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포멜로
2024년 6월 글리프 주관의 주간창작 챌린지에 참여한 글을 모아두었습니다. 연작으로 내용이 이어집니다.
렉스가 좋아하는 와인은 포도주치고도 도수가 제법 높았다. 오랜만에 마신다는 핑계로 절제하지 못해 2/3병가량을 마셔 버신 렉스는 취기에 흥이 올라 리처드의 추천대로 하우스 와인을 몇 잔 더 비웠고, 적당히 마시다 눈치껏 귀가하겠다는 처음의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취해버렸다. 리처드의 부축을 받아 겨우 기숙사로 돌아오니 제법 늦은 시각이었다. 부대의 일원이지만
도시에 돌아오고 나서도 렉스 코널은 한동안 바쁘게 지내야 했다. 상부에 제출할 대부분의 서류가 렉스의 중간 결재를 거쳐야만 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건수를 잡은 각다귀처럼 달라붙는 리처드를 상대해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델타-8의 리처드 하워드는 중앙 정부에서 파견한 인사로, 실전 경험이 많은 엘리트로서 대위 직급을 달고서도 남을 대할 때 소탈하
그는 입이 험했으며 손이 매웠고, 말을 듣지 않는 대원의 등을 내려치거나 옆구리를 찌르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예외라고는 오로지 팀장인 존 맥스웰 하나뿐이었는데, 그것도 직급이 가장 높은 존이 일인자고 팀에 가장 오래 있었던 렉스가 그다음이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어 대거리하지 않는 것에 불과했다. 과격한 언행으로 남을 휘어잡는 모습만 보면 어디 시정잡배 출
렉스와 닐의 냉전 아닌 일방적인 냉전은 2주를 채우기 전에 끝났다. 팀장과 ‘상담’한 바로 다음 날 아침, 드디어 감정의 변화 단계가 자책에서 분노로 넘어간 정비공이 머리끝까지 화난 것을 숨기지도 않은 채 식당을 나오던 워커의 멱살을 잡고 대련장에 들어가버린 것이다. 이후 거기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몰라도, 오후에 나타난 렉스 코널은 한결 풀린 얼굴을
“너희, 슬슬 화해하는 게 어떠냐.” 부드러운 나무 가구 색의 눈동자가 눈꺼풀 아래 두어 번 감춰지다 드러나길 잠시, 들은 체도 않고 홱 고개를 돌리자 말을 건 중년의 남성이 허허로이 웃었다. 서른 넘은 놈의 반항치고는 제법 깜찍했던 탓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대는 애먼 잔소리란 귓등으로도 듣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기라도 한 건지 입을 꾹 다물고 공구함을
낮게 불어온 바람이 모래 먼지를 일으킨다. 실수로라도 숨을 들이켜 모래 알갱이를 씹어 삼키지 않도록, 어깨를 두르고 있던 낡은 천을 코 위까지 추켜올린 인영이 공구 상자의 뚜껑을 닫으며 허공을 노려보았다. 허공을 매개 삼아 기어가는 부연 물결이 흘러가는 방향을 가늠하는 것이다. 서쪽으로 향하는 바람은 저 사막의 방랑자가 갑자기 미쳐 날뛰며 발걸음을 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