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식
유료

백창기 순애 드림

본격 자극중독남을 순애집착남으로 만들기

드림 버무리 by 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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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ㅂㅈㄷㅅ4에 나오는 메인 빌런 백창기 드림
적폐… 진짜임 개적폐임 부제부터가 적폐스멜 max… ^-T

소설 아님! 썰 형식.

그냥 보고 싶은 거 얼레벌레 엮어 쓰는 글이라 이뭔10? 하실 수 있습니다…

필자는 본 글과 원작에 등장하는 모든 범죄 요소를 옹호하지 않으며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소재임을 인지함

UnsplashShinya Kosaka

 起 기

시기는 백창기가 장 대표와 손 잡고 막 필리핀으로 건너왔을 때.

한 사업을 독점하는 건 언제나 품이 드는 일.
한창 물 들어오기 시작한 사업이라면 더더욱.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사업장 꿀꺽하는데 생각보다 피를 많이 흘렸어.
수하도 많이 죽고 스트레스도 좀 받고…

그래도 온라인 카zl노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서버실을 찾아.
근데 여긴 특이하게도 1층이나 지하에 있는 게 아니라 2층에 있어.
허술하고 약한 건물에 2층이라니… 딱 봐도 단칸방.

거기다 문에 대문짝만하게 뭐라고 써 있는데… 한국어 중국어 영어… 다개국어가 손글씨로 휘날려 있어.
대충 자고 있으면 건들지 말라든가 금방 깨니까 기다리라든가. 그런 내용.
열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뭔 소린지.

백창기는 별 생각 없이 문고리를 잡고 돌리는데, 이게 아무런 저항 없이 잘 열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장애물(=사람)이 많았던 건 문을 안 잠가놔서인가.
아무리 그래도 가장 중요한 서버실인데 보안이 이렇다고? 의아하지만 문 열고 들어가.

문을 열자 훅 끼쳐오는 시원한 바람…
필리핀이고, 서버실이라면 후덥지근해야 정상인데 웬… 서버실이라고 에어컨이라도 빵빵하게 돌리는 건지.

그러다 시야에 들어오는… 바닥에 엎어진 사람.
후줄근하고 얇은 반팔 반바지. 몸에 굴곡을 보면 여자인데.

이 여자가 서버 관리자인가?
처음엔 높은 사람인 건지 이쪽 대가리의 여자인가 싶었다.
방이 생각보다 호화로워서.
자기들은 억지로 사람 데려와서 구석에서 굴려대는데 여긴 안 그렇잖아.
에어컨도 빵빵해 간이지만 한쪽에 침대도 있고, 저기 다른 문 열어보니 욕실 딸린 화장실이고.

근데 왜 잘 걷다가 넘어진 것처럼 얼굴 안 보이게 엎어져 있는 건지.
백창기가 발로 툭툭 건드려도 안 움직여.
건드리는데 뭐가 짤그락거리길래 시선을 내리니까 여자 발목에 사슬이 있어.
아 그럼 높은 사람은 아니겠거니 싶지.

대가리의 여자라 도망가지 말라고 묶어둔 건지 관리자라고 묶어둔 건지
이곳에 사로잡혀 있는 건 확실하겠다 싶었다.
이제보니 창문도 쇠창살로 막혀있네.

여자는 자는 건지 뭔지 의식이 없어 보여.
의식 없는 묶인 사람 죽이는 취미는 없고 데이터만 털어가면 되니까 혼자 컴퓨터 조작하려는데
프로그램이 함부로 건드리면 a부터 z까지 싹 터지는 구조로 되어 있어.

약간 열 올라옴… 이자식들이 깜찍한 짓을 해놨네.
여지껏 조진 놈들 중에 기계 좀 다룰 수 있어 보이는 면면이 없었고 대가리도 족쳤으니
당연히 서버 관리자는 이 여자겠지. 여기 괜히 묶여 있는 게 아닐 테니까.

