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winJin ::Story::

《이유》

커미션 신청본

ⓒ보미

아주 예상치 못한 사건은 아니었다. 테네만이라는 작자에 관한 소문은 그간 익히 들어온 바였다. 그런 자가 진을 찾는다며 외출 허가 요청이 올라왔을 때 쉬이 도장을 찍어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어쩌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능력은 탁월했다. 하나의 병사를 키워내기까지 많게는 몇 년까지 걸리는 훈련 기간을 훌쩍 뛰어넘고 자유의 망토를 두른 그는, 원로 병사 못지않은 실력을 자랑했다. 벌새처럼 날아올라 거인의 척추를 끊어냈다. 미지의 공포 앞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잠시나마 긴장을 놓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괜찮을 것이라고.

하지만 진이 그 꼴을 하고선 감옥에 갇혀 있을 줄이야 정말 꿈에도 상상치 못했다. 테네만의 저택 지하에 구금되어 있었던 그는 벽에 양팔이 고정되어 사지가 결박돼 있었다. 수위 높은 고문이 여러 차례 행해진 듯 전신과 옷가지가 피로 물든 상태였다. 피부에 눌러 붙은 검붉은 피딱지 사이로 흙먼지들이 보였다. 아마 구타의 흔적이겠지. 성치 못한 몸으로 겨우 정신줄을 붙들고 있었던 것인지, 겨우 실내를 밝히고 있는 작은 등불 밑으로 자신과 시선이 마주치자 마자 자안의 눈동자가 빛을 잃고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자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그 즉시 보초를 서고 있던 헌병단에게 테네만의 체포를 명했다. 그 돼지 같은 작자가 양 팔이 붙들려 끌려가는 와중 무어라 소리를 질렀는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며 그를 수습해 복귀하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진을 회수 하던 날의 자신은 이례적으로 감정적이었다. 자신의 부하를 그렇게 만들어서? 홀로 향하게 한 것이 후회돼서? 아니, 그보다는 더 본질적인.......

"엘빈. 그 녀석이 깨어났다."

“......어, 그래. 알려줘서 고맙군. 당장 가보도록 하지."

"......페트라가 괴물을 주웠군."

진의 회복 능력에 대해 의문을 품는 리바이를 뒤로한 채 의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를 구출해 조사병단으로 돌아온 것도 벌써 3일 전의 이야기였다. 처음 구출될 때 숨이 붙어 있는 게 기적인 수준이었던 상태의 진은 사흘 만에 그 어떠한 의학적 치료를 받지 않고서도 정신을 차렸다. 다른 병사들보다 예후가 다를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괴물과도 같은 회복력이었다. 엘빈은 지난 사흘간 매일같이 그의 상처를 들여다보곤 했다. 어제까진 진물이 가득 고여 있던 부위가 멀끔히 나아 있거나, 하루만에 새살이 돋아 있기도 했다.

이자의 존재는 인류에게 득인가, 실인가. 엘빈은 그와 함께 땅끝까지 내달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회복이 빠르군."

의무실은 병단 내부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의 낡은 문을 열고 들어가며 엘빈이 넌지시 물음을 건넸다. 사경을 헤매다 사흘 만에 정신을 차린 사람에게 건넬 첫 마디로는 적절치 못했지만, 많은 의미를 내포한 한마디였다. 진은 단번에 그의 의도를 이해하였으나 부러 너스레를 떨었다. 진실을 고하지 않을 것임을 그 엘빈 역시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실제로 그는 자신의 이야기하기를 꺼려했다. 그런 사람이 오죽할까.

"죽다 겨우 살아 돌아온 사람한테 그게 무슨 소리야?"

의사를 부르려는 자신을 저지하며 그의 신비한 능력에 대한 사실을 리바이가 보고할 때에는,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고 그저 납득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진이라는 사람을, 그의 능력을. 800년간 숱한 사람이 죽어 나간 끝에 찾아온 기적과도 같은 이 자를 전적으로 믿고 또 의지하고 싶었다. 그는 입체 기동을 활용하여 거인을 사냥하는 능력이 뛰어날 뿐더러 의술은 말할 것도 없이 훌륭했다. 완전히 절단된 부위를 다시 봉합할 수 있다니, 그야말로 신이 내린 기적이 아닌가. 엘빈은 지금껏 생을 달리한 그의 동료들을 떠올렸다. 이 자가 우리 곁에 있어 준다면, 더는 무의미한 희생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가히 인류의 희망이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었다.

"내가 상처를 좀 보지."

"환자를 대하는 손길이 아닌데? 치료를 해줄 거면 상냥하게 해 달라고."

엘빈은 찬장을 열어 빼곡히 쌓여있는 약통 사이로 소독약과 연고를 꺼냈다. 이후 진의 앞에 간이 의자를 끌어와 자리를 잡고선 조심스레 붕대를 풀었다. 지난 사흘 간의 방문 덕분인지 제법 자연스러운 손길이었다.

