게 하네.

🐶 재밌게 만드는 거죠. 콜록.

삐죽. 유리가 견제를 맞받아치고 카드를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이었어요.

쾅-!!

🚬 신센구미다-!!! 

뭐, 이 사설 도박장이 과격 양이당이 운영하는 곳이었다는 이야기죠.

혼비백산.

도망치려는 도박쟁이들과 간단히 제압하는 진선조 대원들. 옅게 일어난 칼부림. 유리와 하세가와는 서로를 끌어안고 달달달 떨다가 수갑이 채워졌어요. 유치창에 우글우글 갇혔죠. 유리는 늘 하던 버릇대로 이름만 말했다가, 윽박을 당하고 성까지 읊었어요. 카나에. 그 세 글자가 적힌 서류는 위로 보고되었고, 국장실에 닿았죠. 그리고 우연히, 아주 우연히. 유리의 이름이 적힌 서류를 롯텐 마이조가 보게 되었어요.

叶. 그 작은 한 글자에 마이조가 반응했어요. 게다가 카나에라고 발음하는. 마이조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바로 진선조로 향했어요.

갑자기 방문한 높으신 분. 자리에 또 없는 국장 대신 부장이 맞이했죠. 마이조는 만남부터 본론을 꺼내들었어요.

🧓 이번 도박장 습격 사건에서 잡힌 사람들 중에 말입니다.

🚬 예.

🧓 그중에 카나에 유리라는 자를 불러줄 수 있겠나요?

🚬 ...어이. 가서 카나에 유리를 데려와.

유리는 수갑을 찬 상태로 두 사람 앞에 대령됐어요. 히지카타는 어쩐지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얼굴에 고개를 기울였어요.

🧓 카나에...협(叶)의 카나에를 아십니까?

🐶 네...? 그걸 어떻게 아는...아니, 누구세요?

🧓 아아! 이럴 수가...이럴 수가....

게임만 하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느라 초췌해진 손을 마이조가 붙잡았어요. 그러곤 말했죠. 자신은 롯텐 마이조이며, 카나에의 당주와 편지를 하던 사이라고. 그는 울면서 유리의 뺨을 쓰다듬었어요. 카나에의 비극을 알고 있었노라. 살아남은 것을 몰랐다. 용서해달라.... 유리는 멍하니 듣다가 말했어요.

🐶 그 롯텐 마이조요?

🧓 예에, 제가 롯텐 마이조입니다.

🐶 알고...있었다고요? 그 일을?

마이조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 그, 그럼, 그럼, 왜, 왜....

유리는 보는 사람이 다 안타까울 정도로 떨었어요. 마이조는 그간의 사정을 전부 말했고, 유리는 형연할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져 숨을 가쁘게 쉬었어요. 과도한 스트레스로 과호흡이 온 유리 탓에 의료대원이 달려왔고, 진정은 됐지만 유리는 결국 기절했어요.

유리는 하루를 꼬박 자고 일어났어요. 그동안 유리는 수감자 신세에서 벗어났고, 오히려 경호를 받았지요. 마이조의 의사로, 마츠다이라의 명령이었어요. 진선조는 영문도 모른 채 그 명령을 따랐죠.

그리고 그 사이. 몇몇은 유리를 알아보았어요. 그때 그 오키타 대장님의 네임을 가지고 있던 여자애 아니냐고. 옷을 갈아입히느라 유리의 몸을 본 식당 아주머니가 그게 맞음을 슬쩍 알려왔어요. 수군수군댔죠.

그 소식이 소고에게 닿았을 즈음은, 유리가 마츠다이라의 먼 친척으로 위장해 몸을 그쪽에 의탁했을 시기였어요. 하세가와에 의해 유리의 사정도 탈탈 털었기에, 소고는 내심 유리가 신경 쓰였어요.

둘의 만남은 금방 이뤄졌어요. 유리가 하세가와를 보석금으로 석방해주려고 진선조에 온 것이 이유였지요. 히지카타의 안내를 받고 가다가 마주친 두 사람은 어색했어요. 유리가 발걸음을 멈추자 소고 쪽에서도 멈춰줬어요. 변덕일걸요.

🐶 저기....

⛓️ 네. 말씀하십쇼.

🐶 한 번만 더 안아봐도 돼요?

소고는 볼을 발갛게 물들인 유리를 내려다보다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유리는 조심스럽게 팔을 뻗었고...가슴팍에 얼굴을 살짝 기댔다가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서 떨어졌어요.

🐶 고마워요, 오키타 씨.

⛓️ 소고.

🐶 네?

