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疑敏 : Tattoo
―당신 만큼은 떳떳하게 살아가도록.
王若琳 - 我只在乎你
如果没有遇见你我将会是在那里
日子过的怎麽样人生是否要珍惜…
스멀스멀 철 지난 가요가 좁은 공간을 드나든다. 페인트로 대충 칠한 콘크리트 벽, 낡은 카펫, 큰 물고기 하나만 유영하는 곳. 고장난 문고리 사이로 바람이 들어 칙칙한 색의 문발만 이리저리 흔들린다. 지하에 스며드는 바람이라곤 눅눅하기만 하여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지하의 주인은, 젊은 문신사였다.
“네가 이런다고 알아줄 것 같아?”
문신 투성이 주먹이 책상을 쾅 내리친다. 이미 같은 상황이 몇 번이나 반복됐는지, 커피 자국 낭자한 책상이 어둑한 조명 아래서 흔들린다. 카랑한 목소리 속에 짓이겨진 분노가 흘러 넘칠 듯이 넘실거린다. 그것만으론 풀리지 않아 수 번은 더 책상을 내리치고서야 짜증 어린 한숨을 내쉰다. 그럼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응어리가 남아있었다. 장 메이, 그녀는 웬수 같은 제 형제 만큼이나 끔찍하게 아끼는 동생의 발언이 이해되지 않았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이 지랄이란 말인가. 새까만 눈을 치켜 뜨며 눈앞의 잡놈을 노려본다. 여직 풀리지 않은 화가 결국 커피 잔을 쓰러뜨렸다.
“리이민. 너… 문신 끔찍하게 싫어했잖아. 근데 나서서 하겠다고?”
“뭐, 어때요. 이젠 평생 이 바닥에서 나갈 생각 없는데.”
그런 말이 아니잖아. 메이는 결국 담배 낀 손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머리가 팽팽 도는 듯했다. 제 마음은 모르고 실실 웃으며 시술 의자에 앉아있는 놈이 정녕 자신이 알던 그 새끼가 맞나 싶기까지 하다. 문신이라도 보였다 하면 눈살부터 찌푸리던 놈. 뒷세계에서 늘 보던 게 그런 것들이라, 언젠가는 백지장처럼 떳떳하게 살겠다던 놈은 어디로 꺼져버렸는지. 애당초 누구 때문에 그런 이상을 가졌는지 알 만하지만. 태연자약한 낯은 리 이민의 전매 특허였음에도 오랫동안 그를 지켜본 장 메이가 모를 리 없었다. 메이는 식은 커피 웅덩이에 담뱃불을 지져 껐다.
“또 네 형인지 뭔지, 걔가 지랄해?”
“메이, 말 조심해요.”
뭐, 새끼야. 지랄하냐고. 내가 물어봤잖아. 불난 곳에 기름 붓듯 으르렁거린 메이가 답답한 듯이 이마를 붙들었다. 당장이라도 답답해 뒤질 지경인 그녀는 할 수만 있다면 제 가슴팍이라도 열어서 흠씬 두드리고 싶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제 형제를 저 만큼이나 끔찍이 아끼는 치인 줄 알았다. 정 나눌 곳 없는 이 바닥에서 가족 하나 있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녀도 모르지 않았으니. 그런데 알고 보니 피붙이도 아닌 가족에 목메여서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행동하는 놈이었다. 그런 게 마냥 예뻐 보이겠느냐는 말이다. 시술대가 제 침대인 양 흥얼흥얼 도안이나 고르고 있는 저 놈은 제 마음일랑 하나도 모를 테지. 알아도 모른 척할 위인이다. 개새끼. 아니, 개처럼 헌신하는 놈이니 딱 그 짝이 맞다.
“이걸로 할게요.”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메이.”
씩씩거리는 목소리 뒤로 온화한 듯 평이한 목소리가 뒤따른다. 알잖아.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장 메이는 리 이민이 이딴 헌신적인 발언을 할 때면, 차라리 식칼 들고 찾아가 그의 형이란 자를 살해하고 싶어지곤 했다. 그가 이리도 ‘어쩔 수 없는 것’에 익숙해진 이유. 그리 벗어나고 싶어했던 뒷세계에 남아있는 이유가 바로 그였으니.
