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패러디] 나쁜 주술사의 꿈 10

“누나야!”

나오야는 대련이 끝나자마자 신이 난 아이 같은 얼굴로 희령에게 달려왔다. 희령은 안겨 오는 나오야를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마주 앉아주며 술식을 돌렸다. 언뜻 보면 압도적으로 이긴 거 같지만 사실 지금 나오야의 상태는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강제 술식 해제는 반전술식 중에서도 특히나 주력 사용이 심한 술식. 나오야가 일섬을 빌려 간 이유 또한 지니고 있기만 해도 정의 에너지 효과가 배가 되는 옵션을 위해서다. 그 정도로 아낌없이 사용했기 때문에 마지막 박치기에 고죠가 기절하지 않았다면 리타이어한 사람은 나오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결국 이긴 쪽은 나오야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거 봐라, 네가 이긴댔지?”

희령은 어깨에 걸치고 있던 나오야의 니트를 돌려준 후 연무장 바닥에 처박힌 고죠 사토루를 한 손으로 무 뽑듯 쑥 뽑아냈다.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고죠를 내려놓은 희령은 보기만 해도 안쓰러운 얼굴을 한 손으로 덮고 술식을 돌렸다.

“흐억!”

죽다 살아난 사람 마냥 거친 숨을 몰아쉬는 고죠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자신을 내려다보는 여러 명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내가 진 거야?”

어. 완전 엉망으로. 너 코피 터졌던데, 사진 찍었으니까 볼래?

하나도 도움 되지 않는 동급생들은 사슬에 묶인 채 쌍코피를 흘리며 눈을 까뒤집은 고죠의 사진을 가까이 들이밀며 놀리기 바빴다. 정작 기절 상태에서 깨어난 고죠는 패배 사실에 대한 분노보다 얼떨떨한 마음이 더 컸다. 자신이 졌다? 희령이나 토우지 같은 규격 외 괴물도 아닌 또래 주술사한테? 그렇구나.

“내가…. 질 수도 있는 거였구나.”

재수 없다며 야유하는 동급생 사이에 서 있던 나오야는 어느새 찢어진 티셔츠 위로 얇은 니트를 겹쳐 입고 처음 봤을 때와 같이 한결같은 미소를 얼굴에 띄운 채 주저앉아 있는 고죠에게 손을 내밀었다. 단순히 여유롭기만 한 게 아니라 이제는 개운해 보이기까지 한다. 당연하겠지. 그렇게 치고받았는데 속 시원할 만도 하지. 그리고 그건 고죠 사토루도 마찬 가지였다.

고죠는 내민 손을 맞잡으며 순수한 힘만으로 자신을 가볍게 끌어 올리는 나오야를 보며 질린 기색을 표했다.

“너희 집안 사람은 전부 다 고릴라야?”

물론 희령도 포함한 물음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나오야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다. 성게도 하나 있다.”

“성게?”

“오야. 아가 성게.”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으나 희령 덕분에 이런 화법에 적응한 고죠는 그렇다고 하니 그런 거겠지 하며 대충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보다 묻고 싶은 게 있었다.

“네가 마지막에 쓴 술식. 그것도 반전 술식이지?”

“맞다.”

“어떻게 한 거야? 희령이 쓰는 술식이랑 비슷한 느낌이던데.”

“제대로 봤다. 희령이한테 비하면 조잡하지만 참고해서 만든기다.”

와, 꽤 그럴듯했나? 고죠는 그런 술식을 쓰는 사람이 세상에 둘이나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며 상당히 귀족 티가 나는 화법으로 나오야의 술식을 칭찬했다. 그래도 확실한 건 끝을 알 수 없는 희령의 술식과 달리 나오야가 사용한 술식은 횟수에 한계가 있었다. 주력 사용량이 엄청났지. 그런데 지속 효과도 그리 긴 거 같지는 않았고. 하지만 가능하다는 사실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었다. 실제로 고죠가 그 일 초 때문에 엉망진창이 된 장본인이 아니던가. 그래서 고죠 사토루는 웃었다. 그 말은 자신도 가능하다는 뜻이었으니까.

왜 희령이 젠인 나오야를 보조 교사로 데려왔는지 이제 알겠다. 저 녀석은 술식의 응용에 탁월한 감각이 있었다. 상상력에 한계가 없는 느낌. 정확히는 그 무엇에도 규정되지 않은 느낌이다. 고죠는 문득 첫 만남 때 토우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는 왜 이리 생각이 갇혀 있냐.’