⛓️ 소고라고 부르세요. 어차피 제 이름 알잖습니까?

변덕이었어요. 자기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거든요.

🐶 아.... 네. 소, 소고...씨.

유리는 정말 한계까지 빨개져서 고개를 푹 숙였어요. 작은 목소리로 그럼...가볼게요. 하고 중얼거리듯 말하고는 히지카타를 따라 사라졌어요. 유리는 정신이 없었어요.

역시 네임이랑 만나면 되게 떨리는구나...

본인한테 진짜 소고라고 불렀어.

어떻게 해, 너무 신기해.

유리는 속으로 발을 동동 굴렸어요.

방금 헤어졌는데 또 만나고 싶어. 

하지만......

유리는 두근대는 심장을 꾹 눌렀어요.

역시, 답 없을 사랑을 하긴 싫어.

오키타 소고가 생각보다 상냥하긴 해도, 네임이 없잖아.

그러니까 됐어.

가끔 만나서 설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렇게 심정을 정리하는 사이, 상기됐던 얼굴은 식었고 심장도 원래대로 돌아왔어요.

유리는 진선조에 얼굴을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어요. 도박 중독을 치료하느라도 그랬지만, 일부러 그러기도 했죠. 소고도 유리의 일을 금방 잊어버렸어요.

유리는 도박의 물이 얼추 빠져가자 동호회를 가입했어요. 자신과 똑같이, 네임 상대가 자신의 네임이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죠. 사정은 다양했어요. 네임 상대가 죽은 경우도 있었고, 이미 가정을 꾸린 경우는 허다했으며, 수도자로 지내며 속세의 이름을 버렸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생각보다 많구나.

유리는 어쩐지 위로가 됐어요.

보답 없을 애정에 허덕이는 사람들. 서로의 상처를 핥으며 어떻게든 살아가는 사람들. 

유리는 그곳에서 네임의 상대가 죽은 어떤 사람과 제법 괜찮은 분위기가 됐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지 말이 잘 통했거든요. 찌르르 오는 애정이 아니라 유대. 신뢰. 서로를 향한 동정.... 그런 것들이 어우러진 감정이었지만, 온기를 나눌 수 있으니 아무래도 되었어요.

평화로웠어요. 카페에 나란히 앉아 어깨에 기대어 햇빛을 맞는 시간도, 손을 잡고 공원을 산책하는 나날도. 종종 밤을 지내고 네임에 관해 조곤조곤 감정을 나누는 시간도. 와 이렇게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쯤, 유리는 길거리에서 소고와 마주쳤어요. 츠요시와 손을 잡고 있을 때요.

유리는 반사적으로 손을 빼려고 했지만, 츠요시 쪽에서 꽉 잡아 왔어요. 그때야 유리는 정신이 들었어요. 유리가 츠요시를 올려다 봤어요. 츠요시가 부드럽게 웃었죠. 유리는 따라 웃어보이고는 소고를 향해 까딱, 고개 인사만 하고 지나쳤어요. 손을 꼭 잡은 채로.

🐶 츠요시 씨. 저 심장이 너무 떨려요.

🖤 이해해요. 음, 되게 멀끔하게 생겼네.

🐶 그렇죠? 저러고 네임이 없다니, 부조리해요.

🖤 그러네요. 어우, 사기네.

푸훗. 유리가 웃음을 터트렸어요. 이 사람이 아니면 누가 이 애달픈 마음을 알아줄까요? 유리는 제법 행복했어요.

유리가 즐겁게 웃는 모습을 소고는 다 보고 있었어요. 제 네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와 손을 잡고 있는게 퍽 신기해서요. 그리고 소고는 생각했죠.

흠.

어쩐지....

마음에 안 들어.

삐죽. 소고는 삐딱하게 섰어요. 자기가 1등이어야 속이 시원한, 성격 나쁜 소고가 튀어나왔어요.

내 네임을 가지고 있다며?

그럼 날 가장 좋아해야지.

한눈을 파네?

괘씸하구만.

자기는 유리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유리는 자기를 좋아하는 상태로 있어야 된다니요. 무슨 이렇게 이기적인 놈이 다 있나요.

소고는 일부러 마츠다이라 자택 근처의 순찰을 도맡았어요. 유리는 종종 소고와 마주쳤죠. 소고는 그 때마다 가볍게 말을 걸었어요. 시작은 인사였죠.

⛓️ 안녕하십니까.

🐶 아. 안녕하세요.

하루 하루, 대화는 한 두 마디씩 길어졌어요.

⛓️ 날이 좋네요.