12년 전, 비 오는 날에 만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마음 고생할 이유도 없었겠지. 허나 정말로 자신이 없었다면 리 이민은 더욱 빨리 망가졌을 거라고, 그녀는 감히 단언할 수 있었다. 그는 항상 저 커피 자국이 닳기도 전에 새로운 상처를 달고 왔으니까. ―그날, 비 내리는 밤도 그러했지. 당장이라도 저 검은 바다에 뛰어 들어 사라져버릴 듯한 얼굴로 우산을 내밀더라. 당장 죽어버릴 건 자신이었음에도 그를 살려야겠다, 싶었다. 어둑한 밤에 세차게 내리치던 빗물, 그날의 비린내가 아직도 생경했고 재수 없게 거짓말하던 순간도 선명하다.
“그래, 씨팔! 알아서 해. 뭘 새기는지나 보자.”
메이는 그가 검지로 짚은 도안을 강취하듯 뺏어 들었다. 그리곤 어안이 벙벙해진 눈치로 이민과 도안을 번갈아 봤다. 척 보기에도 진심이냐는 눈빛이었기에 이민은 낯 부끄러운 얼굴로 실실 웃으며 뒷목이나 긁적였다. 그런 모습에 어이 없어진 메이는 입술이나 벙긋거리며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결국 조용히 머신을 들었다. 말해봤자 들어 쳐먹지도 않는다. 내 입만 아프지. 스케일을 보니 얼마나 걸릴지 가늠도 안 되지만 말이다.
失去生命的力量也不可惜…
잡음 섞인 노랫소리가 흐르는 실내. 문신을 새기기 시작한 지도 며칠 째였다. 명암이 들어가고 컬러 염료가 들어가면서 점점 도안의 모습이 그의 등 위로 꽃피듯 돋아나고 있었다. 메이는 꽃잎이나 비늘 등 큰 작업을 끝낼 때마다 리 이민의 눈치를 보듯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혹시라도 그만두자 하면 잘 생각했다며 등허리나 한 번 세게 쳐주고 끝내고 싶은 마음이 만반이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조금 느리게 작업한 감도 그 탓이었다. 하지만 이민은 세 시간이든 다섯 시간이든 그녀가 끝났다는 말을 하기 전까지 가만히 기다릴 뿐이었다. 분명히 답답했을 며칠간, 몇 시간이나. 곤히 생각에 잠긴 얼굴로.
그리고 장 메이는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들 중 한 가지가 ‘한 자리에 오래 있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까지 견디도록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은 가지만 진정 가족이라는 것이 그리도 소중한 것이던가. 그녀는 평생 이해하지 못할 말 따위는 굳이 꺼내지 않기로 했다.
“왜 이 도안을 선택한 거야?”
대신 습관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그가 제대로 마음을 굳힌 모양이어서. 이민은 메이의 목소리를 단번에 못 들은 듯, 뒤늦게서야 퍼뜩 깨어난 목소리로 고민하는 소릴 낸다. 평소처럼 헤프고 가볍기만 한 모습이다. 적어도 가칠하던 시절을 조금이나마 맛봤던 그녀는 헛웃음 지었으나.
“이왕이면 멋있는 게 좋잖아요.”
“이게, 진짜! 나한테까지 거짓말 할래? 피노키오라도 그려줘? 등짝으로 구연동화 해 볼래?”
“어…. 그것도 괜찮네요.”
뭐가 괜찮아. 메이는 시술 중만 아니었다면 등짝을 세게 쳐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가 이리 답했다는 건 정말로 처음 말한 이유 따위는 아니란 거겠지. 계속 말하라는 듯이 턱만 까닥거리며 바늘 끝을 세운다. 용의 아가리에 들어찬 송곳니만 몇 개인지. 참 피곤하기도 하다.
“가장 안 지워질 것 같았거든요.”
“또라이 새끼. 넌 대체, 이렇게까지 해서 얻는 게 뭔데.”
그 후에도 내뱉는 말이야 상스러운 욕설이었으나 피부 위로 수놓는 손짓은 섬세하기만 하다. 제 질문에 다시금 팔에 얼굴을 묻은 이민은 한참이나 생각하는 듯했다. 메이는 그를 오래 보았으나 이토록 오래 고민하는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한 쪽 눈썹을 슥 올렸다. 언제 말하나 보자는 태도가 다분했다. 도저히 물러날 것 같지 않은 모습 앞에서 그는 난감한 양 어설프게 미소 지었다.
