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스터디

7. 별자리

공미포 3,636자

“언니! 그거 알아?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하늘로 돌아가 별이 된대.”

언제나 밤이 찾아오면 슈리는 자신의 언니인 레이첼에게 책을 들고 갔다. 좀 전에 책에서 보았던 흥미로운 문장을 봤다며 문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분명 자신이 읽고 있던 책을 더 읽어달라며 조르는 것이 분명했다.

“이번엔 그 이야기를 봤구나?”

“응! 오늘도 읽어줄 거지?”

“누구 부탁인데 해줘야지. 안 그래?”

레이첼은 장난스레 웃으며 슈리가 가져온 책을 받아들였다. 책에 쓰인 문장을 하나씩 차분하게 읽어주며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때로는 동생의 부탁이 귀찮을 법도 한데 단 한 번도 동생의 부탁을 거절한 적이 없었다.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던 두 자매에겐 남다른 사연과 유대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첼이 여덟 살이 되던 해에 슈리가 태어났고 그와 동시에 부모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슈리를 낳고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셨다. 레이첼도 당시 어린아이였지만 갓난아이였던 동생을 지키는 것이 더 급했기에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며 악착같이 살았다.

책을 읽어주던 레이첼은 슈리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평소대로라면 책의 내용을 집중해서 들으며 잠을 청할 법도 할 텐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평소와 다르게 창밖을 바라보며 밤하늘에 새겨진 별들을 바라보며 별자리를 물어보곤 했다. 동생의 물음에 하늘을 가리키며 별자리의 이름을 가르쳐주던 그때였다.

“언니….”

“응?”

“엄마도, 아빠도…. 저기서 우릴 지켜보고 있을까?”

예상치 못한 대답에 레이첼은 멍하니 제 동생을 바라보았다. 슈리는 레이첼의 이야기를 듣다가 밤하늘을 보며 부모님을 떠올린 듯했다. 한참을 멍하니 있던 레이첼은 고개를 겨우 끄덕이며 동생의 말에 대답을 건넸다.

“아마도…. 그렇겠지?”

“언니는 혹시 내가 미웠던 적이 있어?”

“뭐? 갑자기?”

슈리의 말에 레이첼은 당황한 듯 슈리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슈리를 낳고 세상을 떠나가던 날,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장례를 치르던 날에도 레이첼은 오로지 자기 동생을 걱정하기에 바빴다. 동생이 부모님을 데려갔다며 원망할 법도 했지만 단 한 순간에도 동생을 미워하고 증오한 적은 없었다.

“너 또 괜한 소리 하지!”

“악! 아파….”

레이첼은 정신 차리라는 소리와 함께 슈리의 볼을 세게 꼬집으며 노려보았다. 그리고 잠깐 잊고 있던 부모님의 기일을 떠올렸다. 어머니의 기일은 제 동생의 생일이기도 했다. 슈리는 자신의 생일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자신이 태어난 날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갔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늘 같은 모습을 종종 보여왔다.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의 존재 자체에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슈리는 아픈 볼을 어루만지며 언니를 올려다보았다. 레이첼의 표정은 좀 전과 달리 무겁고 차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평소의 언니 성격대로라면 격한 장난을 치며 놀았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언니….”

슈리는 조심스레 제 언니를 불러보았다. 레이첼은 차분하게 제 생각을 정리하고는 동생을 안아주며 귀에 속삭이듯 차분하게 다독여주며 말을 걸었다.

“난 너를 미워하지 않아. 부모님도 그랬고.”

“아….”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도, 아빠도 항상 네가 세상의 빛을 보기를 간절히 기다렸어.”

레이첼의 말에 슈리는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레이첼은 슈리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분명 눈물을 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머니의 기일이자 동생의 생일이 다가올 때쯤 항상 슈리는 시무룩하게 있었던 것을 알기에 이번에는 꼭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 싶었던 것도 컸다.

“단 한 순간도 너를 미워한 적 없어.”

“미안해, 괜한 말을 해서….”

“엄마도, 아빠도…. 저기서 지켜보고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레이첼의 말에 슈리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별빛이 유독 빛나던 밤에 얼굴조차 모르는 부모님을 그리워하던 날이 있었다. 슈리는 다독이던 언니의 손길에 위로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다 지쳐서 잠든 적이 많았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항상 찾아오는 것 같았다.


새까만 밤이 내려앉은 시간 자신도 모르게 슈리는 눈을 뜨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잠깐만 잠을 청하기로 했는데 그간 여정이 피곤했던 탓에 시간이 간 줄 모른 채 잠을 잔 모양이다. 평소에 꿈을 자주 꾸긴 했지만 대체로 예지몽에 가까운 꿈들 뿐이었는데 예지몽이 아닌 꿈을 꾼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잠을 자던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는지 눈가가 촉촉했다.