🐶 맞아요. 그래서 공원 가려고요.

날이 좋으면 좋아서, 날이 안 좋으면 안 좋아서.

🐶 오늘도 수고하시네요.

⛓️ 일이니까요. 비 오는데 어디 가십니까?

🐶 단골 카페요. 거기 쿠키가 정말 맛있거든요.

유리는 점점 소고에게 빠져들어 갔어요. 그래요. 이런 간단하고 일상적인 대화에도 말이에요.

🐶 다음에 사다줄게요. 가볼게요.

그래도 츠요시와의 관계는 그대로였어요. 츠요시는 유리의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서 오면 오늘도 그 사람을 만났구나, 하고 넘어갔어요. 그래도 넌지시 말했죠.

네임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연애는 위험해. 한 쪽의 추가 너무 무겁거든.

🐶 하지만...그래도 행복해요.

눈을 내리깔며 볼을 물들이는 유리를 츠요시가 쓰다듬었어요. 부디 그 사람이 너를 좋아하는 것이길. 그 사람의 마음이 영원하길.

그런 바람이 통한 걸까요. 소고는 유리가 제법 마음에 들었어요. 제 앞에서 꼬리치는 개란 언제나 기꺼운 법이죠. 뭐, 선물로 받은 얼그레이 사브레도 맛있었고요.

사귀어나 볼까.

소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했어요.

⛓️ 사귈래요, 우리?

소고는 미루는 성격이 아니었어요. 유리는 너무 놀라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멍청히 서서 소고의 뒷통수를 쳐다봤어요.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 헤에.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라는 얼굴이네요.

🐶 어떻게 알았, 이 아니라. 네?

⛓️ 사귀어보자고요. 그쪽 나 좋아하잖아.

오만함이 언뜻 내보여졌어요. 유리는 상상만 해오던 순간에 어안이 벙벙했어요.

하지만...한편으로...조금...화가 났어요.

나를 뭘로 보는 거지?

내게 자기의 네임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가볍게. 

🐶 ......고마워요.

아, 역시 수락이군.

소고는 생각했어요.

🐶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제겐 이미 연인이 있어서요. 죄송하지만 못 들은 걸로 할게요.

끔뻑.

소고는 이걸 거절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네임이 있으면 그 상대한테 깜빡 죽는다고 들었는데? 

소고는 예상과 다른 시나리오에 조금 당황했고, 유리는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어요.

그날 유리는 츠요시를 만나자마자 울음을 터트렸어요.

🐶 츠요시 씨...!

🖤 와앗, 왜 울어, 유리 양.

🐶 어떻게 해요! 그 사람이 저한테 사, 사, 사귀지 않겠냐고 물어봤어요!

🖤 뭐?

그런데 왜 울지?

츠요시는 당황스러웠지만 유리를 달랬어요. 그리고 자초지종을 들었죠. 츠요시도 기분이 불쾌해졌어요.

이래서 네임 없는 상대란.

네임 있는 쪽이 자신을 저항 없이 사랑하게 된다는 이유로 우습게 알지.

🖤 다음부턴 내가 데리러 갈게.

🐶 훌쩍. 네.

그렇게 다음 데이트의 전날. 츠요시가 문자를 보냈어요.

- 내일은 하카마 입고 나와, 유리 양.

유리는 영문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기모노 대신 하카마를 차려입고 나왔어요. 대문 앞에는 츠요시가 기다리고 있었죠. 둘은 웃으면서 손을 잡았어요.

그리고 소고와 마주쳤죠. 3자 대면. 묘한 기류가 흘렀어요. 소고가 삐딱하게 서서 입을 여는 순간-

🖤 유리 양, 뛰어!

🐶 넷?!

츠요시가 유리를 이끌고 도망쳤어요.

하?

소고는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며 그런 소리를 냈어요.

허억, 허억. 소고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뛴 두 사람은 숨을 골랐어요. 풋. 유리가 웃음을 터트렸고 츠요시도 따라 웃었어요. 유리는 소고와 마주치면 어쩌나 내심 고민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츠요시가 행동으로 답을 알려줬죠. 도망쳐도 돼.

그렇구나. 도망쳐도 되는구나.

유리는 속이 시원했어요.

데이트가 있을 때마다 츠요시가 마중을 나와주었고, 둘은 같이 도망쳤어요. 길거리에서 소고를 보면 숨기도 했고요. 유리는 이게 꽤 재밌었고, 소고는 이게 별로 재미 없었어요. 꼬리 치던 개에게 목줄을 채우려고 했더니 이미 주인이 있다며 떠나버린 꼴이잖아요. 

