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스터디

4. 축제

던전앤파이터 스위프트마스터 X 소환사


길던 겨울이 끝나고 언제 올까 손꼽아 기다리던 봄기운이 각 대륙으로 퍼지며 화사함을 느끼기 좋은 날이 다가왔다. 추위에 웅크려있던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며 아라드에도 분홍빛으로 아름다움이 물들었다.

지나가던 많은 모험가가 벚꽃을 보기 위해 거리를 배회하고 누군가는 그림으로 그 순간을 남기고 누군가는 그 아래에서 노래를 부르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제국에서는 축제를 열고 있던 참이었다.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벚꽃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소녀는 사람들을 겨우 피해 조용한 곳으로 숨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것보다는 조용한 곳을 더 선호했던 탓에 축제 기간이 열린 줄도 모르고 이곳에 왔다가 되려 봉변당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축제 기간이었구나. 괜히 왔네….’

소녀는 한 때 아라드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모험가 중 하나였으며 정령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소환사였다. 가뜩이나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었기에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사실 저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좋아하는지 크게 공감 가지도 않기도 했다.

허리춤에 끼워둔 정령 관련 서적들과 손에 잡히는 지배의 고리를 만지작거리며 그저 사람들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가까운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 시작했다. 자기 딴에는 볼일이 있어 찾아왔는데 되려 손해를 본 기분이 들어 피곤함이 밀려오던 찰나였다.

“바람이….”

자신 주변으로 느껴지는 바람에 주변 벚꽃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벚꽃 나무에는 바람의 영향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번에도 또 그 소년이 찾아왔음을 짐작한 소환사는 바람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모여있길래 왔는데 너였구나?”

검은 머리를 길게 땋은 소년이 바람과 함께 자연스레 소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소녀는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소년을 올려다보았다. 지난번에 보았을 때와는 다르게 몰라보게 성숙한 모습과 한결 더 자유로워 보이는 모습이 기분 탓은 아니었을 거다. 스위프트 마스터라는 직업을 가진 소년은 그 이전에도 바람과 함께 등장하고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고 바로 오늘 다시 소년은 소녀의 앞에 모습을 보인 것이다.

“오랜만이야! 헤헤, 잘 지냈어?”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이었으면 이럴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어떤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달리 소년에게 보일 수 있는 반응은 없었기에 끄덕이며 인사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소년은 자연스레 소녀의 옆에 앉아 그동안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하며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많은 일이 있었구나?”

“아, 물론이지! 천계에도 잠깐 다녀왔고 조만간 연락이 올 때를 기다리는 중이지. 너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쉴 새 없이 이어 나가는 대화 속에 소녀 역시 그동안 자신이 보고 경험했던 모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소년보다는 간략히 요약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적절한 타이밍에 호응을 해주며 소녀의 입에서 대화가 자연스레 나올 수 있게 이끌어주고 있었다.

“우리 그때 이후로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말이야. 참! 너도 이번에 축제 보러 온 거야?”

“어? 아니, 난 볼일을 보러….”

소녀는 우물쭈물하듯 대답하고는 고개를 땅으로 떨구었다. 딱히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저 사람들처럼 축제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뿐인데 괜히 자신이 잘못한 것은 아닌지 머쓱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한참 멍하니 소녀와 축제 현장을 두리번거리더니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럼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인연인데?”

“같이 축제를 즐기는 건 어때? 잠깐이면 되는데 안 될까?”

분명 거절해도 괜찮았을 제안이었음에도 소년의 표정을 본 소환사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얼떨결에 소년의 손에 이끌려가다시피 축제 현장으로 들어간 소녀는 축제를 즐긴다기보다는 바람과 함께 여기저기 이동하는 기분이 들어 괜히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소년이 소녀를 놓칠세라 굳게 잡아준 그 손 덕에 많은 사람을 뚫고서 길을 지나갈 수 있었던 점이었다. 소환사는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하얗게 핀 벚나무 꽃잎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눈이네….”

“눈?”

소녀가 중얼거리듯 말한 대답을 얼떨결에 소년도 함께 들었다. 소년도 같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벚꽃 꽃잎이 바람에 날려 눈처럼 내리는 장관을 바라보았다. 해가 저물어 저녁이 다 되어 갈 때 바라보는 벚꽃은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다. 까만 하늘에 눈이 내리는 기분이 들어 가슴 한편이 뭉클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여유를 부리며 하늘을 바라본 것도 꽤 오랜만이었다. 두 사람은 벚꽃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스위프트 마스터인 소년은 장난기를 더해 괜히 산들바람을 더 일으켜 벚꽃이 아름답게 휘날리게 했다. 소환사라면 눈치가 빠를 법도 했을 텐데 별말이 없는 것을 보아 지금 풍경에 넋을 놓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이야기 알아?”

“무슨 이야기?”

“벚꽃잎을 일 년 내내 간직하고 있으면 소원이 이뤄진다 그랬나?”

소년은 소녀의 머리에 얹어진 꽃잎을 떼어주며 자연스레 말했다. 소녀는 소년의 손끝에 잡힌 벚꽃잎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 기분이 들어 고개를 떨구며 꽃잎을 집어 들었다. 딱히 뭔가를 바란 적도 없었기에 소원이랄 것도 없지만.

“너…, 너는 꽃잎 필요 없어?”

“음? 난 괜찮아! 이미 소원도 이뤘는데.”

소년이 대답하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환사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소년을 바라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오늘 하루 벚꽃 축제가 끝이 보이자 소년은 자연스레 자신의 주위로 바람을 일으키며 소녀를 돌아보았다. 소녀는 급히 소년을 부르기 시작했다.

“잠깐만!”

“왜?”

“이름! 네 이름 알려주고 가….”

소환사의 대답에 스위프트 마스터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며 고민하는 듯했다. 고민을 마친 소년은 씩 웃으며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다음에 만나면 알려줄게.”

소녀가 다시금 소년을 불렀지만, 그 부름이 무색하게도 소년이 있던 자리에는 산들바람만이 남아있을 뿐, 소년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산들바람이 남아 벚꽃 잎을 다시 한번 더 날려주었고 소환사는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축제가 막을 내리고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괜히 공허한 마음에 소녀는 그 자리를 더 지키고는 다시 자신이 갈 곳을 향해 발을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홀연히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 소년과 함께 즐긴 축제와 그 시간이 그저 한편의 꿈과 같아 소환사는 멍한 감정을 추스르는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의 말대로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약속을 가슴속에 새기며 소녀 역시 다시 모험의 길에 발을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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