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스터디

5. 소원

공미포 2,029

평온함은 아주 찰나에 가까웠다. 어둑섬에서 일어난 일들,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선계 전체에 짙은 요기가 퍼지며 솔리다리스 역시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과거에 한 번 겪은 트라우마가 쉽게 지워지진 않지만 그런데도 선원들은 각자 할 일을 하며 모든 일에 대비하고 있었다.

유진 역시 맡은 일에 충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천성은 버릴 수 없는지라 빈틈이 보인다면 어디론가 사라지기 바쁘지만 단델의 따가운 시선과 잔소리를 몇 번 듣고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유진! 딴청 피울 거면 잔업 확정이야! 알았어?”

“아, 알았어. 그러니까 진정해.” 

유진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일을 끝내고 갑판 구석 한쪽에 자리를 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설상가상으로 오늘 밤 당직까지 걸린 상황이라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을 곱게 접어두었다. 상황이 위급한 건 알고 있었지만 몰아치는 일을 해결하려고 하니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잠깐만 쉰다고 뭐라 하진 않겠지….’

유진은 머리를 기대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곧 폭풍이 몰아닥칠 것 같은 선계와 솔리다리스 상황과는 달리 하늘은 눈부시게 맑고 푸른 모습을 보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투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어있던 그때였다.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시선이 느껴져 유진은 급히 고개를 돌려 시선이 느껴진 곳을 바라보았다.

“유진, 내가 했던 말 기억해?”

살기가 어린 단델의 모습을 바라보며 유진은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유진은 변명과 도망을 선택하는 대신 짧게 한숨을 내쉬며 최대한 불쌍한 척을 하며 단델에게 말했다.

“이봐, 일도 쉬어가면서 해야지. 그래야 능률이 오르고….”

“너 틈만 나면 쉬고 있는 건 알고 있지?”

“단델. 쉬고 있는 게 아니라 숨을 돌리는 거야.”

유진의 변명에 단델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앉아있던 그를 매섭게 째려보았다. 처음에는 능청스레 상황을 벗어나려 했지만 유진은 단델의 등쌀에 못 이겨 다시 일어나서 할 일을 마저 했다. 정확하게는 일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침 일을 끝내고 온 단델이 계속 그의 곁에서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진은 일하는 내내 투덜거리길 반복했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어느덧 밤이 찾아왔다. 일을 끝내고 숙소에서 잠을 청하던 유진은 시계를 바라보더니 억지로 잠을 깨고는 갑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달이 눈부시게 뜬 하늘을 보며 시간이 꽤 오래 흘렀음을 감지했다. 솔리다리스의 선원들은 돌아가며 당직근무를 서곤 했는데 대대장을 맡은 유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갑판에는 고용함과 적막감이 흐르고 하늘 위로는 선명하게 빛나는 별들이 모여 은하수를 이뤘다. 유진은 하늘을 바라보며 저것이 낭만이라고 생각했다. 한참 하늘을 보며 감상에 젖어있던 그때, 인기척을 느끼고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단델이였다. 단델 역시 유진과 함께 야간 당직으로 배정받은 터라 잠을 겨우 깬 듯 비몽사몽 한 눈으로 갑판을 돌아다녔다.

“이봐, 너도 오늘 당직이야?”

“어쩔 수 없지. 너도 오늘 당직인가 보네.”

유진은 단델과 짧은 인사와 안부를 건네고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에 뭐 있어?”

단델 역시 그를 따라 밤하늘을 유심히 올려다보았다. 아름답게 빛나는 은하수를 바라보며 단델은 멍하니 은하수의 아름다움에 완벽히 매료되었다. 너무 바쁘게 살아온 나머지 하늘을 올려다보며 숨을 돌릴 틈 하나 없었다.

밤하늘을 쳐다보던 그때 유진이 단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별똥별이 떨어질 것 같은데….”

유진의 말에 단델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별들 사이에 유난히 반짝거리는 별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이맘때면 별똥별이 종종 관찰되곤 했다. 물론 단델은 늘 바쁘게 지내온 탓에 별똥별은 물론 이런 여유를 느껴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도 않지만.

한참 멍하니 바라보던 그때였다. 유난히 빛나던 별 하나가 별들 사이로 반짝이는 포물선을 그리며 별똥별이 되는 모습을 발견했다. 신기한 듯 멍하니 별똥별을 바라보던 단델에게 유진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말을 걸었다.

“그거 알아? 별똥별에 소원 빌면 이뤄진다더라.”

어디까지나 미신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소원을 빈다고 해서 나쁜 것은 없었다. 단델은 잠깐 고민에 빠졌다. 그러더니 뭔가 떠오른 듯 두 손을 모아 눈을 감으며 소원을 빌었다. 유진은 말없이 그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두 손을 모은 채로 한참 소원을 빌던 단델은 눈을 뜨고 다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원 빌었어?”

유진이 단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단델은 유진의 대답에 소원을 말하려고 했으나 잠깐 멈칫하더니 유진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소원 말하면 안 이뤄지는 거 아니야?”

“글쎄, 그건 나야 모르지.”

유진은 능청스레 대답하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간이 깊어져 어느덧 자정에서 새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밤하늘을 따라 별똥별이 하나둘 늘어나더니 유성우가 되어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유진! 너는 소원 빌었어?”

“아니.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고….”

“뭐야, 소원이라길래 너도 원하는 게 있나 했더니.”

“음…. 글쎄? 너랑 같은 소원 아닐까?”

단델은 어이없다는 듯 유진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표정은 늘 여유로운 모습이었기에 단델조차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단델이 유성우에 빈 소원은 모두가 행복했으면 하는 소원이었고 끝내 그 소원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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