그러던 어느날, 소고는 카페에 혼자 앉아있는 츠요시를 발견했어요.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맞은편에 앉았죠. 태연하게 핫초코까지 시켰어요. 츠요시는 놀랐지만 별로 티내지 않았어요. 침묵. 먼저 말을 꺼낸 건 츠요시였어요.

🖤 오키타 씨. 유리 양이 좋아하는 영화가 뭔지 아나요?

몰라요. 솔직히 알 바 아니었죠. 소고가 대답이 없자 츠요시는 또 물었어요.

🖤 유리 양이 자주 가는 카페 이름은 아나요?

그것도 몰라요. 거기서 사다 준 쿠키가 맛있었다는 건 알죠.

츠요시는 한숨을 쉬었어요.

🖤 유리 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사귀자는 말을 했나요?

⛓️ 뭐, 사귀면 좋은 거 아닙니까? 제 네임을 가지고 있잖아요.

🖤 당신은 유리 양을 좋아하지 않잖아요.

⛓️ 사귀다보면 좋아질지도 모르죠.

🖤 네임이 있는 사람과의 연애를 그렇게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았으면 해요.

츠요시는 자신의 네임이 있는 곳을 만지작거렸어요.

츠요시의 상대는 네임이 있었어요. 서로 하나밖에 없는 짝이었죠. 그가 죽었을 때의 상실감은 뭐라 표현할 수 없었어요. 세상이 무너졌는걸요. 같이 죽으려고 했죠. 가족이 없었다면 그랬을 거예요.

츠요시는 상념을 끊고 소고에게 말했어요.

🖤 유리 양에게는 가족이 없어요. 그리고 네임이 있죠. 오키타 씨는 유리 양에게 하나뿐인 세계가 될 거예요. 그 사실에 우월감을 느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가벼운 마음으로 사귀었다가, 질렸다고 차면? 유리 양은 그냥 무너지고 말 거예요. 죽을 거라는 말이에요. 그건 나도 못 막아요. 영원히 유리 양의 세계가 되어줄 것이 아니라면, 우리를 그냥 놔둬요. 그 애는 웃게 된지도 얼마 안 됐어요.

츠요시는 그럼, 이만. 하고 일어났어요. 소고는 자신이 시킨 핫초코를 빙글 돌리면서 생각했어요.

나 완전히 악당 포지션이네.

뭐, 맞지만.

그래도...소고는 츠요시의 말을 무시할 생각은 없었어요. 자신이 너무 가볍게 봤음을 인정했죠. 소고는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핫초코를 원샷하고 일어났어요.

영원히 한 사람만을 위한 세계라.

그건 무리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요.

그날 이후 소고는 마츠다이라 저택 근처의 순찰을 도맡는 것을 그만뒀어요. 그래도 소고와 유리는 종종 서로를 생각했어요. 소고는 아쉬움에, 유리는 식지 않는 애정 때문에요. 그래도 시간은 흘렀어요. 때는 쿠리코의 데이트날이었지요. 유리는 츠요시와 함께 더블 데이트를 즐기기로 했어요.

🌷 너무 떨리와요.

🐶 후후. 오늘 고백할 예정이니까 더 떨리겠지.

🌷 아이 참. 저는 모르겠사와요.

유리는 저보다 조금 어린 쿠리코의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네임이 없는 사람들끼리의 연애, 풋풋하고 좋네.

그러나 10분, 20분...시간이 지나도 쿠리코의 상대가 오질 않았어요. 츠요시도, 유리도 점점 표정이 굳었어요. 쿠리코는 안절부절못하며 두 사람은 먼저 들어가라고 했지만, 듣지 않았어요. 쿠리코를 이렇게나 기다리게 만드는 놈의 낯짝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꼭 1시간. 멀리서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이 보였어요. 빠글빠글 파마머리, 주렁주렁 달린 악세사리, 가죽 조끼에 호피무늬 하의. 촌스럽고 경박하고 세련되지 못한 사람. 오면서 하는 말도 가볍기 그지없어요.

🐯 오- 여러분. 늦어서 미안, 미안.

유리는 쿠리코의 취향에 경악했어요.

🐯 기다렸어?

당연히 기다렸지, 미쳤니?

그렇게 말하려는 것을 쿠리코가 막았어요.

🌷 저는 하나도 기다리지 않았사와요. 방금 왔사와요. 그런데 유리 언니는 기다렸사와요.

🐯 아, 그래? 우리가 미안, 미안. 그럼 들어갈까?

어, 억...유리가 뒷목을 잡자 츠요시가 어깨를 두드려줬어요.