불쾌하지만 인정하기로 했다. 그동안 고죠 사토루가 최강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를 구속하고 있었다는 걸.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거다. 한계를 깨고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서.

“한 판 더 해!”

“싫다.”

나오야의 단호할 거절에 충격 받은 고죠는 또 한 번의 대련을 위해 달콤한 말을 던지기도 하고(고죠 가문에 있는 특급 주구 하나 공짜로 줄게), 도발을 해 보기도 했지만(두 번 붙으면 질 거 같으니까 쫄았냐?) 나오야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계속 찌르는 창과 절대 뚫리지 않는 방패. 두 사람의 설전을 저지한 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희령이었다. 희령은 한 손으로 고죠의 목덜미를 잡고 나오야에게서 멀리 떨어뜨렸다.

“여기까지. 어차피 또 해도 네가 져.”

“무슨 소리야! 방금 전 걸로 공략법은 확실히 알았다고! 이제 그 희한한 술식 쓰지도 못할 텐데….”

반항 하는 고죠 앞에 희령은 불쑥 주구 하나를 내밀었다. 토우지의 무기고 주령에서 꺼낸, 천역모였다. 술식의 유형 상관 없이 발동 중인 술식을 강제로 해제하는 특급 주구. 육안으로 순식간에 주구 효과를 파악한 고죠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봐서 알겠지? 공평한 싸움을 위해 일부러 쓰지 말라고 했다.”

세상에 무슨 저런 극악무도한 주구가 있는지. 일섬이 자신의 무하한을 뚫기 위한 비밀병기였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고죠는 이런 치트키를 지니고도 사용하지 않은 나오야가 신기했다. 본인이었다면 궁금해서라도 몰래 써 봤을 거 같은데. 가정할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다. 무식하게 정직하거나, 그 만큼 자신이 있었거나. 혹은 그 둘 다 일수도 있고. 

나오야는 몸을 감싼 무기고 주령과 일섬을 희령에게 건네준 후 천역모를 보고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고죠에게 다가와 가볍게 어깨를 툭, 쳤다. 현실로 돌아온 고죠에게 나오야는 대련이 끝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던 말을 전했다.

“니, 와 순환을 끝까지 안 시키는데?”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고죠는 멍청한 태도로 되물었다. 답답하다는 듯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내리치던 나오야는 다시 한번 설명했다.

“바뀐 주력이 몸 안을 다 돌기도 전에 억지로 술식을 쓰려고 하면, 그게 써지겠나?”

순환…. 순환…. 중얼거리던 고죠는 갑자기 무언가 깨달은 듯 아! 하며 부력을 처음 발견한 아르키메데스처럼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순환. 고죠가 반전 술식을 얻은 첫 순간을 제외하고 이후에 단 한 번도 성공시키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주력은 핵에서 나와 뇌를 통해 온 몸에 전달되었을 때 비로소 사용이 가능해지는 연료와 같다. 정의 주력 또한 원리는 같다. 정으로 바뀐 주력이 뇌를 통해 온 몸에 전달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 고죠는 그 시간을 못 견디고 에너지가 뇌에 닿기도 전 억지로 술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기껏 발생한 정의 에너지가 몸 밖으로 배출되어 버린 거였다.

생각보다 훨씬 단순했던 이유에 고죠는 입을 쩍, 하고 벌렸다. 그 멍청한 얼굴을 보던 나오야는 정말 몰랐던 거냐며 헛웃음을 뱉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게토와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는 희령을 돌아봤다.

“누나야! 이 자식 이거 진짜 천재 맞나!”

그냥 똥멍청이 아이가!

게토에게 반전술식 이론을 설명하고 있던 희령은 별안간 들려오는 나오야의 고성에 파하하, 웃었다. 둘 다 드디어 알아냈나 보다. 고죠가 반전 술식에 계속 실패했던 이유를. 나오야가 저렇게 말하는 점도 당연했다. 기본 중의 기본을 계속 틀리고 있었으니 희령의 단어 선택이 의심스러웠겠지. 희령도 고전에 도착하고 고죠를 봤을 때는 자신의 발언을 약간 후회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래도 이제 알았으니 될 거다. 희령이 해줄 수 있는 건 반전술식을 사용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뿐. 그 이상은 깨달은 본인이 알아서 해내야 한다. 