그래서 여자 깨우려는데 문득 문 앞에 잔뜩 적힌 주의사항이 떠올라.
잘 때는 깨우지 말랬고 좀 기다리면 깬 댔으니까.
그리고 아래서 문 앞에서 바로 그런 생난리가 났는데도 안 깨고 있는 거보면
이유가 있겠다 싶어서 기다리기로 함. 시간에 쫓기는 것도 아니고…

정리 얼추 끝낸 조지훈이 와서 형님, 끝났습니다 하고 보고하러 왔는데
서버는 여전히 씽씽 돌아가고 바닥엔 웬 여자가 엎어져 있고 형님은 조용히 서 있으니까
똑같이 옆에 서서 가만히 대기하는 조부장.

몇 분 안 지나서 여자가 일어났는지 으… 하는 앓는 소리가 들려.
엎어진 채 팔로 바닥 짚어 몸 일으켜더니…
사족보행 하는 자세로 엉금엉금 기어가서 컴퓨터 앞 의자에 털썩 앉는다.

키보드를 타닥… 타닥… 마우스 딸깍…딸깍…
하… 타닥… 타닥…
딸깍… 하… 진짜 하기 싫다…
힝…ㅜㅜ… 타닥… 타닥…

뭐하는 건가 싶음.
아무리 두 사람이 인기척 안 내고 있기로서니…
여자가 고개를 들거나 돌리거나 하지 않아서 둘을 못 본 것도 있긴 한데…

여자 하는 양 조용히 지켜보는데
서버 관리자인 건 맞았는지 설렁설렁 움직이는데도 뭔가 척척 돌아가.
컴퓨터 여러 대를… 그러니까 사람 서너명 분을 혼자 해내고 있어.
저래서 묶어놓고 챙겨줬구나 싶지.

그런데 몇 분 두들기던 여자가 어? 이거… 이러면 안 되는데? 중얼거려.
백창기가 사람 끌고 와서 싹 쓸어버렸으니
메인 서버가 털리지 않았더라도 여기저기서 오류가 생겼나 봐.

여자가 한참을 모니터 쳐다보다가 의자에서 일어나 몸을 틀어.
그제야 백창기와 조지훈을 발견해.

두 사람은 여자가 무슨 반응을 할지 모르니까 신경을 곤두 세우고 여자를 쳐다보는데
여자는 그냥… 두 사람을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한다는 말이

언제 오셨어요? 저 잘 때 오신 거죠?
뭐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그들이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라 어리둥절…
사람 안 마주치고 컴퓨터만 만지니까 자기네 사람인지 아닌지도 구분 못하는가 싶어.
긴장하고 두려워 하는 기색이 있긴 한데 처음 보는 낯선이를 마주한 반응이 아니니까.

혼자 뭐라 말하던 여자가 시선을 좀 내리는가 싶더니
백창기 셔츠 사이에 드러난 문신에 닿음.

그러자 여자가 몸을 딱 굳히면서 눈을 땡그랗게 뜨고는
그제야 두 사람이 예상했던 누구세요? 라는 말이 튀어나와.

여자한테 앞으로 우리가 여기 쓸 거야 라고 말했는데
여자는 어… 저도 쓰시는 거죠? 라고 되물어.

살려달라거나 자기가 잘 하겠다거나 뭐… 하다못해 도망치게 해달라든가.
그런 게 아니라 저런 이상한 소리 하니까 괜히 어이없어서 웃는 백창기.

네가 여기 서버 관리해?
아, 넵… 여기 방만 그대로 놔둬주시면 제가 혼자 다 할 수 있어요.
혼자?
넵.
…사람은, 잘 못 알아보나?
어, 그게… 제가 사람 얼굴 구분을 못해서요…

허술한 모습에서 김이 샜다고 해야 하나.
협박하거나 해서 서버를 탈취하는 것보다는…
어차피 서버나 프로그램을 먹기는 해야 하고, 이런 쪽으로 능력 좋은 인재 같이 갖는 것도 나쁘지 않아서
그냥 여자 제외 사람 다 갈아치우고 사업장 꿀꺽 하는 백창기.

