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생일 연성

사랑받는 존재

실버 드림

* 24년도 실버 생일 연성

“어때요, 선배?”

 

나는 최대한 긴장되는 마음을 감추고 버섯 리소토를 한 입 떠먹은 실버 선배에게 물었다.

오물오물 입 안의 내용물을 씹어 삼킨 실버 선배는 평소와 같은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군.”

“다행이네요! 기껏 사주는 밥인데 맛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그런가. 하지만 이미 마음만으로 고마우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실버 선배는 진심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거겠지만, 솔직히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겠나. 누군가가 내게 생일 기념이라며 밥을 사줬는데 끔찍하게 맛이 없다면 이게 축하인지 암살인지 의심할 텐데 말이다.

하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는 실버 선배의 말이니, 정말 맛있는 모양이다. 안심한 나는 내 몫으로 시킨 파스타를 오물거렸다.

 

“네 입에는 맞나?”

“예. 저는 여기 자주 오니까요.”

“그렇군. 평소엔 혼자 오는 건가?”

“음. 그럴 때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랑 오기도 하고요.”

 

사실 혼자서는 이 가게엔 거의 오지 않는다. 혼자 돌아다닐 땐 최대한 간단하게 때우려고 하는 편이니까. 보통은 에이스나 듀스랑 같이 외출했을 때 자주 오지. 다른 선배들이랑 외출했을 때는……, 대부분은 그 선배들이 더 좋은 식당으로 데려가 주니까 올 일이 없긴 하다.

 

“어라? 당신…….”

 

그때. 간단히 대화를 나누며 식사하던 우리 곁에, 낯선 여자 한 명이 다가왔다.

우리 또래, 혹은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은 나를 지나쳐 실버 선배 옆에 서더니 밝게 웃으며 물었다.

 

“얼마 전 제 짐을 들어주었던 분 맞으시죠!”

“아.”

 

실버 선배는 여자를 알아본 건지, 상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두 사람은 구면인 모양이었다.

 

“여기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이 가게 단골이세요?”

“그건 아니다. 오늘은 후배가 밥을 사주겠다고 하여 따라온 거라.”

“아하, 그러세요?”

“음. 내일 생일이라, 미리 밥을 사준다고 하더군.”

“예?”

 

지나치게 솔직한 실버 선배의 대답에 당황하여 잠깐 말이 없어진 여자는 어째서인지 내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혹시 내가 방해되어 더 대화하지 못하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잠깐 화장실 가는 척 자리를 비켜줘야 하나.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고민하는 나에게서 눈을 돌린 여자가 다시 실버 선배를 바라보며 명랑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내일 생일이군요! 미리 축하드려요!”

“고맙다.”

“이럴 게 아니지, 제가 뭐라도 사드릴게요. 잠깐만요!”

 

여자는 자리를 뜨는 순간에도 내 쪽을 힐끔 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그 밥을 사준 후배인지, 얼마나 친한 사이인지 궁금한 모양인데……. 호기심은 죄가 아니라지만, 이왕이면 좀 덜 티 나게 관찰하면 안 되는 걸까. 최대한 모른 척해주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나 노골적이면 모른 척하기도 힘들단 말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실버 선배랑 친해진 걸까. 순수하게 그 경로가 궁금한 나는 슬그머니 선배에게 물었다.

 

“누구예요?”

“언젠가 거리에서 만난 사람이다. 짐을 옮기는 데 힘들어 보여서 도와주었다.”

“아하. 저는 편하게 대화하시기에 친한 사람인가 했어요.”

“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저 여자의 이름도 모르고, 저 여자도 내 이름은 모를 테니까.”

 

아니, 그런데 저렇게 친근하게 군 건가. 아무래도 엄청나게 외향적이거나, 실버 선배의 친절이 어지간히도 고마웠나 본데. 선물까지 챙겨주려고 하고 말이야.

 

“이봐, 학생.”

 

정확하게 어떤 상황이었는지 묻는 건 실례일까.