“네가 봐도 그렇지?”

똥멍청이라는 발언에 희령이 부정하지 않자 고죠는 제대로 울컥했다. 고죠가의 차기 당주. 육안의 소유자. 역대 최강 무하한의 주술사. 이런 찬사만 듣던 고죠가 한순간 똥멍청이로 전락했다. 고죠는 자기보다 조금 작은 나오야의 옷깃을 붙잡고 짤짤 흔들었다. 

“아니라고! 나 똥멍청이 아니라고!”

*

“야, 거기 꼬맹이들아.”

고죠가 반전술식을 완벽하게 익혔다. 희령이 고전에 오는 날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게토의 주로는 어제 뚫어줬으니, 앞으로 성공하는 건 본인의 기량에 달린 문제였다. 거래가 끝났으니 사실상 어제가 마지막이었으나 희령은 게토의 얼굴을 봐서 특별히 오늘 하루 더 시간을 내어줬다.

메구미가 본인의 호위 주령 장산범을 상상 이상으로 좋아했기 때문이다. 거의 미쳤다. 등에 올라타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메구미에게 희령의 냄새와 기운이 잔뜩 묻어있기 때문인지 장산범도 희령을 대할 때와 같은 태도로 잘 놀아줬다. 역시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주령 다웠다. 토우지는 어디서 저런 걸 주워 왔냐고 물었고, 아들의 관심을 완전히 빼앗겨 약간 심기가 불편한 듯 보였으나 장산범이 어제 나오야에게 개털린 고죠의 모습으로 둔갑해 흉내를 내어주자 굉장히 만족스러워하며 주거 침입을 허락했다.

“괜찮은 놈이네 이거.”

메구미는 장산범과 잠까지 같이 잤다. 꼭 붙잡고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 게 좋아할 줄은 알았지만, 저 정도로 환장할 줄은 몰랐기에 희령은 메구미의 귀한 놀이 상대를 만들어 준 게토에게 나름의 은혜 갚기를 하러 고전에 온 거다. 오늘도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세 명이 똑같은 포즈로 손을 흔들자, 희령을 따라온 나오야도 마주 흔들었다. 나오야는 어제 1학년 세 명 모두와 연락처를 교환했다. 식사 도중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그 나이 또래 아이다워 토우지와 희령 모두 주의를 주지 않았다.

“이것들이 아침부터 사람을 부려 먹고 말이야….”

고급스러운 나무 빛깔의 3단 찬합 세 개. 희령의 주구에서 나온 1학년 들을 위한 점심밥이었다.

사건의 경위는 다음과 같았다. 고전에 학생 식당이 없는 관계로 1학년 셋은 여느 날과 같이 시내에 나와 자주 가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나오야와 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나오야의 저녁이 일식이 아닌 한식임을 알았으며 만든 사람이 희령이라는 말에 열광하며 자기들도 먹고 싶다며 떼를 썼다. 사실 떼쓴 사람은 고죠 한 명이었지만 희령이 받아들인 바로는 그랬다. 그 말을 전달하는 나오야의 표정이 하도 어쩔 줄 몰라 보여 거절하기도 그래서 희령은 게토에게 은혜도 갚을 겸 늦은 시각 다시 한번 장을 보러 나갔다.

“우와아-. 다 처음 보는 반찬들이야.”

불고기, 오색전, 잡채 등등. 희령의 주구는 넣어진 물건을 처음 상태 그대로 유지하는 능력이 있었기에 도시락은 아침에 막 만들어진 그대로 따끈따끈한 기운을 풍기며 잔뜩 기대한 세 사람을 마주했다. 요즘 애들 먹는 양을 몰라 나오야가 먹는 양에 맞췄는데 설마 부족하지는 않겠지.

“나오야는 같이 안 먹어?”

“내는 먹고 왔다. 니들 마-이 묵으라.”