마음에 안 들어.

유리는 팔짱을 끼고 바로 앞의 목마에 탄 시치베를 노려봤어요.

🖤 자, 자. 진정해, 유리 양.

🐶 하지만...

🖤 쿠리코 양이 알아서 하겠지. 너무 색안경 끼고 보지 말자. 봐, 쿠리코 양 즐거워 보이네.

그래도 마음에 안 들어.

유리는 고개를 훽 돌렸어요. 그리고 발견했죠. 마츠다이라 장관과 소고, 곤도를요. 유리는 세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눈을 끔뻑이다가 입을 열었어요.

🐶 장관님, 설마....

🔫 쉿, 쉬잇, 쉿!!

따라왔구나. 왠지 그냥 허락한다 했어. 저 딸바보 양반이.

하지만 이해한다.

시치베, 저 사람은 안 돼!

유리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어요.

🐶 장관님, 화이팅.

🔫 오우. 파이트 해주마.

🚬 어이, 그쪽은 무슨 화이팅이야. 왜 저 녀석 주변에는 연애사를 방해하는 사람밖에 없는 건데?

무시했어요.

그리고...유리는 머뭇, 소고를 보았다가 눈이 마주치고는 얼굴을 붉혔어요. 하지만 말 섞지 않고 고개 인사 후에 고개를 돌렸죠. 볼도 짝짝 때리고요.

츠요시 씨한테 집중하자.

그걸 알아챘는지 츠요시가 웃으며 유리를 쓰다듬었어요. 유리는 조금 쓰게 웃어보였어요.

놀이공원 츄러스를 먹으며 공원을 구경하고, 빙글빙글 도는 찻잔을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놀이공원의 핵심, 롤러코스터로 도달했죠.

그리고 시치베는 똥을 지렸어요. 같이 지린 척 해주는 쿠리코의 사랑은 위대했어요. 유리는 그 사랑을 막을 권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유리는 쿠리코의 계획을 따라주기로 했어요. 관람차에서 고백하겠으니 따로 타달라던 그 부탁을요. 유리는 두 사람을 보내고 다음 칸에 탑승했어요. 그리고 보았죠. 소고가 호수로 빠지는 모습을요.

유리는 본능적으로 문을 열고 뛰어내렸어요. 너무 순간적이라 츠요시가 막지 못했죠.

풍덩.

유리는 꼬르륵 밑으로 빠져가는 소고를 건져올렸어요. 소고가 쿨럭쿨럭 물을 뱉어내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소고를 끌어안았어요.

🐶 다, 다행...다행....

⛓️ 콜록, 콜록. 이봐요.

🐶 다, 다친 곳은 없어요? 불편한 곳은?

유리는 형편없이 떨리는 손으로 소고의 얼굴을 더듬었어요.

자기가 사고라도 당한 것처럼 새파랗게 질린 안색. 손길, 눈빛 하나하나에 스며든 버거울 정도의 애정. 미츠바나 곤도와는 또 다른 느낌에 소고는...속이 울렁울렁댔어요.

그렇군. 정복욕이 제대로야.

소고는 자신의 땅에 선 기분이었죠.

그 누구와도 연관이 없는, 오롯이 자신만의 것. 제 손에 굴러떨어진 개. 내가 어떤 모습을 해도 좋아해줄....

쌓였던 아쉬움이 움텄어요.

역시 안되겠어.

옆에 두고 싶어. '좋아해'는 아니지만, 내 거야.

이래뵈도 손에 들어온 걸 함부로 버리진 않는다고.

츠요시가 수건을 들고 헐레벌떡 달려왔어요. 아직도 소고에게 달라붙어 있는 유리의 어깨를 감쌌죠. 츠요시가 일으키는 유리를, 소고가 붙잡았어요.

⛓️ 어디가. 옆에 있어.

당당하게 뻔뻔한 말. 유리가 안절부절 못하며 옆에 다시 주저앉았고, 츠요시는 얼굴을 찌푸렸어요. 츠요시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소고가 재빠르게 선수를 쳤죠.

⛓️ 목숨을 빚졌으니, 이제 평생 옆에 두면서 빚을 갚아야죠. 저 그렇게까지 양심 없는 놈은 아니라고요.

유리가 깜짝 놀라 소고를 돌아봤어요. 어쩔 수 없이 심장이 떨려왔죠.

옆?

펴, 평생?

...정말?

🖤 네임 없는 사람이 하는 그런 말은 믿을 수 없어요.

⛓️ 이거 참.... 진심인데요. 네임을 만들 수도 없고. 그리고 저는 본인에게 의사를 물어볼 참입니다만?

