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창작_6월

밴드

²가죽이나 천, 고무 따위로 좁고 길게 만든 띠. 1주차의 무지개에서 이어집니다.

“너희, 슬슬 화해하는 게 어떠냐.”

부드러운 나무 가구 색의 눈동자가 눈꺼풀 아래 두어 번 감춰지다 드러나길 잠시, 들은 체도 않고 홱 고개를 돌리자 말을 건 중년의 남성이 허허로이 웃었다. 서른 넘은 놈의 반항치고는 제법 깜찍했던 탓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대는 애먼 잔소리란 귓등으로도 듣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기라도 한 건지 입을 꾹 다물고 공구함을 끌어안은 채 기어이 몸을 돌려 상대를 등지고 앉았다. 플라스틱 박스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공구들이 흩어지느라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가 지니고 다니는 공구함엔 공구를 끼워두는 홈이 따로 없다. 대신 바닥은 판판하고 모서리 안쪽을 따라 여러 개의 작은 홈이 나 있는데, 그건 이 공구함이 흔한 공산품이 아니라 직접 도안을 만들어 수주를 맡긴 특별한 물건임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도시 안에 가게를 차린 정비공이라면 도난 걱정이라도 하는 게 아닌 이상 구태여 공구 넣어두는 상자에 품을 들일 이유가 없었겠지만 이 공구함의 주인은 사정이 좀 달랐다.

사막은 변덕이 심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고 그들 팀이 맡은 구역은 오아시스만큼은 아니어도 도시에서 제법 먼 곳이라 팀의 정비공은 가진 장비만으로 마주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자연히 공구함은 늘 과다 적재로 붐볐는데, 하나하나 늘여놓기엔 자리가 좁았고 굴러다니는 대로 내버려두자니 제때 찾아내기가 어려워 거추장스러웠다. 그래서 정비공은 비슷한 것을 묶어 밴드로 고정해 고리의 끝을 여러 모서리에 걸어두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남이 매듭의 출처를 알아볼 수 없더라도 주인만 고리의 위치를 외우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밖에서 돌아오자마자 식사는 했냐며 붙드는 것도 마다한 채 장비를 점검하겠답시고 부산을 떨며 들어간 게 두 시간 전이었는데, 이때까지 드라이버 하나조차 고정해두지 않고 자리에 앉아 넋을 잃고 있던 모양이다.

“무슨 열다섯 살 사춘기 애도 아니고, 왜 이래?”

“그러고 싶은 날인가 보죠.”

“그래, 그러면 말이나 들어보자. 대체 어쩌다 싸운 거야?”

“그놈은 잘못 없어요. 제가 열 뻗쳐서 헛소리한 거니까. 내버려두면 어련히 사과하러 갈 테니 걱정 마세요.”

“퍽이나. 미안하다고 한 마딜 못해서 일주일째 냉전 중인 녀석이?”

“…….”

“렉스, 닐 그 녀석도 성격이 저래 놓아서 그렇지 사과하면 잘 받아줘.”

“제가 몰라서 이러고 있겠어요.”

“렉스 코널.” 짐짓 엄하게 말하는 팀장의 목소리에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이래서야 다음 임무 때에도 숨고 도망치느라 데면하게 굴겠군. 사내는 속으로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황량한 사막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허락된 손바닥만 한 초원보다 몇십 배는 넓었고, 바스러지는 모래를 밟으며 헤매는 족속들은 그들을 받아주지 않는 재해에 떠밀려 쉽게 목숨을 잃곤 했다.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드넓은 황야를 낡은 지프차 몇 대 끌고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위협이 되는 것들에게 총을 갈겨대는 일을 업으로 삼은 알파-3가 머리 하나 바뀌지 않고 건재한 지 벌써 이 년째고, 저 고집불통 외골수 정비공이 제 팀에 들어온 건 칠 년이 넘었다.