그간 진이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엘빈은 쏟아지는 일 처리에 딱 죽을 지경이었다. 우선 자신이 테네만의 체포를 명한 장본인이었기에 그 경위와 사건의 당위성을 먼저 진술해야 했다. 윗선을 납득시키는 데에만 꼬박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걸렸다. 이후에는 진술서와 그의 처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올려야 했다. 그나마 어제 오후에는 그 저택 사용인들의 참고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해 잠깐 병단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곳에 돌아와서도 쉬기는 커녕 진의 용태를 살피고 단장의 임무를 다해야 했지만. 어쨌든, 밤새 진행된 사용인들의 진술로 새로이 밝혀낸 사실이 있었는데, 테네만에 의해 감금 및 고문을 당했다고 생각되는 병사들의 신원이 전부 파악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아마 그쪽에서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처리를 해둔 거겠지. 참으로 용의주도한 자였다.

그래서, 헌병단은 현시점 유일하게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피해자인 진을 소환하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둘 수 없었다. 그의 정체가 탄로나게 된다면 곤란했다. 그는 소재가 불분명한 사람이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사람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조사병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부터가 조작된 것인데, 이 자를 어찌 헌병단의 손에 넘긴단 말인가. 테네만의 저택에서 가해진 행위들보다 더욱 가혹한 짓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원래는 진, 자네가 조사를 받았어야 했는데 그건 우리 쪽에서 곤란 하더군. 그래서 위쪽에 거짓말을 좀 했네. 아량 넓은 자네라면 이해해 주겠지?"

“뭐라고 했는데?"

“조사병단 외에 낯선 이와 접촉하게 되면 극한의 공포감이 일어 결국 발작하고 만다고."

엘빈은 낯짝 하나 바뀌지 않고 술술 거짓말을 쳐댔다.

"하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하니 양해를 좀 구하지. 헌병단 대신 단장인 내가 직접 조사를 하게 됐다. 자, 첫 번째 질문은... 어쩌다 그곳에 가게 됐지?“

"부르니까 갔지. 이게 질문이야?"

"충분한 대답이 됐네."

엘빈은 애당초 그에게 자세한 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던 듯 의미 없는 질문 몇 가지를 던진 뒤 파일철을 탁 닫았다. 그가 말하는 할 일인 조사가 끝났음에도 엘빈은 한참이나 그의 앞을 떠나지 않고 제자리를 지켰다. 둘은 그저 적막 가득한 의무실에서 서로의 시선을 받아낼 뿐이었다. 고요하게 내려앉은 공기가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로 바뀌어 갈 때, 나직한 목소리의 엘빈이 입을 열었다.

"왜 나를 이용하지 않았지?"

“갑자기 무슨 소리야?"

“테네만에게 잡혀갔을 때. 가장 간단하게 끝낼 방법이 있다는 걸 자네도 알았겠지. 그럼에도 그곳에서 며칠 동안 고문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는군. 왜지? 왜 나를 이용하지 않았지? 속 시원히 자네의 정체를 밝히고, 인류 헌장을 위배한 죄로 나를 밀고하면 발가락이 찢겨 나가는 고통 따위는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는 드물게 말이 많아져 있었다. 구출될 당시의 진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라 추욱 가라앉은 그가 조심스레 말을 건네는 것에 비해, 진은 이런것쯤이야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꾸했다. 그의 대답에는 어떠한 질책도 담기지 않았고, 지나치게 가벼워서, 엘빈은 더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그야, 내가 너 때문에 잡혀간 게 아니잖아? 죄를 지은 사람도 네가 아니고."

"......그렇군."

진은 참 알 수 없는 작자였다. 아무리 신묘한 힘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느끼는 고통의 총량은 비슷할 터인데.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고통에 피눈물을 흘리지 않을 자가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진은 자신을 이런 상황에 몰아넣은 장본인을 탓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감싸주기까지 했다.

처음 진을 보았을 때, 저자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진에게 입단을 권유했고, 진은 흔쾌히 응했다. 나아가 지금은 아주 큰 전력이 되어주고 있었다. 함께 동고동락하며 목숨 바쳐 싸워온 것이 벌써 몇 해나 지났지만, 그에게 인류를 위해 심장을 바칠 이유 같은 건 없었다. 떨어진 팔도 마법 같은 힘으로 다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자가, 입체 기동 장치 없이 하늘을 날 수 있는 자가 벽 안에 얽매일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바깥의 세상이 어떠하든 발길이 닿는 곳으로 가면 그만인 그런 자인데. 그런 자가 왜....... 어째서 우리의 힘이 되어 주는 것일까.

엘빈은 원인 모를 두통을 느꼈다. 아무래도 이 자에 관한 생각을 너무 많이 한 모양이었다.

카테고리
#기타
추가태그
#드림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