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
3주차의 가지 않은 길 중, 문맥상 들어낸 글의 일부를 첨부합니다.
그는 입이 험했으며 손이 매웠고, 말을 듣지 않는 대원의 등을 내려치거나 옆구리를 찌르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예외라고는 오로지 팀장인 존 맥스웰 하나뿐이었는데, 그것도 직급이 가장 높은 존이 일인자고 팀에 가장 오래 있었던 렉스가 그다음이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어 대거리하지 않는 것에 불과했다. 과격한 언행으로 남을 휘어잡는 모습만 보면 어디 시정잡배 출신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으나 정작 알파-3의 팀원들은, 특히 팀장인 존이나 ‘그’ 호노스의 직계인 닐은 그가 어디 뒷골목에서 구르다 온 잡놈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구세대의 자본과 사회적 지위는 신세대로 넘어오며 새로운 작위의 기반이 되었다. 각 쉘터에는 내부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가문이 하나 이상 존재했다. 영주처럼 말이다. 가문들은 긴밀하게, 때로 은밀하게 교류했으며 의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대외적으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표방하였으나 저들이 각종 중요 문제에 최종 결정권을 갖는 것을 당연시하며 때로 그들의 권력으로 문제를 덮어버릴 때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시민은 없었다. 그럼에도 작금의 상황이 문제 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쉘터를 세우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생존과 유지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음에 기반한다. 가문이 무너지면, 쉘터도 무너진다. 그들은 이미 몇 차례고 선례를 보았다.
이제는 다른 팀원들과 다를 바 없이 걸쭉한 욕을 내뱉고, 저질스러운 농담을 씹고, 알코올 맛만 나는 싸구려 독주를 마시며 담배와 마약성 진통제를 거리낌 없이 쓴다지만 그래도 렉스 코널은 팀의 다른 이들과는 다른 품위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알파-3에 들어왔을 때의 렉스 코널이 얼마나 샌님 같았던가. 그랬던 녀석이 이제는 스패너 주둥이로 본체를 두드려가며 엔진을 고친단 말이지. 그래도 심증만 있는 존과는 달리 닐은 뭔가 좀 더 아는 눈치였으나, 미리 말을 맞춰춘 건지 아니면 특유의 성정대로 신경 쓰지 않는 건지 다른 팀원이 은근히 눈치를 줘도 웃어넘길 뿐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 도시의 군주는 호노스다. 방계인가, 하기에 렉스 코널은 호노스답지 않았다. 성격이 그랬지만 먼저 외관이 그랬다. 제대로 된 호노스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반짝이는 금발 대신 청회색이 도는 짙은 녹발을 가지고 있었고 녹안이나 벽안 대신 자리잡은 건 갈색 눈동자였다. 피가 옅게 흐르는 것이라 해도 눈동자야 평범한 색이라며 어떻게든 넘길 수 있겠지만 머리카락은 정말 아니었다. 열 중 아홉은 처음 보는 색이라 평했고 그중 적어도 둘은 염색한 게 아니냐며 묻곤 했으니 말이다.
아니어도, 렉스 코널은 호노스를 아주 싫어했다. 그건 명백히 혐오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그렇다면 불화로 내쫓긴 건가, 하기엔 또 애매한 게, 정비공은 그렇게 호노스를 싫어하면서도 정작 부대에 속한 다른 호노스들과는 자주 붙어 다니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당장 도는 소문과 추문 중 몇이 그 호노스들과 엮인 것임을 감안할 때 렉스 코널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알파, 브라보, 델타를 전부 모아두고 가장 궁금한 사람을 뽑아보라고 한다면 대부분 렉스가 아닌 호노스의 두 사람을 고를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렉스는 호노스와 친분을 가지고 있어서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것이지, 팀 밖으로는 알파-3의 무뚝뚝한 정비공 이상의 평가를 들을 만한 일을 벌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의외로 렉스는 사회생활을 아주 잘 했으며, 제가 손속을 두는 자들이 아닌 남을 대할 땐 그 괴팍한 성정도 어느 정도 눌러두는 편이었다. 예의라기엔 냉정했고 지나치게 건조했다. 딱 다른 부서 직원을 대하는 정도의 철저한 무관심이었다.
그는 작전 브리핑을 반쯤 맡고 있는 게 아니었다면 같은 팀 사람들과도 말 섞을 일을 만들지 않을 남자였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알파-3의 팀원들은 렉스가 그나마 자신들에겐 조금 유하게 군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렉스에게 대놓고 진실을 물어볼 용기를 가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봐줄 일 없을 때의 렉스 코널이 한성깔한다는 점도 있었으나, 그보다는 렉스가 언성을 높일 때면 예외 없이 닐 호노스가 슬쩍 뒤에 붙어 선다는 점이 한몫했다. 렉스는 정도를 지켰지만 저 호노스는 아니다. 들춰봤다가 해 입을 게 확실하면 차라리 눈을 돌리는 쪽이 나았다. 여우만 모르는 호가호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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