‘전부 꿈이었구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했던 언니도 이제는 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되었다. 용족들이 산다는 북부 대륙으로 간 것이 마지막이었고 훗날 마주했던 언니의 모습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떠나간 사람들이 남긴 빈자리는 언제나 공허했고 그 공허함이 가슴 깊이 파고들어 시린 느낌을 낼 때는 유독 밤하늘의 별이 더 많아진 기분이 들었다.

언니가 죽은 이후 밤하늘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밤하늘을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애써 별들을 피하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을 때면 눈을 감고 다음 날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랐었다.

문득 밤하늘을 바라보던 슈리는 자신이 잊고 있었던 옛날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은 밤하늘의 별이 되어 하늘 아래를 내려다본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다들 자고 있겠지….’

슈리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조심스레 여관 복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은은한 불빛이 여관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주변이 조용한 것으로 보아 다들 자러간 모양이다. 조심스레 복도를 따라 걷다가 계단을 지나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밤이 꽤 깊어진 탓에 밤공기는 생각보다 서늘했다. 차라리 겉옷이라도 갖고 나올 것을 그랬나 보다. 조금은 후회스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들어가면 나오는 것이 더 귀찮을 것 같아서 추위를 참고 밤하늘을 올려다보기로 했다.

“언니….”

갑작스레 맞이한 공백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애써 잊어보려고 노력하면 도리어 상처를 스스로 후벼파는 꼴이 되기도 했다. 차라리 깊이 잠들면 나았을 것을 중간에 깨버린 탓에 마음만 더 뒤숭숭했다. 한참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어깨를 감싸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 뒤를 돌아보았다.

“추운데 여기서 뭐 해?”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레카였다.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서 슈리의 어깨에 걸쳐주고는 자연스레 그 옆에 앉았다. 슈리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딱히 불편해하거나 거리를 두진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같이 있으면 어느 때보다 마음이 진정되곤 했다.

“그냥 별을 보고 있었어. 너는?”

“아, 자다가 깼는데 인기척이 들려서 나왔어. 마침 밖으로 나가던 네 모습도 보였고.”

자연스레 슈리의 말에 대답하고는 레카도 시선을 밤하늘로 올렸다.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밤하늘에 달빛이 없는 검은 밤하늘 위로 별들이 가득했다. 두 사람은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누고는 숙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먼저 들어가자고 제안한 것은 레카였다.

“그나저나 너 밤하늘 보는 거 좋아해?”

“어? 그건 아니지만….”

레카는 슈리의 말에 말 못할 사연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으나 굳이 더 묻진 않았다. 지금까지 말 못할 이야기라면 분명 좋은 기억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니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두 사람은 여관 1층에 놓인 식당 테이블 한쪽에 자리를 잡은 채 이야기를 마저 나누기로 했다.

“너 혹시 그 이야기 알아?”

조용한 분위기 속에 슈리가 먼저 말을 걸었다. 슈리의 시선은 여전히 창밖의 밤하늘을 향해 있었다. 레카는 평소에 슈리가 밤하늘을 이렇게 오래 바라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 슈리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사람이 죽어 영혼이 되면 밤하늘의 별이 되어 하늘 아래를 내려다본다는 이야기가 있거든.”

“아, 그 이야기는….”

“맞아. 오래전 내려오던 신화야. 언니가 들려주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대답에 레카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야기를 통해 더 알게 된 것은 언니와 함께 살다가 언니는 타지에서 죽음을 맞이한 채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밤하늘의 별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은 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컸던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야기가 끝난 두 사람의 사이에는 침묵과 정적만이 흘렀다. 누군가를 죽음을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감정은 자신도 과거에 겪어본 일이기에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누군가의 빈자리는 그 어떤 것으로도 쉽사리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함부로 뭐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일이 있었어. 아무에게도 말하진 못했지만.”

“아냐. 말해주기 힘들었을 텐데. 말해줘서 고마워….”

레카는 다정한 말투로 슈리에게 대답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경험은 제 언니를 제외하고는 처음이었다. 한결 홀가분해진 느낌을 받았지만 이어지는 씁쓸함은 좀처럼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감정은 아니었다. 무슨 말을 더하려고 했는데 생각이 정리되어서 그런지 혹은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서서히 졸음이 밀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아! 더 늦기 전에 자러 가야겠네. 우리 일정이 있었지?”

“그래. 내일은 다른 대륙으로 넘어가야 하니까.”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으로 들어온 슈리는 침대맡에 걸터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겨 멍하니 있다가 다시 몸을 뉘어 어두운 방 천장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부모님도, 그리고 먼 곳으로 떠나버린 언니도 하늘에 빛나는 별이 되어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찾아오는 공허함과 복잡한 생각에 몸을 몇번이고 뒤척이길 반복한 끝에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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