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내일을 써내려가

부상 금지!

네임리스 X

TAKE OFF-ER by 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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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가 팔에 대문짝만한 밴드를 붙이고 등교했다. 어찌나 면적이 큰지 밴드라기보단 파스에 가까워 보였다. 아카아시는 시오가 다쳤다니 별일이네, 하고 생각하면서도 사촌이 다친 것을 보고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성정은 되지 못했으므로 시오가 제 상처를 너무 신경 쓰지는 않도록 자연스럽게 물었다.

“시오, 다쳤어?” 시오가 여상스레 대답했다. “응, 실수로 빙판 위에서 착지를 잘못해서 팔이 갈렸어.” 아카아시는 순간 질린 낯을 했다. 그럼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하지만 시오는 제 상처는 최대한 간단하게 일축하는 버릇이 있어 더 캐묻지도 못했다. 차라리 대놓고 말해주면 또 몰라. 아카아시는 문득 쿠로오와 켄마를 생각했다. 두 사람은 시오의 소꿉친구니까 알려주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무리 사촌이어도 가족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까. 그리고 둘이 ‘정말로’ 친해진 건 사실, 고등학교에 와서였으니까. 아카아시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정말 그게 다야?” 시오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다야. 그냥… 내가 좀 한심해서. 다쳐서 이렇게 다 티 나는 밴드 같은 거나 붙이고 말이야. 케이지는 별로 그런 적 없었을 텐데.” 아카아시 케이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닫는다.

아, 이 애는 내가 아니었어도 그 누구에게도 이걸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겠구나. 누가 물어보지 않는다면 절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열등감을, 고통을, 내색하지 않는구나. 아카아시는 가끔 시오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어떤 에이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과 타인에게 솔직하고, 꾸밈에 가감이 없다.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 오롯하므로.

아카아시는 두 사람을 모두 사랑하므로⋯⋯ 시오가 보쿠토 코타로를 조금만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카아시는 생각을 뒤로 미뤄 두고, 다시 부드럽게 시오를 불렀다.

“⋯⋯그래도 밴드는 다시 붙이는 게 좋겠다, 시오. 그쪽 잘못 붙였어. 양호실 갈래?”

“⋯⋯고마워, 케이지.”

시오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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