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관

영지듀오_의료인 학회

*비속어, 유혈 및 부상 묘사가 있습니다.

보물상자 앞에 선 생선 대가리는 상태가 나빠 보였다. 당연하지. 몰려다니던 놈들은 바람구멍이 나서 나동그라졌다. 다음에 또 어떤 새끼들이 튀어나올지 모르지만. 해파리는 없었으면 좋겠네. 그것들이 쏘는 독침에 맞으면 정신이 아찔하다니까. 순간 눈앞이 어두워지기 일쑤였다. 딴생각하는 사이에 브룩스가 대양인에게 달려들었다. 배에 낫을 찔러넣었다. 대양인은 힘을 못 이겨 뒤로 넘어갔고, 브룩스도 따라갔다. 앞으로 고꾸라져 낫이 더 깊히 파고들었다. 대양인이 입에서 거무죽죽한 피를 토하며 팔을 처들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단검을 쥐고 있었다. 재빨리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았다. 빌어먹을 대갈통에 겨눴지만 늦었다. 총알이 이미 목소리가 갈라진 비명을 또 가르고 날아갔다.

팔뚝에 꽂혔으니 당장 죽진 않는다. 말그대로 당장 그렇단 소리지, 내버려뒀다간 출혈에 말라죽거나 팔을 잘라야 할걸. 신비학자가 쓰러진 브룩스 주변에 뭔지 모를 가루를 뿌렸다. 초도 세워놓았는데 다 녹아 납작했다. 바닥에 물기가 많아 불이 붙긴 할까.

우리도 이 즈음에서 자리를 푸는 게 좋겠네.

중보병 영감쟁이가 수염을 쓸며 말했다. 해가 들지 않아 낮밤이 구분 안 되지만 쉬고 싶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봇짐을 던져둔 자리로 갔다. 빵과 육포 몇 조각이 물웅덩이에 처박혀 있었다. 육포는 불에 그을리면 되겠지만 빵은 집자마자 녹아 흩어졌다. 만에 들어설 때 맞닥뜨린 어중이떠중이 산적에게 빼앗은 음식으로 어떻게 메꿀 순 있겠어. 그 딱딱한 빵이 어떻게 이러지. 영주이자 우리의 고용주는 이것도 감지덕지인 줄 알라고 했다. 일이 끝나면 한탕 쳐주지.

짐을 챙겨 돌아오니 신비학자가 염불을 외는 중이었다. 근처에 불을 피우려 하자 방해된다며 저쪽으로 쫓아냈다. 어떨 땐 성녀보다 회복력이 좋았다. 터진 살이 눈앞에서 아무는 게 신통하면서도 꺼림칙하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 불을 피웠다. 영감이 그새 잡동사니를 모아온 덕에 장작을 아꼈다. 잘 보니 예의 산적들이 입었던 거적때기도 섞였다. 찬합에 식량을 대강 때려붓고 불 위에 올렸다. 신비학자도 와서 꼬챙이에 불을 붙여갔다. 브룩스는 어떻게 됐나 궁금한데, 부정 탄다고 쳐다도 못하게 했다. 중보병 영감과 나란히 앉아 모닥불이나 살폈다. 찢어지는 비명을 듣기 전까진.

부정이고 나발이고 반사적으로 뒤를 돌았다. 옅은 안개 속에서 브룩스가 몸을 발발 떨었다. 서둘러 둘에가 다가갔다. 팔뚝에 단검이 꽂힌 그대로였다. 이런 미친새끼! 욕을 퍼부으며 쏘아보자 오늘은 기도가 시원찮다고 씨부렸다. 브룩스의 몸이 너무 차가웠다. 불가로 옮기자니 조금만 건드려도 괴성을 질렀다. 하는 수 없이 불을 새로 지폈다. 돌팔이는 짐이나 지키게 두고 영감을 불렀다. 물을 끓이고 붕대와 헝겊을 꺼냈다. 나라고 치유술을 쓸 줄 알겠나. 지혈이나 할 줄 알았다.

