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내일을 써내려가

over the rainbow

네임리스 X

TAKE OFF-ER by 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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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시오 쨩.”

쿠로오가 문득 말을 걸었다. 그러나 시오가 아니라 화면 안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한 선수가 서브를 준비하고 있었다. 점프 서브를 주로 하는 선수였는데, 그는 서브를 할 때마다 공을 바닥에 세 번 튀기고, 시계방향으로 한 번 돌렸다. 쿠로오는 그것을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시오가 시선을 돌려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응?”

“시오 쨩은 징크스 같은 거 없어?”

“징크스?”

시오가 고개를 기울였다. 쿠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은 여전히 TV를 향해 있었다. 시오는 잠깐 생각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웬만하면 안 만들려고 하지. 한 시즌에 경기가 몇 갠데, 매 시합마다 하나하나 신경쓰고 싶지 않고~, 그런 건 전부 마음가짐의 문제잖아. 왜? 쿠로 징크스 있던가? 아니, 저 선수한테. 쿠로오의 대답에 시오가 다시금 고개를 기울였다. 선수까지 신경 써주는 거야? 그나저나 저건 징스크라기보단……. 쿠로오가 제 머리를 헤집더니 앓는 소리를 냈다. 아니, 좀 복잡해. 어렵다고나 할까, 심정을 이해해 보고 싶다고나 할까……. 무슨 말이람. 솔직히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시오는 징크스 같은 게 없다.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루틴과 징크스는 다르다. 시오가 보기에 저 선수의 서브 전 행동들은 루틴이었다. 하지만 쿠로오 입장에선 다르게 느껴졌나 보다. 아니면 아는 선수인가? 아니, 그보다 징크스가 있는 선수를 이해해 보고 싶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징크스는 없을수록 좋은 거잖아.

“그러니까 복잡하다고 했잖아. 지난 합숙 때, 배구를 별로 재미없어 하는 후배를 만났거든.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켄마는 아니야.”

“하긴, 켄마는 배구 좋아하지. 그렇다고 인정은 절대 안 하지만.”

“그래서 배구를 조금 더 재미있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슬럼프, 혹은 징크스가 와서 그렇다고 가정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지.”

시오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럴 수 있지. 그치만 쿠로, 징크스랑 슬럼프랑 그냥 스포츠가 재미없는 건 엄청난 차이가 있는 거 알지? 쿠로오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안 그래도 보쿠토가 예시를 들어주긴 했는데, 왠지 이해를 못하는 것 같더라고. ‘배구에 빠지는 순간’이란 거. 시오가 짧게 여러 번 긍정했다. 아, 알지 알지. 나도 그런 순간이 있었거든. 쿠로도 있었지? 그, 왜. 배구 교실? 네코마타 선생님께서 스파이크 쳐보자고 네트를 내려주셨다고 했을 때 말이야. 쿠로오가 픽 웃었다. 응, 그게 내가 배구에 빠지는 순간이었지. 시오 쨩은 언제였댔지? 나? 나는…….

“처음 쿼드 점프를 성공했을 때겠지, 역시.”

그 날, 날씨가 엄청 좋았거든. 링크장은 당연히 실내지만, 그래도 밖에 날씨가 좋다는 게 엄청 잘 느껴졌단 말이야. 연습하는 데 느낌도 좋았어. 딱 링크장에 발을 내딛는데, 뭔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 그런 게 들더라니까. 그래서 시험삼아 토룹을 한 번 뛰어 봤는데 토 찍는 느낌이나 내려올 때 느낌이 평소랑 다르게 더 좋은 것 같은 느낌? 아, 설명하려니 어렵네. 아무튼 그래서 내친김에 쿼드 점프도 시도해봤지. 스텝 밟으면서는 확신이 들었어. 할 수 있겠다! 하는. 그리고 깔끔하게 성공했어. 그게 내 첫 쿼드 점프 성공이었고… 그 후로는 매번 프로그램에 넣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그게 내가 한 번 더 피겨에 빠지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아! 그리고 기억나는 게…….

“연습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데, 무지개가 보이더라고. 뭔가 축하해 주는 느낌이라 기분 좋던데?”

그래서 그때부터 무지개를 보면 기분이 좋아져. 아마 쿠로가 그 후배를 신경써주는 거랑 비슷한 느낌인지도 몰라. 그런 감정을, 그런 경험을 나만 겪는가는 던 너무 아쉬운 일이잖아.

아직 못 찾았을 뿐이지 그 애도 곧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쿠로. 그 애도 어쩌면 속으로는 고마워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나중엔 쿠로 덕분에 배구가 재미있게 느껴진다고 말할 날이 올지도 모르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멘토가 쿠로오 테츠로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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