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blot Isle

The Overblot Isle 01

트위스티드 원더랜드, 올 캐릭터 드림

* The Shrouded Isle 패러디. 게임의 시스템만 비슷할 뿐, 스토리까지 같지는 않습니다.

* 이후 상해, 감금, 정신착란 묘사 있…을 예정입니다. 포크 호러에 가까운 스릴러물 글이라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 원래는 만우절 기념 연성으로 올리려고 했는데… 너무 길어져서 그냥 생각나면 써서 올리기로 했습니다. 언젠간 쓰겠지.


0일째.

 

“와, 이걸 드디어 깨네.”

 

나는 결과 창이 뜬 게임 화면을 캡쳐한 후 게임을 종료했다. 한 3일 정도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공략도 찾아보지 않고 플레이했는데, 그래도 10시간 만에 진엔딩을 보다니. 아직 배드엔딩까지 포함해 5개 정도 엔딩이 남아있긴 하지만, 뭐 그건 천천히 깨면 되는 거 아니겠나.

 

‘이제 자야지. 후. 요 며칠간은 이거 깨는 것만 생각하느라 공부도 집중하질 못했다니까.’

 

이래서 난 게임은 잘 골라서 해야 해. 도전과제 있는 건 그거 깬다고 완전히 몰입해 버리고, 승부가 나는 게임은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 무슨 수라도 쓰려고 하니까.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승부욕이 강해진 건지, 원래 타고나길 이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덤비기 전 일찍 포기하는 법을 배워 이 도전 정신이 아무 때나 나오지 않는 건 다행인 게 아닐까?

 

‘남은 엔딩은 천천히 보자…….’

 

게임이 좀 어렵긴 해도 머리를 써야 하는 거라서 손가락이나 손목에 무리가 가지도 않고, 분위기도 마음에 드니 도전과제는 다 깨봐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잠자리에 든 나였지만, 어찌 알았을까.

 

‘나, 어쩌면 교주로서 재능이 있을지도?’

 

잠들기 전 생각한 나의 헛소리가, 실시간으로 시험받는 날이 올 줄을 말이다.

 


1일째.

 

‘어라.’

 

눈을 뜨자 보이는 곳은, 익숙한 얼굴 여덟과 그 너머를 둥둥 떠다니는 그레이트 세븐의 초상화였다.

이 벽지. 이 바닥. 그리고 사감 선배들에게 진지하게 떠드는 학원장이 앉아있는 책상을 보면, 여긴 누가 보아도 학원장의 방인 듯했지만…….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이상하다. 나는 분명 어제 내 방에서 잤는데. 왜 학원장의 방에 와 있는 거지? 옷도 잠옷이 아니라 교복이고……. 설마 내게 몽유병이라도 생겼나?’

 

무엇보다, 왜 사감 선배들은 저리도 심각한 표정으로 학원장의 말을 듣고 있는 건가? 누가 보면 내일 세상이 멸망하는 줄 알겠다.

그런데, 이런 내 생각이 들리기라도 한 걸까.

선배들만 보며 이야기하던 크로울리 학원장이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이렌 군. 듣고 있습니까?”

“예?”

“듣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지금, 무엇보다 당신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데. 건성으로 들으면 안 됩니다!”

 

아니, 그러니까 대체 뭘 하고 있었는데 제게 이러시는 거냐고요.

아. 알겠다. 그러니까, 이건 꿈이구나. 꿈은 원래 부조리한 법이니, 적당히 맞장구쳐주면 되겠지.

 

“당연히 듣고 있었죠. 그냥, 고민이 많아져서…….”

 

내 임기응변이 잘 통한 걸까. 내 대답을 들은 카림 선배가 갑자기 내 어깨를 한 손으로 끌어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건 아이렌에게 부담될 일이니,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나라면 절대 못 할 일이고!”