움직이지 않게 잘 잡아줘요. 얘 상태가 이래서 쉽지 않을 거예요.

노인네 기운이라도 짜봄세.

심호흡하며 영감이 건틀렛을 푸는 걸 기다렸다. 손이 닿자마자 브룩스가 마구 버둥댔다. 거의 펄떡대는데 이거 대양인으로 변하는 건 아닐까. 전에 대양인이 된 용병의 일지를 읽은 기억이 났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영감이 브룩스의 몸에 올라타 깔아뭉갰다. 노병은 힘이 딸려서 다음 기회는 없을 테다. 총을 쥐었을 때보다 칼자루를 단단히 쥐었다. 뽑는 즉시 브룩스의 입에 거품이 일었다. 비명과 함께 허공으로 튀었다. 그를 끝으로 경련이 잦아들었다. 영감도 브룩스를 놓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살려… 살, 살….

안 죽어. 피 멈추면 뭐 먹을지 말해 봐.

멜. 너무 추워…. 추워.

대답 똑바로 안 해!

따, 따, 듯한. 물을 섞은. 르, 럼.

그나마 정신은 붙었나 보지. 아버지는 다 죽어가는 놈한테 계속 말을 걸라고 했다. 망자는 말할 수 없어서 뭐라도 중얼거리는 놈은 저승사자가 두고 간단다. 벌어진 살을 꾹 눌렀다. 출혈이 줄고부턴 내 손까지 달달 떨렸다. 어렵사리 붕대를 감고나니 팔에 힘이 안 들어갔다. 잠든 브룩스에게 모포를 엎어주고 곁에서 불을 쬐었다. 무슨 응급처치 한 번에 진이 다 빠졌다.

신비 돌팔이가 눈치는 있는지 찬합에서 건더기를 잔뜩 덜어 나와 영감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저는 국물이나 떠먹었다. 불침번도 서겠다고 나섰다. 그래놓고 코를 고는 통에 잠이 안 왔다. 쥐어박을까 확. 차라리 잘 됐는지 모르지. 브룩스 몫의 스프가 든 찬합 옆에 하나를 더 걸었다. 물을 붓고 주변을 살폈다. 망토 안에 숨긴 작은 수통을 꺼냈다. 뚜껑을 열자 럼 특유의 달달한 냄새가 났다. 동시에 옆에서 앓는 소리를 냈다. 브룩스가 오만상을 찡그리며 눈을 떴다.

코가 기가 막히네.

으으…. 멜리사, 나 온몸이 쑤셔.

알았으니까 먹기나 해.

브룩스 앞에 오래 끓어 걸쭉한 스프와 수통, 따듯한 물을 내려놓았다. 럼이 든 수통에 물을 흘려넣었다. 몸이 저지경이니 어쩔 수 없지. 브룩스를 누웠는지 앉았는지 모르게 일으켰다. 춥다 징징거리는 입에 그릇을 붙이고 조심히 기울였다. 건더기가 넘어갈 만큼 입을 벌리고 씹을 정도의 기운은 있었다. 반쯤 먹고 럼이 든 수통도 입에 대줬다. 안색이 훨씬 살았다.

저 신비학자 너무 믿지 마. 하는 짓이 엉성해.

아, 내 팔은 멜이 치료해줬구나.

누구겠어. 지혈 밖에 못했으니까 아프더라도 참아.

아픈 거 날아가라 얍 안 해줘?

농담하는 거 보니 살 만한가 봐. 여기부턴 네가 해.

죄송합니… 아윽!

스스로 앉을 정도가 되자 속 편한 소릴 했다. 수발은 더 안 들어도 되겠다. 스프 그릇을 안겨줬다. 팔을 건드렸는지 비 맞은 개처럼 낑낑거렸다. 상처가 덧난 것 같다고 우는 시늉까지 했다. 눈에 힘 빡 주고 쳐다보면 금방 깨갱할 것을. 스프와 럼을 다 먹으라 시키고 드러누웠다. 이제 잠 좀 자자.


이 이야기는 실화(0출혈 신비학자)를 바탕으로 각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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