내 물음이 관심인지 오지랖인지 판별하려는 사이, 이번에는 식당의 주인아저씨가 다가와서 접시 하나를 내밀었다. 깊이가 살짝 있는 접시에 담아져 있는 것은, 토마토 소스로 요리한 닭요리였다.

 

“아까 대화하는 걸 들었어, 내일 학생 생일이라며? 이건 서비스야. 별거 아니지만, 같이 먹으라고. 생일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뭘, 하하. 그리 비싼 메뉴도 아닌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아저씨는 실버 선배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곤 다시 주방으로 가버렸다. 나는 어쩌다가 공짜로 받은 요리에서 풍기는 식욕을 자극하는 향에 포크 끝을 살짝 깨물었다.

아무리 비싼 메뉴는 아니라고 해도, 혼자서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서 이런 서비스를 막 내어주기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역시 어딜 가든 사람 마음을 끄는 존재란 있구나. 물론, 선배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동물들도 잘 따르긴 하지만.

 

“왜 그러지, 아이렌?”

 

선배 생일이라고 받은 서비스니 내가 먼저 먹을 수는 없다. 그런 생각에 포크만 물고 있었는데, 갑자기 실버 선배가 말을 걸어온다.

나는 머릿속에 차오르는 복잡한 생각들을 도리질로 떨쳐낸 후 멋쩍게 웃었다.

 

“아니, 뭐랄까……. 역시 사랑스러운 사람은 어딜 가도 사랑받는구나 싶어서?”

“사랑스러운 사람?”

“예.”

 

내 말이 너무 모호하게 느껴진 걸까. 실버 선배는 대꾸 대신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 저 묘하게 자신의 장점에 대한 자각이 없는 점. 저 부분조차도 굉장히 사랑스럽단 말이지. 사람들이란 너무 으스대는 사람보다는 어리숙한 존재를 좋아하니까 말이야. 나 또한, 어느 정도는 그런 면이 있고.

역시 옳고 바르며 사랑스러운 사람에겐 모두가 이끌리는구나. 어찌 보면 당연한 세상의 이치에 절로 쓴웃음이 나온 나는 음료수를 홀짝이며 덧붙였다.

 

“여기로 오길 잘했네요. 선배 생일을 축하해 주는 사람들 둘이나 더 만났잖아요.”

 

아직 한 명은 선물을 사러 가서 돌아오지 않았지만, 아마 식사가 끝나기 전까진 오겠지. 여긴 번화가고, 근처에 상점도 많으니 뭐든 금방 사서 오지 않겠나.

과연 어떤 선물을 사 올까. 뭐든 실버 선배는 고맙다고 받겠지만, 어쩐 걸 줄지 나도 궁금해진다. 나는 그 답을 찾지 못해서, 이렇게 밥 한 끼 쏘는 걸로 대신했으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실버 선배는 이름도 모르는 이의 선물은 별로 궁금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네게서는 축하 인사를 듣지 못한 것 같은데.”

“예?”

“내 기억상으로는 그렇다만, 아닌가?”

 

그랬던가?

아니, 애초에 진짜 생일은 내일이니까 그건 오늘 말할 필요가 없으니……. 당장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우리가 오늘 보고 또 언제 볼 사이인지 모르면 모를까, 같은 학교에 다니고 내일도 분명 볼 사이인데?

하지만 이유가 뭐든 아닌 걸 그렇다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던 거 같기도 하네요.”

 

굳이 부정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긍정하자, 식사를 하던 실버 선배가 손을 완전히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오로라를 가둬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눈동자 한 쌍이 보내는 시선을 도무지 무시할 수 없는 나는 면이 반 정도 남은 파스타를 뒤적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선배?”

“내일 말해 줄 건가?”

“예? 아, 그럼요. 네. 일단 밥은 오늘 사지만, 생일은 내일이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걸까. 아직 생일이 지난 것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아직 생일까지 하루 남았는데. 아직 축하 인사를 안 했다는 걸 기억해 두고 있었다니. 솔직히 놀랍다. 나는 당연히 내일 파티장에서 해줄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나는.”

