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오사

[아츠오사] 태양과 해바라기

개화 후의 해바라기는 더 이상 태양을 향해 움직이지 않는다.

*오사른 전력 '해바라기'를 주제로 썼습니다. 

*포스타입에 올라온 글과 동일한 내용입니다.



"추억 따위 필요 없어."

"..."

"츠무, 있제. 키타 씨는 그 말이 싫다고 했지만, 니는 좋아한다고 했잖아. 내도 그 말이 좋다."

아츠무는 문 하나를 두고 제 반대편에 자리한 쌍둥이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참 오래도 했었네, 배구. 

..그치만 츠무,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둬야 하지 않겠나."


아츠무는 여전히 묵묵부답인 채, 방 안에 틀어박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오사무가 배구를 고등학교 때까지만 하겠다고 말한 후, 제가 더 행복할 거라며 체육관에서 싸우고 돌아온 날이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몸싸움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저,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로 둘 다 남은 연습에 성실히 임했을 뿐.

이나리자키가 전국에 나갈 수 있는 횟수는 이제 세 번 남았다. 거진 반을 달려온 셈이다. 두 번째 봄고 예선이 곧 시작된다. 오사무가 지금 배구를 그만둔다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다가올 연습에 지장이 가면 안 됐다.


사소한 것 무엇으로든지 싸워왔던 그들이기에, 학교에서의 싸움이 집까지 이어지는 것은 드물었다. 별거 아닌 걸로 자주 싸우는 만큼, 빨리 화해했으니까. 그래, 오사무는 이 애매하게 지속되는 싸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제가 배구를 그만둘 거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츠무를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 아주 옛날부터, 어쩌면 아츠무가 세터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보다 더 전에 어렴풋이 생각해오고 있던 일이다.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함께였던 제 쌍둥이였지만, 언젠가는 서로에게서 독립하게 되리라고. 


오사무가 배구를 더 잘한다는 건 그 자신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랬기에 본인의 페이스대로 연습에 성실히 임했고,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보다 조금 더 잘 해내고 있었다. 오사무가 아츠무를 바라보기 시작한 건 그가 연습 경기에서 세터로 불리기 며칠 전이었다. 아츠무가 자율연습이 끝난 시간조차도 공을 만지고 있다는 걸 아란에게 들은 후였다. 오사무 또한 아츠무에게 지기 싫어했기에, 그 날부터 쌍둥이의 자체 특훈이 시작되었다.

해를 거듭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합을 맞춰온 둘은 나날이 실력이 늘어갔다. 바로 옆에서 바라본 아츠무는, 오사무의 감상으로,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았다. 세터이기에 위를 보며 토스할 때도, 강렬한 스파이크 서브를 날릴 때도, 제 토스로 올린 공을 날릴 때도 배구공으로부터 빛을 받는 듯했다.

그의 자극을 받아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오직 쌍둥이만이 가능한 속도로 달리던 오사무는, 아츠무와 엎치락뒤치락 러닝하다 건너편 해바라기를 발견했다. 제 등 뒤로 내리쬐는 햇살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빛을 받아 더욱 노란빛으로 반짝이는 그의 머리칼을 보며 오사무는 확신했다. 

츠무는 배구라는 이름의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구나.



저녁을 먹고 난 후에도 아츠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불만 가득한 뚱한 표정. 아츠무가 제 흉내를 낸다고 지었던 것과 비슷해 오사무는 기분이 묘해졌다. 수저를 놓은 후 잽싸게 방으로 들어가 좀 전 오후 같은 거실 신세를 면한 오사무는 태평하게 제 침대 위에 누웠다. 뒤따라 들어온 아츠무는 옷가지를 챙기더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초가을의 선선한 바람은 아츠무의 가벼운 손길에 힘입어 매서운 소리를 내며 문을 쾅 닫아 버렸다. '바람 때문이야!!' 하고 저 멀리서 츠무가 소리 지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오사무는 만화책 너머로 닫혀버린 문을 빠안히 바라보며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아츠무는 잘 시간이 되어서야 서늘한 공기를 머금고 돌아왔다.





츠무가 나보다 조금 더 배구를 사랑하니까.

왜 불현듯 유스 청소년 대표 합숙에 뽑혔을 때의 일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저 말을 하는 사무의 표정은 어땠지? 