 承 승

여자가 비교적 호화로운? 환경에서 일하는 이유가 있었어.
그리고 그게 호화로운 게 아니라 최소한이었다는 것도…

여자는 기면증을 앓아.
기면증 그거잖아 본인 의도가 아닌데도 잠이 와서 픽픽 쓰러지는.

그런데도 얘를 정성들여(?) 꾸민 방에 묶어둔 건
혼자 서너명 분을 함
해킹도 할 줄 앎
한 마디로 능력 짱짱 IT계 사기캐라 잡아두고 있는 거…
기면증 때문인지 잠을 불규칙적으로 짧게 짧게 자긴 해도
하루 최소 4~5시간은 재워야 하는 다른 사람들보다 효율이 좋아.

거기다 어렸을 때 납치에 인신매매 당해서 연고도 없어.
시키면 군말 않고 곧잘 해내는 고분고분한 성격에 욕심도 없어서
바라는 거 없이 그 환경만 유지 잘 해주고 방해 안 하고 밥 제때 주면
일 잘 하니까 편한 물건이라 생각했을 듯.

여자 만나고 자기 쪽 사람으로 만든 뒤로 착착 일은 계속 진행되며 수개월이 흘러.
여자는 자기 관리해주는 사람만 바꼈지 하던 일은 똑같아서 일상이 이어져.

근데 여자가 맡은 게 하나둘씩 늘어나는 온라인 카zl노의 중심이라 중요하니
백창기가 직접 와서 확인하는 날들이 좀 있겠지.

그 날도 여자 보러가기 전에 어디 한 곳에 들렸는데
뭔가를 받음. 되게 사소한… 뭔가.
초콜릿이라든가. 브로치라든가. 기념품 같은.
백창기한테는 하등 쓸모 없는 거.

그래서 그냥… 쓰레기 처리하듯이 여자한테 줬는데
애가 너무 좋아하는 거야.

백창기가 너 가져, 하고 건네준 거 두 손으로 받아들고.
흐리멍텅하던 눈에 빛이 들더니 둥그렇게 뜨여서 와~ 감탄하고는
물건이랑 백창기랑 번갈아보다가 가,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해.

자그마하고 값어치 없는 게 어디가 마음에 들었는지
창백했던 낯에 열이 몰려 불그스름해진 볼을 당겨 웃으며 애처럼 헤실거리는데

그게… 왠지…
보기 좋았다.

백창기는 그때 여자한테 보조개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그 볼살 푹 패인 미소가… 어쩐지 눈에 밟혀서.

지금까진 주문만 하면 띡 해내는 자주 오류나는 기계 정도로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내며 맑게 웃고 기뻐하는 걸 마주하니……

여자가 있는 사업장에 방문하는 횟수가 조금… 늘었다.
미세하게 주기가 좀 빨라졌네 싶을 정도라 아무도 몰라.

이후로 뭔가 받거나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거 있으면
가져다주는데 … 그럴 때마다 항상 똑같이 눈에 띄게 좋아해.
이런 걸 왜 좋아하지 싶은 것도 좋아해서 괜스레 짜증이 나는 백창기.

그래서 언제는 넌지시 특별히 좋아하는 게 있는지 떠봤는데
아무리 물어보고 시험해보고 보여주고 해봐도 알 수가 없어.
오히려 값이 좀 나가는 류는 부담스러워서 숨막힌다고 거부하기도 했고.
(백창기가 억지로 쥐어주려고 하니까 벌벌 떨면서 울려고 함.
싸장님 제가 잘 할게요 잘못했어요ㅠㅠ(곧 죽는 줄 알았나봄))

대놓고 뭐 바라거나 갖고 싶은 거 있는지 물어봐도(돈, 땅, 집, 신분, 자유…)
지금처럼 시원한 데서 목숨 걱정 없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좋대.