 

역시 카림 선배. 남의 편들어주는 건 1등이라니까. 언제나 생각하지만, 이 학교에 있기엔 참 지나치게 호인이다. 여전히 나는 무슨 소릴 나눈 건지 하나도 모르지만, 꿈이니까 괜찮겠지.

카림의 말을 들은 리들 선배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음. 카림의 말이 맞아. 확실히 부담스러운 자리겠지.”

“그렇지? 아이렌이 마법을 못 쓴다고 해도. 모두를 책임져야 하는 일을 떠맡게 되는 건 부담스럽잖아!”

 

예? 누가 누굴 떠맡아요? 제가요? 여러분을 다?

저는 그림 하나 감독하기도 벅찬 사람인데요?

추측 조차 할 수 없는 카림 선배의 폭탄 발언도 놀라웠지만, 진짜 놀라운 건 두 사람의 대화에 한 마디씩 얹는 다른 사감들의 반응이었다.

 

“아이렌 씨, 혹시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면 꼭 저를 찾아주십시오. 모스트로 라운지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뭐, 뭐어. 졸자는 심적으론 의지하기 힘들지 몰라도. 과학적인 도움이라면 언제든 줄 수 있으니 부디.”

“어라. 이데아. 웬일로 선배다운 말을 하잖아? 아이렌. 혹시라도 우리 기숙사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가차없이 부탁할게. 물론, 나도 포함해서 하는 말이야.”

“셴하이트의 말에 동감이다. 우리 디어솜니아 기숙사도, 만약 그 ‘특이사항’이 발견된다면 망설이지 말고 고발하기를.”

“하. 다들 걱정이 심하군. 저 녀석은 생각보다 가차 없다고. 아마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모두를 위해 한 명 정도는 가차 없이 묻어버릴 녀석이니, 묻히지 않게나 조심하라고.”

 

레오나 선배. 저를 참으로 잘 아시는군요. 저는 대의를 위해선 소수의 희생도 필요하다 생각하는 사람이니 그 의견은 정답입니다. 하지만 말이죠, 대체 제가 왜 갑자기 여러분 중 한 명을 묻어버려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건지는 정말로 모르겠는데요. 특이사항은 또 뭐고요?

 

그때.

 

<당신은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의 유일한 비마법사로서, 이 이상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매주 한 명의 위험인물을 찾아 크로울리에게 고발해야 합니다.>

 

의문에 빠진 나를 도와주겠다는 듯, 허공에 글자가 쓰인 직사각형 모양의 안내표시가 띄워졌다. 그래. 마치 게임 속 해설 스크립트 상자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이 이상 현상은 하루아침에 일어났으며. 학교 내 학생과 교사 대부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남아있는 건 새까만 마력의 덩어리뿐. 학교 밖으로 나가려고 하여도 검은 장막이 가로막고 있어 탈출은 불가능합니다.>

 

‘……굉장히 구체적인 설정의 꿈이군.’

 

하지만 멀쩡히 지구촌 주민으로 살다가 트위스티드 원더랜드 세계로 트립한 나에게, 이정도 설정의 꿈은 그저 하루 정도의 깜짝 이벤트일 뿐이지.

‘그래, 일단 계속해 봐라.’ 그런 마음으로 문장을 읽어내려가고 있자니, 안내창 안에 새로운 글자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크로울리의 설명에 의하면, 검은 장막은 팬텀의 소행이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끝없이 부정적 에너지를 섭취하는 팬텀을 폭주시켜 자폭시키는 게 최우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폭을 위해, 5주 동안 매주 한 명 ‘블롯의 폭주를 일으킬 만한 위험인물’을 팬텀에게 넘겨야 합니다.>

 

‘……어라?’

 

잠깐.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내가 찾아내야 하는 위험인물이라는 게 ‘가장 오버블롯할 가능성이 커 보이는 사람’이고, 그 사람을……. 팬텀한테 넘긴다는 건…….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제대로만 찾아낸다면 위험인물은 팬텀에게 블롯만 흡수당한 채, 모든 게 끝난 후에는 멀쩡하게 모두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제대로만 찾아낸다면 말입니다.>

 

아. 이래서 다들 그렇게나 걱정해 준 건가. 이제야 알겠다.