소고가 돌아봤어요. 유리는 멍 때리다가 화들짝 놀랐어요.

⛓️ 선택하세요. 누구 옆에 있을래요?

어?

이렇게 갑자기?

어?

유리는 소고와 츠요시를 번갈아 보다가...도망쳤어요. 소고는 김 샜다는 듯이 드러누웠고, 츠요시는 유리를 쫓아갔어요. 뭐, 재빠른 유리를 붙잡을 순 없었지만요.

그리고 둘은 마츠다이라의 사택 앞에서 다시 마주쳤어요. 츠요시는 사나운 시선을 보냈지만, 소고는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유리는 대문을 나왔다가 그대로 뒤돌았어요. 또 도망쳤죠. 츠요시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소고는 장관님의 심부름을 왔다며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자택 안으로 들어갔어요. 둘은 저택 안에서 술래잡기를 했고, 결국 유리는 잡혔어요.

유리는 반항도 못하고 가만히 손목이 잡혔어요.

손이 닿은 곳이 뜨거워.

유리는 목에서부터 피가 솟는 것이 느껴졌어요. 소고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얼굴이 벌개지는 꼴이 꽤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히죽 웃었어요.

⛓️ 사귀는 걸로 성에 안 차면, 약혼은 어때요?

🐶 네엑?!

대충 던진 말이었지만, 소고는 약혼이란 말이 꽤 마음에 들었어요.

뭐, 아직 결혼은 무리지. 누님이 시집을 안 가셨으니까.

⛓️ 약혼 좋네. 평생 옆에 두겠다는 각오도 그만하면 증명될 것 같고. 유리 씨 생각은 어떻습니까?

소고는 멋대로 요비스테 했지만, 유리는 그게 머리에 안 들어왔어요.

츠요시 씨가 네임이 없는 사람과의 연애는 위험하다고 했는데.

하, 하지만, 약혼이라면...결혼까지 한다는 거잖아.

평생...옆에...가족이 되어줄 나의 네임....

유리는 꿈같은 상황에 정신이 없었어요. 그 틈새를 타서 소고가 말했죠.

⛓️ 좋으면 고개 끄덕이십쇼.

끄덕....

유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움직였어요. 소고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어요.

핫.

내가 뭘 한거지?

유리는 자신을 잡아 끄는 소고를 따라가며 말했어요.

🐶 소고 씨! 약혼 얘기 물...물러...

물러달라는 말이 차마 안 나왔어요. 이것마저 거절하면 정말 일말의 희망도 없을 것 같아서요. 유리가 어물거리는 사이 둘은 어느새 대문 밖까지 나왔어요. 츠요시가 여전히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죠. 소고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유리의 손목을 들어올렸어요.

⛓️ 약혼하기로 했습니다. 그쪽도 이만하고 포기하시죠?

약혼. 츠요시도 멈칫 했어요.

결혼이라면...괜찮지 않을까?

츠요시는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한숨을 쉬고 말했어요.

🖤 정말로 결혼, 할겁니까?

⛓️ 못 할것도 없죠.

🖤 중간에 깬다거나.

⛓️ 온 에도에 알릴 수 있게 화려하게 약혼식 하죠, 뭐.

그렇다면야.

츠요시는 유리와 시선을 마주했어요.

🖤 유리 양. 행복하게 살아.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 츠요시 씨.

🖤 나는 생각도 안 날 만큼 멋진 나날이 될 거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츠요시는 뒷말을 삼켰어요. 유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그대로...뒤돌아 사라졌어요. 유리는 이 상황이 꿈이 아닌가 스스로 볼을 꼬집어봤어요.

아프다.

꿈이 아니네.

그럼...진짜로 약혼? 소고 씨랑?

사건은 일사천리였어요. 진선조로 직행해서 약혼할 것임을 알리고,

🦍 뭣이? 약혼?!

🚬 아아, 네임이 있던 그 여자애로군.

식장을 예약하고,

👗 가을도 괜찮은데, 그래도 역시 봄의 신부가 제일이죠. 특히 야외에서 하실 거라고 하니 볕이 따가울 가을보다는 봄을 추천드려요. 

반지를 사줬어요.(약혼 반지는 여성만 낀다)

💍 약혼 반지시라고요? 다이아몬드가 일반적이긴 한데, 가넷 어떠세요? 예비 신랑분 눈 색이랑 딱 맞는 가넷이 이번에 들어왔거든요.

이 일은 미츠바의 약혼과도 겹쳐서, 미츠바도 바빠 미처 에도에 올라오지 못했어요. 편지로라도 기쁨을 나누었죠.