차분하게 내리앉은 사무의 눈동자는 체육관 비상구 너머를 향했다. 단순히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는 게 아닌, 좀 더 먼 곳을 바라보는 눈. 햇살을 머금은 은빛은 마치, 눈에 띄는 색으로 염색하겠다 박박 우겨댔던 저의 머리칼과, 갈색빛을 띄는 눈동자 색과 같아 마음 한쪽이 아려왔다. 

아츠무는 저 아래까지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과 동시에 이불보를 세게 움켜쥐었다. 

그때부터. 아니, 더 이전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오사무는 저처럼 배구를 1순위로 두고 살아가는 녀석은 아니었다. 앞만 보고 달리며,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옆에 함께 자리하고 있는 그였다. 

해를 따라 도는 것으로 오인하여 이름 붙여진 해바라기처럼, 아츠무는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걸지도 모른다. 언제까지고 저와 함께 배구하리라 생각했던 오사무. 그러나 매미 소리가 잦아드는 시기, 해바라기는 꽃을 피웠고, 그로부터의 독립 선언을 해왔다. 

개화 후의 해바라기는 더 이상 태양을 향해 움직이지 않는다.



또다시 눈물이 나려 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이유였다. 쌍둥이라고 모든 걸 알 수는 없지만, 쌍둥이임에도 사무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에. 황홀한 들판에 서 저만을 바라보던 해바라기는 등을 돌렸다. 


결국 아츠무는 조용히 눈물을 터뜨렸다. 잠이 오질 않아 뜬눈으로 멍하니 2층 침대 밑을 바라보던 오사무는 바즈락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작은 훌쩍임이 들려왔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잠을 못 이루며 밤을 죽이고 있는 건 아츠무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아직 전국 대회가 세 번이나 남았는데도, 삶에서 중요한 큰 부분을 떼어낸 듯한, 텅 빈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에. 

오사무는 사다리를 몇 발짝 오르더니 제 베개를 아츠무의 얼굴에 내던지고서는 마저 발을 디뎠다. 으굽, 하고 정통으로 얼굴을 맞은 아츠무였지만 반응은 그게 다였다. 오히려 오사무의 베개를 그대로 제 얼굴에 끌어당겨 내주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던 오사무는 짧게 한숨을 내뱉곤 아츠무를 벽 쪽으로 밀어내 자리를 차지했다.

"츠무. 여 좀 봐봐라."

아츠무를 끌어안음에도 반응이 없자 제 베개를 사이에 두고 똑같이 얼굴을 파묻었다.


"뭐, 하는데... 문디야..."

"안 갑갑하나."

아츠무의 물기 어린 목소리에 뒤이어 평소와 같은 오사무의 목소리가 베개를 통해 울렸다. 제 입가 반대편에서 웅웅대는 느낌에 빠르게 뛰는 심장,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 터질 듯 열기가 달아오르자 슬 머리가 어지러웠던 아츠무는 참았던 숨을 토해내듯 푸하, 하는 소리와 함께 베개에서 얼굴을 떼어냈다. 눈물콧물 범벅인 얼굴에, 땀으로 젖은 앞머리까지 눌러붙어 그야말로 엉망 그 자체인 아츠무에게로 오사무는 얼굴을 들이밀어 두어 번 가볍게 뽀뽀했다. 먼저 입술을 부벼오는 아츠무에 항상 그의 목 뒤로 팔을 감아왔던 오사무- 둘의 일상과는 반대되는 상황이었다. 아츠무는 이럴 때만 먼저 애정을 뽐내오는 오사무를 속으로 치사한 자식이라며 생각했다.



"니 때매 내 베개 다 젖었다 아이가..."

"씨이, 사무 니가 먼저 내 얼굴에 던졌잖아."

"그러면 이렇게,"


오사무는 아츠무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왔다. 한 뼘 채 안 되는 거리에 서로의 이마를 맞대었다. 


"니 거 같이 베면 되지."


가까이서 느껴지는 호흡에 아츠무는 얼굴을 붉혔다. 작게 웃는 오사무에 입술이 삐쭉 튀어나온 아츠무는 그를 그대로 제 품에 끌어안았다. 마주 안아오는 오사무의 손결과 따스한 호흡에, 울어서 부어오른 아츠무의 눈은 무겁게 내리앉았다. 아래로 내려간 시야에 잠시 뭔갈 생각하는 듯했던 오사무는 이내 아츠무의 호흡이 진정된 것을 느끼고는 저도 눈을 감았다. 9월의 서늘한 공기가 둘의 머릿결을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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