그리고, 이거……. 묘하게 내가 자기 전 했던 게임이랑 좀 비슷한 것 같은데? 아니, 물론 거기서는 가차 없이 이교(異敎)의 신에게 산 제물을 바친 거지만. 이것도 안 죽을 뿐 제물로 바치는 수준 아냐?

 

“아이렌 군.”

 

허공을 바라보는 나를 부른 학원장은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하곤, 내게 무언가를 넘겼다.

 

“이게 답을 알려줄 겁니다. 부디, 잘 부탁드리지요. 웬만하면 이런 무거운 책임이 걸린 일은 제가 직접 하고 싶지만, 저 또한 마법사라 작은 마력에도 반응하는 이런 마도구는 사용할 수 없으니까요.”

 

학원장이 넘겨준 것은 가운데 투명한 보석이 박힌 반지였다. 수상할 정도로 내 네 번째 손가락에 딱 맞는 그 반지를 끼자,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서늘함이 뼈를 타고 척추까지 흘러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이건, 어떻게 쓰는 건가요?”

“간단합니다. 반지 낀 손으로 아무나 손을 잡아보세요. 아,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아무리 공적인 목적이라 해도 어린 아가씨에게 어른 남자의 손을 잡으라 시키는 건 보기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 저기 카림 군은 어떻습니까?”

 

아, 그것참 배려 있으시기도 하지. 마음 같아선 모른 척 확 학원장의 손을 잡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지금 같은 위급 상황서 사고 치는 건 꿈이라 해도 좀 그러니 시키는 대로 해볼까.

나는 카림 선배의 손을 잡았고, 그와 동시에 투명했던 반지의 보석 안에 희미한 보랏빛이 번졌다.

마치 물 한 컵에 보라색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린 듯한 희미한 색 변화. 그걸 본 카림 선배는 신기하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색이 미묘하게 바뀌었어! 이걸로 블롯이 쌓인 걸 알 수 있는 건가?”

“정답입니다, 카림 군! 그 정도 색이라면 아주 안전한 거니, 안심되는군요!”

 

과연. 그런 거란 말이지.

호기심이 생긴 나는 다음 상대를 찾아보려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대로 눈이 마주친 말레우스 선배의 손을 잡았다.

 

“음?”

 

카림 선배의 손을 뗀 사이 다시 투명해졌던 반지는, 어느새 다시 탁색으로 물들었다.

대신 이번엔 아까와 비교했을 때보다 더 짙은, 그러니까……. 잉크 세 방울 정도의 진한 연보라색으로 물들었지만 말이다.

 

“……이정도도 괜찮은 건가요, 학원장?”

“물론입니다. 정말 문제가 있는 경우라면 아주 새까맣게 변할 테니, 이정도로 겁먹으실 필요 없습니다!”

“…….”

 

아니. 뭘 겁먹지 말라는 거야? 저는 이제 일주일마다 반지를 최대한 까맣게 물들인 사람을 찾아 제물로 삼아야 하는데요?

황당해하는 나와 달리, 말레우스 선배는 안심하라는 듯 희미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내가 안전하다니 다행이군, 그렇지 않나. 아이렌?”

“어어, 음. 예.”

 

지금이야 안전하지만, 과연 마지막까지 괜찮으실 수 있을까? 이젠 나도 모르겠다. 이 꿈, 언제 깨려나.

그리고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다시 한번 안내창이 떠올랐다.

 

<참고로, 어떤 형태로든 엔딩을 보기 전까지. 당신은 눈을 뜰 수 없습니다.>

 

“…….”

 

뇌 주인이 누구인 꿈인지, 그것참 가지가지 하네.

기분 탓일까. 짜증 나서 깨문 입술에서, 저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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