백창기가 물었을 땐 긴장해선지 작은 목소리로 머뭇거리며 말해가지고
그나마 좀 덜 위협적인? 애한테 다시 물어보라고 했더니 답이 똑같아.

설마 남들 속이고 탈출 기회를 노리나 싶어 발목 사슬 풀어줬더니
도망 시도는 무슨… 방 밖을 나갈 생각을 안 해.
다른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을 없는 것처럼 생활해.

안 나가냐, 나가고 싶지 않으냐 물어보면 어벙한 얼굴로
제가요…? 저 이제 필요 없으세요…? 라고 물어보기나 하고…
길도 모르고 여기서 나가 봤자 컴퓨터 두드리는 거 말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힘 없는 여자는 좋은 먹이만 될 뿐이라고 무서워서 안 나간대.

괜히 그럼 이 좁은 데서 평생 썩어 죽을 거냐고 일갈하면
눈치 슬 보면서 솔직히 자기처럼 하자 많은 애가 아직 살아있는 게 운 좋은 거래.
사장님 좋으신 분 같아요…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주시고… 저 건드리시지도 않구…

없는 소리 못하는 애가 머뭇거리면서도 솔직하게 말하니
어이와 할 말이 사라진 백창기…

그래도 단칸방도 아니고 뭔 … 창고 같은…
아이고 그냥 뭔 방 같지도 않은 데 갇혀 살면서
싸구려 인형 하나, 금방 시들 꽃 한 송이,
애들이 푼돈으로 사먹는 사탕 한 갑…
이런 거에 만족하는 거 보고 답답함 느끼는 백창기.

자신의 감정이 왜 그런지 전혀 이해를 못하고 깨닫지도 못 해.
그러면서도 저런 사소한 거에 좋다고 웃는 보조개 있는 미소에 중독돼서
여자 있는 사업장에 갈 때마다 세 번에 한 번 꼴로 뭐 챙겨주는 게 일과가 됐겠지.

어느 날은 구멍가게에서 흔히 파는 사탕꾸러미 사서 줬는데
와~ 감사합니다. 이러고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배싯 웃으면서 지금 하나 먹어도 돼요? 묻길래 고개 한 번 끄덕여주면
소리 안 나게 조심조심 비닐 뜯어서 사탕 꺼내 먹겠지.
맛대가리 없는 사탕 하나에 크리스마스 선물 받은 것처럼 웃는 게
그날따라 속이 뒤틀려서 자기도 모르게 말 붙이는 백창기.

넌 이런 거 왜 좋아하냐
네? 아, 어… 마, 맛있어서요…

백창기가 이런 식으로 일상적인? 말을 붙이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뭘 받든 매번 새롭게 좋아하는 것처럼
백창기가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말을 붙이든 매번 긴장하는 여자.

너 전에 같이 일하던 놈들이 이런 건 안 줬어?
어, 음… 그래도… 하루 세 끼에 약도 꾸준히 주셨어요… 방도 시원하게 해주셨고…
하…

왜 전에 일했던 놈들 비호하듯이 말하는 건지.

백창기가 말없이 표정이나 눈짓으로 표현하는 감정은 못 알아채면서
이상하게도 평이하게 흐르는 어투에서는 귀신 같이 감정을 읽어.

그래서 방금 백창기의 한숨에서 불편한 심기를 읽어냈는지 어깨가 움츠러들어.
그 감정이 자신을 향한 게 아니고, 자신 탓이 아닌데도.
윗사람의 기분이 저조하면 납작 엎드리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하는 게 보일 때면 왜 이리 아득한 기분이 드는지.