“… …면죄부요.”
所以我求求你别让我离开你….
더디던 작업이 속도를 받기 시작한 시기는 메이가 그의 결정이 번복되지 않으리란 걸 깨달은 무렵이었다. 오래된 음악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서야 모든 작업이 끝났고, 메이는 이날 그의 인내심이 생각보다 길다는 걸 다시금 되새겼다. 하긴, 그러니 제 형의 지랄도 다 받아주는 게 아니겠나. 시술대에서 일어나 거울 앞에 선 이민은 뒷덜미부터 골 사이까지 꽃 피운 용의 흔적을 신기한 눈으로 살폈다. 한 번은 제자리에서 빙 돌아보기도 했는데, 어깨를 타고 올라오는 나뭇가지가 퍽 인상적이었다.
“와…. 정말….”
감탄을 자아내는 이민의 목소리에 메이가 어깨를 들썩이며 입꼬릴 올렸다. 곧 나올 칭찬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길이 남길 명작이었다. 허나 그녀가 바란 칭찬은 이민에게서 나올 법한 게 아니었다. 그녀도 알다시피 이민은 본래 문신을 싫어하는 이였으므로.
“―끔찍하네요.”
“이 개자식.”
당장 머신을 들고 달려들 기세인 메이에게 손을 싹싹 맞대어 빌고 나서야 용서 받은 이민은 훌쩍이는 시늉을 했다. 저 놈, 저거. 악어의 눈물이야. 천천히 옷을 다 입어가는 이민에게 곁에서 바라보던 메이가 넌지시 한 마디를 던졌다.
“애인한테는 뭐라고 하게?”
그의 평소 생활 방식을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도통 깊은 속을 드러내지 않고 정이 온전히 쌓일 때쯤이면 저멀리 도망치곤 하는 사람. 모든 관계에 선을 그어놓는 주제에 정을 갈구하는 사람. 그리고 그게 습관이 된 사람이었다. 하여 리 이민은 그에게 변화가 생겼을 때마다 전부 정리해버리고 끊어낸 채 새로운 인연을 쌓아갔다. 마치 모든 시간을 도망자처럼 지낸 듯이. 그의 단면을 보는 이들은 한없이 헤프고 헤픈 이라고 보겠지. 진정 그를 아는 이가 좆 같은 형제와 지하에서 살아가는 문신사뿐이라니. 아니, 실상 자신뿐이다. 그의 유일한 형제는 그리 자상하지 못했으므로.
“헤어질 거예요.”
“동료들은?”
“젊음의 패기로 그렸다고 하려고요. 하지만 굳이 보여주고 싶진 않네요.”
“그럼 내 역작은 누가 봐 줘?”
“원래 남의 역작은 혼자 봐야 쏠쏠한 법이에요.”
하여간, 입 하나는 번드르르해서 리 이민이라면 잡스러운 상황 따위야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길 게 훤했다. 마음대로 하라는 양 두 손으로 훠이, 내쫓듯 휘저었다. 얼른 가라. 손님 밀렸다. 졸지에 파리 취급을 받은 이민은 퍽이나 억울하다는 얼굴로 입술을 댓 발 내밀었다. 그렇게 외투까지 다 챙겨 입은 이민이 차가운 바람 새어나오는 문발을 들어 올렸을 때,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걸음을 멈칫거렸다.
“메이, 노래 취향 좀 바꿔요. 50대도 아니고.”
자기 하고 싶은 한 마디만 남겨두고 맞을까 싶어 줄행랑 친다. 예고 없는 폭격에 어안이 벙벙해진 메이는 한 발 늦게 뛰쳐나와 네가 등려군을 아느냐며 동네가 떠나가도록 외쳤고, 결국 씩씩거리며 기억해 둔 메이가 다음 번 만남에서 대차게 까고 말았다. 나중에서야 그가 줄곧 시술대에 누워 듣고 있던 게 가사라는 걸 알았다지만.
같이 갈래요?
… ….
내가 도와줄게요. 도움이 되어줄게요.
―당신 만큼은 떳떳하게 살아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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