처음 보는 한국 음식이 신기했는지 찬합을 열 때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음식들에 세 명은 먹기보다 구경하기에 바빴다. 쇼코는 그중에서 산적꼬치가 신기했는지 이쑤시개를 들어 예쁘다고 작게 이야기하고는 희령의 조언을 따라 한입에 먹었다. 입 크기에 비해 조금 버거운 사이즈였으나, 혀에서 퍼지는 다채로운 맛은 그런 감각도 싹 잊게 할 정도로 맛있었다. 고죠와 게토의 반응도 뜨거웠다. 희령은 따로 준비해 온 그릇에, 보온병에 담아 온 육개장을 담아 건네주며 복스럽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막상 준비하려니 메뉴 생각이 안 나서 잔칫상 음식에 집안사람들이 잘 먹는 반찬 몇 개를 추가했는데 걱정이 무색하도록 잘 먹었다. 육개장을 먹고는 너무 맵다며 다들 눈물이 맺히긴 했지만 그래도 남기지는 않더라.

“와-. 진짜 너무 잘 먹었다. 나오야 너는 맨날 이렇게 먹는 거야?”

희령과 같이 일찍 일어나 도시락 준비를 도운 나오야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나오야도 처음 희령 음식을 먹었을 때는 많이 놀랐다. 낯선 모양은 둘째 치고 전체적으로 심심하던 본가 음식과 전혀 다른 감칠맛이 신세계였기 때문이다. 진짜 부럽다! 배부른 고양이처럼 나른해진 고죠는 아예 자리를 잡고 드러누웠다.

상대적으로 입이 짧은 쇼코와 고죠는 중간에 배가 너무 부르다며 포기했고, 남은 음식은 하나로 부족했던 게토가 전부 먹어 치웠다. 희령이 너 진짜 잘 먹는구나 하고 소소하게 놀란 건 덤이었다. 깔끔하게 비워진 도시락통을 정리하고 편의점에서 사 온 아이스크림을 취향껏 골라 입에 문 다섯 명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나른한 기분에 말없이 하늘을 보며 멍을 때렸다.

“나! 궁금한 거 있어!”

파드득. 소다 맛 가리가리군을 입에 문 고죠는 흘러내린 선글라스를 치켜올리며 불쑥 희령의 옆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희령은 부담스러운 얼굴을 손으로 밀어내며 뭐냐고 물었고, 고죠는 아예 희령 옆에 자리를 잡으며 물었다.

“육안의 성장이라는 게 무슨 뜻이야?”

“이미 했잖아.”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실제로 고죠는 반전술식을 익힌 이후 육안이 전과 달라진 게 느껴졌다. 같은 술식을 읽어도 전보다 읽히는 게 많았고 이해도 빨라졌다. 그리고 전에는 보이지 않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희령 안에 가득 들어 찬 저 알 수 없는 주력‘들’이라던가.

잘 못 본 줄 알고 선글라스까지 벗어가며 몇 번이나 확인했으나 분명했다. 게토의 주령조종술처럼 희령의 안에는 분명 인간이 아닌 존재의 주력이 존재했다. 술식인가? 하지만 단순한 술식이라면 왜 그동안 보이지 않았지? 대체 육안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길래. 그러다 생각이 난 거다. 전에 희령과 텐겐이 말한 육안의 성장이라는 게.

“그래서! 어떻게 알았냐고!”

오늘이 지나면 희령을 다시 만나게 되는 건 한 참 뒤가 될 게 분명하다. 어떻게든 지금 그 이유를 알아내야 했던 고죠는 희령의 팔을 붙잡고 미친 듯이 치근덕거렸다. 얘가 미쳤나. 어이가 사라진 얼굴로 고죠를 보던 희령은 손짓 한 번에 고죠를 털어내며 하는 수 없다는 듯 고백했다.

“봤어.”

“어디서!”

“젠인가 서고에서. 거기 적혀 있더라, 육안은 술사가 반전술식을 익혔을 때야 비소로 완전해진다고. 그래야 만물을 이해하고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대충 그런 내용. 아, 그런데 그거 젠인 놈이 쓴 거 아니고 훔친 거 같더라.”

필체가 고죠가 같았다는 중얼거림을 들으며 고죠는 그 뒤에 있는 나오야를 봤다. 나오야는 본인은 아무 상관도 없고, 전혀 몰랐다는 의미를 담아 거세게 고개와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무언가 한 가지 더 떠올린 고죠가 다시 물었다. 대련이 끝나고 나오야가 자신에게 알려준 정보. 무하한의 약점을 알려준 건 젠인 가문이 아니라 희령 개인이다. 