백창기는 입에서 사탕 굴리던 것도 멈추고 숨도 거의 안 쉬고 눈치만 보는 여자한테 편히 먹으라고 하지.
그제야 다시 혀를 움직여서 녹여먹긴 하는데 이전처럼 이리저리 굴리면서 신나게 맛보는 게 아니라 신경 안 거슬리게 조심하는 티가 나서 또 그거 때문에 속이 상한다.

속이, 상한다고. 내가.
새삼스럽게 감정 깨닫고 헛웃음 짓는 백창기.

잠깐 자아성찰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여자 고개가 푹 꺾여.
기면증 때문에 갑자기 잠들어서… 앉아 있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니까 어깨 감싸안듯 잡아서 눕혀준다.
입에 있는 사탕이 기도를 막을 수 있으니까 애 입 속에 손가락 넣어서 사탕 빼주겠지.

좀 작아진 알록달록한 사탕 쳐다보다가 지 입에 넣는 백창기.
이런 게 뭐가 맛있다고… 따위나 중얼거리면서 에어컨 온도 조금 높인 다음에 방을 나간다.

 轉 전

장 대표가 여자를 만나고 싶어해서 같이 한국에 가게 돼.
원래 전부터 백창기나 수하들의 보고로 능력 좋은 애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는데
백창기가 업무 때문에 바빠서 못 데려가고 여자도 서버와 프로그램 관리로 바쁘니까
이제껏 안 된다고 백창기가 변명 아닌 변명 하면서 안 데려갔어.

이번에 뭐 … 지분 관련 협상도 하고 어쩌고 햇수가 넘어가니 서로 만나서 해야 할 게 쌓였으니
만나서 처리할 겸 만나는 김에 그 여자도 좀 만나보자해서 데려가게 됐다.
장 대표랑 만나게 하는 게 맘에 안 드는 한 편 더 귀찮아지기 싫어서 어쨌든 할 일 하는.

고향이나 다름 없는 나라에 간다는데 아무 생각 없는 여자.
그보다는 사장님보다 더 높은? 사람을 만나러 간다니까 (무려 직급이 대표) 긴장했지.

근데 웬 걸 가서 만난 대표는… 뭐랄까.
저 사람 때문에 사장님 빡치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입이 가벼운 사람이라
웬종일 벌벌 떨면서 사장님 눈치만 보느라 바쁠 듯.

심지어 처음 등장할 때 여자를 놀래켜서… 혀를 대차게 씹었다.
애가 아파서 눈살 찡그리고 눈물 맺힌 걸 봤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
몸 크게 떨면서 반응하고 살 씹는 소리를 분명 들었어.
백창기가 돌아서서 여자 살핀다.

입 벌려 봐.
에?
입, 벌려 봐.
어… 아, 저 갠, 갠차나여.
입 벌려.
넷.

백창기 측근들은 백창기가 은근 여자 싸고 도는 거 아니까 눈치껏 모른 척… 무던히 넘기는데
장대표는 뭐야뭐야 눈 반짝이며 촐싹거려.
아 뭐야 둘이 사귀어? ㅋㅋㅋ 백 사장 필리핀 가서 젊은 애 낚아오고 능력 좋네~
이런 말 하는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여자 입 속 살펴보니
피가 좀 나긴 하는데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할 정돈 아니라서 작게 벌어져 있던 입 다시 닫아줘.
계속 나불대는 장 대표 한 번 서늘하게 쳐다봐주고.

암튼… 장동철은 여자가 혼자 해낸 업적 언급하면서 신났어.
자기처럼 IT지식 풍부한 능력자는 오랜만이라 동지 만난 기분일듯.
물론 혼자 신나서 혼자 떠들고 여자는 겨우겨우 없는 말주변으로 떠듬떠듬 말해.
사장님의 상사?인 대표님이니까 공손하게 조곤조곤… 단어 하나도 조심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장대표 연락 받은 관계자들이 하나둘 늘어가는데
장대표 사람에 백사장 사람에 관계자들… 점점 모이니까 사람이 열댓명은 돼.
사람이 늘수록 주눅 들고 목소리 기어들어가는 여자.

