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듀오_이야기꾼
다량의 욕설이 나옵니다. 불편하신 분은 읽지 않으시는 걸 권합니다.
손가락을 길게 쳐들고 숨을 후 분다. 담배연기가 딸려나와 손끝을 스쳤다. 이게 얼마나 어렵게 찾은 담밴데, 연기를 뱉느라 허공에서 타는 것도 아까웠다. 얼른 다시 입에 물었다. 수도원에선 술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감자나 설탕으로 럼주를 만들고, 제사? 아 미사, 미사. 미사에 신부가 마실 포도주를 한 잔 내놓아야 하니까.
그럴 줄 알았으면 신부가 됐지. 허참 애초에 달린 새끼들만 할 수 있다지 씨발것들. 나는 가랑이가 허해서 몰래 입을 축이는 정도 밖에 못한다. 이럴 바에야 다시 그 역마차에 오를까 싶다가도…. 엿같네.
이 여름 한낮에 해에 타들어가며 잔심부름을 하는 중에 담배라도 구하니까 있어야지. 잡일 사이에 엄한 짓을 하는 건 나뿐이 아니라서 경쟁도 치열했다. 아마 당분간은 “미란다는 얼마 전에 다녀왔잖아. 더운데 쉬어.”라며 내 발을 뒤로 물릴 테지.
미란다, 염병할. 이름이 무어냔 말에 무심코 ‘메’까지 말하는 바람에 침을 삼키고 허섭한 이름을 대버렸다. 절로 인상이 구겨진 탓에 사연 많은 부랑자 취급을 받았다. 뭐, 사실이긴 했지. 삼림에서 개같은 버섯 대가리에 가늠쇠를 대며 며칠을 보내다 먹은 걸 게워내고 그 위를 구른…. 염병할! 내가 왜 이딴 기억을 떠올려야 하지.
담배를 부러트리기 전에 손에서 힘을 풀었다. 덜덜 떨리는 손이 벌어지는 데 애먹다니. 혀를 차는데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아직 남은 담배를 짓밟아 끄고 허름한 수녀복을 털었다. 색이 다 바래 진회색에 가까워진 옷감을.
덤불이 흔들리는데 딱 사람 하나만큼 움직였다. 옷 아래 숨긴 잭나이프를 꺼내야 할까. 영지만큼은 아니지만 이 동네도 헛짓거리하다 뒤지기 좋은 새끼들이 많았다. 그랬다가 다른 수녀가 튀어나와도 상관 없었다. 애저녁에 토끼 하나 잡아다 구워먹는 걸 들켰으니까. 좀 섬뜩해도 토끼인 줄 알았다 둘러대면 그만이다. 산짐승이 내려올 때마다 이 ‘미란다’나 ‘아그네스’를 찾아제끼는 통에 귀찮아서 문제지. 그럼 총 한 정이라도 구해다주던가. 새총을 쥐여주고 멧돼지 잡으란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씨발. 그 때 일부러 손가락이라도 부러트려서 엄살을 부렸어야지.
중얼거리는데 덤불에선 그림자가 먼저 나왔다. 햇빛 반대 방향으로 그림자가 생기기도 하나. 신비학자인지 돌팔이인지가 희한한 문어다리를 끌고다니는 것도 봤는데 고작 그림자가 반대인들 무슨 상관이겠어. 오히려 이 예수쟁이들은 제 우상을 증명할 단서라며 반가워할지 모르겠다. 나무에 달려 고문 당하다 뒤진 남자 하나가지고 유세는. 돌을 집어 그림자 위로 던졌다. 그러자 컴컴한 색이 위로 길어졌다. 솟아났다고.
아야! 왜 돌을 던져! …요.
칙칙한 녹빛 머리칼에 뿔을 달고 있는 꼴이 영락없이 악마니 뭐니 열심히 그려제끼던 그거였다. 그 남자가 돌아와서 죄없는 이만 돌을 던져라 해도 모두가 돌팔매질할. 아니 내가 뭐하러 우화를 기억해야 하냐고. 눈썹 사이가 절로 좁아졌다. 악마인지 뭔지 하는 녀석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악마라면 나를 꾀려고 하거나 공격해야 하지 않나. 오히려 내 눈치를 보다니 역시 예수쟁이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었다. 아니면 뻥튀기거나.
이걸 굳이 어디다 이를 생각은 없었다. 괜히 이목이 쏠리는 일인 것을. 악마 앞에서 살아남은 수녀아그네스라 추대하면 다행이지. 재수 없으면 이미 악마에 씌었다며 침을 튀길지도 몰랐다. 여러모로 심란해 귀한 담배를 하나 더 물었다.
악마면 불도 쓸 줄 알아?
그럼… 요!
녹색 머리가 손가락을 튕겼다. 즉시 손끝에 불이 피어올랐다. 턱을 움직여 담배를 꺼떡하자 알아서 눈치채고 불꽃을 작게 줄였다. 수도원 생활이 지켜운 만큼 빨아들였다. 불씨가 빠르게 올라왔다. 또 그만한 속도로 머릿속이 멍해졌다. 궐련 달린가 그 새끼가 이상한 거 준 거 아냐? 인상을 쓰자 녹색 머리가 몸을 움찔했다.
쓸모있네.
움츠러든 등을 탁 쳤다. 뭐 이리 잘 놀라는지 어깨를 푸드덕 떨었다. 재밌네? 그 빌어먹을 영지에서 놀던 버릇이 올라왔다.
야. 종종 와서 담뱃불이라도 붙여. 부릴 줄 아는 재주도 있으면 재롱 좀 떨고.
네! 벤조 연주라도 해볼까요?
이번엔 양 손가락을 동시에 튕겼다. 시계탑 같이 생긴 벤조가 허공에서 튀어나왔다. 손으로 현을 건드리려는 찰나 손을 덥썩 잡았다. 소리내면 안돼. 속삭이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아주 소심하게 손뼉을 마주쳤다. 톡, 하고. 그러자 양손에 웬 도마뱀 같이 생긴 인형이 둘러졌다.
제가 어느 영지에서 있었던 얘길 들려드릴게요.
영지? 네가 있던 데도 어지간히 좆 같았나 봐?
조…. 같진 않았고요. 조밥도 못 얻어먹을 정도긴 했어요. 히히.
지금 그걸 농담이라고 하냐. 아무튼 얘기해봐.
아무 바위에나 걸터 앉았다. 녀석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그 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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