“무하한 술식 약점도 그래서 안 거야?”

비밀도 아니라는 듯 끄덕이는 모습이 어지간히 상대하기 귀찮은 듯 보였다. 그들 앞에서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게토는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몸을 돌려 물어왔다.

“그런데 젠인은 왜 그걸 몰랐을까요? 그리고 그 정도 정보라면 당주 서고에서 있을 법한 내용인데 선생님이 어떻게….”

“뭐야, 너희 몰랐어?”

이번에는 오히려 희령이 물었다. 앞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고개를 젓자 고조를 봤지만 고죠 역시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희령은 웃었다. 입을 막고 소리를 죽여 낄낄대는 모습이 영화에 나오는 악당 같았다.

“노인네들…. 입단속 한 번 철저히 했네, 고죠들도 모를 정도면.”

알 수 없는 말에 이번에는 쇼코까지 가세해서 눈으로 물었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데요? 세 명의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을 돌아본 희령은 옆에 앉아 있던 나오야의 어깨를 한 손으로 감싸고 자신의 얼굴 바로 옆까지 바짝 끌고 왔다.

“보고도 모르겠어? 젠인 내가 먹었다.”

정확히는 둘이었지만. 현 당주 직계 자식 나오야는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쐐기를 박았다.

“맞다. 지금 젠인은 희령이랑 토우지 휘하 조직이다.”

이미 놀랄 일은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스케일이 큰 소식에 고죠는 선글라스가 흘러내림에도 고쳐 쓰지 않고 게토는 먹던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렸다. 오직 쇼코만이 그렇구나, 하며 남은 콘 조각을 먹어 치웠다.

“뭐, 뭘 어떻게 했길래 젠인을 수족으로 부려? 그 젠인을?”

비술사 둘에게 고삼가 중 하나가 함락당했다. 이건 주술계에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역사로 기록될 만큼 엄청난 일이었다. 그런데 주술계 종사자 중 아무도 몰랐다니. 이건 입단속을 철저히 한 수준이 아니었다. 희령은 별것도 아니라는 듯 뒤로 돌아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저 멀리 있는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었다. 참고로 그 거리는 눈으로 간신히 확인할 수 있는 정도로, 가벼운 막대기를 던져서 통과 시킨다는 건 일반적인 물리법칙으로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막대는 당연하다는 듯 통 안으로 들어갔고, 희령은 다시 몸을 돌렸다.

“말 통할 거 같은 놈들 빼고 싹 죽였지.”

특히 입 가벼운 놈들…. 소문나서 좋을 건 없으니까. 그래도 이만큼 철저하게 지켜질 줄 몰랐다며 희령은 유쾌하게 웃었다. 살인을 고백하면서도 한 치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맑은 얼굴. 그 모습에 세 명은 고죠와 게토가 당하고 날 조사를 통해 알아낸 희령의 이명을 상기했다.

킬러.

뒷세계에서 희령과 토우지는 그렇게 불렸다. 다른 수식어는 없이 오직 그렇게만 불렸다. 게토는 자신의 가문을 몰살시킨 주범이 바로 옆에 있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앉아 있는 나오야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나오야는 그 시선의 의미를 알아차리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때의 젠인은 썩어 있었다. 썩은 건 도려내야 새살이 자라는 법 아니겠나.”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역시나, 이쪽도 미쳐있는 쪽이었구나.

실제로 나오야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애초에 말 만 거창할 뿐 죽인 사람의 수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다. 원로와 직계 핵심 인물 몇몇 정도. 전원 비술사로 이루어진 쿠쿠루대원들과 사용인들은 여전히 멀쩡하게 그 가문 안에서 먹고, 자고, 일하기를 반복했다. 그럼 된 거 아닌가. 그들도 자신도 지금이 훨씬 행복한데. 어차피 젠인은 바뀌었어야 했다. 다만 나오야가 아쉬운 점은 그 변화를 본인 스스로 해내지 못했다는 점. 그뿐이었다.

“그리고 그 문서 말인데.”

무거워진 분위기에 희령이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사실 젠인 따위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었기 때문에 심드렁했던 고죠는 자신이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돌렸다. 희령은 손가락으로 고죠의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어차피 고죠가에 있었어도 못 읽었을 거야.”

“뭐? 왜?”

“고어로 돼 있었거든.”