장대표가 대담을 원했고 기술 쪽 관련해서 계속 말 붙이는 바람에
소파 뒤쪽이 아니라 소파 앞에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어서 시선이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

백창기는 갈수록 심기가 불편해져.
이유는 여자가 사람 많은 거 무서워 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무릎 위에 꾹 잡은 두 손이 바들거리는 게 눈에 보인다.
장대표가 그거 발견하더니 아구… 왜 이렇게 떨어. 긴장했어? 하면서
하긴 여기 다 아재들 밖에 없어서 좀 그렇지? 너스레를 떨더니 화제를 바꿔.

그러고 보니 막내는 한국이 간만인가? 한국이 땅덩어리가 좁아도 은근히 놀 데가 많거든 에X랜드라고 들어봤어?
개뜬금없이 놀이공원 얘기를 하는데 그게 여자 긴장 풀어주려고 하는 거라
화제가 이상하게 튀어도 뭐라 안 하는 관계자들.

그리고 백창기는 주눅 들어서 의기소침하게 있던 여자가 눈 반짝이며 장대표 말을 듣는 걸 봐.
돌아다니는 거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놀이공원 얘기에는 저렇게 좋아하는 거 보니까 필리핀에 있을 때 억지로라도 나가봤어야 했나 싶지.

한창 떠들고 장대표가 말 나온 김에 같이 가볼까? 해서 갑자기 놀러가는 일정이 잡혀.
장대표 하고 싶은 대로 막 해버리는 거 여럿 봤지만 볼 때마다 얼척이 없는 백창기.
시간을 촉박하게 잡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여유 부릴 시간은 없어.
일정도 다음 날 아니면 이틀 뒤 였지 않을까…
근데 장대표 에x랜드 가면 일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나 다를까 가기로 한 날 장대표가 일 있어서 못 가게 돼.
한량 같아 보여도 바쁜 사람이라 애초에 갈 수 없는 허황된 말이었어.
장대표는 그냥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그치만 내가 바쁜 걸 어떡해~ 이러고 지 할 일 하러 가.

여자는 장대표가 못 가게 됐다고 말 했을 때 그냥 조용히 수긍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백창기는 봤지. 애가 시무룩해 하는 걸.

주눅 드는 모습이랑은 좀 다른.
기대로 희미하게 머금었던 색이 쑥 빠져버린 실망이 스쳐가는 걸 분명 봤어.

그래서… 충동적으로.
조부장에게 뱅기 표 오늘 것 중에서 가장 늦은 거로 다시 예매하라고 해.
얘 데리고 가 봐야겠다고.
조부장은 형님이 직접이요? 하고 물었다가…
백창기가 여자 특별하게 여긴다는 거 익히 알고 있었으니 시킨 대로 하겠지.

시간이 늦어 16시 이후부터 입장 가능한 거로 끊어서 단 둘이.
결국 에X랜드 가는 여자.

처음에는 백 사장이 대신 같이 가준다니까 쩔쩔매면서 가면 뱅기 놓치는 거 아니냐,
빨리 필리핀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 머뭇거렸는데
막상 놀이공원 도착하니까 엄청 좋아해.

처음엔 뚝딱거리다가도 좀 익숙해지고 나서는
조용조용 소심하게 사장님… 하던 애가 사장님! 하고 밝게 부르는 것도 듣게 돼.

사람 많은 데서 갈라질 뻔 했는데 백창기가 팔 쭉 뻗어서 여자 팔 잡아당긴 다음에
어깨 둘러 안아 제 옆에 바짝 붙인다.
터치가 어색한 건지 백창기라 긴장한 건지 둘 다 인지…
여자가 뻣뻣해져서 사과하는데(귀찮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을 듯)
미아 되기 싫으면 잘 붙어 있으라고만 말하는 백창기.
그 뒤로는 여자가 백창기 옷깃 잡거나 백창기가 여자 팔뚝 붙잡고 다녀.