 

하지만 상대가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 말하지 않는 것까지 알 수는 없는 법.

실버 선배는 여전히 수저를 내려놓은 채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무언가 챙겨주는 것도 좋지만, 그냥 축하의 말만 해주어도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말하기를, 중요한 건 마음이라고 그러더군.”

 

와. 정말 실버 선배가 할 만한 말이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말이다.

아마 대부분은 축하의 말만 전하면 ‘말뿐이야? 뭐 더 없어?’라고 할 테고, 무언가 선물을 기대하는 건 나쁘다 생각하지 않지만……. 이렇게 순수하게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 건 흔치 않은데 말이야. 심지어 실버 선배는 그게 100% 진심일 거라서 더 대단하다 느껴지는 거고.

역시 이런 사람이니 모두가 이끌리는 거겠지. 하지만, 우리 학교 학생들은 이런 올곧은 점을 부담스러워하니 선배를 어려워하는 걸 테다.

 

“선배도 귀여운 구석이 있으시네요.”

“내가?”

“예. 이런 별거 아닌 거에 신경을 다 쓰시고…….”

“별거 아닌 거?”

 

어떻게 보면 자기 비하적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대단히 객관적인 판단하에 이런 말을 하는 거다. 선물을 까먹은 거도 아니고 단지 ‘생일 축하한다’라는 말 한마디 안 한 점을 신경 쓰시다니. 나는 선배의 가족도 주군도 아니고, 그저 후배 중 하나일 뿐이지 않나. 만약 나라면 내 후배가 선물을 주며 축하의 말을 안 했다면, 선물을 줬으니 그게 축하한 거 아니냐며 잊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내 말이 불편하셨던 건지, 실버 선배는 갑자기 의미 없는 포크질을 하는 내 손을 부드럽게 붙잡았다.

 

“네 축하는 별거 아닌 것이 아니다, 아이렌.”

 

약간 손가락을 움직인 것만으로 놀라울 정도로 능숙하게 내가 포크를 놓게 만든 실버 선배는 손바닥이 마주 닿게 잡은 손을 고치고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애초에 네게 축하받지 못한다면 그거야 말로 별 의미 없는 걸지도 모르지.”

“예?”

“원래 오늘은 승마부의 말을 돌보러 갈 예정이었거든. 하지만, 세벡에게 대신 부탁하고 나왔다.”

 

그러니까 그건, 나랑 외식하려고 일부러 시간을 뺐다는 건가. 그건 몰랐는데.

전에 시간 있냐고 물었는데 바로 답하시기에 진짜 일정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후 일정을 조정했던 걸 줄이야. 그렇게까지 해서 나와 주신 게 고맙긴 한데……. 좀 부끄럽다.

나는 내 손보다 마디 하나는 큰 선배의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시선을 피해버렸다.

 

“저 케이크 먹고 싶은데, 밥 먹고 카페 갈래요?”

“케이크라면 내일 내 생일 파티에 와서 먹어도 된다만.”

“지금 먹고 싶어서 그래요. 지금!”

 

참고로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이 근처에 단골 카페가 있는데, 거기 치즈 케이크가 참 맛있단 말이다. 민망한 상황을 빠져나가려고 꺼낸 말이기도 했지만, 이 말 자체는 사실이다.

내 말에 잠깐 고민한 실버 선배는 떠오르는 의문을 직설적으로 물었다.

 

“내일 생일 파티에 오는 거겠지?”

“제 명예를 걸고 반드시 가도록 할게요.”

“알겠다. 그럼, 식사 후 근처 카페로 가도록 하지.”

 

역시 기사에게는 명예라는 게 중요한 걸까. 내 맹세를 들은 실버 선배는 그제야 손을 놓아주었다.

아. 정말 부담스러울 정도로 착한 사람이라서 곤란하다. 혹시 내가 좋지 않은 영향이라도 끼칠까 봐 무서울 정도라고 할까.

선배에게 할 걱정이라기보다는 아이를 대할 때 할 법한 걱정을 하고만 나는 얼른 남은 파스타를 입에 쑤셔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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