고어. 단어 뜻 그대로 말 그대로 고대의 문자로, 백 년 전보다도 한참 더 이미 전에 사라지고 없는 문자였다. 현존하는 인간 중 해석이 가능한 건 그 시대부터 살아온 텐겐 정도일까. 그럼 서른도 되지 않은 희령은 어떻게 읽은 거지. 사실 한국 주술계에서는 아직도 고어가 쓰이고 있다거나. 고죠가 물었으나 희령은 심드렁한 태도로 답했다.

“그냥 읽히던데.”

진짜 그냥 읽혔을 뿐이고, 따로 공부하지도 않았으며, 자세한 이유는 정말 모르니 묻지 말라는 말에 고죠는 재미없다며 야유했지만 납득하기로 했다. 왜냐면 정말 모르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사실 별로 중요한 정보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구나, 하는 희령 전용 목록에 메모 하나가 더 추가 되었을 뿐.

고죠가 잠잠해지자, 이번에는 기다렸다는 듯 게토가 손을 들었다. 정말 선생님에게 질문이라도 하는 모습에 희령은 네 스구루학생 뭐가 그렇게 궁금하신가요. 하며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사토루한테 들었는데요. 선생님이 찾으신다는 그 켄자쿠라는 주술사. 그 사람이 카모 노리토시였다는 정보는 어떻게 아신 거예요?”

“카모가 연표랑 초상화 뒤졌다.”

그 녀석은 뇌를 갈아치운다는 술식의 페널티 때문인지 숙주 이마에 실로 꿰맨 듯한 봉합 자국이 남아있다. 조사 도중 최악의 주술사가 불리는 인물이 카모가에 존재했다는 정보를 얻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졌더니 그대로 빙고가 터졌을 뿐이다. 그 몸으로도 어지간히 미친 짓 많이 했더만.

누가 봐도 본인임을 알아봐 주길 광고하는 꼴이었다.

“…혹시 그 연표량 초상화는 어디서 얻으셨는지.”

조심스러운 물음에 희령은 씩, 악당 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카모가 서고 털었지.”

“희령 카모가도 먹은 거야?”

희령은 그러다 탈 난다며 고죠의 이마에 딱 밤을 때렸다. 카모가에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정말 순수하게 숨어 들어가서 딱 서고 자료만 뒤지고 나왔다. 겸사겸사 주술사 가문 중 가장 전통이 깊다는 카모가의 정보가 궁금해 여러 문서를 뒤져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명 사고는 발생시키지 않고 정말 얌전하게 책만 읽고 나왔다. 그러고 보니 반혼술 재료에 대한 힌트도 거기서 얻었지. 여러모로 고마운 가문이다.

희령이 짧게 추억에 잠겨 있을 무렵 고죠가 희령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관심을 끌었다. 왜. 얼굴로 묻자, 고죠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육안을 반짝이며 물었다.

“혹시 고죠가 서고도 털었어?”

이 녀석, 어떻게 알았지.

“…어. 니네 가문 보안 엄청 약하더라, 본가 가면 강화 좀 하라고 전해.”

딱히 숨길 일도 아니었다. 그냥 젠인과 카모 서고를 뒤지고 나니 나머지 고죠마저 한 번 털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이 들었을 뿐. 게다가 이런 말 하긴 미안하지만, 고조가 서고에는 정말 별것 없었다. 온통 무하한과 육안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은 책 뿐. 보안이 형편없다는 말도 사실이라 당주 서고까지 터는 와중 알아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결계에 감지 되지 않는 천여주박이라도 그렇지 이 정도면 진짜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살다 살다 주술가 가문 걱정 해 본 건 처음이라 기억이 난다.

“아하하하하학! 늙은이들 꼴 좋다!”

고죠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큰 소리로 웃으며 배를 잡고 바닥을 굴러다녔다. 정말 가문에 대한 애정이라고는 한 치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하긴 같은 상황이었다면 희령도 똑같이 반응했을 거다. 실제로 젠인 가문을 전복시킬 때 가장 즐거워하던 사람도 토우지가가 아니었던가 아니었던가.

바닥을 굴러다니던 고죠는 정말 즐거워 미칠 거 같았다. 세상에 그 고상하신 명문 고삼가 중요문서가 천여주박 비술사 한 명한테 다 털렸다. 심지어 사토루 한 명만 믿고 발전 없이 도태되어 가는 고죠 가문은 보안에 대한 훈계까지 받는 치욕을 겪었다.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 있을까.