여자가 겁이 많아서 놀이기구를 많이 타진 않았지만(회전목마는 탔을 듯)
그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보였다.
특히 초여름이라 장미가 만개한 공원에 갔을 때는 한동안 거기서 안 떠났지.

보조개 푹 들어간 환한 미소가 진한 햇볕을 받아 은은히 빛나면
말없이 그 장면을 눈에 아로새기는 백창기.

밤에 하는 퍼레이드까지 야무지개 보고 차 타고 늦은 뱅기 타러 공항 가는데
백창기가 이따금씩 선물 줄 때도 기뻐하는 게 오래 안 가던 애가 공항 가는 내내 헤실거려.
입꼬리 살짝 올라가서 헤죽거리는 게 보기 나쁘지 않아서.
옆 얼굴 빤히 쳐다보는 백창기.

애가 입을 우물거리는가 싶더니…
처음으로 백창기에게 먼저 말을 걸어.

사장님… 고마워요.
뭐가.
같이 놀이공원 가주셔서… 감사해요.

매번 항상 백창기 옆에서는 기백에 짓눌려서 쭈그러들어 있던 애가
눈을 마주치지는 못하지만 말을 절지 않고 부드럽게 말하는데 왠지 심장께가 몽글몽글…
입꼬리 당겨 픽 웃는데 저도 모르게 그런 거라 무의식적으로 입가 쓸어내는 백창기.

 結 결

백창기가 사업장 꿀꺽꿀꺽 독식해대느라 해를 입어 앙심을 품은 조직이 여자를 납치하다.

백창기는 여자가 저항없이 나불댈 거라고 생각했어.
강자에게 납작 엎드려 살아가는 그저 컴퓨터만 좀 잘 만지는 애니까…
딱히 걔를 숨을 끊어 처리해야겠다 생각하지 않았어.

사업장이 커지면서 아무리 능력 좋은 여자라도 혼자 해내긴 힘드니까.
슬슬 일꾼들 추가로 데려와서 일을 분산시키고 있었으니 여자가 혼자 감당하던 중심서버가 중심이 아니게 된.

그래서 여자가 뭘 불든 서버를 내놓든 …
나중에 다시 뺏으면 되니까 딱히 상관 없어서.
여자가 나불댈 걸 전재로 대비를 해놨는데
아무리 지나도 뭔 소식이 없어.
사업장이 부서졌다든가 서버가 털렸다던가…
하다못해 해킹 당했다던가 그런 게 없어.

불쾌하게 불안해질 즈음
조부장이 통화중인 폰을 다급하게 갖고 와.

웬 놈이 느그 서버 관리하는 여자 살리고 싶으면 관리자 키를 달래.
그리고 뭔 짓을 해서 구워 삶았길래 삐쩍 마른 애를 이렇게 지독하게 만들어놨냐고 짜증내.
애가 한 마디도 안 한 거야.

답지 않게 굳어 있는 백창기 뒤에서 조용히 위치 파악 됐다고 보고하는 조부장.

숨 붙여 놔.
뭐?
그 여자 살려두라고.

이죽이는 목소리 듣지도 않고 전화 끊어버리고 당장 차 끌고 수하 끌고 출발하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외진 곳에 도착해서 매번 하던 것처럼 다 쓸어버리는데
오늘은 최전방에서 길을 뚫는 백창기.
다 상대하는 게 아니라 바로 앞만 막아서는 놈 급소 푹찍하고 나머지는 다 피해서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

위기를 느낀 조직 대가리가 여자 질질 끌고 와서 죽여버릴 거라고 협박하는데
애가 꼴이 말이 아니야.
얼마나 맞고 찔렸는지 피칠갑인데도 이리저리 다친 게 눈에 들어 와.
살아 있는 게 맞는지 의심될 정도인데…
다행히 눈을 얇게 뜨고는 있어.
그게 뭐라고 안심이 되는지.