여름에서 봄까지, 둘은 종종 데이트를 했어요. 놀러 나가는 소고가 옆에 유리를 붙이고 가는 것에 가깝긴 했지만요. 그래도 만담을 보거나, 여자 격투기를 보는 시간은 꽤 즐거웠어요. 유리는 승패 도박에서 제법 따기도 했고요. 소고도 유리가 깔깔 웃는 게 나쁘지 않았어요. 뭐, 문득 묻기도 했죠.

⛓️ 좋아하는 영화가 뭐야?

🐶 음. B급 영화기는 한데, '좀비 초밥'.

⛓️ 헤에. 듣도 보도 못한 영화인걸.

🐶 의외로 교훈도 있고 재밌어. 아. 이번에 개봉한 '지네 인간의 생애'는 너도 좋아할걸.

⛓️ 흠, 다음 비번이 언제더라.

유리가 자주 가는 카페에서 노닥거리며 이런 대화를 했죠.

밤을 지내기도 했어요. 당연히랄까, 다행히랄까. 속궁합은 끝내줬죠. 소고도 유리와 밤을 보내는 것이 꽤나 마음에 들었어요. 무엇보다도, 선명하게 새겨진 자신의 네임이 기분을 좋게 했어요. 소고는 유리를 품에 안은 채로 네임을 만지작거렸어요.

⛓️ 네임 근처에 이 흉터들은 뭐야?

🐶 아, 음.... 가족들 다 잃고...네임 하나만 남으니까 이거에 원망이 가더라고. 그때 좀....

유리는 말을 흐렸지만, 소고는 대충 알아들었어요.

자해했다는 말이군.

🐶 알아, 네임에는 아무 잘못 없는 거. 그런데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소고는 마음에도 없는 위로를 건네기보다, 가슴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네임과 흉터들을 핥아주었어요. 유리는 머리카락이 간지러워서 키득거렸고요.

하늘이 내린 내 소유물을 잃을 뻔했다는 말이네.

제대로 내 손에 굴러 떨어져서 다행이야.

시간이 흘렀어요. 여러가지 잔잔한 사건이 있었지만, 소고가 크게 다쳐오는 일은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소고의 종아리가 박살이 나서 온 거예요. 유리는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 소고, 너, 너 다리가...!

⛓️ 야규 가에 놀러갔다가 이렇게 됐어. 별거 아니야.

🐶 별거 아니긴!

당연한 수순으로, 유리는 용맥의 힘을 이용해 소고를 치료했어요. 소고는 듣도 보도 못한 이능에 눈을 휘둥그레 떴죠. 비록 잠이 몰려와서 둘이 하루 종일 거나하게 자긴 했지만요.

유리는 자신의 비밀을 말했어요. 이것은 용맥의 힘을 이용한 것이며, 약간의 기운을 대가로 남을 치료할 수 있다고요. 소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어요.

⛓️ 병...도 치료할 수 있어?

🐶 무슨 병이냐에 따라 다르지만...대체로 가능해.

그렇다면 누님도.

아니, 무슨 병인지 봐야 한댔지.

누님을 에도로 부를까?

아니, 간만에 내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소고는 갑작스럽게 다가온 행운에 정신이 없었어요.

🐶 소고?

그제야 소고는 정신이 조금 들었어요. 유리를 붙잡고 미츠바의 이야기를 했어요. 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경청했어요. 뭐, 유리야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요. 이제 자신은 소고의 약혼녀. 시누이가 될 미츠바를 자신이 치료하는 것은 어색한 일이 아니었어요. 소고는 희망에 부풀었고, 유리는 그런 소고를 보며 행복해 했어요. 소고는 미츠바에게 편지를 보냈고, 미츠바는 빠른 시일 내로 올라가겠다고 약속했어요.

유리는 미츠바가 올 때까지 수양을 해야겠다며 숲속으로 향했어요. 종종 소고가 들러 생활용품을 채워주었고요. 소고는 아무도 없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자신만을 기다리는 유리의 상황이 제법 만족스러웠어요. 굳이 표현하진 않았지만요.

그렇게 거의 이 주. 미츠바가 예상보다 빨리 올라왔어요. 소고는 미츠바를 기쁘게 맞이했지만, 속은 제법 탔어요.

유리가 한 달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이라도 데려와야 하나?

소고는 누님의 질문에 응하며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냈어요.

- 누님이 벌써 오셨어.

답장은 금방 왔죠.