…아니지. 분명히 있을 거다. 희령 옆에 있으면 분명 그럴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술식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점점 더 탐이 난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내 옆에 둘 수 있을까. 그건 모든 걸 지니고 태어난 고죠 사토루로서는 처음으로 느껴보는 욕심이라는 감정이었다.

*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희령은 나오야를 데리고 미련 없이 일어났다. 희령은 자신 대신 나오야를 보낼 테니 앞으로도 연습 열심히 하라는 말을 남기며 고죠, 게토, 쇼코 세 사람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주었다.

“가면 언제 와?”

고죠는 숨기지도 않고 아쉽다는 티를 팍팍 냈다. 그 모습에서 의뢰하러 가지 말라며 붙잡고 칭얼거리던 메구미를 떠올린 희령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며 손을 뻗어 고죠의 뺨을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메구미를 달랠 때 자주 해주던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나온 경우였다.

“예상대로라면 1년? 잘 풀리면 더 빠를 수도 있고.”

고죠는 너무 긴 거 아니냐며 툴툴거렸다. 무슨 전설 속에 나오는 불로초라도 구하러 가는 거냐며. 그러더니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뜬금없는 행동에 가만히 보기만 하고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자 고죠는 손을 흔들며 성질을 냈다.

“잡아줘!”

“어어.”

얼떨결에 내민 손을 잡은 희령은 다른 쪽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무언가 시도하는 고죠의 모습을 지켜보다 빵, 터져버렸다. 고죠는 지금 자신과 희령의 새끼손가락을 엮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마치 속박을 맺었던 그때처럼. 의도를 알아챈 희령은 바로 손을 빼내 대신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고죠는 그 손가락에 자기 손가락을 엮고 짧은 사이 보고 외우기라도 한 건지 싸인, 도장, 복사의 행위까지 척척 이루었다. 

“메구미랑도 약속까지 밖에 안 하는데….”

그건 토우지나 하는 행위라는 말에 고죠는 역정을 냈다.

“나는 그 아저씨보다 희령이 더 안 믿기거든!”

그렇다고 하시니 어쩔 수가 없었다. 어쨌든 만족한 듯 보이는 고죠를 마지막으로 희령은 정말 고전을 떠나려 했다.

그러다 문득, 아직 듣지 못한 말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희령은 나오야를 잠시 보낸 후 쇼코를 손짓해 불러냈다. 남자들을 멀리 치워버리고 둘 만남은 공간에서 희령은 쇼코를 향해 물었다.

“정했니?”

“…아뇨.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그 녀석들 처럼 드릴 수 있는 건 없어요.”

가진 건 반전술식 하나였는데 그마저도 이 사람에게는 쓸모가 없으니. 그런 쇼코에게 희령은 고죠에게도 게토에게도 묻지 않은 걸 처음으로 물었다. 아마 쇼코에게만 던지게 될 질문을.

“반전술식은 왜 배우려는 거야. 이미 쓸 줄 알잖아. 너 정도면 귀한 대접 받지 않나?”

“부족해요.”

충동적으로 뱉어버린 말에 혼란스러워하던 쇼코는 습관적으로 담배에 손을 데려다 멈칫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희령의 존재가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경고한 최초의 어른. 쇼코는 담배 연기 대신 한숨을 뱉으며 담담히 이야기했다.

“저는 절단된 부위는 재생 못해요. 저 스스로한테도 마찬가지고요. 병도 못 고쳐요. 그런데 선생님이랑 나오야는 아니잖아요.”

“그런 거면 나보다 나오야한테 물어보는 게 나을 텐데.”

“이미 물어봤어요. 그런데 선생님 허락이 없으면 안 된대요.”

그 녀석도 참 까탈스럽게 구네. 머리를 긁적이는 희령을 올려다보는 쇼코의 눈은 아주 희미하지만, 그 속에 빛을 담고 있었다. 