검게 죽은 눈이 데굴 굴러서 백창기와 시선이 마주쳐.
그러자 눈이 스르르 감기고.
몸은 더 축 늘어져서 여자 붙들고 있던 대가리가 어어?

그 순간 놓치지 않고 몸 날려서 대가리 썰어버리는 백창기.
급소 찔려서 바르작대는 놈 쓰레기 치우듯이 발로 차서 치우고 여자 상태부터 확인하는데
다행히 숨은 쉬고 있는데… 너무 얕아.

상황 끝나지도 않았는데 여자 안아들고 성큼성큼 나가는 백창기.
멀리 있던 조부장이랑 눈 마주치고 나서 곧장 본인이 차 운전해서 병원으로 간다.

겨우 목숨 건져서 병원에 입원한 여자.
뼈가 몇 군데 부러지고 금 갔지만 다행히 장기는 멀쩡해.
더 늦었으면 과다출혈로 죽을 수도 있었다는 의사의 말에 아득해지는 백창기.

그런데 짧게 시선 마주쳤던 그 뒤로 눈을 안 떠.
여자 없어서 사업장이 며칠 정도 버벅거리긴 했지만 어떻게든 수습은 돼.
짬 날 때마다 여자 보러 가는 백창기…
그제야 여자가 백창기에게 큰 의미를 가지는 존재란 걸 아는 부하들 늘어나고.

갈 때마다 항상 그래왔듯 자잘한 거 들고 가서 선반 위에 올려두는데
선반에 자리가 없어서 베개 맡에 두고…
몇 개월 뒤에는 둘 자리가 없어서 빈 손으로 가는 날이 늘어가겠지.
갈 때마다 자기가 하나씩 가져온 게 이렇게 많은가 헛웃음 짓기도 하겠고.
얘가 대체 내게 뭐길래 내가 이러고 있나 자아성찰도 좀 하고.

그런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자신을 타일러도
항상 마지막엔 저녁 놀 아래서 여한 없다는 듯이 짓던 보조개 패인 미소가 떠올라서
다른 것들은 전부 사소해져버려 생각하기를 멈췄을 듯.

여자가 눈을 뜬 건 반년 뒤.
일하다 말고 여자 정신 차렸다는 연락 받자마자 차 타고 왔겠지.

병실 들어가니까 똑같은 자세로, 자기가 하나둘씩 뒀던 물건도 그대로 있는 침대에
눈 껌뻑이면서 누워 있는 여자.
눈 굴려서 자기 쳐다보는 여자와 눈 마주치면서 성큼성큼 다가가서 옆에 털썩 앉는 백창기.

왜 말이 안 나가는지.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입에 이리저리 굴려보지만 막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그래서 고르고 골라 내뱉은 게
왜 그때 말하지 않았지? 일듯.

여자는 되묻지 않고 눈만 깜빡…거리다가 오래 쓰지 않아 갈라진 목소리로 말해.

그러면… 은혜를 원수로… 갚게 돼서…
죽을 수도 있었어.
네… 죽을 줄 알았는데…

드문드문 끊어지는 목소리는 원래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고.
제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에 발 밑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끼는 백창기.

그렇게 속으로 홀로 패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링거 꽂힌 여자 손 옆에 시트만 그러쥐다가
한숨 길게 내쉬면서 제 팔에 얼굴 묻는 백창기.

사장님 왜 이러나 싶어서 그 와중에 안절부절 못하는 여자.
죄송하다고 습관적으로 사과하는데
퍼뜩 일어나서 마른 볼따구나 손가락으로 한 번 쓸어주고 빨리 낫기나 하라는 백창기…
보고 싶다.

아래는 자잘한 후일담 +주저리가 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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