- 벌써? 좀 이른데... 그래도 상태는 봐야 좋겠다. 오늘 데리러 와줘.

긴토키를 친구 삼고...미츠바가 토하고...여러 일이 있고 난 후, 미츠바가 물었어요. 아주 반짝반짝한 눈으로요.

☘️ 그래서, 소 짱. 약혼녀는 언제 소개해 줄거니?

⛓️ 유리가 볼일이 있어서 어디 가는 바람에...내일 온다니까, 내일 소개해 드릴게요.

☘️ 후훗. 기대하고 있을게. 

그러나 사건은 그날 일어났어요. 히지카타를 마주쳤고, 미츠바가 쓰러졌고, 상태가 악화되고.... 소고는 허겁지겁 유리에게로 향했어요. 숲 속 오두막으로 걸음을 옮길수록, 소고는 무너져갔어요.

누님이, 쓰러져서....

에도에 와서....

악화돼서.

히지카타 때문에. 히지카타 때문에. 

꼬옥.

어느새 오두막까지 왔는지. 소고를 기다리고 있던 유리가 소고를 끌어안았어요.

🐶 괜찮아. 내가 다 고쳐줄게.

그 작은 품이 너무 든든해서.... 소고는 안도했어요. 침착하고도 빠르게, 둘은 미츠바가 입원한 병실로 향했어요. 미츠바는 자고 있었어요. 유리는 빠르게 기운을 훑었어요.

폐를 중심으로 몸의 균형이 깨져 있어.

필요한 것은 그것의 보강과 기운의 보충....

시간이 걸리겠지만, 치료 자체는 가능해.

유리는 소고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어요. 유리의 얼굴에 가득 찬 확신의 빛은 소고를 구원했어요.

내게 찾아온 거대한 행운. 내 거야. 절대 안 놔.

유리는 미츠바가 깨지 않을 선으로 가볍게 기운을 북돋아주고 잠에 들었어요.

다음날. 미츠바는 가뿐한 몸상태에 의아해 했고, 유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처음 보는 것처럼 미츠바와 대면했어요.

🐶 안녕하세요, 미츠바 씨. 소고의 약혼녀인 카나에 유리라고 해요.

☘️ 어머나.... 이렇게나 참한 아가씨가. 

미츠바는 볼을 발갛게 상기시키고 기쁘게 대화했고, 그건 유리도 마찬가지였어요.

내 가족이 될 사람.

유리는 행복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고, 소고는 그런 유리의 어깨를 끌어안았어요. 미츠바는 어머, 어머. 거리며 제 동생이 짝을 찾았음을 흐뭇하게 여겼어요.

소소한 잡담으로 시간이 흐르고...소고와 유리는 시선을 교환했어요. 소고는 고개를 끄덕였고, 유리가 미츠바를 돌아보았죠.

그제야 늘어놓는 치료에 관한 말들. 불신. 그리고 불신을 깨트리는 기적.

미츠바는 이 모든 것이 꿈 같았어요.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든 나의 지병.

이것을...없앨 수 있다고?

일은 진행됐어요. 히지카타의 분투와, 곤도와 소고의 지원과, 점점 건강해지는 미츠바.... 그 중심에 유리가 있었죠. 곤도와 히지카타에게는 유리의 비밀을 공유했고, 무한한 감사를 받았어요. 유리는 예비 시누이에게 잘 보이려고 한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고요.

시간이 흐르고...봄. 미츠바는 완치되어 에도에 집을 구했고, 히지카타는 미츠바의 구애를 피해다니고, 그런 히지카타를 소고가 죽이려고 하는 나날. 약혼식날이 다가왔어요. 유리는 사랑스러운 연분홍빛 드레스를 입었고, 소고는 연두색이 포인트인 정장을 챙겨입었어요. 아는 사람이고 모르는 사람이고 전부 초대했어요. 약혼식은 떠들썩했고, 그 무엇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웠어요.

그 중심에서, 두 사람은 영원히 서로의 옆에 있을 것을 맹세했답니다.

끝!


네임버스 내의 유리는 인간관계가 넓진 않아요. 소고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죠. 원작(진선조 옆 편의점)과 다르게 해결사와 딱히 연이 있지도 않고요. 그래도 나중에는 결국 엮이긴 한답니다. 하세가와를 통해서요. 

네임버스의 소고는 소유욕>>>사랑이랍니다. 원작의 소고는 사랑>소유욕인 반면에요. 이건 유리가 스스로 빛날 수 있기 전에 소고를 만나서 그래요. 그래도 둘은 행복해요. 쪼오금 뒤틀려 있긴 하지만, 유리가 소고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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