늘 공허하다고 생각했다. 반전술사도 아닌 그저 반전술식 사용자. 생득술식도 없으며 엄청난 주력양을 가지지도 못한 쇼코는 평생 그렇게 불릴 예정이었다. 아무리 대단하다고 치켜세워 주면 무엇할까, 결국 쇼코의 역할은 한정적인데. 평생을 누군가에게 규정당한 채 살아가야 하는 삶. 그게 싫어 주술사를 그만두려 한다면 과연 상층부가 자신을 가만 둘까? 지금 상층부가 모두 은퇴하면 다음 상층부가 다시 쇼코를 이용하려 들겠지. 이건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자 저주였다. 그런 공허한 삶을 부정하며 괴로워 할 바에는 차라리 받아들이자. 일찌감치 모든 걸 포기해 버리자.

그렇기에 고죠와 게토를 보면 시선을 돌렸다.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그들과 자신을 분리했다.

청춘(靑春). 하필이면 그 말이 끔찍이도 잘 어울리는 두 사람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신이 동급생으로 묶이다니. 참 우스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 와중 희령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야가 나타났다. 열등감. 처음 느껴 보는 그 감정이 공허하기만 하던 쇼코의 세계에 처음으로 울림을 가져왔다. 자유자재로 반전술식을 사용하는 나오야의 싸움을 보며 쇼코는 무의식중에 주먹을 쥐었다. 마지막 나오야가 반전술식으로 고죠의 무하한을 깨뜨릴 때는 짜릿했다. 감히 상상하지도 못하던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고죠는 이제 막 반전술식을 시작했다. 게토는 여전히 헤매는 중이다. 하지만 쇼코는 아니다. 희령은 나오야를 천재라 불렀지만 쇼코는 동의하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적어도 반전술식에 한 해서라면.

“저는 반전술사가 되고 싶어요.”

천재는 쇼코, 자신이었다. 쇼코는 가능성을 봤다. 기존의 반전술식보다 훨씬 더 경지 높은 곳의 무언가를 봤다. 나오야도 대단했지만 쇼코라면 분명 더 커다란 걸 해낼 수 있었다. 비록 타고난 생득술식 하나 없지만, 주력량도 평범한 수준이지만 그렇지만 반전술식이라면 쇼코도 그 아이들과 같이….

“금연으로 하자.”

희령은 쇼코가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주머니에 있던 쇼코의 담배를 가져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쇼코를 훑어본 희령은 한 가지 말을 덧 붙였다.

“그리고 체술도.”

답이 없던 쇼코는 잠시 후 평소 같은 얼굴로 돌아와 주머니를 뒤지더니 집어 든 물건을 희령에게 건넸다. 라이터였다.

“네, 그럴게요.”

어딘가 개운해 보이는 표정을 보던 희령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역시 애들은 웃는 게 예쁘다니까.

*

-밥 다 차려놨는데 아직까지 안 쳐들어오고 뭐 하고 있어!

“아, 알았다. 금방 들어갈 게.”

보낸 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돌아오지 않던 희령과 쇼코를 기다리던 나오야는 결국 성질난 토우지의 전화를 대신 받아야 했다. 희령이 토우지의 전화조차 받지 않고 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나야,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기가. 내 무서워 죽겄다. 종교도 없는 나오야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름 모를 신에게 빌고 있을 때, 신이 요청을 들어준 건지 희령이 으슥한 곳에서 쇼코와 함께 나타났다. 나오야는 헐레벌떡 뛰어 가 희령의 팔을 잡았다.

“누나야 우리 이럴 때가 아이다 빨리 들어가야 된다. 토우지 지금 개빡쳤다!”

그 말에 희령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큰일 났네.”

토우지가 화난 건 희령도 무서웠다. 하필이면 오늘 저녁 당번도 자기라 이 시간이면 밥도 대신 차렸을 텐데. 진짜 큰일 난 상황에 집까지 최단 코스를 계산한 희령은 결심한 듯 바로 나오야를 안아 들었다. 익숙한 일이긴 했지만 멍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1학년들의 시선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머쓱해 나오야는 애써 시선을 피했다. 유일하게 고죠의 얼굴만 진지했다. 그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간다.”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해 주는 희령의 뒷모습을 향해 고죠는 입가에 손을 데고 큰 소리로 외쳤다.

“꼭 1년 안에 돌아와야 해!”

약속했으니까.

*

희령이 다시 고전에 나타난 건 이후 8개월 만의 일이었다.

@_HANKYEON

댓글 1


  • 작은 바다코끼리

    시험 전날에 마음 편하게 읽고 갑니다. 나중에 조아라에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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