눈치 없기로 유명한 신입 —이 년 전에 마지막으로 영입된 멤버로 이제 신입이라 부르기엔 연차가 제법 쌓였지만, 어벙한 성격 때문에 여전히 수습 취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재클린이 미묘한 기류며 어색한 변명거리를 알음알음 알아채고 제게 슬쩍 말을 붙여온 게 바로 엊그제의 일이다. 어째 한동안 별일 없더라니.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서도 유독 제 일에만 어리숙하게 구는 저 못난이가 지레 겁을 집어먹고 자책하는 꼴을 보는 건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그래도 이번엔 좀 심했다.

말마따나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또 그는 저 둘의 일방적인 다툼이란 대부분 렉스 코널에게서 기인한단 걸 알았다. 그러니까, 다툼이 있을 때 목소리를 높이는 건 렉스였고, 이후 그것을 자책하는 것도 렉스였다. 반면 그가 혼자 내핵까지 파고들 때 닐은 렉스가 왜 저를 피하는지 따로 알아보지 않았다. 알게 되더라도 신경 쓰지 않았으며, 당시 렉스가 내뱉은 말을 실수나 업보라고 화내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햇빛을 즐기는 맹수처럼 느른하게 누워 사냥감을 내려다보며, 그것의 마음이 풀어져 제 발로 돌아올 때를 기다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렉스는 책임감이 강했고, 저를 필요로 하는 이를 두고 갈 냉혈한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몇몇은 그걸 보고 사랑 다툼이라고 오해했으나 적어도 그의 팀은 저것이 그런 부드럽고 폭신한 감정의 기류가 아님을 알았다. 얼굴만 봤다 하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녀석과 그걸 제 손바닥 안의 먹잇감으로 생각하는 녀석이 어떻게 연애한단 말인가.

어쨌든 저 기묘한 공생을 삼 년간 옆에서 지켜본 결과, 알파-3의 팀장 존 맥스웰은 둘이 어떻게 다투던 자신이 슬쩍 개입해 한두 마디 얹으면 무던히 해결될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로서도 이번 문제만큼은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그럴 수 있을 일이 아님을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당사자들끼리 합의를 보든 대화를 하든 해결하면 좋을 텐데. 생각하기에, 닐 그 녀석은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 해결하려 들지 않을 뿐 렉스가 마음의 준비가 된다면 언제든지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호노스다. 렉스가 문을 꽉 닫고 돌아앉는 것은 그놈의 호노스가 연관된 일이었다. 그리고 닐 그 녀석은 호노스의 일이라면 악어가 아가리를 열고 기다리는 강물로 뛰쳐 들어가는 물소보다 더한 고집불통 멍청이처럼 굴었다. 그러면 렉스 코널은 기다렸다는 듯 한숨을 쉬는 것이다. 네가 그럴 줄 알았지, 얄미운 소리를 붙여가면서. 겨우 조금 열었던 마음의 문을 쾅 닫고 돌아선다. 익숙한 레퍼토리였다.

존이 보기에, 둘은 똑같이 멍청하고 미련했다. 그래도 그들은 화해해야 했다. 그것도 가급적 빠르게, 당장이면 더 좋고. 이미 브리핑까지 마친 작전의 실행일이 나흘 뒤다. 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녀석들을 이런 상태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한숨을 삼킨 사내가 결국 비장의 수를 내밀었다.

“너희가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굴면 나도 팀의 구성을 다시 고려해 봐야 할 수밖에 없어.”

“…제가 당장 그 녀석 얼굴 보기가 그래서 그래요. 이번 주 안으로 해결해 볼게요.”

바로 꼬리를 내리는 모습에 사내는 웃지 않도록 신경쓰려 노력하며 짐짓 엄한 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순응한 건 순응한 거고 해결은 별개의 문제였다.

“이미 충분히 기다려 준 것 같은데. 3일. 그 이상은 어렵다.”

“…노력해 보죠.” 그 말만으로도 충분하단 듯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섰다. 쾅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렉스는 손을 들어 제 얼굴을 감쌌다. 정말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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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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