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용어 교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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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날조 많음(한섭 유저라 7.0 내용 모름)
투랄 대륙으로 떠나기 전까지 아실은 우크라마트에게 투랄 공용어를 배우기로 했다. 웬만한 일에는 우크라마트가 동행하겠지만 언어를 배워서 나쁠 건 없었다. 통역 담당이 늘면 일행을 나눌 때 조를 짜기 쉬울 테니까.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누메논 대서원에서 투랄 대륙 관련 서적을 살펴보던 알피노가 합류했고, 우크라마트와 가끔 대련하던 알리제도 질 수 없다며 끼어들었다.
투랄 공용어는 다양한 종족이 쓰기 위해 만든 언어다웠다. 우선은 공용어에 쓰이는 모든 발음을 문제없이 흉내 낼 수 있었다. 문법은 규칙적이었고 항목이 적어 외우기 쉬웠다. 정작 우크라마트 선생님은 가끔 에렌빌을 임시 교사로 데려오고는 했다. 선생님의 주장은 문법 좀 몰라도 말은 통한다는 거였고, 임시 교사의 주장은 처음 배울 때 제대로 가르쳐야 탈이 없다는 거였다. 그 탓에 에렌빌은 임시 교사치고는 본격적으로 교습에 동참하게 됐다.
세 학생은 다들 좋아하는 과목이 달랐다. 알피노는 단어 암기와 작문을 가장 편하게 여겼다. 알리제는 작문과 회화 모두 비슷하게 잘했지만 더 좋아하는 것을 꼽으라면 회화를 골랐다. 아실은 알피노와는 반대로 작문을 가장 싫어해서 계약서 쓰는 법만 간신히 익혔다. 읽기 실력은 덩달아 고만고만했고 대신 회화 실력이 셋 중 가장 뛰어났다. 그가 은어, 속어, 줄임말을 마구 섞어가며 우크라마트와 대화할 때면 듣다 못 한 에렌빌이 적당히 하라며 말릴 정도였다.
현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이라는 이유로 공용어 교습반은 하루에 두 시간은 투랄 공용어로 대화했다. 아실의 경우에는 투랄 공용어를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도 종종 투랄 공용어로 말을 걸고는 했다. 예를 들면 지금 한창 서쪽으로 가는 배에 승선 중인 애인에게.
아실에게 들어온 의뢰를 계기로 떨어진 뒤부터 둘은 주기적으로 연락하고 있었다. 한동안은 아실도 에스티니앙이 어딜 가는 중인지 몰랐다. 그저 며칠째 식사를 제대로 못 했다는 얘기에 잘 챙겨 먹으라고 잔소리나 했을 뿐이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갈수록 나빠지는 링크펄 통신 품질 탓이었다. ‘아무리 항해 중이라도 이렇게까지 음질이 나빠질 수 있나? 목적지가 어디야?’ 물었더니, 에스티니앙은 한참 침묵하다가 투랄 대륙이라고 대답했더랬다. 얼마나 놀랐는지! 상의도 없이 멀리 간다고 타박할 처지는 아니었으므로 아실은 애인을 나무라지 않았다. 피차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말을 배워 두면 좋지 않겠냐고 권했지만 에스티니앙은 외국어 교습에 흥미가 없었다. 그가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말로 일관하는 바람에 아실은 빠르게 강의를 포기했다. 대신 링크펄로 연락할 때마다 그날 배운 투랄 공용어 중 쓸만한 말이나 해주고 싶은 말 한두 마디를 애인에게 들려주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덕분에 에스티니앙도 간단한 말은 이거 익숙한데, 정도로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날도 아실은 에스티니앙을 외국어 회화 연습에 써먹었다. 에스티니앙은 오늘따라 애인의 목소리가 귀에 달착지근하게 감긴다고 생각했다. 투랄 공용어로 말할 때면 목소리가 좀 달라지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유독 나긋나긋한 어조 탓에 뺨이 간지러웠다.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속삭이고서 아실은 물었다. ‘내가 뭐라고 한 것 같아?’ 장난치지 말고 가르쳐달라고 해도 애인은 샐샐 웃으며 ‘무슨 뜻일까?’라는 말만 반복했다.
에스티니앙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아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나는 고생한다, 일이 어렵다, 혼자 할 수 없다, 보수를 더 줘…. 마침 저번 통화에서 일러줬던 말이 딱 이런 종류였다. 의뢰를 받을 때 쓰는 간단한 문장들 말이다. 에스티니앙이 툭툭 말할 때마다 아실은 신나게 웃었다. 애인은 맨 처음에 들려준 말을 다시 읊으면서 사이사이에 처음 듣는 발음을 끼워 넣었다. 에스티니앙은 규칙이 있을까 싶어서 열심히 귀를 기울였지만, 짧은 문장이 세 개쯤 있다는 걸 빼면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실은 통신이 끝날 때까지 문장 세 개를 무작위로 반복했다. 안 지겹나, 투덜거렸더니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날의 연락은 그렇게 끝났다.
아실은 거리 탓에 링크펄 통신이 두절될 때까지도 그날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에스니티니앙은 아실이 늘어놓은 세 문장을 잘 기억해 두었다. 투랄 대륙에 도착한 직후에는 통역을 찾고, 일을 구하는 등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잠시 잊었지만 말이다. 여유가 생긴 뒤에야 그는 뒤늦게 그날의 대화를 떠올렸다. 에스티니앙은 같이 일하게 된 통역사에게 뜻을 물어봤다. 시일이 지난 탓에 발음이 부정확했는데도 통역사는 금방 알아들었다. 귀에 익은 투랄 공용어를 발음하며 혹시 이런 말 아니었느냐, 묻는 얼굴이 묘하게 떨떠름해서 뭔가 싶었지만…. 뜻을 듣자마자 에스티니앙은 통역사를 이해했다. 가장 많이 들은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이런 뜻이었다. 사랑해, 좋아해, 보고 싶어. 아실의 마지막 말도 그제야 이해가 됐다. 후회는 무슨, 낯 뜨거워 죽겠군…. 에스티니앙은 벌겋게 달아오른 뺨을 문지르며 어물어물 감사 인사를 건넨 뒤 자리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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